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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휘트필드와 웨슬레의 기도
영국에 유명한 부흥가 휘트필드는 그 평소의 기도가 “오, 주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불길, 하나님의 화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존 웨슬레는 그 당시의 모든 청년들을 향해서 부르짖는 말씀이“네 영혼에 하나님의 불을 붙여라”여러분, 여러분 영혼에 하나님의 불이 붙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빛납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뜨겁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불이 붙고 있습니까? 혹은 우리의 영혼이 캄캄하고 우리의 영혼이 냉랭하고 우리의 영혼이 쓸쓸한 자리에 있습니까? “네 영혼에 하나님의 불을 붙여라” 이 거룩한 불이 우리의 심령에 붙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심령에 이 거룩한 불이 붙지 아니하면, 여러분, 그 속에 무슨 불이 잇는지 압니까? 탐심의 불, 음욕의 불, 질투의 불이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거룩한 불이 붙지 아니하면 죄악의 불이 붙습니다. “네 영혼에 하나님의 불을 붙여라”
우리의 심령 속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나라를 사랑하는 이 사랑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공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의를 찾자, 옳은 대로하자, 옳은 대로 살자는 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진리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이 미신이 많고 죄악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진리를 나타내서 생명들을 구하는 진리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거룩한 불>에서
32.회계의 경고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완전한 회개를 재촉하시기 위해서 직접 간접으로 징계를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경고를 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질병을 통해서, 어떤 때에는 환난을 통해서, 어떤 때에는 천재의 지변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예수 님께서도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서 열 여덟 사람이 갑자기 몰사한 사건을 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는 말씀이“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하였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중세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신교회 월텐시안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처음 설립한 사람은 파티 왈도라 하는 분이올시다 이 분이 젊었을 때에 어떤 큰 연회에 초청을 받아서 여러 젊은 사람과 같이 마음껏 호화롭게 놉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그 친구 중 하나가 어떠한 병으로 그 자리에 쓰려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광경이 이 청년 왈도에게는 큰 경고가 되었습니다.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이런 경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계속해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고 책망하십니다. 분명히 우리가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비록 오래 참으시지마는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 사람들이 죄악을 오래 참으셨지마는 최후에는 홍수의 심판을 내리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크신 긍휼(矜恤)과 자비로써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의 죄악을 오래 참으셨지마는 최종에는 유황의 심판을 내리신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에 그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온전한 작정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호와? 바알?>에서
33.스미스 목사의 생일기도
캐나다 토론토 시에 가면 거기에 피플스 처치(People's Church, 대중의 교회라고 번역합니다) 라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가 특별히 알려지게 된 것은 이 교회의 교인수가 약 3천명 모이는 교회인데 이 한 교회에서 세계 각지에 선교사들을 약 350명을 보내고 그들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선교사 350명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교회 목사는 오, 제이, 스미스(O, J, Smith)라고 하는 목사인데 이 분이 지금은 연로하셔서 몇 해전에 은퇴하시고 자기 아들이 이 교회의 목사가 되어서 자기 아버지를 계대(繼代)해서 시무하고 있는 그런 교회입니다. 이 스미스 목사는 저도 만나 본 일이 있지마는 참 은혜가 많은 분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그의 저서 한 권을 읽는 가운데서 자기가 어떻게 은혜 받은 이야기를 간단히 쓴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그것은 여러 해 전에 자기가 젊은 교역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떼에 어떤 자가 생일 날 , 특별히 생일날의 염원으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의 제목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시여, 그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세상의 돈도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무슨 명예를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의 향락은 멀리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소원이 꼭 있는데 이 소원은 이 사람이 비록 부족하지마는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간절한 기도를 들이면서 그는 어떻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먼저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 님의 말씀과 같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도록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옛날 에녹과 같이 언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루만 말고 이틀만 말고 일생토록 몇 시간만 말고 매분 매초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만한 일은 어떻든지 생각이라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결하고 옳은 생활로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일부분만 하나님께 바치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대로 백 퍼센트, 제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의 생활을 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그 때부터 그런 결심을 하고 그대로 꼭 살도록 애를 썼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그 목사의 생일에 드린 기도가 지금 보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잇습니다. 그는 과연 일생토록 실수 없이 경건한 목회를 하고 그를 통해서 그 교회가 많은 은혜를 받아서 열매를 많이 맺은 것이 사실입니다.
34.십의 팔조(八條)를 드리는 실업가
이번에 피얼스 박사와 같이 여러분이 왔지마는 빌 존스라고 하는 실업가도 한 사람 따라왔습니다. 이 분이 세계에 다니면서 특별히 실업가나 정계에 유명한 분이나 어린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이 분의 목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반도 호텔에서 여러분을 다 청해서 한번 전도를 했습니다. 이 분이 간증하는 말을 간단히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분은 본래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서 주일학교에 좀 다녔지마는 사업 계로 나가면서 주를 멀리했습니다. 여러 가지 죄악에 빠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로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잘 믿는 가까운 친구의 충고를 받아서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자기의 아내도 같이 회개를 하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의 가정은 새로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업은 전보다 더욱 축복 받아서 더 잘 됩니다. 처음에는 십일조를 바쳤지마는 지금은 10분의 8을 다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 바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 수입이 매달 20만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뜻에 맞는 교회가 되려고 하면 누구든지 자기 재물을 자기 것으로 알지 아니하고 하나님 것으로 알아서 꼭 하나님의 뜻대로 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락 교회를 보면 때 따라 요구가 심한 곳에 먼저 봉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 과부가 제일 불쌍하니까 제일 먼저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경로원도 경영하고 모자원도 경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나 사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이들을 먼저 도와주는 교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래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뜻에 맞는 교회>에서
35.큰 기쁨의 좋은 소식
전에 아테네에 살던 사람들은 항상 새 것을 듣기 좋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다 뉴스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보고 들으며 신문을 사서 읽습니다. 그런데 이 뉴스 가운데는 큰 뉴스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좋은 뉴스도 있고 좋지 못한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한 어떤 뉴스는 크기는 크지마는 나쁜 뉴스가 있고 또한 어떤 뉴스는 그렇게 크지는 못하지만 좋은 뉴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떤 뉴스는 한 사람에게는 크고 좋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것도 될 수가 잇는 것입니다.
