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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마게도냐 루트를 다니고 있는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보낸 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를 향하여 떠났다. 뱃길 5일이 되어서 바울 일행은 드디어 드로아(Alexandria Troas)에 도착한다. 이곳 드로아에는 이미 바울과 함께 아시아까지 따라 가기로 동참했던 믿음의 동지 7명(4절)이 고린도에서 건너와 기다리고 있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힘겹게 되돌아가야만 하는 마게도냐 루트를 억지로 짐 지우지 않고, 곧바로 (아마 고린도지역의 겐그레아 항에서) 배타고 먼저 이곳으로 건너와서 기다리라고 배려했었다. 그들과 만난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을까? 거기서 일주일(seven days)을 같이 지냈다. 사랑의 교제, 함께 꿈을 꾸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십자가의 교제는 항상 눈물겹고 아름다운 법이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의 위치도
▪ 드로아는 어떤 곳인가? (※ 2차 전도여행의 드로아도 참조하라.)
터키에는 ‘드로아'라 비슷하게 명명된 도시가 두 곳이 있다.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있었던 ‘트로이(Troy)'와 사도바울과 연관이 있는 성서상의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Alexandria Troas)'다. 성서상의 드로아는 현재 터키(소아시아)의 서북부 무시아 지역 부근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마게도냐에서 터키 땅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의 항구 도시이다. 현재는 ‘오둔 아이스켈레시(Odun Iskelesi)’라고 부른다. 이렇게 유럽에 가장 인접한 지역 중의 하나란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항구로 여겨지고 있다. 이 도시는 BC 310년경에 알렉산더 대제의 계승자 안티고누스(Antigonus)에 의해 건설되었고 BC 300년 트라키아의 리시마쿠스 왕의 확장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드로아’라 불리게 되었다.
고요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드로아(알렉산드리아 트로이스)
드로아는 한때 셀류쿠스 왕조의 거주지였으나 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기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잇는 중요한 항구로 번성하여 신전, 유적지, 파괴된 목욕탕, 극장 등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 바울과 드로아
2차 전도여행 때 사도바울은, 수리아 안디옥 ~ 길리기아(다소, 더베) ~ 루스드라 ~ 여러 성으로 다녀 ~ 브루기아, 갈라디아를 거치고 무시아를 지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행 16:7). 결국 그는 이상한 기분에 이곳 드로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한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릴 도와 달라(행 16:9).”고 하는 환상을 보고는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 위하여 이곳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갔고, 거기서 하루를 묵은 후 마게도냐 땅 네압볼리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다(행 16:9-12). 그러니까 이곳 드로아는 전도의 방향을 소아시아(동진(東進))에서 마게도냐로(서진(西進)) 바꾼 선교비전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바울은 여기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에서 누가를 만난 듯하다(행 16:10).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여기서부터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도행전 16:10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 이러라.
사도 바울은 최소한 세 번 이상은 여길 방문했고 지나갔다.
① 2차 전도여행 때,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곳 드로아로 왔다가 밤에 환상을 보았다. 결국, 이 환상에 따라 이곳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갔다가 그리스 마게도냐 지역(유럽 땅)의 첫 관문인 네압볼리에 도착.
② 3차 전도여행, 에베소 은세공업자들의 폭동, 에베소를 급히 떠나야 했었을 때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마게도냐로 간다(고후2:12~13).
③ 3차 전도여행 마지막 귀로 길에 이곳에 들러 일주일을 머무르면서 말씀을 전했다(행 20:6~7).
디도를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했던 곳이기도 하다(고후 2:12~13).
마게도냐로 떠나시기 전날 밤 부흥회에서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진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려냈다(행 20:7~12).
