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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예화 모음 34편

by 【고동엽】 2022. 6. 10.
[처음 목차 돌아가기]
 
 
 
1.거룩한 분노

성수대교 붕괴 후에 서울시 기술 공무원들은 "관리와 보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건축물을 가능한 원래의 상태로 관리, 보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일부 교회에서는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개혁"은 무엇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관리하고 보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교회와 복음을 성경에서 말하는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개혁의 바른 정신입니다.
마틴루터는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 자체를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오직 원래의 말씀으로만 돌아가자는 취지였습니다.



세례요한의 등장을 알리는 누가복음 3장에는 이 시대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때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방에서 포진하던 시기입니다. 즉 황제 디베료 가이사, 총독인 빌라도, 유대 각지방의 분봉왕들인 헤롯과 빌립 그리고 루사니아,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가 바로 그들입니다. 왜 이들은 세례 요한의 출현에 앞서 기록되고 있을까요? 그것은 세례요한의 등장이 그만큼 볼품 없는 극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백성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지금 겪는 상황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화되면 낙원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또 GNP 3만불만 넘으면 무지개가 뜨는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북한의 남침위협은 여전하고, 시대의 소망은 화려한 가이사의 궁전이나, 막강한 로마 정부의 군사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그 해답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대도 관심도 두지 않았던, 빈들의 요한에게서 그 해답을 준비하셨습니다. 광야에 묻혀서 이름도 없이 살아가던 한 청년의 입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박사학위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탁월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인상이나 인간미, 교양을 갖춘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광야에 묻혀서 한 순간의 쓰임을 위하여 준비되었던 하나님의 그릇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모든 것을 넘치게 갖추었습니다. 웅장한 건물, 풍부한 재정, 그리고 세상적으로도 힘과 세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기관장들이 와서 굽실거립니다. 목회자는 최소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야만 담임목사로 청빙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입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세력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힘의 논리입니다. 세상의 철학입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여리고와 아이성의 전투를 기억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전쟁은 세력과 힘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는 힘의 철학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대세보다는 대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힘과 권력에 편승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궁이나 위엄이 가득한 성전에서가 아닌 텅빈 빈들에서 시대의 난국을 헤쳐갈 해답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강단은 이제 달콤한 음녀의 속삭임을 그쳐야 합니다. 백성들의 필요와 시대의 필요를 따라서 편의적으로 설교를 하는 것도 좋으나 지금은 거룩한 분노가 필요한 때입니다. 교회에 들어온 세속의 오물들을 먼저 걷어내고 빈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당 푸닥거리를 중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것을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렘7:4-8)


'제로-베이스'운동이란 용어는 기업에서 한창 적용 중인 경제용어입니다. 이 단어에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보자는 운동이며 둘째, 모든 것을 본질에서 다시 보자는 운동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원점'에서 그리고 '본질'에서 다시 보는 영적인 제로베이스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성경을 다시 보고, 바로 읽기를 시작해야합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탐욕스런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위선과 타협과 허세와 허수 그리고 기복을 걷어내고 먼저 교회를 빈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새상이 문제가 아니라 회심하지 않는 교회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은 찬란한 교회에서가 아니라 빈들에서 하나님의 엘리야들을 찾고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함께 할 기도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헌신된 이름없는 무리들이 필요합니다.


한국 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잠자는 교회,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어찌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 있겠습니까?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처럼 교회의 개혁을 위해 나팔과 횃불을 높이들 십자가의 군병들은 모여야 합니다.(삿7장)



주의 일에 전심코자 하는 형제들은 함께 모여야 합니다. 작은 물방울처럼 모여 예수의 큰 강을 이뤄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요2:13-17)





2.분을 참으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잠15:18)
오래 전 미국의 홀트 이반 판사는 살인을 저지른 27세의 한 여인에게 중형을 언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홀트 판사는 이 일을 내내 가슴 아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의 살인 동기가 너무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웃과 5센트(한화 40원)를 갖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우기다가 그만 격분을 참지 못하고 총을 들어 상대방을 쏴 죽였던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 발단되어 엄청난 비극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을 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분을 쉽게 내는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언 15:18)





3.화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화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화를 안고 사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며,
인생의 많은 문을 닫히게 한다.
따라서 화를 다스릴 때 우리는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풀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 틱낫한의《화(Anger)》중에서 -