가령 지난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였다고 하는 뉴스는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크고 또한 기쁘고 즐거운 뉴스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기는 하지만 그렇게 좋은 뉴스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우주가 생긴 이후 이 인류가 지구에 살게 된 이후에 지금까지 제일 큰 뉴스 제일 좋은 뉴스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보셨습니까? 전 인류 누구에게나 좋은 뉴스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보셨습니까? 자세히 들으세요, 첫 크리스마스 새벽에 이 우주의 최대의 가장 기쁜 뉴스가 전하여 졌습니다. 이 뉴스는 온 백성에게 미칠 전 인류를 위하여 준 뉴스입니다.
여러분, 그 내용을 알기 원하십니까? 들어보세요, 누가 복음 2장 11절에 주의 사자는 계속하여 말합니다.“오늘날 다윗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천지의 대 주재되시는 하나님이 온 세계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독생자를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보내신 이 사실, 이 얼마나 큰 사건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이 우주의 최대 뉴스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작은 뉴스는 항상 듣지마마는 이 최대의 뉴스를 듣지 못한 분은 우리 가운데 없습니까? 다른 뉴스를 아무리 들었다고 하지마는 이 최대의 뉴스를 듣지 못하였으면 그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아니 불상한 사람입니다. <0큰 기쁨의 좋은 소식>에서
36.만능 생활의 비결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라하면“나야 무슨 힘이 있어야 하지 못해. 못해.”왜 못합니까? 믿지 않는 까닭으로 못 합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곡식이 누르러서 거이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안 믿는 세계가 우리 믿는 십자가 군병을 부르고 있습니다. 황폐한 한국이 일군을 부르고 잇습니다. 교회가 봉사할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국가가 참으로 나라를 위해서 싸울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패배주의자 되지 마세요. 주안에서 만능의 인물이 됩시다,
37.크롬웰의 일화
청교도 시대에 가장 유명한 지도자 크롬웰이 있었습니다. 영국 역사 가운데서 빛나는 거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생활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맏아들이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슬픔을 당했습니다. 모든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합니다.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읽다가 빌립보서 4장을 읽기 시작해서“내가 풍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내가 비천한데 처할 줄도 알고…”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하기를“나도 이런 비결을 배웠으면 얼마나 좋겠나”하면서 그는 계속 그 절을 읽어 내려갑니다.
13절에 와서“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읽게 될 때에는 크롬웰이 갑자기 일어나면서“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는 오늘 날 나의 그리스도가 아니냐 !,”외쳤습니다.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위로부터 간단없이 오는 능력을 받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잇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잇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에서, 그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 승리하느냐,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주를 의지하는 가운데 만능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축복을 우리가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만능 생활의 비결>에서
38.불쌍히 여기는 마음
우리는 유명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잘 기억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험한 산골짜기에서 불한당을 만나서 많은 매를 맞고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중상을 입어 인사불성이 되어서 길가에 쓰려졌습니다.
마침 레위 사람이 지나갔지마는 그는 그를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이 그 뒤를 이어 지나갔지마는 그도 그 넘어진 사람을 보기만 하고 다른 편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은 정녕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상한 삶을 측은히 여기는 미음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은 아마 당시에 신학적으로 비판해서 그 믿음이 꼭 옳은지 알 수 없지마는 이 사람은 단순히 사마리아의 사상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그렇지만 이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그로 하여금 그 자리에 멈추게 하였고 상한 사람을 자세히 살피게 만들었고 자기의 옷을 찢어서 상처를 싸 매주고 자기의 기름을 부어서 상처를 유화(宥和)롭게 하고 자기가 탔던 나귀에 태워서 주막까지 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은 봉사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청년시대에 배를 좀 탔습니다. 한 번은 뉴올리언즈 시에 우연히 가서 흑노(黑奴)시장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흑노들의 한 가족이 여기저기로 팔려 가는 그 비참한 광경을 목도한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동정의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받은 그 인상, 그때에 가졌던 그 동정심은 결국 아브라함 링컨으로 하여금 흑노 해방의 구주로 만든 것입니다.
동정이라고 하는 뜻을 같이 느낀다고 하는 뜻입니다. 남이 배고플 때에 내가 배고픈 것처럼 느끼는 느낌이올시다. 남이 추울 때에 내가 추운 것처럼 느끼는 그 감정, 다른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내가 당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는 그 마음, 동정심, 이것 없이 봉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추운 겨울에 방공호에 사는 우리 동포들, 거리에 집 없이 배회하는 불구자들, 병자들, 고아들을 어떤 눈으로 봅니까?
