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단비! (시 65:9-13)
어떤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가냘픈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을 했습니다. "저 가냘픈 가지에 저렇게 큰 호박을 열게 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러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이 농부가 호도 나무 밑에 가서 앉아 쉬다가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니까 그 나무에 호도가 열렸는데 큰 나무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게 너무 조그만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것을 보자 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맺게 하셔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 농부는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혀를 차고는 호도 나무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호도 열매 하나가 이 불평 많은 농부의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난 이 농부는 호도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자기 이마를 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농부의 뇌리를 번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호도 나무에 열린 호도알이 작았으니 망정이지 이 호도알이 호박만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그러고는 하나님을 향해서 태도를 고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호박 넝쿨에서 큰 호박 열리게 하시고, 호도 나무에서 작은 열매 맺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참 잘하신 일입니다.
요즘 날씨가 가물어서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불평의 소리가 없겠습니까? 더워서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땀흘려 심어 놓은 작물들이 마랄 죽어가고 있고, 애써 길러 놓은 가축들이 질식해서 죽어가고 있으니 왜 불평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가뭄이 보통 가뭄이고, 더위가 보통 더위입니까? 그래서 이런 때는 생각이 얕으면 불평하기 십상입니다.
저는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고, 사랑이 들어 있고, 배려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는 불평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은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가뭄은 절대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가뭄은 이 땅에 온통 피해만 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 이 가뭄은 우리 백성들에게 굉장히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이 가뭄으로 인해서 그 동안 흩어져 있던 국론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뭉쳐지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들 농촌을 살리자고 성금을 보내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농촌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동안 동정심도 없고, 인정도 메말라 가던 사회인데, 그렇게 메말라 가던 그 동정심이 지금 다시 싹이 돋아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고 지금 절약하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무분별했습니다. 절약이 어디 있습니까? 그 동안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무절제하게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땅에 심각한 가뭄이 오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반성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운 모습입니까? 이것이 작은 일입니까? 얼마나 큰 교육적인 효과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백성들이 이번에 하늘의 위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비가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또 가뭄 앞에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급하니까 그릇으로 물을 퍼 나르고, 헬기로 물을 날라다 공중에서 뿌리지만 그것이 아이들 장난하는 것이지 그 넓은 들녘이 그렇게 해서 적셔지는 것입니까? 오늘 사람들이 과학을 말하고, 현대화를 말하고 있지만 이 근본적인 자연의 힘 앞에 서 있는 인간은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 하나님께서 비를 적당히, 그때 그때마다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댐을 몇 개 만들었으니 걱정이 없다"느니 "관개 시설을 해 놓았으니 한해가 와도 문제가 없다"느니, "이제는 전천후 영농 시대가 열렸다"느니 하며 큰 소리를 쳐 왔습니다. 그리고 쌀이 좀 남으니까 그것으로 술을 만드느니, 사료를 만든다느니 그랬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농민들이 시위를 할 때 볏단을 쌓아 노호, 볏가마니를 모아 놓고 그곳에 불을 질러 태웠습니다. 밭에 풍작을 이룬 배추를 채산이 맞지 않는다고 쟁기로 갈아 엎어 버렸습니다.
농부가 시위를 하려면 지게를 지고 하거나, 배추가 채산이 맞지 않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뽑아 가게 해야지 그것을 불태우고 갈아 엎으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참 두렵고도 섬뜩한 짓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 풍년이 들겠습니까?
한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까 댐이 무슨 소용이 있고, 관개 시설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무슨 전천후 영농입니까? 한 달 비가 오지 않으니까 벼가 말라 죽고, 채소가 말라 죽고, 가축과 물고기들이 모두 죽습니다. 어디에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서 모두들 일손을 놓고 앉아서 태풍을 손꼽아 기다리는 신에사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태풍이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하니까 모두들 얼마나 허탈해 했습니까?
그래서 옛부터 농경 사회에서는 하늘을 거스리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을 향해서 원망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 풍년이 들었어도 결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짓되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속수 무책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갈고, 씨를 뿌리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고, 결실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 같은 이치를 잘 아는 농부는 절대로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알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물과 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달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극심한 가뭄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과 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달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극심한 가뭄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땅이 막 타 들어가고, 고추가 말라 죽어 갔습니다. 그래서 저녁 때가 되면 고추 밭에 물 주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물을 주되 비가 올 때보다 더 많이, 더 풍부하게, 아주 흡족하게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고추 열매가 실하지 않습니다. 알차지가 않습니다. 빛깔이 곱지 않슴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식물은 빗물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샘물을 먹어서 그렇습니다. 식물은 자연의 빗물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인공적인 물을 먹여서 그렇습니다.