4.분노의 감정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11)
어느 날 한 목사님이 분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부인이 목사님께 다가갔습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성질이 너무 급해서 고민이라며 목사님에게 자기 문제를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작은 일에 가끔 폭발을 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뒤가 없습니다. 금방 풀어버립니다. 마음에 두고 꿍하고 있지는 않지요. 일분도 안 걸려 그 사람하고 그 자리에서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끝납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그 부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정중히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방이면 끝나지요 그러나 한방만 쏘아도 그 결과는 엄청납니다. 다 박살나지요."
사람은 모두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느끼는 정도와 표현하는 여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감정은 감정을 즉시 표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희노애락의 감정 중에 기쁨과 즐거움은 표현을 하든지 안 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다툼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깨뜨립니다. 물론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으나. 분노가 치민다 해서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후회할 일만 생깁니다. 그러므로 노를 잘 다스려서 억제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5.화내지 않고 사는 법

♠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인생이 훨씬 더 재미있어지고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당신의 말을 더 잘 들어주기 시작할 것이다.
♠ 매일 최소한 한 명에게 당신이 그 사람을 왜 높이 평가하는 지 설명해 주어라.
♠ 너무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 말라. 너무 꼼꼼하면 당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신경질이 난다.
♠ 당신의 권리에 맹목적으로 얽매이지 말라. 그러다 보면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입바른 소리를 자꾸 하지 말아라. 대부분 당신만 손해다.
♠ 낯선 사람에게도 종종 웃음을 보내라.
♠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끼어 들지 말아라.
♠ 자신의 불쾌함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일이 조금 잘못되더라도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 모든 것이 완벽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또한 당신 스스로도 완벽해지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면 인생이 한 순간에 훨씬 단순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도 화를 주체할 길이 없을 땐 지금 화를 내고 있는 일이 앞으로 일년 동안 일어날 일들에 대해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6.합당한 분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마 3:5.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 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요 2:14,15.
레오메도우는 『분노의 극복』이라는 책에서 ‘분노를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신체와 정신에 힘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는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분노를 품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의로운 분노는 죄가 아닙니다.
성경 을 보면 예수님도 여러 번 의로운 분노를 발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분노를 품을 때는 마음에 미움과 악와 원한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유발된 것이어도 안되며, 적절하게 감정이 통제된 상태에서 분노를 품어야 합니다.





7.화가 나면

“분노를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 37: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 27:3,4.
한 지혜로운 사람이 모욕을 당해 분개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젊은이, 모욕은 진흙과 같은 걸세. 진흙은 마른 뒤에 털어야 잘 털린다네. 속상하겠지만 조금만 참게. 그러면 일이 쉽게 풀릴 걸세. 만약 자네가 내 충고를 무시하고 자네 감정대로 행동을 한다면 자네는 반드시 후회하고 말 걸세.” 젊은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머지 않아 모욕을 준 사람이 찾아와 사과를 했습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라고 중얼거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도 몰랐 던 평안이 당신 마음을 넉넉하게 해 줄 것입니다.





8.곰 사냥

사냥꾼들이 곰을 잡는 방법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곰이 잘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놓는다. 그러면 그곳을 지나던 곰이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치게 된다. 머리를 부딪힌 곰은 자기가 가는 길을 막은 것이 화가 나서 돌덩이를 이마로 들이받는다. 그러면 돌덩이는 저만큼 밀려갔다가 다시 곰을 향하여 밀려와 곰을 들이받는다.
그러면 더 많이 화가 난 곰이 더 세게 돌덩이를 들이받는다. 곰의 반복되는 무차별한 공격은 그 도가 더 심해진다. 결국 곰은 그 어리석은 힘 겨루기로 머리가 터지고 녹초가 되어 힘을 다 소모해버린다. 그때 지켜보던 사냥꾼들이 와서 곰을 끌고 간다고 한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힘 겨루기로 자신을 파괴시켜가고 있는가? 그냥 피해가면 될 것을 한 곳에 더 집착하면 할수록 그 수렁에 깊이 빠지고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피해갈 것은 그냥 피해 가라. 사울은 다윗을 피해 가지 않았기에 평생을 질투와 미움으로 고통 당하다가 불행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9.소중한 것을 잃게 하는 분노

대부분의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될 때 분노를 발산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이웃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고 아픔과 이별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혹은 이웃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토스카니니는 음악적 재능으로 위대한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음악적 재능뿐만 아니라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도 유명하였다.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을 할 때 한 연주자가 실수하면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변에 있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집어던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합주 연습을 할 때 한 연주자가 눈에 띄는 실수를 하자 즉시 얼굴이 분노로 굳어졌다. 그는 갑자기 지휘대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비싼 시계를 집어서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시계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으로 깨뜨려지고 말았다.
위대한 지휘자인 토스카니니의 분노의 불길은 자기의 값비싼 시계를 잃어버리는 손해만 봤지만 분노는 종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홧김에 던진 말 한마디가 친구나 가족의 사이를 영영 갈라놓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를 좋은 방법으로 극복하도록 해야 하겠다. 분노가 일어나거든 누구든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는 잠언 15장 1절 말씀을 생활화해야 하겠다