39.협동 정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은 각각 키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이렇게 낸 것이 의의가 있습니다. 다르다고 싸우라고 내 것이 아닙니다. 다른 가운데서 피차의 장점을 살려서 협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봉사하고 이 사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봉사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이 협조 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 페르시아라는 나라에서는 이상한 새가 있어서 이 새는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날지 못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수놈의 바른편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암놈은 왼편에 고리 같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수놈과 암놈이 짝지어 함께 날 때는 썩 잘나라갑니다. 세상에 혼자 하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혼자서만은 할 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협조해야 봉사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40.백절불굴의 정신
어떤 좋은 일을 할지라도 우리가 하여나갈 때는 난관이 반드시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요컨대 이와 같은 난관을 만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극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여기에 봉사 생활의 성공이 잇느냐, 없느냐가 달린 것입니다. 불퇴전(不退轉), 물려가지 아니하고, 백절불굴의, 백 번 찍어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는 이것이 바로 예수 당시에 네 친구들이 중풍 병자를 참으로 도와줄 수 있었던 정신입니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처음 발명할 때에 이렇게 해 보아도 안 되고 저렇게 보아도 안되고 마지막에는 열흘 동안을 자기 집에 도무지 돌아가지 아니하고 실험실에서 자고 먹으면서 계속하여 마지막에 성공하고야 말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칼럼버스가 맨 처음에 인도를 향해서 간다고 대서양을 향해 나갔을 때 한 달쯤 후에는 선원 전부가 배반하려고 했습니다.“아무리 가야 보이지도 않는 것을 뭘 하려고 가는가? 돌아가자”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럼버스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그들을 격려해서 나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만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하시고 이 금년 새해에는 우리가 구경꾼 노릇만 하지 맙시다. 이 중풍 병 환자를 그리스도에게 모시고 오는데 아무귀퉁이라도 한 몫 메어서 이 귀한 사명을 우리가 다 같이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잊지 맙시다.
먼저 철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믿지 않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모든 환난 중에 잇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협조 정신이 필요합니다. 넷째는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정력, 충성이 필요합니다. <봉사 생활의 비결>에서
41.어려움에서 승리한 사람들
우리가 잘 아는 존 번연의 생활을 회고하면, 영국에서 청교도들을 핍박하게 될 때에 오히려 복음을 전파한다고 하여. 이 존 번연을 오래 집어넣고 억을 하게 12년 동안이나 옥중에서 썩는 몸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존 번연은 거기서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우리가 이는 <천로역정>이라고 하는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읽는다고 하는 불멸의 저서를 써서 감옥 가운데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서 위대한 창조적 생활을 한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잠깐 와서 이야기했지마는, 지금 일본에 와서 선교사로 있는 사람 가운데 드 셰이저(De Shazer)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2차 대전 때에 미국에서 제일 먼저 동경에 와서 폭격한 두리틀 소장이 지휘한 그 폭격기대로 와서 싸운 한 대원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동경에서 폭격하고는 저 중경으로 가다가 중경까지 가지 못하고 남경 부근에서 부득이 낙하산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일본 사람한데 잡혔습니다. 근 4년 동안 중국 여러 감옥, 마지막에는 일본 감옥에 와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감옥 생활은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감옥에 사는 동안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온전히 회개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간증하는 대로 전에 유년 주일 학교에는 좀 다녔지만 장성해서는 전혀 교회에 나가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짓던 사람입니다. 그 감옥에서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제2차 대전이 끝나자 포로 교환에서 나와 결심한 것은 내가 본국에 돌아가서 신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에 와서 일본 사람에게 그가 처음에는 폭탄을 내려 던졌지마는 이번에는 복음을 전파해서 구제를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꼭 실행했습니다. 해방된 다음 미국에 돌아가서 공부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의 선교사로 나왔습니다. 선교사로 나와 전도하는 동안 제일 먼저 믿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일본 포격기대를 영도해서 진주만을 1942년에 먼저 폭격한 그 폭격기의 대장으로 있던 후지다(藤田) 대위입니다. 그 사람 역시 예수를 믿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에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우리는 창조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에는 역경이나 실패가 문제가 아니요, 질병도 문제가 아니요, 요컨대 이와 같은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잇는가 문제입니다.
42.전정(剪定)하는 목적
얼마 전에 대광 학교에서 미술 전람회를 하는데 가서 한 번 구경을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좋은 작품들이 있어요. 그 가운데 특별히 제 흥미를 끈 것은 어떤 학생들이 만든 공예품이었는데 목수들이 쓰다 내버린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작품 하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철공소에서 공인들이 쓰다 내버린 쇠 조각으로 공예품 하나를 그를 듯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와 같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변변치 않은 것, 사람 보기에는 쓸모가 없다고 하는 것, 사람 보기에는 그렇게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그런 것들을 가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오직 우리가 주안에 있을 떼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일 나무 혹은 사과나 복숭아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누구나 겨울에는 전부 가지를 전정(剪定)해주지 않습니까? 다 잘라줍니다. 만일 이 나무들이 우리처럼 감각이 있다고 하면 그 전정을 받을 때 대단히 앞을 것입니다. 이 나무가 전정을 받을 때 아프게 그렇게 많은 가지를 잘라내지마는 그 대신 나무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불평하지 아니 해요. 그 대신 쓸 때 없는 가지로 정력을 보내지 아니하고 모든 정력을 다 열매에 보냅니다. 그래서 사과 알이 커집니다. 그래서 복숭아 알이 커집니다.
사실 정정하는 목적은 열매를 크고 아름답게 잘 맺기 위해서 해줍니다. 아마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전정을 더러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환난도 보내시고 시험도 주셔서 이와 같이 전정을 해주십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시는 줄 압니다.
