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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박종순 목사 설교집 (5)

by 【고동엽】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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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의 삶 속에 평화를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주간기독교

구 절 : 시 27:1-6

 

 

12월의 표어는 [온누리에 평화를]입니다. 성탄 계절이기 때문에 그런 표어

를 정했습니다. [온 누리에 평화]는 먼저 나의 삶 속에 평화가 임해야 합니

다. 다시 말하면 [온누리]는 곧 온 세상인데 온 세상 평화는 곧 나에게서부

터 평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으니]했을 때 바로 그 세상은 이 세상의 자연,예컨대 흙,나무,바람,사과들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된 삶의 평화란 땅에 있지 않습니다. 정원속에 있지 않습니다. 예금통장

에 있지 않습니다. 권력이나 명예에는 더더욱 있지 않지요. 우린 그 사실과

그 고백을 이스라엘의 2대 왕이었던 다윗의 시편속에서 발견하게 되빈다.

실로 그는 부족한 것이 없는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명성을 떨치던 왕이었

습니다. 사무엘하 21:17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가리켜 [이스라

엘의 등불]이라고가지 불렀던 훌륭하고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

게도 다윗은 거기서 행복이나 만족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신하들이나 측근들 그리고 백성들이 [당신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십니다. 희

망이십니다]라고 치켜 올려도 그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니다,나는 등불

이 못된다. 나의 영원한 등불, 꺼지지 안는 등불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라고 고백합니다.

 

파스칼은 인간을 별 것이 아닌 존재로 보았습니다. 파스칼은 세종류의 사

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자, 이런 사람은 자기가 제아무리 유식

하고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자처해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위대한 지식인 산지식 즉 하나님께 대하여 무지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고 대범한 척하고 아

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아도 그러나 실상은 살얼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언제나 찾기만 하는 자,하도 많이 찾았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

러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하

나님에 대하여 신앙 생활에 대하여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적으로

항상 공부하고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바로 다윗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이 빛이시고 구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겸허한 신앙의 소유자가 바로 이러한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위대

한 무기가 주어지는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는 무기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생명을 하나님의 능

력에 맡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능력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위축되

어가는 내 생명, 꺼져가는 등불같은 내 생명 속에 새로운 생명의 활력을 불

어넣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을 때 나의 삶은 평화와 안정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

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박종순 목사 설교집 [누구를 찾느랴]에서)

 

발행일 : 941225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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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원망하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출 16:6-12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는 부정적 별명이 있습니다.그것은 [목이 곧은 백성]

이라는 것입니다. 고집과 교만과 불신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불

순종하는 저들의 모습을 [목이 곧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

면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이스라

엘 백성의 원망이 구체화되고 집단화 되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한 이후부터

였습니다.

 

출애굽기 14:12를 보면 홍해 앞에서 뒤쫓아 오는 바로의 병샤들을 바라보

며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며 모세를 원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원망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잠잠해

졌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다며 원

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망도 쓴물을 단물로 치료하신 기적 때문

에 잠잠해졌습니다 (15:22-27).

 

출애굽기 16:1-3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지 한달이 지난 어느날 그들의 원망

이 재연되었습니다.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와 덕을 배부르게 먹고

있을 때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것이 원망의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

면 배고파 죽겠다는 원망이었던 것입니다. 이 원망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

나와 메추라기 때문에 잠잠해졌습니다.

 

출애굽기 17:3을 보면 그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다며 원

망을 시작했습니다. 이 원망은 반석으로 생수가 터지게해 주심으로 끝났습

니다.

 

그들의 원망은 계속됐습니다.

민수기 11:1을 보면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밤낮도 없었고 실

내, 실외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27을 보면 "장막 안에서 원망했다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수를 셀 수 없는 원망역사를 지켜 보느라면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건은 저들의 모습이 곧 우리네의 자화상이라는 점입니다.

저들은 사건있을 때마다 원망을 터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음 가득히 원망의 폭탄을 안은 채 살고 있습니다. 온몸

가득히, 멱까지 원망이 가득차 있습니다.

 

1. 원망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 불신 때문입니다.