10.망신 부르는 3가지 함정

요 며칠 전 뉴스에 유명한 여배우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돼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가지 기준이 나온다. 그 첫째는 키이소오(돈주머니),둘째는 코오소오(술잔),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이다.
먼저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처리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돈 못지 않게 사람을 흔드는 게 있는데 그것이 ‘술’이다.
사람들이 술에 좌우되어 숱한 일들이 생기고 사고를 저지른다.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그 후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노여움’이다. 분노가 어떤 경우에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짜증이 심할 때 느긋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11.화를 내어도 얻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에는 화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최근의 생리학은 분노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분노하지 않는 편이 절대로 이롭다."


어떻게 이롭다는 말인가?
첫째,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화를 내면 뇌 속에서 해로운 물질이 분비된다.
끝까지 화를 내 는 것은 독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둘 째, 노화를 촉진시킨다.
분노는 활성 산소를 생성시킨다.
활성 산소 는 호흡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 산소가 변화한 것인데, 강렬한 노화 촉진 인자로 인식되어 있다.
 항상 화만 내고 있으면,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생기며 탄력성이 없어진다.


 어린이를 심하게 꾸짖고 있는 어머니는 노화를 촉진하고 있다. 셋째, 분노는 때로는 감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어 인생을 파괴하는 수도 있다. 화가 난 나머지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살해당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 도 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넷째, 분노는 대체로 즐겁지 않다. "넌 바보야!"라는 말을 듣거든 "아, 그래? 충고해 줘서 고마워" 하고 감사해 한다. 이렇게 하면 뇌 속에서 쾌감 물질이 나온다.
알랭 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고, 최고로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다."





12. 인간의 역사

미소의 핵 경쟁은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미 가진 핵 탄 만으로도 지구를 41회 파괴할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이므로 한번만 파괴해도 끝날 일을 41회나 파괴할 무기를 마련  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날마다 3만 5천명이 굶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증오심과 싸움을 위하여 전 세계가 쓰는 돈은 연간 5천5백억 불이다. 미국은 1987년까지 1조6천억 불을 군사비로 이미 썼다. 사회복지 사업과 교육비를 대폭 줄이고 무력경쟁에 골몰하는 것은 비극을 넘어 선 큰 죄악이다. 미국의 경우 교육비는 한 어린이에 연간 260 불 밖에 안 쓰면서 군인 한 명을 위하여는 1만 6천불을 쓰고 있다.
지난 3천년의 역사 속에 3천 3백번의 전쟁이 있었다. 사람의 역사란 싸움의 역사이다. 2차 대전의 영웅이라는 조지 패튼 장군이 `하나님 나를 도 우소서 나는 전쟁을 사랑합니다. ` 라고 말한 것은 영화[패튼]에도 인용된 유명한 망언이다.
전쟁터에서 하나 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동시에 싸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악마적 인간의 모순된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13. 노여움과 사랑

들판을 걸어가노라면 이따끔 쐐기풀에 찔려 오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갖가지 경우를 당하면서 노여움을 일으키고 비통한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재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마음이 노여움의 불길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데에는 그만큼 큰 이유가 있습니다.
악한 마음과 노여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속박하지만 사랑은 생명을 방출합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마비시키지만 사랑은 우리에게 능력을 줍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쓰디 스게 만들지만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노여움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낫게 만듭니다. 노여움은 우리들 생명에 대하여 눈멀게 만들지만 사랑은 자유와 빛의 고약으로 우리 눈에 발라 밝히 보게 합니다. 





14.역사를 바꾼 별

“위험(Danger)에서 한 치 모자라는 것이 화(Anger)”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화는 자신과 이웃을 위험에 빠뜨리는 바이러스다. 방울뱀은 극도로 화가 나면 제 몸부터 물어뜯는다. 사람도 화가 나면 자신을 학대한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바른 판단이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웅이나 위인들은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화를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링컨은 노예의 슬픈 얼굴을 보고 ‘노예해방’이라는 화를 분출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분개해 개혁에 나섰다. 유관순은 일제의 만행에 맞서 ‘3·1 만세운동’이라는 이름의 화를 표출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잠 14:17)
징기스칸은 사냥을 위해 매를 데리고 다녔는데, 매를 사랑하여 마치 친구처럼 여기며 길렀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매를 공중으로 날려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그의 손을 쳐서 잔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매가 방해하자 징기스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칼로 매를 내리쳤습니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바위 위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죽은 독사의 시체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자칫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이 마비되어 평상시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노한 사람은 대개 나중에 후회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급하게 성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성을 내면 이성을 잃고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무골인간(無骨人間)은 주위로부터 칭송을 듣긴 하지만 역사를 바꾸는 힘은 없다. 인류의 역사는 화를 바르게 사용한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화를 잘 조절하라. 그러면 그것은 선을 이루는 동력이 된다. ‘용기’란 ‘잘 조절된 화’를 의미한다. 화가 나면 일단 10까지 세어보자. 상대가 죽이고 싶도록 미우면 100까지 세어보자.