언제든지 창조적 생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43.모래알 가시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지마는 진주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진주도 별것이 아닙니다. 진주 속에는 모래알이 있다고 합니다. 겉만 그렇게 아름답지 속에는 모래가 있다고 합니다. 진주 패라고 하는 조개 속에 어떻게 모래알이 들어갑니다. 지금은 인공적으로 넣어준다고 합니다. 그 보드라운 조갯살에 깔깔한 모래알이 들어갔으니까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니까 이 조개가 그 깔깔한 것을 이기기 위해서 생명의 즙을 내서 그 모래알을 싸주고 또 싸주고 또 싸주고…, 여러 해 싸주면 점점 큽니다. 이것이 진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 모래알과 같이 사도 바울이 말한 육체의 가시와 같이 깔깔하고 아픈 것을 던져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싸고 또 싸서 우리의 영혼이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시는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다. 주안에서는 모든 것이 창조의 자료입니다. 주안에서는 모든 것이 찬조의 기회입니다. 서양 속담에“필요는 혹은 곤고(困苦)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요새 직업이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직업이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직업을 만들도록 힘을 쓸 때가 된 것입니다.
제가 어떤 책을 보니까 지금 폐렴을 잘 고치는 페니실린도 본래 곰팡이 가운데서 처음에 발견하고 적출 해 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곰팡이 같은 죄악 세상에서 사는 사람도 주님께 나오면 귀한 약품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병까지 고쳐줄 수 있는 새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상한 갈대를 고쳐서 아름다운 초적(草笛)피리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네게 하는 권능이 우리 주님께는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처 입은 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우림 주님 앞에 나와서 내 생명을 맡긴다고 하면 주님께서는 그 상한 생명, 그 상한 생활을 변화해서 하늘의 음악을 나타낼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던지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도 창조의 생활을 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은 어떠했든지 이 새 해야말로 창조의 해를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생활을 하십시다 <창조의 생활의 비결>에서
44.별과 같이 비치는 사람
사실 우리가 큰 신앙의 기쁨은 이 전도를 통해서 업습니다. 낚시질을 할 때 오래 기다리다가 큰 고기를 낚아 내게 되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낚시질에 미친다고 합니다. 그렇게 낚시질에 미쳐서는 곤란하겠지만 사실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보스턴의 어떤 건물에 들어가면 담 벽에“이 방에서 본래 디, 엘, 무디(D, L, Moody) 가 회개하였다”하는 그런 글을 붙인 방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킴볼이라고 하는 한 무명 교인이 전도를 할 때에 어떤 구두 방 앞을 지나가다가 그 구두 방 안에 어떤 젊은 양화 직공에게 전도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전도하여야겠다는 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그 후에 디 엘 무디라고 하는 수천 수만 명을 구원해낸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내가 전도한 사람이 혹 집사가 되고 내가 전도한 사람이 혹 장로가 되는 기쁨에서 더 큰 기쁨은 없을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서도 여러 가지 기쁨이 있겠지만 제일 큰 기쁨은 내가 전도해서 예수를 믿은 사람이 구원을 얻어서 천당에서 만나게 될 때의 기쁜 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늘 나라에 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겠지마는 면류관에서 비치는 그 별의 수가, 진주의 수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전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신자의 태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금년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다니엘 12장 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말씀했습니다. 지위가 귀하지마는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있어야 살지마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사람이 별과 같이 비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별과 같이 비치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을 낚는 어부>에서
45. 청년의 할 일
이 동산에서 사상 전선을 고요히 살펴보십니까? 4·19 혁명으로 우리 국민의 자유가 전에 보다 더 많아진 것은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죄도 자유의 기회를 더 얻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깡패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사창들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들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얼마 전에 심문을 보니까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는 공산당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하는 말 가운데 “우리 공산당은 이제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전쟁하지 이니 하고도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기 까닭이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른 방법이란 두 말할 것 없이 침투 작전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가만히 살펴보니 공산당들이 달콤한, 소위 중립 통일, 평화 통일의 사탕 바른, 겉은 희고 속은 새빨간 마취약으로 우리 민족을 취하게 하는 중입니다. 아무 딴 생각 없는 사람들도 단지 통일을 갈망하는 가운데서 이와 같은 사상에 도취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새 대통령 케네디가 그 취임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부르짖는 말씀이“이 앞으로 여러분은 나라가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물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도 그렇습니다. 우리 국민이 나라에 무엇을 하여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 가?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슨 공헌을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노력해야 우리 나라는 유지되고 건설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멸사봉공의 정신을 넣어 줄자가 누구입니까? 십자가를 따르는 우리 청년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
학생 사이에 새 생활 운동이 일어나고 국회의원들 사이에 청빈(淸貧)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다 국가를 위해서 경하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에 빛과 소금으로 자처하는 우리 기독 청년만 어찌하여 잠잠하고 있습니까? 낮술은 그만두고 밤술이나 먹자고 하는 절주(節酒) 운동, 고급 요리 집에 가서 술을 마시지 말고 대포 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 대포운동, 양담배는 빨지 말고 국산 담배를 피우자고 하는 절연 운동도 애국 운동으로 자긍(自矜)하는 이 때에, 왜 철저한 금주 단연(斷煙)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 혁신의 봉화를 기독 청년들이 일으키지 못합니까?