원망은 불신의 산물입니다. 죽게 됐다면 원망하면 살 길을 열어 주셨고,

물이 쓰다고 원망하면 단물이 되게해 주셨고, 배고프다고 원망하면 만나를

주셨고, 고기먹고 싶다고 원망하면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마르다고 원망하

면 반석에서 나온 생수를 주셨습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기

적과 응답을 체험한 저들입니다만 계속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한마디로 하

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망이란 수근거리며 불평한다는 뜻을 갖는 말입니다. 저들이 최소한의 믿

음만 가지고 있었다면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면서 원망을 일삼을 수가 있었

겠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과 섭리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9:3을 보면 "사랑이 미련함으로 자기 길을 굽게하고 마음으로 여호

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잘못은 자기가 저질러 놓

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탓으로 빚어진 결과를 놓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

게 그 책임을 떠민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잠언 19:3은 미련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문의의 말을 빌리면 한국인의 경우 성인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라고 합

니다. 그것은 식생활, 성격,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불규칙한 식생활, 자극성이 과다한 음식물의 섭취, 과음, 과식 등 식생활

의 잘못으로 성인병이 발병하는가 하면 그 사람의 성격도 성인병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조급한 성격, 내성적 성격 불같은 성격 등 조화와 균

형을 깨트리는 성격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습관도 성인병 유발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좋은

습관, 건전한 습관, 경건한 습관은 건강의 비결이 됩니다만 반대로 무질서

한 습관, 통제가 불가능한 습관, 생체의 리듬을 깨트리는 습관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그들의 원망은 누적되고 계속된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책

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버릇을 가지면 일생동안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쁩니

다.

 

원망하는 나쁜 습관에 길들면 일마다 원망을 일삼게 됩니다. 습관은 그사

람의 인격과 신앙과 삶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습관적으로 투

정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 결국 그 영혼이 버림받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왜 원망하면 안됩니까?

 

1) 하나님이 원망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7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

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원망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독백이든 혼자서 고함치

는 것이든 다른 사람 앞에서 터뜨린 것이든 하나님이 그 원망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시는데 어떻게 원망할 수가 있겠습니까?

 

2) 모세를 향한 원망도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8을 보면 "너희의 원망을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

를 향하여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16:9,12에는 하나님이 원망을 들으셨다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보이는 공격대상은 모세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자

기들을 애굽에서 끌어냈고 고생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

세의 지도능력이 모자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여겼습니

다. 그래서 걸핏하면 모세에게 대들고 도전했습니다.

 

그러한 저들에게 16:8 말씀은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 원망은 하

 

 

 

나님을 향하여 함이로다'라는 말씀은 원망의 대상이 누구였는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8을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리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

로 지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흙덩어리가 토기장이를 향해 원망을 퍼붓

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애굽에 보내 명령

을 순응하며 평생을 바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세를 공

격했고 죽이겠다고 덤볐고, 돌을 던지려 했고 원망과 비난을 서슴치 않았습

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원망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으며 하나님

을 향한 도전이었다는 것입니다.

 

3. 원망하면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전서 10:10을 보면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더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5:9을 보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

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서 게시니라"고 했습니다.

 

원망은 하면 할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 가까운 사람에 대해 원망을 하기

시작하면 점차 주변은 물론 사회 국가 세계가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

다. 한 가지를 원망하기 시작하면 열 가지 백 가지 그리고 세상만사가 다

원망스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멸망하고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

다.

 

소위 지존파라는 범죄조직을 만들고 엽기적 살인을 일삼던 20대 젊은이들

의 행적이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가난, 무지, 멸시, 증오가 한데뭉쳐 세상

을 쓸어버리려 했다는 것이 저들의 항변입니다. 그러나 저네들보다 더 불우

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곧고 바르게 일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젊은이들

이 더 많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원망심리가 점차 증폭되면서 집단행동으로 발전했고 저토록 몸소

리쳐지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만일 저들의 원망으로 시작된 자신

들의 종말을 단 한번만이라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면 준엄한 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신문의 기사가 생각납니다.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

자라는 기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당한

것입니다. 허탈, 좌절, 통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무겁습니

다.