15. 세 번의 심호흡

꽉 막힌 도로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세 번의 심호흡'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화가 치밀고 당황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첫 번째 호흡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킨다. 두 번째 호흡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준다. 세 번째 호흡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우리 자신과 영혼을 결합시켜 준다.
- 토머스 크럼의《세 번의 심호흡》중에서 -





16.분노와 사탄의 역사

인간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분노다. 문제는 분노가 폭발할 때 그것은 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나 미국과 알카에다간 관계가 바로 그런 경우다. 아무리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일단 분노가 폭발하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된다. 마치 내리막길을 달리는 마차와 같아서 넘어지기 쉽고 넘어질 때는 크게 다치게 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화가 나면 열을 세고, 많이 나면 백을 세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바울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분노란 누구나 안 가질 수는 없지만 사탄에게 죄를 짓는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며 모두 분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첫째,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분을 모두 털어놓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우리의 분을 해결하는 장소다. 두번째 방법은 분을 쌓아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You-message’이고 다른 하나는 ‘I-message’이다.
‘you-message’란 상대방에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네가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잘못했다’는 식의 상대방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I-message’란 나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 잘못은 말하지 않는다. “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퍽 섭섭했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라며 자신의 느낌을 표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상대는 마음이 상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너무 심했구나”라며 사과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기 때문에 분노를 폭발하지는 않는다.
분노란 표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인해 죽는 경우도 있고 암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분노는 ‘I-message’로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분노가 사탄에게 틈을 보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17.분노의 폭탄

중국 북부산시성 산젠 마을에서 한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인에 대한 복수로 어느 결혼식장에 폭탄을 터뜨려 36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있었다. 전직 광산 폭발물 전문가였던 이 남자 역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우리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서 함께 타락하여 자기중심적인 본성을 갖게 되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자신이 공평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게 하며, 이로 말미암아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흑인들의 인권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수감되었다는 사실과 견딜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감옥의 환경으로 인해 분노에 휩싸였다. 그래서 면회 오는 변호사에게 “여긴 지옥이야, 지옥!”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분노를 일으켜도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하루는 변호사가 찾아와서 물었다.
“아직도 수감 생활이 고통스럽습니까?”
“아니, 지금은 천국이오.”
“그새 감옥의 환경이 많이 개선된 모양이군요.”
“아니, 감옥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했소.”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분노하면서 죄의 소원을 따라 죄악을 저지를 것인지, 아니면 분노가 우리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여호와 앞에 잠잠히 묵상하면서 우리의 모든 신원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18.알렉산더의 실수

알렉산더 대왕은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혀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큰 불행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자란 막연한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클레토스라는 그의 친구는 알렉산더 대제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술에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알렉산더는 옆에 있던 병사의 창을 빼앗아서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물론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그 창은 자기의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그 후회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다 옆의 사람들의 만류로 실패했다는 일화가 전해옵니다. 그는 전 세계를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19..분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는 살아가면서 옳은 분노이든 옳지 못한 분노이든 분노를 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분노는 우리의 얼굴과 마음과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죠이스 랜돌프는 『미의 향기』라는 책에서 “나는 20대 초반이었지만 얼 굴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분노가 나의 정서와 마음에 새긴 잔악한 행위였다”라고 말했고, 노르윅 시립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엘러브로엑 박사는“심장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높이는 것은 식습관 때문이 아니라 나쁜 감정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분노는 우리의 영과 육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화가 난 채로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것은 맨손으로 선인장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것과 다름 없으므로 상대방이 상처 입게 됨과 동시에 당신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20.억울하고 분할 때