“청년들아 일어나라”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이 사회는 십자군의 궐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학생들이 심지어 댄스홀, 바 , 카바레 같은 데를 찾아가서 이래서 되겠는가고 외치는 이러한 때에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을 가진 기독 청년들은 왜 잠잠하고 있습니까? 듣는 대로 종로 뒷거리, 도동, 양동, 이태원 근방의 저녁거리에는 사창, 양 마담들이 우글우글 하고 그 죄악의 함정에 끌려 들어가는 산송장들로 길을 메운다고 하는데 왜 오늘날의 기독 청년들은 그런데 가서 옛날 휘트필드나 윌리암 부스처럼 생명의 복음을 외치지 못합니까? “청년들아 일어나라 !”오늘 면려(勉勵)주일을 당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외치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우리 한국 민족 반만년 역사상에 있어서 제일 위대한 시대가 어느 때였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때는 삼국시대요, 삼국시대 중에서도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대입니다. 만주에 가서 사시던 분은 광개토대왕의 기념비가 1천 5백 년이 지난 오늘도 웅장하게 선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광개토대왕은 18세 나서 왕이 되어 39세에 별세했습니다. 그러나 18세난 제왕이 약 20년 동안에 저 남북 만주(滿洲)를 다 점령하고 남으로 백제까지 내려 와서 진번군을 침범하고 문자 그대로 전 동아를 한 손에 장악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곧 젊은 청년 제왕인 광개토대왕입니다.
여러분, 광개토대왕시대의 연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연호는 영락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영락 시대라고 합니다. 이 한국 역사상에 있어서 영락 시대야말로 가장 강하던 시대요, 가장 위대하던 시대요, 가장 웅비하던 시대입니다. 여기 앉은 영락교회 청년들은 이 말씀을 뜻 있게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년들아 일어나라” 이 동산에 할 일이 많습니다. “청년들아 일어나라” 이 동산에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는 청년들을 통해서 자기의 경륜을 이 땅에서 이루시고 온 동아와 세계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청년들이여 !”
<청년아 일어나라>에서
46.신앙 생활의 표준
'꿈에라도 죄 안 짓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중생(重生)하였다고 하지마는 아직도 중생 한 처음에는 어린 아기입니다. 어린 아기가 장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매일 매일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서 계속해서 장성해서 점점 거룩한 자리로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죄를 멀리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행실로 죄를 범하는 것은 물론 말로나 생각으로도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혹은 스스로의 의식할 수 있는 의식면만 아니고 속에 깊이 있는 잠재의식 속에까지도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어떻든지 죄를 멀리 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가서 몇 해 공부하다가 온 천년이 한 번 찾아와서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한 번은 자기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떤 높은 산에 있는 휴양지에 갔다가 그만 너무 피곤했던지 잘못 되어서 자동차가 전복되었습니다. 부상을 당한 이 사람은 그 즉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를 자기 차에 태워서 어떤 병원에 입원시켜서 사흘 만에야 자기 의식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병원에서 몇 주일 동안 치료했는데 온전히 나아서 건강을 회복하여 공부를 계속해서 다 마치고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이 청년은 전에 받지 못하였던 은혜를 흡족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떻든지 자기는 앞으로는 꼭 옳은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쓴다는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행실은 말 할 것도 없고 그저 마음으로도 내 생각으로도 죄 안 짓고, 꿈에라도 죄 안 짓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합니다”그만큼 우리가 죄를 멀리하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연약합니다. 이 세상에는 유혹이 많습니다. 때때로 죄를 짓습니다. 내 본이 아니지마는 깨닫지 못할 때 어느새 죄를 범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만일 그런 경우가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옛날 베드로가 자기의 뜻은 아니지마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마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의 죄를 깨달을 때는 그 자리에서 곧 떠나 밖으로 나가 크게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인수무과(人誰無過)리오, 사람이 누가 허물이 없겠습니까? 허물을 씻고 고치면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라고 죄를 도무지 안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곧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떠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점점 성실한 자리로 향상하도록 힘을 써야 마지막에 온전한 자리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47.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제로의 정신
16세기의 제일 유명한 예술가, 건축가요, 화가요, 조각가인 미케란제로를 한 번은 어떤 친구가 찾아가 보니까. 꽃을 꽂기 위해서 자그마한 함을 하나 만드는데 아주 정력을 다해 시간을 많이 들이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구경하던 그 친구가 작은 꽃 함 하나 만들면서 시간을 많이 보낼게 뭐 있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위대한 예술가가 대답하는 말이"그렇지 않다 나사렛의 목수가 만일 이 꽃 함을 만든다고 하면 불완전하게 만들 줄 아는가? 허술하게 만들 줄 아는가? 나도 이 꼴 함을 온전하게 만들겠다" 이 정신이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 줄 압니다.“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이와 같이 위대한 표준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서 어떠한 책임을 맡았는지 우리도 언제든지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하는 이 정신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나사렛의 목수가 작은 함을 만들지라도 불완전하게 만들 것 같습니까? 우리 중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공장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든지 온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 관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있습니까? 공무원으로서 내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는 정신을 가지고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공무원만 아닙니다. 군인은 군대에서 그러해야 되고, 교원은 학교에서 그러해야 되고,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교회의 직분 된 사람은, 목사는 목사로서, 장로는 장로로서, 집사는 집사로서,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내 맡은 책임을 온전히 바로 감당하는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부산에 계시는 채필근 목사님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옛날 그 이가 함경북도 경흥 지방에서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들과 같이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전도하려 다닐 때에, 그 때는 구두가 별로 없고 다 짚신을 신고 다닐 때인데, 신이 떨어져서 짚신을 한 켤래 샀습니다. 본래 짚신이 그렇게 보기 좋은 것은 없지요. 그러나 하루 저녁에 몇 켤래 나 삼은 신인지 헐렁헐렁하고 형편없단 말입니다. 그 것을 한 켤레 사서 이렇게 들고 보는 중에 함께 다니던 선교사가 그 짚신을 가만히 보더니 “그 사람은 짚신을 삼지 않고 자기를 그렇게 삼았소”하더랍니다.
