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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예배하라본문: /시 50:13-15

by 【고동엽】 2022. 1. 24.

제목: 마음으로 예배하라

본문: 50:13-15

 

50: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예배에 대하여 설교를 준비하다가 이용규 선교사가 쓰신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나오는벌러르자매 생각이 났습니다. 선교사님이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벌러르'라는 자매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교회로 들어오더랍니다. 이 자매는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 가지고 찾으러 뛰어나갔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하니까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왔다는 겁니다. 몽골에서의 소는 삶의 기반이요 재산목록입니다. 소 한 마리가 보통 사람의 1년치 월급과도 같습니다. 이 자매는 예수 믿은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소를 포기하고 교회로 달려온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배를 마치자마자 예배당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겁니다. 잃었던 소가 예배당으로 찾아온 겁니다. 소를 잃어버렸을 때에 소를 찾는 기쁨을 포기하고 예배의 기쁨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은 예배의 기쁨과 소를 찾는 기쁨을 모두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어떤 성도에게 이런 예배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예배 때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예배에 참석하는 동기가 달라집니다.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청년의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28장에서 야곱이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그 때 야곱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열왕기 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이적으로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 가장 먼저 한 말이 평생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하 5:17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야 삽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스케줄러에 빼곡히 만나야 할 사람들과 일정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만나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났거나 불편한 사람, 부담스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지치고 피곤하고 화가 나고 불쾌하고 시간이 아까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정말 만나야 할 사람, 사모하던 사람, 복된 사람을 만나고 나면 말이 많아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고 너무나 감사하고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고 나면 이런 느낌 이상입니다.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것을 넘어서 회개가 터집니다. 기도가 터집니다, 하루 종일 찬양할 마음이 일어납니다.

 

중고등부 전도사 때, 학생수련회에 갔다가 아이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더 기도하고 싶다고, 집에 가서 어떻게? 방에서 해라. 저녁 먹고 기도하는데 동생이 들어왔다. 벌떡 일어났다. 동생이 이상한 눈으로 봤다. 가족에게 광고해라. 나 기도한다고 방에서 기도. 부모님 상담 오심. 무슨 일 저지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TV도 안보고 기도할 리가.. 울기도 해요. 부모님, 기도문이 열린 것 이예요. 같이 기도하세요.

 

예배 때, 하나님을 만나면, 조건 없이 만족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하늘의 기쁨이 임합니다. 생명도 바칠 헌신이 일어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어난 체험이 우리에게도 생깁니다. 사람이 변합니다. 얼굴도 예뻐집니다. 병이 고침 받습니다. 마음이 치료받습니다. 모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됩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예배할 때 이런 은혜가 임합니다.

 

50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드릴 때, 바치는 제물 보다 더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신학교나 기독교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예배가 의무 사항입니다. 확인은 예배 출석표를 받든지, 도장을 찍든지 합니다. 교회에 와서 주보에 담임목사 사인을 받아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배 시간에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면 예배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이해하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예배 시간에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많은 헌금을 드리고 찬송하고 설교를 들었어도 마음에 감사가 없었다면 예배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합니까? 교회 오는 내내 감사했습니까?

하나님께 수소를 바치면 하나님께서 수소의 고기를 드시겠습니까? 염소를 바치면 염소의 피를 마시겠습니까?

50: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나님께서 제물을 원하시는 것은 제물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제물을 많이 바쳐도 예배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어떤 주는 정말 힘들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 외로 잘된 일이 일어나는 것,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기대한 대로, 갈망한 대로 이루어진 적도 일생에 걸쳐서 손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걱정거리, 염려할 일은 어찌 그리도 많습니까?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예배 때마다 감사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진정 믿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받고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애쓰고 열심히 돈 벌어 살아가는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양은 어떻게 뜨며, 지구는 누가 붙잡고 계시며, 공기 속의 산소 농도는 누가 적당하게 유지하며, 씨를 심으면 곡식이 열매 맺게 하는 일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애써서 노력하는 것은 우리 삶을 유지하는데, 0.001%도 안됩 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항상 엄청난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감사할 뿐입니다.