우리는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는 열을 내어 기어이 한마디하고 싶어지는 것이 상정(常情)이다. 그 냥 묻어두고 넘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 것만 같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밝히고 싶고, 신문에도 낼 수 있으면 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예수의 마음과는 다르다.
예수께서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두려워 말고 염려와 근심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시고도 "바알세불에 씌였나 보다"고 비난을 받으셨다. 그런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다 알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들어 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해를 벗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섰다가 "본전" 찾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다. 무슨 오해를 받는 다고 해도 말을 하지 말라. 헛것이다. 신앙이 아니다. 언젠가는 알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 기다릴 일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 그때는 내가 높아진다. 그러나 내가 해결할려고 팔을 걷어붙이면 내가 오히려 낮아진다. 상처만 커질 뿐이다.
옛날에는 늘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있었다. 눈이 하얗게 오던 날, 사랑방에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밤늦도록 도박을 하고 있었다.
행인하나가 지친 몰골로 그곳을 지나다가 이 사랑방의 불빛을 보고 다가왔지만 추위속을 오래도록 걸어서 굶주리고 지쳤는지 딱하게도 그 방 앞에까지 간신히 와서 그만 끝내 쓰러져 죽고 말았다.
도박을 하던 젊은이 하나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앉은 채 꽁꽁 얼어죽은 행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방안의 사람들에게 알렸고 모두들 나와서 그 시체를 들여다 방 안 아랫목에 뉘였다. 이제 파출소에 알리는 일이 남았다. 젊은 사람 중 하나가 파출소로 알리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사람을 보내놓고 나서 젊은이들은 그가 올 때까지 도박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웬걸 죽었던 사람이 몸이 녹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부시시 일어나 보니 젊은이들이 도박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음, 내가 살아난 것을 이 사람들이 알면 필시 날보고 한 턱 내라고 할거야 내 수중에 돈이라곤 몇푼 되지 않는데 잘못하다 가는 이마져 몽당 털리고 말겠다."
이렇게 생각한 나머지 그들이 도박에 열중하고 있을 때 몰래 기어나가 달아나 버린 것이다.
이윽고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 난감해진 것이다.
곧 순경이 올텐데 시체는 온데간데없으니 이거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경이 오면 우리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괜히 끌려가 혼만 날텐데,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했는데 마침내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뒷산에 전날에 장사지낸 바 있는 무덤을 파고 거기 있는 시체를 대신 갖다 놓자는 것이었다. 시체인데 이것이면 어떻고 저것이면 어때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나의 무덤을 파 해치고 거기 묻힌 시체를 대신 가져다가 아랫목에 눕혀 놓았다. 한참이 지나자 순경이 이윽고 당도했다. 순경은 사람이 얼어죽었다며?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방안의 시체를 한참 들여다보던 순경은 아무래도 얼어서 죽은 시체가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호통을 치며 물었다.
"이 고얀 놈들, 너희들 사람하나 죽여 놓고서 얼어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순경은 그들을 앉혀놓고 다그쳤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하는 수 없이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실직고(以實
直告) 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시체는 누구의 시체냐?"
순경은 젊은이들을 앞세우고 그 시체가 묻혔던 무덤을 새벽에 찾아가 보았다. 가보니 과연 바로 그저께 장사 지냈던 그 동네 사람의 무덤이 아닌가?
순경은 그러나 무엇인가 좀 찜찜하다 싶었던지 시체를 도로 묻지 않고 이래저래 조치를 해서 시체를 검사를 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시체의 귓속에서 큰 대못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것은 살해당한 시체임을 알게 되었다.
바로 죽은 이의 아내가 정부와 짜고 잠든 남편의 귀에다가 대못을 박아 죽였던 것이다.
장례까지 치렀으니 이제 정부와 함께 희희락락 살고 있던 그 독부에게는 맑은 하늘에 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줄 알았는데 무덤 속에 들어간 것조차 그렇게 웃지 못 할 우여곡절 끝에 시체가 밖으로 기어 나오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뱅겔이라는 신학자가 한 소리를 들어 보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21. 분노에 관한 명언

분노는 마음의 등불을 끄는 바람이다. (무명)
유순한 말은 분노를 삭히지만 과격한 언동은 분노에 불을 지르느니라. (잠언15:1)
남이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도 당신 스스로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캠피스)
화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은 뒤로 미루는 것이다. (노만 빈센트 필)
이성을 잃는 것은 진정 많은 것을 잃는 것이다. 즉 건전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균형잡힌 결정 능력을 잃는 것이다. (조지 스위팅)
인내, 친절, 관대함이 없거나 예절을 모르고 이기적인 것, 이 모든 것은 성급함의 상징이다. (헨리 드럼몬드)
분노, 분노는 용기에 붓는 것보다 담겨진 것에서 더 많은 해를 주는 산성이다. (무명)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느니 광야에서 홀로사는 게 났다. (잠언21:19)
한 학생이 어느날 나에게 말했다.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단 일분간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소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생기는 손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조지 스위팅)





