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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는 교회 공동체 /행 2:42

by 【고동엽】 2022. 1. 24.

제목: 예배하는 교회 공동체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는 2016년 들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주일 설교 때마다 은혜 받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사랑 기도의 밤이 있는 주일이기에 예배와 교회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본문은 성령이 임하여 생겨난 초대교회에 대하여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본문에서 우리는 교회는 생길 때부터 예배하는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는 예배를 의미하는 표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임하였을 때, 그들을 예배하도록 교회로 모이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예배가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존 맥아더목사는 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하여 구원받았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반드시 지치고 힘들 때가 오게 됩니다.

교회 봉사도 예배 안내 위원으로 시작하여 속장, 선교회장, 교회학교 교사, 찬양대원, 각 위원회, 일대일 양육, 제자훈련, 노방전도, 선교 훈련을 하지만 어느 순간 지칠 때가 오곤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공급받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무서운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단의 미혹도 있었고, 온갖 시험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하여 계속 하나님과의 만났기에, 또 그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었기에 그들은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예배가 어느 정도 은혜로웠는지, :44-45에 나옵니다.

:44 “...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여러분, 이런 일이 상상이 되십니까?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그들이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그렇게 만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시끄럽다고 싫어합니다. 뭐가 시끄러운 것입니까? 예배드리는 것이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예배드리고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예배드리고 교인들이 너무나 놀랍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게 진정한 예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34:29-30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비취었다고 했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모세를 쳐다 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얼마나 기뻤는지 하나님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아내에게 멸시를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한 제사장이었으나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영안이 열리자 입술을 부여잡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며 나뒹굴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죄라도 회개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배 때 하나님을 만나 죄를 깨닫고 회개하지 못하면 큰 일 납니다. 죽고 난 다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비로소 발견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계 6:15-16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6:15 ...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너무나 빛이 강렬하여 말에서 꼬꾸라지고 며칠 동안 눈이 멀었습니다. 그는 육의 눈이 멀었지만 영안이 열려 살았습니다. 박해자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실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예배드릴 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모세처럼 얼굴에 광채가 비취고 다윗처럼 기뻐서 춤을 추고 이사야나 사도 바울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소유욕도 다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예배, 이것이 우리 예배의 기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귀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4:4에 보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6-7에서 자신들 안에 계신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예배 기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 예배를 형식만 거창하게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과 전쟁 할 때, 하나님께서 아멜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하였는데도, 아각 왕과 가장 좋은 소와 양을 죽이지 않고 가지고 와서, 아각 왕은 백성들 보는 앞에서 죽이고 소와 양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로 삼았습니다. 사무엘은 제물만 많이 바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울 왕에게 무서운 말씀을 하였습니다.

삼상 15:22-24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 때 사울은 사무엘을 붙잡고 무서운 청을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을지라도 제발 자신을 높여 달라, 자기와 함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척이라고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여러분, 이런 태도가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바로 사울 왕과 같은 영적 함정에 빠져 있지 않은가 두렵습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할 때, ‘예배에 목숨을 걸라’, ‘예배 하나 잘 드리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예배 순서를 잘 짜야 한다. 예배당을 잘 지어야 한다. 예배당 인테리어를 잘 해야 한다. 악기나 음향 장비는 최고로 준비해야 한다. 찬양대를 잘 조직하고 무엇보다 설교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예배를 모를 때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예배를 잘 드리기로 유명한 교회가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교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많은 목회자들이 구경을 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지난 32년 사역을 되돌아보고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 우리가 실수했다’, “숫자로는 성공을 했는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산을 많이 들여 예배는 멋있게 은혜롭게 드렸고,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인들을 가르쳤지만, 교인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가? 교인들이 진정 주님과 동행하는가? 하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 잘 드리는 것은 예배 순서나, 예배당 건물이나 음향설비나, 설교나 찬양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영적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지만, 하나님의 영을 사람 안에 넣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주의 영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지상에는 성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임시로 인간들을 만나주는 성막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우상을 섬기면서 성막에 있는 법궤를 이방 민족에게 빼앗기고 성막시대도 사라집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소원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전을 우상화하고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전을 무너뜨립니다. 결국 저들은 성전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짓고 헤롯왕이 성전을 증축하였지만, 그 성전 속에 하나님의 영광은 임하지 않았습니다. 타락의 성전에 예수님께서 가셔서 채찍을 들어 상을 뒤엎으시고 무리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으로서 친히 하나님을 보여주는 성전이었고, 살아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다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이 된 것입니다. 고전 3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여 계신 성전임을 명심하면 당연히 그런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2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교회가 교인들에게 무언가, 즐거움과 위로와 격려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도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무슨 힘으로 교인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하고 격려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할 수도 없고 교인들도 만족하지 못하여 지칠 뿐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성전 된 자로 만드신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 성전으로 존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합된 한 성전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느니라.”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하여 실망하고 교회에 대한 마음이 떠나 있습니다. “나 혼자 예수님을 잘 믿으면 되지!” 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가 없이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혼자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예배를 드린다면 어떻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어떻게 말씀을 전달받을 수 있고, 어떻게 신앙양육을 받을 수 있으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체험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며,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찬송을 부르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문제가 많아도 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몸이 암에 걸렸다면 죽도록 내버려야 합니까? 암은 고치되 몸은 살리지 않습니까?

문제 가정이 많다고 가정을 없애자고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교회가 그와 같습니다. 교회에 실망했다 하더라도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교회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죄와 거짓이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5장에 보면 초대교회에 큰 시험이 생겼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으로 헌금한 사건이 터집니다. 탐심이 생기니 하나님을 바로 보는 눈이 가리어져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 때 무서운 징계가 임합니다.

그 일로 인하여 교회는 보이지 않지만 보시는 하나님을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6장에서는 구제문제로 성도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교회는 성전으로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교회 안에서 분열하고 싸울 수 없습니다.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래서 초대 교회는 불만이 있던 헬라파 교인들을 집사로 세워 구제를 맡겨 버립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예배를 바로 드리는 교회가 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고 싸우는 데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없다면 철저히 교회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했던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애통하며 기도했던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지킬 뿐 아니라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저 은혜로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짐을 지고 있으니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교회가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들을 거의 다 가졌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가졌던 대부분의 교회는 무너졌지만 우리 교회는 기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오히려 더욱 부흥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다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늘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일이 있어서 교회를 살려주셨다는 것과 교회에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을 때, 끝까지 교회를 지켜내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원통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를 버릴 수도 없는 그 마음, 그래서 울면서 기도만 할 뿐이었고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 주일 출석인원은 600명 정도였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적은 인원이 큰 짐을 졌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지금의 교회가 선 것입니다. 그들이 겪은 어려움이 말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주님 앞에 설 때 기뻐서 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쓰시는 것은 우리 교회가 죽음을 통과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죽고 다신 산 교회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직면할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체험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전하기에 딱 맞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은 아름다운 예배당이 아니라, 황량한 콘크리트 덩어리였던 그 모습이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우리 교회의 진정한 은혜가 경험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교훈을 명심하면 교회가 살겠지만 잊어버리면 우리는 무너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해다가 해방된 것을 영원히 자랑합니다. 매년 유월절 절기를 지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세웁시다.

모세처럼 얼굴에 광채가 비취고 다윗처럼 기뻐서 춤을 추고 이사야나 사도 바울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소유욕도 다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예배를 드려야 우리가 삽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단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저절로 이런 은혜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교회를 지키고 사랑하는 일에 힘을 보태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교만하고 자랑하고 나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교회를 다시 살려주시고 세워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게 되기를, 그리고 그러한 교회를 함께 세우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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