 

한 자매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귀여워 보여 괜찮았는데, 본인은 너무 속상했던 모양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입니다. 그는 머리가 자랄 동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연락이 오기를 예배 안내를 서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안내를 설 것이면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차량 안내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안에서 교인들을 안내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아침 묵상이 생각났답니다.

37:3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엄청난 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가 기뻐하는 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여호와를 기뻐하기만 하면 된다. 예배자가 되는 것이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응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직 여호와만 기뻐하겠습니다. 그녀는 안내를 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시종 밝게 웃으며 안내를 서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예뻐 보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은 의무가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특권입니다.

이런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마음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첫 단계가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많은 성도들이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도 하고, 사업이 잘 되어, 고위 공직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도 합니다.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순간은 환란에서 건짐 받은 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은 언제나 환란 중에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10남매 자녀와, 종과 재산을 다 잃어버린 후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 1:21)하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은 잘해 주어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며 욥을 참소하는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욥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사탄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데, 고난을 당하여서 낙심하십니까? 그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벧전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고난당하는 이에게 성경은 아름답다” “즐거워하라” “복 있는 자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종이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이기에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평안한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고난당하는 것은 더 감사한 일입니다. 오히려 고난 없는 것이 애통한 일입니다.

 

교인들은 묻습니다. 어디에서 평강을 찾을 수 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살아 계시다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성경에 답이 있고, 예배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이 은혜를 다른데서 찾으려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성경에, 예배에 담아 두셨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배만 제대로 드리면 됩니다.

휴대폰이 고장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 쓰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가 고장 나면 고쳐 쓰든 바꾸든 하면서, 예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왜 그대로 두는 것입니까?

예배를 드려도 메마른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삼하 6장에서 여호와의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이 너무 기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창밖으로 내단 본 아내 미갈은 그런 다윗의 모습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마음으로 다윗을 업신여기고, 만나서는 다윗을 비난하였습니다.

다윗과 미갈은 분명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왜 이렇게 다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눈앞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삼하 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에, 나이 늙어 노인이 된 주인공 덕수가 설날이 되어 모인 가족들이 거실에서 떠들썩하게 웃고 노래하고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혼자 방에 들어와,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 사진을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으러가면서 아들 덕수를 붙잡고 당부합니다. “잘 들으라. 내가 곧 따라간다! 가족들 잘 지켜라! 내 걱정 말고!!” 이미 노인이 된 덕수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에게 하듯 말합니다. “아부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그리곤 이어서 말합니다.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 ” “아부지, 보고 싶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을 향한 제 마음 같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치 주님 앞에 갔을 때,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 마음 안에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못하고, 하기 싫은 것 해야 하며 살아왔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하기 싫은 말을 해야 했다는 피해 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주님 뜻대로 살아 보려고 애를 쓰면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주님과 동행하는 눈이 뜨였고, 주님을 만날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예배드릴 때 마다 생각나는 예배 경험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부터 예배 마칠 때까지 울면서 예배 했던 군목 훈련 중 드렸던 첫 예배, 수요예배였습니다. 훈련소 규정 상 첫 주간에는 예배를 드릴 수 없었는데, ‘무슨 말이냐, 우리는 목사다!’ 따지고 싸워서 모든 일과를 다 감당하는 조건으로, 예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고 예배 끝난 다음 내무반으로 구보로 복귀 갔다가 저녁도 먹지 못하고 참석한 수요예배였습니다. 수요예배 빠지면 목사 아니라고 말할 정도의 심정이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샘이 터졌습니다, 은혜로운 설교, 은혜로운 성가대, 안내위원들의 친철, 예배 후의 다과, 다 상관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영혼과 버림받은 영혼의 차이입니다. 감사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의무가 아닙니다. 복입니다.

이제부터 예배는 반드시 감사로 준비하여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드림으로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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