22.분노는 해지기 전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롬 12:19)
40대 부인이 정신과 진찰실로 들어왔다. 우울한 표정이었다. 아랫배가 아프며 하루에 대여섯번씩 설사를 하고 때로는 변비 증세로 며칠씩 대변을 볼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런 증상은 벌써 10여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내과에서 세밀한 진찰을 받아 보았으나 별 다른 소견이 없고 다만 신경성이라는 진단만을 내렸다고 했다.
약 을 먹으면 며칠은 괜찮다가 다시 재발하곤 하여 이제는 지쳐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재발은 언제나 심리적인 괴로움과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비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 부인을 쫓아내되 위자료가 아까워서 부인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기 위해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고 한다.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당하던 어느 날 마침내 부인은 4살짜리 아들을 업고 집을 나와 버렸다. 설사와 복통이 발생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러나 현재의 부인은 경제적으로도 풍족해졌고 안정도 되찾았다.
부인을 괴롭히는 아무런 문제도 의식세계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와 복통이 수시로 부인을 엄습했다. 부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남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고 있었다. 부인은 흥미있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꿈은 10여 년 전부터 자주 되풀이되는 꿈이라고 했다.
꿈속에서 부인은 얼굴을 알 수 없는 남자와 싸운다. 그러나 번번이 무참하게 얻어맞고 잠을 깬다. 이 꿈을 꾼 날은 더욱 배가 아팠다. 꿈속의 남편은 아무래도 남편인 것 같다고 했다.


숨겨진 분노가 이 부인의 문제였다. 정신과적 치료로 부인의 증세는 호전되었다. 치료를 마칠 무렵의 꿈 또한 흥미로웠다. 꿈속에서 부인의 시댁 식구들이 상복을 입고 있었다. 관이 하나 있는 데 남편의 것이라고 했다. 남편의 장례식을 부인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관이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담담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아마 제 마음속에서 그 사람이 떠나간 모양이에요.` 마음속의 증오의 대상이 사라지는 꿈이었다. 증오심과 복통 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월프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분노를 느낄 때의 위장의 점막은 충혈 되고 운동이 증가되며 위산분비가 많아져서 마침내는 위, 장출혈과 궤양을 초래한다고 한다. 대장염의 96%가 분노 때문이라는 보고도 있다. 또한 분노는 혈관을 갑자기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므로 뇌출혈등의 위험을 가중시킨다.
존 헌터라는 유명한 생리학자가 있었다. 그는 분노가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학회에서 자신의 학설이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분해서 반격을 하려다 그만 그자 리에 쓰러져 죽었다. 사망원인은 분노로 인한 심장혈관의 순환장애였다.


분노는 인간을 병들게 한다. 더욱이 숨겨진 분노는 인간의 뼈를 마르게 한다. 남을 증오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다. 미움의 대상 은 차라리 편히 자고 잘 먹을 수 있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이 안 된다. 미운 사람이 마음속에 있으므로 잠자리에도 따라와서 잠을 못 이루게 하고 식탁에도 따라와서 식욕을 빼앗아가 버린다.
그러므로 억눌린 미움과 분노는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큰 손실이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에게 복수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롬 12:19)고 당부하신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성경은 또한 분을 해가 지도록 품고 있지 말라고 하신다.(엡4:26)
분은 되도록 빨리 풀어 버려야 한다. 분노는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화목한 인간관계도 파괴하는 다이너마이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는 분노에 대한 귀 한 처방이지만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 보다 어렵다"(잠 18:19)고 잠언 기자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마19:26)





23.성내지 말자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고전13:5). 노와 독과 화(미움)는 안에 있는 잠복한 상태라면 성내는 일은 폭탄의 폭발이요 독가스의 분출이요 더러운 것을 토하는 것과 같다. 분은 낼 수록 더 증식된다. 한번 성내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비 록 화해와 사과를 한다해도 감정의 거울에 금이 가서 없었던 상태로 원상복귀가 안 된다.
내가 성내서 맘을 상하게 해준 분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사과했으나 커다란 인격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내가 목사가 된 때부터, 성내는 일 한가지만 절제할 수 있었더라도
내 신앙인격이 지금 50점이라면 80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에게, 자녀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제자들에게 내 성난 표정과 말로 상처 입은 분들에게 즉석에서 혹은 후일 에 늘 사과는 드렸지만 다시 땅에 엎디어 빕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요. 내 속에 성난 귀신 한 마리가 나갔다 들어갔다 합니다. 내가 성낼 때는 이 귀신이 내 속에서 성령대신 발언합니다.





