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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의 성서적 기초
송기태 선교사 (대청마을 총무)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미 과거에 있었다.
단기선교도 근자에 새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다가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시간의 차이로 인해 그 상황과 형태만 달라졌을 뿐 단기선교는 이천년 전 예수님의 시대에도 있었고 모세 시대에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단기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되짚어 봄으로 오늘을 사는 청년들이 어떻게 단기선교를 지혜롭고도 전략적으로 행할 수 있는가를 재조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단기선교는 크게 정탐과 현지사역과 후원사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단기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살펴보자.
1. 정탐을 위한 단기선교
모세와 여호수아의 명령에 의해서 수행되는 가나안 정탐, 여리고성 전투는 그 당시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이러한 정탐은 오늘날 소위 미전도지역을 리서치하여 선교정보를 얻어내고 그 곳에 교회를 세우기 위한 전략 수립의 기초 정보로 사용되며 중보기도를 위한 기도자료로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단기선교의 세 형태 중 한 가지인 정탐의 성서적인 기초를 살펴보자.
1). 가나안 정탐
민수기 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족장들로 하여금 그들이 점령해야 할 가나안 땅을 정탐할 것을 명하신다. 그 이유는 아마도 첫째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점령해야 할 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함으로 가나안 정복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목적은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치밀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가나안 전쟁은 매우 전략적인 전쟁으로 정탐에 참여했던 여호수아가 총사령관으로 지휘하게 되는데 그는 가나안을 2등분하기 위해 가나안의 남부 중심인 여리고 성을 먼저 쳤고 아이성과 주변의 성들을 점령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연합군을 일거에 궤멸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나안 전투의 전략을 살펴보면 마치 1950년의 한국 전쟁에서 맥아더 사령관이 사용했던 전투와 비슷한 전략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12지파의 대표로 뽑힌 각 족장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두루 다니며 리서치를 하게 된다.
먼저는 지형을 탐지했고(13:18), 또한 인구 수와 군사력에 대해서 탐지했다. 또한 진지의 형태에 대해서도 탐지하게 했다.
이러한 면은 전투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후에 여호수아는 수집된 정보를 통하여 전투를 위한 전략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들은 군사 정보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도 가져오게 했다.
즉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가 그것이었다(13:20).
그리고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게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을 정복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동기부여를 하기 위함이었다.
두 족장이 포도 한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매고 올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실증자료였던 것이다.
믿음이 없이 정탐의 결과를 보고했던 열 정탐꾼의 죽음과 믿음의 보고를 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민14:36~38)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정탐을 위한 단기선교팀의 방향과 내용이 어떠해야 함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2). 여리고성 정탐
가나안 정탐이후 40년이 흘렀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이스라엘이 첫 전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여리고성이다.
여리고는 가나안의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가장 강력한 성이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과의 전투를 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낸다(수2:1).
일주일 이하의 짧은 시간의 정탐으로 인해 가나안에서 가장 강력한 성 중의 하나였던 여리고가 함락되게 된다. 물론 여리고 성이 함락되게 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정탐꾼의 정보는 이스라엘 군의 위세에 눌려있는 적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함으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던 것이다.
2. 현지 사역으로서의 단기선교
1). 요나의 단기선교
사흘동안 사역함으로 수십만 명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왔던 역사를 담고 있는 요나의 단기선교는 신구약을 통틀어서 숫자적으로 국가라는 규모면으로 가장 최대의 사역의 열매를 낳았던 단기선교사역이었다.
요나서에서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요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지만 놓치지 말아야할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요나를 통하여서도 수십만의 영혼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요나는 니느웨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해묵은 감정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실 때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나서와 관련하여 단기선교의 교훈을 생각하자면 단기선교가 결코 장기선교에 비해서 작은 사역이거나 무시할 만한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나서는 단기간의 전도 사역 가운데도 놀라운 부흥을 일으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기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단기선교를 생각함에 있어서 특별히 우리의 니느웨, 사마리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본 선교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적대적이고 원수지간의 이스라엘을 사용하셔서 원수 지간인 니느웨를 구원하려 하신 것이다. 일본 선교가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는 한국 교회에 있어서 니느웨인 것이다.
2). 예수님과 제자들의 단기선교
(1). 거라사 지역에서(마 8:28~34) -능력대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건너편 거라사(가다라) 지역으로 가서 귀신 들린 자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타문화 권에서 만나게 되는 능력 대결(Power encounter)의 한 장면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가볍게 귀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심으로 귀신 들렸던 자를 온전하게 치유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공적인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영적인 감각이 없었던 이방인들이 귀신을 내어쫓는 위대한 사역보다도 자신들의 재산에 더 관심이 있어하고 귀신을 건드림으로 인해서 발생할 지도 모를 신들의 노여움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거라사 시내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일의 결과를 보기 위해 모였지만 그 곳에서는 배척이 있었을 뿐 복음전파의 열매는 없었다.