48.독수리 새끼와 병아리 새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어떤 깊은 산골에 사는 어떤 농부가 산에 나무하려 갔다가 독수리 알을 하나 얻어서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마침 봄이어서 독수리 알을 병아리 깨우는 닭의 품속에 함께 넣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에 병아리와 독수리 새끼가 함께 나왔습니다. 병아리가 크는 틈에서 이 독수리 새끼도 점점 큽니다. 병아리는 날개가 있어도 날아다니지 아니하니까 이 독수리 새끼도 그냥 걸어만 다닙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 낮에 큰어미 독수리가 그 마당 위에 와서 빙빙 돕니다. 병아리들은 무서워서 다 사방으로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독수리 새끼는 이상하게도 무서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 빙빙 도는 독수리를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바라보는 가운데 이상한 충동이 올라오면서 자기도 날아볼 생각이 점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날아보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날개가 힘이 있어야지요. 몇 번 푸덕 푸덕하지만 갈 수는 없었습니다. 큰 독수리는 빙빙 한참 돌더니 도로 먼 데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 독수리 새끼는 나도 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날개를 너울거리면서 날아가는 것을 자꾸 연습합니다. 매일 매일 조금 더 날고 또 좀더 납니다. 그러다가 열흘쯤 후에 큰어미 독수리가 다시 와서 빙빙 돕니다. 그 다음에는 나도 저렇게 날아보겠다고 날아 올라갑니다. 점점 올라가니까 큰 독수리는 점점 날아서 내려옵니다. 거이 가까이 오는데 그 다음에는 어린 독수리가 힘이 다해서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때에 큰 독수리가 큰 날개를 가지고 내려와서 어린 독수리를 날개에 업고 공중으로 날아 올라갑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경험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독수리 새끼가 병아리 가운데 사는 것처럼 이 죄악 세상 가운데 살 지만은 우리는 장차 날아 올라가려고 하는 이 하나님의 큰 경륜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된 것입니다. 우리도 날아 올라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성결하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각 방면으로 덕을 구비하기 위하여 노력합시다. 물론 우리의 노력으로는 되지 아니합니다. 결국 우리의 노력은 실패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을 거듭할 때에 우리의 힘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서 큰 날개로써, 은혜의 날개로써 우리를 업어서 마지막에 신령한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표준>에서
49.푯대를 향하여
우리 나라에서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매우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치는 것은 시작하는 것 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이루는 것은 더 귀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이 시작한 일을 온전히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경주자가 달음박질 마당에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경주자가 마지막 모든 코스를 다 달음질해서 그 경주를 마쳐야 한다고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마치 경주 자들이 마라돈 코스를 향해서 떠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라돈 경주를 보면 많은 사람이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끝까지 그 코스를 다 마치는 삶은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주 장에서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마는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가 또한 의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달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권면이 많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계속해서 달음질하라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죄, 실패한 것을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리고 뒤에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앞만 보고 달음질하라고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회개하기 전 자기가 잘못한 죄를 항상 돌아보았던들 그 경주에 큰 장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도 전에 자기가 지은 죄를 그냥 돌아보았다면 앞으로 달리는데 있어서 큰 장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뒤에 있는 실패, 뒤에 있는 성공까지도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마치려는 결심>에서
50 섣달 그믐날 집에 불을 지른 여인
지금도 잊지 아니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에도 화재가 많지마는 벌서 여러 해 전에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신의주 채소 거리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백여 점포가 하루아침에, 특별히 정월 초하루 명절날 아침에 전부 불타버렸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그 불은 그저 난 것이 아니고 방화였습니다. 어떤 여자가 불질렀습니다.
그 때부터 10여 년 전에 어떤 촌에서 가난한 청년 부부 두 사람이 농촌에서 소작을 해서는 암만 살래야 늘 밥을 굶게 되니까, 어떻게 도회지로 들어가서 벌이를 해보자고 이사해 왔습니다. 그 채소 거리에 조그마한 방을 얻었습니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밖에 나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잇는 일을 다 하고 여자는 그 집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만들어 놓고 콩나물과 두부도 팔고 채소와 과일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새벽에 일어나고 늦게 자고 그저 아득바득 살기 위해 10여 년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이 여자는 장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장사가 잘 되어서 한 10년쯤 되니까 돈을 상당히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제 좋은 집을 다른데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 남자는 가만 보니까 돈도 좀 있게되니 의복도 잘 입을 생각이 나게 되고 가구도 좀 살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만 집에 와보니까 옷도 잘 못 입고 화장도 잘 할 줄 모르고 밤낮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만 아는 이런 여자, 그런 여편네를 볼 생각이 점점 적어진단 말이오. 의복도 깨끗이 입고 화장도 잘 한 이런 여자 얼굴만 자꾸 바라다 보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딴 여자 하나를 얻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득바득 번 돈을 가지고 딴 여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남편을 책망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별의별 수단을 다해서 남편을 도리 키려고 많은 애를 쓴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남편이 돌이키지 아니합니다.