물리라고 해서 식물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곡식을 여물게 하고, 실하게 만드는 것은 샘에서 퍼낸 물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자연의 빗물입니다. 식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 익고, 여물고,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그 같은 비를 가리켜서 "은혜의 단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에서 농사는 인간이 짓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곡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농사를 짓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은 땅에 물을 대신다고 했습니다.
9절을 보면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사....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물의 근원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는 말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땅을 파게 되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손에는 네 개의 열쇠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열쇠는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중 첫 번째 열쇠가 바로 비의 열쇠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문을 열어야 이 땅에 비가 내린다는 말입니다.
욥기 26:8을 보면 "하나님이 빽빽한 구름 보자기로 하늘에 비를 쌓아 두셨다"했고 또 28:26을 보면 "하나님이 명하시면 우레와 번개와 비가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비가 은혜의 단비입니다.
금년에 날이 가물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짓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늘의 도움 없이는 인간에게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것만 해도 신앙적으로 보면 많은 소득입니다.
둘째는 단비는 땅을 부드럽게 합니다.
10절을 보면 "단비로 땅을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이 땅은 불모지가 되어 버립니다. 세앙이 삭막해집니다. 전국토가 불모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으면 자연도, 땅도, 식물도, 사람도 살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까 논바닥과 강바닥이 모두 거북이 등과 같이 무섭 골이 패이고 갈라지고 그럽니다. 그렇게 갈라지고, 메랄라 버린 흙은 마치 돌같이 단단해지고, 칼날같이 날카로워집니다. 땅도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그렇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하늘로부터 은혜를 입지 못하면 이렇게 돌처럼 그 마음이 단단해지고, 삭막해지고, 포악스러워집니다. 심성도 악해지고, 생각도 난폭해집니다. 그래서 날이 가물면 세상 인심이 흉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메마른 세상에도 비만 내리면 모든 것이 일시에 해결됩니다. 모두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그렇게 심하게 말라 비틀어진 논과 밭에도 비가 오면 지금까지 칼날같이 굳어 있던 흙들이, 돌들이 굳어 있던 흙들이, 언제 그렇게 부드럽게 녹았는지 스스로 부서져서 흙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죽어 있던 흙에서 식물들이 돋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비를 성경은 "은혜의 단비"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단비는 세상의 단단한 것들을 풀어지게 하고, 말라 비틀어진 식물에 생명을 공급하고, 불모지 땅 위에 초목이 돋아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은혜의 단비를, 성경으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추수는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시는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11절에 보면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풍년은 하나님이 농부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여기 보면 "기름이 떨어지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러분, 풍년 든 들녘을 바라보면 누렇게 익어가는 고개 숙인 곡식들을 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아, 누렇게 잘 익어가고 있구나"하는 것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의 눈으로 그 들녘을 볼 때는 마치 그 모습이 기름이 윤기 있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모습 때문에 농부는 농사 짓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영농비가 많이 들고, 채산이 맞지 않고, 수고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도 농사 짓는 일을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 기름 치 듯한 들녘을 잊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도록 수고하고, 땀 흘리고, 일해서 가꾼 곡식들이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는 그 맛, 그 맛은 농부가 아니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농부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그 일이 힘들어도 집어치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더도 말고 일 년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이 땅에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습니가? 아니면 서울 시내에 10일 동안만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동안 사람들은 그 물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풍년이라는 말은 비가 오되 많이도 아니고, 적게도 아니고, 적당히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것이 쉬운 일입니까?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해서 이 땅에 그런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금년에 비로소 심각한 가뭄이 들고 보니까 그 동안 우리에게 주어졌던 빗물이 그렇게 고마운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를 가리켜서 본문에서는 "은혜의 단비"라고 했습니다.
금년에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맞았습니다. 이 시련이 예년에 없었던 90년 만의 가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있어야 비가 내릴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련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 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련이 오히려 이 나라에 큰 축복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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