이러한 교훈은 때때로 능력 대결에서는 승리할 수 있지만 복음전파의 열매는 적을 수 있는 오늘날의 단기선교에 대한 좋은 교훈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세다, 가버나움을 책망하시기도 하셨다(마11:20~24)
(2). 예수님의 사마리아 사역-복음 전파 사역
선교가 문화를 넘어서(crossing the culture) 복음은 전하는 것으로 정의할 때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1.5 정도의 문화 차이¹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사마리아가 완전한 타문화권도 아니며 그렇다고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려운 소위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혼혈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지만(요4:9)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고 불쌍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남으로 인해서 나중에는 그 동네 사람들 전체가 집단 개종하는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후에 제자들은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님께서는 훗날 제자들로 하여금 자문화권에서 유사문화권으로, 유사문화권을 넘어 타문화권으로 이어지는 선교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사마리아 지역 선교는 단기선교에 있어서 훗날 그들에게 세계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는데 있어서 가교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마리아 선교는 오늘날 한국 교회로 하여금 북한선교, 조선족 선교에 대한 도전을 하기에 적절한 예가 되는 것이다.
3).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
스데반의 순교 이후 팝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사도들을 제외하고 흩어졌다(행8:1).
그 때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지역 전도 사역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 때까지 예루살렘에는 수천, 수만의 신자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때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의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매우 높았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6~8).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대부분 처음에는 복음을 거부하거나 배척하고 심지어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유대인들과는 증오의 관계였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 집사의 전도사역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전에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 후에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에 대해 호의를 보이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부분은 단기선교에 있어서 지속성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기선교가 당장에는 열매가 없다 하더라도 한 지역에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사역을 할 때 후에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4). 바나바와 바울의 안디옥 교회 단기선교
바나바에 의해서 사역자로 발탁된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일년 동안의 단기사역을 통해 사역자로 성장하게 된다(행11:26).
그 곳에서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게 된다. 이러한 예는 오늘날 단기선교를 통하여 장기선교사가 배출되는 원리를 제공해 주고 있는 예이다.
바울은 수 년 전에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았지만(행9:15,16; 갈1:18;2:1) 그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바울이 본격적으로 장기 선교사로 사역하는데 있어서 매우 좋은 훈련의 장이 되었고 그의 사역적 자질을 평가하는데 안디옥 교회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배 사역자인 바나바의 멘토링과 협력하에서 좋은 선교사로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그 곳에서 훌륭한 사역을 한 끝에 큰 공동체로 성장하고 또한 안디옥 사람들이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를 만큼 사역의 성공적인 열매를 거둔 것이다.
바울이 이후에 평생동안 소아시아와 유럽, 로마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수 많은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안디옥에서 1년 동안의 단기선교 사역 경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의심할 여지강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장기선교사로 준비하기 위한 1~2년의 단기선교는 이처럼 중요하다.
또한 바울을 발탁했던 바나바의 탁월한 동원력도 오늘날 청년 공동체에서 좋은 선교사를 선발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청년 목회자들에게 좋은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5). 바울의 단기사역
바울은 회심 이후 평생을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힘썼던 영적인 거인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한 지역에서 머문 시간은 놀라우리 만치 짧다.²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될 만치 성숙했던 데살로니가 교회(살전1:7)를 개척했지만 그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머문 시간은 의외로 짧은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삼 주 동안을 머물면서 성경을 강론했다(행17:2).
그 말씀을 들은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행17:4).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의 시기를 받아서 밤 중에 그 도시를 떠나야 하는 긴박감을 맞보기 까지 했어야만 했다(행17:10). 오히려 바울은 그 곳에 디모데를 남겨 놓고 그로 하여금 양육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했었다(살전3:2;3:6). 이는 오늘날 선교지를 방문한 단기선교 팀이 짧은 시간에 많은 현지인들에게 전도한 다음 그 후속 양육을 현지의 장기 선교사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사역의 패턴과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럼으로 단기사역에 있어서 뿌리는 사역은 결코 그 사역의 비중이 작은 것이 아니다.
바울은 후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은 심는 자요 아볼로는 물주는 자라고 고백을 했다(고전3:6).
단기선교도 오랜동안 지속되는 물주는 사역이 아니라 단회성이 강한, 심는 사역(planting ministry)인 것이다.