24.미움

스웨덴에 사는 조지 로나씨는 비엔나에서 변호사였으나, 2차대전 때 스웨덴으로 탈출했다. 그는 돈이 없었으므로 당장 취직을 해야 되었는데, 몇 나라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무역회사 대리인 직책을 구했으나 항상 정중히 거절당했다.
어느 회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회답이 왔다.
'당신은 우리 사업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실수했고 바보입니다. 우리는 대리인이 필요없고 혹 필요해도 당신은 문장이 서툴러서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틀린 글자 투성이입니다.'  이것을 읽은 로나는 화가 바짝났다. 즉시 그 회사 사장을 골릴 편지를 썼다.
그러나 멈추고서 잠시 생각을 해봤다. '잠깐, 이 사람이 나쁘다고 어떻게 내가 단정할 수 있나? 아마 내가 스웨덴어를 배웠다고는 해도 국어가 아니니까 많이 틀렸을거야. 이 사장은 자기 본심은 아니지만 내게 호의를 베풀게 된 거야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손해 볼건 없으니까' 그래서 로나는 그 편지를 찢고 다음과 같이 썼다.
 '저에게 회답을 쓰시는 수고를 하신데 대해서, 특히 대리인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답하신 친절을 감사합니다. 귀사를 잘못 알았던 것을 사과 드립니다. 제가 귀하께 편지를 썼던 이유는 제가 문의한 결과 귀하께서 이 부문에서 명망 높은 지도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편지에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좀더 스웨덴어를 공부해서 저의 실수를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향상에 노력을 하도록 귀하께서 자극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후 로나는 그 회사의 편지를 받고 취직되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걷어간다'는 것을 그는 배웠다.





25.분노하지 말라

어느 날 한 소녀가 친구에게 말했다. "난 너같이 성품이 차분한 얘는 처음 봤어! 어떻게 성품을 그렇게 잘 관리하니" 친구는 소녀에게 말했다. "잘 관리 한다구?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버지는 성질이 불같으시고 할아버지는 얼마나 성격이 사나우신지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 숨어 버릴 정도야. 나는 분노가 한순간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매일 살고 있어.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나는 매일 예수님께 '사랑하는 주님, 저 혼자서는 제 성질을 도저히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저 대신 제 삶을 주관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고 있어"
분노는 엄청난 파괴적 에너지이다. 심지어 살인도 불러온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마다 살인을 범했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너희는 분노, 격분, 악의, 비방, 네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들을 다 제거해 버리라"(골로새서3:8)





26.용서를 구한 티흘

농노들의 친구였던 러시아 보로네슈의 주교 티흘은 어느 날 그 지방에 있는 한 제후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제후의 영지에 있는 농노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처사를 지적하고서 앞으로는 자비로 대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의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말투에 몹시 화가 난 제후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티흘의 얼굴을 후려치게 되었다. 이 같은 제후의 행동에 참을 수 없게 된 티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얼마간 걸어갔을 때 그는 제후를 화나게 한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즉시 제후의 집으로 되돌아간 티흘은 그의 발치에 엎드려 그를 격분케 한 데 대해 용서를 빌었다. 제후는 너무도 놀라서 이 선한 사람 곁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고 서로 축복을 빌었다. 그 이후, 제후는 농노들에 대한 그의 부드럽고 관대한 친절함으로 그 지방 전역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분노를 뒤로하고 오히려 무릎꿇고 먼저 용서함으로 긍휼과 평화를 심은 티흘 주교를 통해서 나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27.1분만 기다려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는 어떤 부부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노란 물약이 든 큰 통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만약 화가 치솟거든 이 물약을 세 숟가락씩 꼭 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1분 동안 머금은 후에 삼켜야 합니다. 그러면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부부는 의사 말대로 화가 나면 물약을 마셨습니다. 물약을 먹고 3분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약이 떨어지자 부부가 다시 의사를 찾아가서 약을 더 조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 약은 설탕물입니다. 부부가 싸움을 안 하게 된 것은 그 설탕물을 먹고 3분을 기다리는 동안 분노를 삭였기 때문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분노하지 말고 그 분노를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28.분노의 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편 37 장 8 절
부부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며 말대답을 하는 아내를 향해 남편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당장 입 닥쳐!’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는 입을 닥친 채(?)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저 고개를 움직이거나 눈짓으로 뜻을 표현할 뿐이었습니다. 뒤늦게 남편은 빌며 사과를 했지만 아내는 끝내 입을 열지 못한 채 무려 30년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언어 폭력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상당수 어린이들이 부모의 언어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세 명 중 한 명은 폭언을 퍼붓는 부모가 싫어 가출 혹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폭언으로는 ‘집안의 골칫덩이’, ‘너만 없으면 속이 편하겠다’, ‘괜히 낳았다’,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 ‘나가 죽어라’, ‘정떨어진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등이라고 합니다.
화가 난다고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가족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엉망으로 일그러져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부터라도 화가 난다고 폭언을 하는 일을 삼가고 언어를 순화해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 기도: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내 입술과 생각을 지켜 주소서.