그 섣달 그믐날 밤에 이 날 밤은 꼭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눈물로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정월 초하루이고 오늘이 섣달 그믐날이니까, 그날 저녁이야 집에 돌아와 지겠지 하고 밤새도록 기다렸다고 합니다. 열시, 자정이 되어도 안 돌아옵니다. 이 여자는 너무 분하고 너무 화가 나서 “이런 세상을 살아서 뭘 해 ! 아예 이놈의 집에다 불이나 놓고 나도 불타 죽겠다”문을 닫아걸고 불을 놓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흔히 필요할 때에는 찾지마는 필요 없을 때에는 내버리는 세상입니다. 요새 가만 보니까 부모가 자기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불광동에 있는 홀트 영아원에 가보니까 전부 내다버린 어린 아기만 4, 5백 명이 거기 있습니다. 부모가 내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홀트 씨 같은 이가 있어서 어린 아기를 잘 보양해 기릅니다. 거기서 깊이 느낀 것은 부모는 이 아이들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홀트 씨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서 이런 좋은 일을 해서 이 아이들을 기르는 구나 !
51.칼빈주의 신학의 5대 강령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다 장로교인입니다. 칼빈 신학의 유명한 다섯 가지 조목이 있습니다.
1. 모든 사람은 다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여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2. 그리하여 더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데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구원할 사람을 택하신다
3. 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代贖)의 제사를 드리게 만드셨다.
4.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의 설령을 택한 사람의 마음속에 보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만드셨다( 성령의 감화입니다)
5. 그런 까닭에 택함을 받은 이 성도는 영원히 보존되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을 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52.하나님의 약속
로마서 8장을 보십시오.“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끓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 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그러므로 우리도 담대히 말하십시다.“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네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온 세상 다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합니다.“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아니 버리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하나님의 약속>에서
53.청년기의 신앙 생활
이 청년 시대의 마음 밭을 다 옥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길가와 같이 굳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무슨 과거의 좋지 못한 습관이나 인습으로 말미암아 굳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편견과 고집의 돌덩이도 별로 없습니다. 세상 재래의 욕심, 모든 허영에 대한 욕심의 가시덤불도 아직 성하지 아니한 때입니다. 양심은 비교적 순결하고 이상은 높습니다. 말하자면 포근포근한 옥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옥토에 진리의 씨가 떨어지면 싹이 잘 나고 그 싹이 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시대에 진리의 씨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 청년 시대는 특별히 인간의 영혼이 해탈하는 시대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육체는 20세가 조금 지나면 그 육체의 장성은 끝이 납니다. 혹 오래 자라는 이는 스물 댓 나기까지 키가 자라지만 보통은 그 전에 키가 자라는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자라기를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계속해서 장성하기를 힘씁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런 시대에는 까닭 모를 번민(煩悶)과 수심(愁心)과 오뇌(懊惱)속에서 소위 폭풍우 시대를 지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창조주를 찾아서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될 때에, 자기의 인생과 귀하신 목적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때에 그의 가슴속에는 큰 환희와 만족과 안심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54.종교 심리학자들의 증언
종교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신자의 대부분이 이 소년 시대와 청년 시대에 입신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신앙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아도 요셉은 일찍이 하나님께 몸을 바친 사람이올시다. 사무엘이 역시 그렇습니다. 다윗 역시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역시 그렇습니다. 이사야도 모든 선지자들이 대부분 소년 시대와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그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 다 그러합니다. 유명한 교부 오리겐이든지, 폴리갑이든지, 암부로우스든지, 유명한 성자 성 프랜시스든지 혹은 유명한 종교 개혁가 루터니, 칼빈이니, 혹은 유명한 전도자 무디니, 스펠존이니 이런 모든 사람들이 소년 시대,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바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젊은 시대는 하나님을 만날 만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우리가 찾아야 하겠고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불러서 그를 만나고 그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일 먼저 기억할 것은 이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라고 하는 이 사실이올시다.
55.인생의 분수령
이 청년시대는 일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일생의 분수령이 됩니다. 그러므로 꼭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일생의 방향을 잡는 때입니다. 방향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야 될 것입니다.
백두산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이올시다. 백두산 산상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조금만 서편에 떨어지면 압록강수가 되어서 멀리 황해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나 조금만 동편으로 떨어지면 그 빗방울이 두만강수가 되어서 동편으로 흐르고 흘러서 마지막에는 동해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두 물방울이 처음에는 매우 가까운 지척간에 떨어지지마는 그 방향이 다른 까닭으로 한 시간만 지나면 그 거리가 멀어지고 하루만 지나면 수 백 리 떨어지고 며칠이 지나면 수 천리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빗방울이 분수령에 떨어지게 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청년 시대는 우리 인간 일생에 분수령이 됩니다. 어떠한 방향으로 가느냐, 그 방향을 정하는 시대입니다. 청년 시대는 인생의 분기점이 됩니다. 어떤 길로 가느냐? 그 길을 정하는 때입니다. 청년 시대에 방향을 잡으면 일생을 옳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 시대에 방향을 그릇 잡으면 일생을 그르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 시대는 일생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청년 시대는 일할 시기입니다. 왜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될꼬 하니 이 시대야말로 일할 시기인 까닭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혹은 중년기, 노년기에도 큰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수행하기도 하지마는 대부분의 유명한 사람들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이들이 청년 시대에 큰 일을 이미 시작했고 또 일생을 통해서 계속하여 온 것입니다.