그러나 그 단기간의 심는 사역도 물주는 사역 못지 않게 각각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바울 선교사는 확언하고 있다(고전3:8)
3. 후원 사역으로서의 단기선교
단기 후원 사역자 - 에바브로디도
선교사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하여 자신의 후원자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바로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사용될 선교 후원금을 전달하는 책임자로 빌립보 교회가 파송한 단기 사역자였다(빌2:25~30; 4:18). 선교사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했던 때에도 빌립보 교회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선교 헌금을 한, 두 번 보냈다고 감사하고 있다(빌4:16).
빌립보 교회 사람들은 바울이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도,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심지어는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에도 바울의 선교 헌금을 계속적으로 보냈다. 이 헌금을 보내는 일이 에바브로디도에게 위임되었다.
그는 죽음의 이르러서도 바울을 돕는 것을 중단하지 않은 선교사 후원에 관한한 전문가요 헌신자였다.
바울은 그의 이름을 여러분 언급하며 그를 통하여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를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단기선교 팀을 통하여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격려를 받고 도움을 받는 것은 단기선교가 갖는 매우 귀한 사역 중의 하나인 것이다.
바울이 빌2:25 절에서 에바브로디도의 역할에 대해서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또한 2:30에서는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서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을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후원하는 사역에 있어서 자신이 죽기에 이르러서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바울을 섬겼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대하여 충분한 후을 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대표해서 바울을 섬기는 임무를 맡았으므로 목숨을 바쳐서 후원 사역을 감당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에바브로디도의 헌신적인 후원 사역이 바울에게 큰 힘을 주고 격려를 주었음을 자명한 일이다. 단기선교팀이 선교지에서 빌립보 교회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현지 선교사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될 것이며 그것이 사역의 결실로 이어지겠는가!
4. 비전을 제시하는 선교여행
1). 베드로의 단기선교
사도행전 11장에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는 말을 들은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힐난하기 시작한다(행11:1).
이제 곤경에 처한 베드로가 그 일에 대해서 해명을 하게 되는데 그는 세 번의 환상에 이끌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갔던 것과 그 곳에서 어떻게 성령이 임하였는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마치 자신들에게 오순절의 성령이 임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았으며 주님의 말씀 즉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을 기억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자신이 막을 수 없다고 했고 그 말을 듣던 형제들과 할례자들이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행11:17, 18)고 고백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베드로가 어떻게 이방인 선교에 어떻게 눈을 뜨게 됐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세계 선교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심지어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의 강림과 세계 선교의 증인이 될 것 까지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아직까지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들은 요나처럼 민족주의적인 신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는 월드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세 번의 환상을 사용했으며 고넬료의 종들을 보내시고 결국에는 고넬료에게 말씀을 전하게 되는 단기선교의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세계 선교에 대한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청년들과 많은 성도들이 선교지를 방문하여 현지 교회와 복음 전파의 경험을 가지면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고 믿게 되는 것과 유사한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가 직접 단기선교의 경험을 통하여 세계 선교의 비전을 보고 깨달은 것 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죄인들을 세계 선교에 동참하게 하고 계신 것이다.
2).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한 비전트립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입문 과정의 오리엔테이션을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시 일반인들의 습관처럼 사마리아를 돌아서 갈릴리로 가시지 않고 굳이 사람들이 하지 않는 방법인 사마리아로 직통했던 이유를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수가성에서 여인을 만나 전도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지, 곧 선교지의 개념과 비전을 제시하셨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비전! 눈을 들어서 밭을 보는 것이다.
그 밭이 희어져 추수하게 된 것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추수할 일꾼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는 중보기도에까지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선교, 타문화권 선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비전트립이라는 형태로 인하여 선교지 방문을 통해 새롭게 세계 선교의 비전을 깨닫는 젊은이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가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단기선교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단기선교가 Boom을 타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면에도 긍정적인 요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기선교가 21세기의 세계 선교를 향한 강력한 선교전략, 특별히 지역교회의 일반 성도들이 일선의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사역이라면 우리는 보다 더 근본적인 단기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굳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서적 기초가 우리의 사역에 더욱 더 강한 확신과 믿음을 통한 단기 선교의 열매를 극대화하게 하는 요소인 것이다.
(각주)
¹ 자문화권을 1, 완전한 타문화권을 2로 보았을 때, 사마리아인은 1.5정도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남한에 있어서 북한이나 조선족에 해당하는 관계와 비슷한 경우이다. 북한은 남한과 언어적으로는 유사하며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은 아니지만, 언어나 사상, 풍습, 역사에 있어서 상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² 허버트 케인은 그의 책 '선교 신학의 성서적 기초'(나단, 1990년) 123p에서 고린도나 에베소에서 비교적 긴 기간을 체류했고 다른 지역에서 머문 기간은 평균 2-3개월이었으며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튼튼한 교회를 세워 놓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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