29.삶의 여유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친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쏟아버렸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이 한 마디에 친구는 손뼉을 치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크를 즐기는 사람은 삶에 여유가 있다. 외부의 공격에 직격탄을 날리면 곧 분쟁이 시작된다. 타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라. 상대방에게는 검지 하나만 향하고 있지만 나를 향한 손가락은 셋이나 되지 않는가? 성경은 말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절)
/임한창 국민일보 기자





30.분노의 결국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소리 없는 권총을 갖고 싶었던 소망이 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학생잡지인 "학원"에 연재된 '검은 별'에서 사용하던 무성권총에서 얻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 권총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뒷줄에 앉은 힘이 세고 키가 큰 동급생들의 등살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하게 매맞고 당하는 우리 조무래기들의 한이 나에게는 그렇게 표출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분노로서 끝이 나지만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이 분노가 행동으로 나타나므로, 확실히 정신건강으로는 치료의 길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과는 모두가 파멸일 때가 더욱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찍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분노는 어디에 두셨는지 뺨을 때리고 침을 뱉으면서 모진 채찍으로 십자가에 못박던 군중들 앞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욕을 당하면서 한마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역사를 볼 때 분노의 행동이 세상을 이길 것 같고, 분노의 도구인 총과 칼이 세상을 지배할 것 같으나 결국 자비와 사랑이 세상을 승리하게 한 것을 봅니다. 지구상에는 표범과 사자와 같은 분노하는 사나움과 힘의 동물의 숫자는 줄어들고 오히려 분노를 표출할 줄 모르는 양, 토끼, 소 같은 초식동물의 숫자는 날로 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31.택시기사와 목사

제법 큰 교회 목사가 차를 운전해 가는데 어떤 택시가 갑자기 새치기를 해 들어와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화가 치민 목사가 급히 뒤를 쫓아가서 신호대에서 만났습니다.
차에서 내려 달려가, "이 엉터리 같은 택시 기사! 사고나는 것 보려고 작정했소? 사고 날 뻔 했잖아?" 하고 화를 버럭 내는데 그 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화풀이를 하니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한다.
"목사님"이란 말에 움짓하며, "당신 교회 나가요?"하자
"저 목사님 교회 아무개 집사입니다"한다.





32.거북이의 목을 꺼내는 법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1:20)
거북이는 여하한 강압적인 방법으로도 거북이의 목을 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거북이를 불 가까이 놓는 것입니다. 온 몸에 따뜻함을 느끼면 거북이는 스스로 머리를 내놓습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도 같습니다. 우정과 형제애의 따뜻한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해결이 옵니다. 주먹으로 우격다짐으로 해선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내지 아니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3.화를 내어도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에는 화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최근의 생리학은 분노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분노하지 않는 편이 절대로 이롭다." 어떻게 이롭다는 말인가?
첫째, 화를 내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화를 내면 뇌 속에서 해로운 물질이 분비된다. 끝까지 화를 내는 것은 독물을 조금씩 조금씩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둘째, 노화를 촉진시킨다. 분노는 활성 산소를 생성시킨다. 활성 산소는 호흡을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 산소가 변화한 것인데, 강렬한 노화 촉진 인자로 인식되어 있다. 항상 화만 내고 있으면, 피부는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생기며 탄력성이 없어진다. 어린이를 심하게 꾸짖고 있는 어머니는 노화를 촉진하고 있다.
셋째, 분노는 때로는 감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어 인생을 파괴하는 수도 있다. 화가 난 나머지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살해당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
넷째, 분노는 대체로 즐겁지 않다. "넌 바보야!"라는 말을 듣거든 "아, 그래? 충고해 줘서 고마워" 하고 감사해 한다. 이렇게 하면 뇌 속에서 쾌감 물질이 나온다. 알랭이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고, 최고로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다."





34.히틀러의 분노

히틀러가 2 차 세계 대전 때 망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분노 때문이다. 히틀러는 머리가 명석하고, 관찰력이 깊고, 예리한 판단력과 비상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나 화를 잘 내는지 자기의 비위를 조금만 거슬려도 미움과 분노가 충천하므로, 그의 부하들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등 자유 진영과 힘겨운 전쟁을 하면서도 일시적인 분노로 말미암아 주력부대를 빼돌려 소련을 침공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일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때 히틀러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평소 그는 부관에게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부하들은 연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을 감행하였을 때, 소련군의 기갑 사단만 그쪽으로 돌린다면 상륙을 저지 할 수 있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잠든 히틀러를 깨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히틀러가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연합군이 노르만디에 완전히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한 뒤였고, 이로 인하여 독일은 패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시리는 자는 성을 빼앗은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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