56. 휘트필드·스펄존·무디
18세기 유명한 부흥사 조지 휘트필드라고 하는 사람은 이미 스물 한 살 때에 노방 전도로 유명하게 되어서 각 처 광산으로 다니면서 광부들에게 밖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영국의 유명한 설교사 스펄존이라고 하는 사람은 열 일곱 살 때에 회개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해서 스물 일곱 살 때는 런던에 큰‘메트로플리탄 태버나클(Metropolitan Tabernacle)이라고 하는 예배당을 지어 놓고 그 예배당의 목사로 있은 것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 디 엘 무디는 스무 살에 YMCA 간사로 있으면서 누구보다도 전도를 열심히 하더니 그 후에 과연 위대한 부흥사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테이버드 리빙스톤 같은 매우 유명한 선교사는 스물 세 살에 혈혈단신으로 흑암(黑暗)의 대륙 아프리카를 향하여 나간 것입니다.
57.칼빈·루터·조지 윌리암스
우리 장로교를 처음에 세웠다는 존 칼빈은 스물 일곱 살에 종교 개혁 시대에 가장 유명한 책, 아마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신학서‘기독교 강요’를 저술해서 출판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스물 일곱 살에 캐슬 교회의 문 밖에다 종교 개혁 95개조를 걸어 놓고 그때 세력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능히 떨어뜨린다고 하는 로마 교황을 대적해서 큰 개혁의 외침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조지 월리암스는 스물 세 살 때에 지금 세계적으로 퍼져서 청년 운동의 선구자가 되어 있는 YMCA를 조직하고 청년 운동을 시작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것은 교회 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면의 일도 역시 그렇습니다. 유명한 역사의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생활을 여러분, 읽어보세요 카테지의 유명한 한니발 같은 사람은 스물 여섯 살에 카테이지의 군사령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제는 스물 세 살에 왕이 되어서 설은 세 살에 죽었는데 그 약 10년간에 전 유럽을 점령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중해를 건너서 애굽을 점령하고 인도까지 진군을 한 것입니다. 칼럼버스는 스물 여덟 살에 인도에 가려고 하는 모든 준비를 하여 온 유럽을 다니면서 자기를 후원할 자를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58.열 여덟 살에 왕이 된 광개토대왕
먼 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 우리 한국 역사상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볼 수 있는 고구려 시대의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 영락태황(永樂太皇) 이라고도 합니다 - 은 열 여덟 살에 왕이 되어서 서른 아홉 살에 붕(崩) 했는데 20대에 벌서 남북 만주를 다 점령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이 청년 시대에 벌서 큰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우리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청년 중심 운동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갓 삼십 세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30세에 역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 님의 제자 열 둘이 전부 30세 안팎입니다. 사도 바울도 젊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 운동은 근본적으로 청년 세대의 운동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청년 시대에 조물주를 기억하여야 되겠어요? 일 하기 위해서, 청년 시대는 열혈(熱血)시대입니다. 일하기에 제일 좋습니다. 청년 시대는 일편단심의 시대입니다. 무슨 일을 위해서 집중하기 쉬운 것입니다. 재작년에 우리 한국에서 4·19 학생 혁명이 있었고 작년에 5·16군사 혁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청년들이 하는 일이라 혹 무리가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지마는 청년의 운동으로 소망이 많은 줄 생각합니다.
청년 시대는 일할 만한 시대입니다. 청년 시대에 우리 교회 안에서도 봉사와 전도와 모든 방면에 일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청년 시대는 일 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한 가지 계속해서 여러 청년들에게 특별히 말씀하고 싶은 것은 이 청년 시대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내 지나갑니다.
59 인생의 황혼이 오기 전에
여러분이 전도서 12장을 보면 기대한 경고가 굉장합니다.“너는 청년 때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이렇게 시작하고 2절에 보면“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그러면서 3절에 보세요.“그런 날에는(인생의 황혼이 오게 되면)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손을 가르쳤습니다. 나이 많으면 손이 떱니다)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아마 이것은 척추를 가르친 것 같습니다) 맷돌 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맷돌은 아마 이를 가리킨 것 같습니다) 창들로 내다보는 자들이 어두워질 것이며(창은 눈을 가리킨 것 같습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길거리 문들이 닫히고 맷돌 소리가 적어지겠다고 하는 거 보니까 귀먹겠다고 하는 소리입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공연히 나이 많으면 새벽에 일어납니다)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쉬어질 것이며(아마 성대가 다 쇠하여 지겠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 할 것이며(높은 곳을 무서워 못 올라갑니다) 길에서도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이것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배꽃이 피겠다는 말이요, 머리가 하얗게 되겠다는 말입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힘이 없으니까 메뚜기 한 마리가 등에 올라앉아도 대단히 무겁겠단 말이요 !) 원욕(願慾)이 그치리니 이는 이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 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이렇게 되기 전에 조물주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 <청년 시대와 신앙 생활>에서
60.노년기의 신앙 생활
우리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부득이 은퇴할 수밖에 없지마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 하나님께서 힘 주시는 대로 창조적 생활을 하여야 됩니다. 특별히 노년 시대에 교회를 돕고 심방을 하든가 전도를 하든가 하는 모교회의 일은 제일 자유롭고 제일 능률 있게 할 만한 봉사입니다.
작년에 우리교회에 와서 설교한 바 있는 스탠리 존스박사(Dr, Stanley Jones) 는 70이 되었을 때에(그의 나라 법에는 70이면 은퇴합니다) 자기 선교부에 편지를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내가 금년 70이니까 부득이 선교사로는 은퇴합니다.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로서는 도무지 은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나 혼자 이 앞으로 사방으로 다니면서 전도하겠습니다.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사실 그이가 지금 일흔 댓 되었습니다. 그러나 온 세계에 다니면서 지금까지도 보음을 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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