또 사도바울은 딤후 4:13을 보면, 디모데에게 “디모데야, 드로아의 가보의 집에 걸러 둔 겉옷도 좀 가져오너라.”고 개인적인 부탁을 한 적도 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잠시 놓여 서방 전도에 이어 동방을 방문했을 때 이곳을 경유하면서 가보(Carpus)의 집에 겉옷을 두고 왔는데, 후에 디모데에게 이것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던 것이다(딤후 4:13). 가보라는 사람은 드로아 사람으로 바울의 친구이다. 저 위대한 대(大) 복음 전도자 바울이, 드로아 가보의 집에 깜빡하고 그냥 놓고 온 겉옷 하나를 가지고 오라고 디모데에게 부탁을 했다니, 그 겉옷이 명품 겉옷이었을까? 뭔가 특별한 옷이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다.^^ 성경이 참 재밌다.
2월 겨울에 성지순례를 해서인지 옷을 껴입었어도 바다 바람이 매서웠다. 바울도 이 추위를 경험했었다. 바울의 열정을 부럽다...
디모데후서 4:13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고린도후서 2:12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이 부분의 표준새번역 :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에 갔을 때에, 주께서 내게 거기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3차 전도여행의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때 빌립보에서 5일간의 뱃길로 다시 드로아에 도착한 것이다. 드로아에는 사도바울의 전도로 이미 초대교회 공동체가 있었다(고후2:12). 그리고 이곳 드로아에는 이미 바울과 함께 아시아까지 따라 가기로 동참했던 믿음의 동지 7명(4절)도 겐그레아에서 건너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7명의 헌신자들도 있고 사도바울도 또 뵙고, 또 사도바울께서 다음날 떠나시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 지 기약도 없고 하니, 드로아 교회의 제자들은 바울을 통해 주의 말씀(강론)을 또 듣고자 했다. 이름 하여 ‘드로아 부흥집회’다. 뜻하지 않게 드로아교회는 사도바울을 주강사로 하는 ‘드로아 부흥집회’를 열게 되었다.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로아 부흥집회’때 아주 재미있는 일이 하나 벌어진다.
사도행전 20:7~12. 드로아 부흥집회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 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그런데 우리는 먼저 위의 구절에서 몇 가지 사도행적인 바로그교회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① 언제 모임을 가졌는가? (7절) 그 주간의 첫날(=안식 후 첫날)이다. 지금의 ‘주일’이다. 주일에 모이는 교회
② 모여서 떡을 뗐다는 것이다. (7절) 성찬과 애찬, 두 가지를 다 의미한다. 떡을 떼는 교회
③ 모여서 말씀을 들었다. (7절) 교파도 건물을 가진 교회가 아닌, 큰 가정에서 모였다 가정교회 (3층 다락방이 있는)
④ 밤중까지 계속했다. (7절) 말씀을 20~30분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반중까지 말씀을 사모하는 교회
⑤ 3층 창가에 걸터앉아야 했을 정도로 운집. (9절) 사람냄새, 환기, 공기도 탁하고. but 순수함. 영적인 열기가 있는 교회
▪ 드로아 부흥집회의 에피소드 ; 청년 유두고
바울이 드로아 부흥집회를 할 때 유두고(Eutychus 이름 뜻이 ‘다행한’. ‘행복한’이다.)라는 청년이 있었다. 아마 유두고는 이 가정교회에서 심부름하는 청년이지 않았을까? 3층 창문에 걸터앉아서 설교를 들을 정도로 편하게 익숙하게 사용했으니까. 사람은 많아서 냄새도 나고, 환기는 안 되고, 공기도 탁하니까 이 청년이 용기 있게 3층 창문에 걸터앉아서 설교를 듣다가 떨어져 죽었다. 청년 유두고의 죽음을 너무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거 봐라. 내가 까불지 말라고 그랬는데 까부니까 그렇게 되잖냐! 예배드리는 자세가 불량했다.” 뭐 여기까지 갈 거 없다. 바울도 이 청년을 봤을 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설교가 밤중까지 계속되니 졸릴 수도 있다. 그러다 떨어진 거고 의사 누가의 진단에 의하면 즉사했다. 집회 도중에. 순간 바울이 뛰어 내려갔다. 바울이 이 청년을 다시 살린다(행 20:7~12).
지금의 다마스커스에 세워져 있는 바울동상
출처 : https://cafe.daum.net/ccm/6Km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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