 

원망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민수기 11장을 보면 원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왔던 진을 하나님의 불이 살랐

습니다. 민수기 14:27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6:31 이하를 보면 원망을 일삼고 집단행동으로 모세를 반역했던

고라와 그 일당이 땅이 갈라져 산채로 생매장되었습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원망하던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고로 원망을 일삼과 잘되거나 성공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스빈

다. 욥기 23:2을 보면 "혹독히 원망하는 사람은 받는 재앙도 크다"고 했습

니다.

 

4. 원망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원망하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합니다.

원망을 일삼고 불평불만이 멱까지 차있는 사람들과 늘상 교제하다보면 자

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또레집단

형성을 위해 마치 세뇌를 하듯 다른 사람드을 세뇌시키고 동조자를 만들려

합니다. 더 깊은 함정에 빠지기 전 원망하는 개인이나 집단과는 사귐을 끊

어야 합니다.

 

2) 자족해야 합니다.

주어진 삶과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리고 그런 사람이라야 향상과 발전이 성공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때 더 낳은 환경에로의 진일보가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환경을 탓하고 저주하고 적개심을 품는다면 지존파의 젊은이들처럼

멸망에 이르게 되고마는 것입니다.

 

존 웨인 게이시(John Wayne Gacey)는 33명을 연쇄살인한 희대의 살인자였

습니다. 1978년부터 16년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94년 5월 독약주사를 맞고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죽는 날 소원을 묻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습링니다. 네 종류의 과일과 함께 치킨을 차려주었더니 배불리 먹

고난 후 불평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 어떻게 정부가 살인을 한다 말이냐"라며 고함을 질러

댔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뉘우침이 없었고 원망과 불평으로 죽었습니

다. 원망을 피하려면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자기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망심리의 뿌리를 캐보면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누구때문에, 무엇때문

에 이렇게 됐다는 망울이 맺혀있습니다.

그러나 내 책임임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남을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

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기도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한 것은 제자들의 아우성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노련한 노젓는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바람이 그쳤기 때문

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오셔서 "고요하라 잔잔하라"고 명령하셨

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삶과 우리 역사 속에 주님이 임재하셔서 원망과 시비. 질투

와 분쟁, 다툼과 증오를 잠잠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각 언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 위기국먼에 접어들

고 있습니다.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실종되버렸습니다.우리의 기도와 각

성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가해자나 피해자가 생겨나선 안됩니다.

 

원망없는 사회와 교회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를 새로 시작합시다.

주여, 우리와 우리 시대를 구원하소서.

 

발행일 : 940925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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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이 주신 양식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출 16:13-20

애굽은 430년만에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30

년 동안 먹었던 식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나]였습니다. 색깔은 흰빛이

고, 모양은 갓씨와 비슷했습니다. 일정한 곳에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을 형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날 그날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머물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 동안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심지 않

고 거두지 않았지만 4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

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26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

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인 것입

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만나의 교훈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1.식량대로 거둬야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가족 1인당 한 호멜씩 식량대로 거두라고 했습니다. 한 호멜

은 약 2.3리터가 됩니다. 식량대로 거두라는 것은 먹을 만큼 거두라는 것입

니다. 다시 말하면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거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 호멜을 재는 그릇이 없었기 때문에 짐작으로 거둘 수 밖

에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짐작으로 만나를

거둬다가 호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는게 없고, 적게 거둔 사람

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집 밖에 나가면 하얀 빛깔의 만나가 지면에 마치 눈송이처

럼 덮혀있습니다.

그릇을 가지고 식구들의 식량대로 거두어서 요리를 해먹곤 했던 것입니다.

"1인당 한 호멜""식량대로"라는 만나의 법칙 속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언젠가 과적차량 진입금지라는 표지가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과적차량은 타이어가 펑크날 위험이 있는가 하면, 도로를 파손하

게 됩니다.

 

구청 공무원의 세금 횡령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1인당 한 호멜이면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량초과가 빚

어내는 비극 때문에 울고 망하고 죽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려서 자라던 동네에 [꾸러기],[짱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

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것은 별 탈이 없는 집 아이였습니다. 그

런데 그 아이는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욕심꾸러기의 끝자를 따서

꾸러기라고 불렀습니다. 먹는 욕심도 보통이 아닙니다.

 

밥그릇이나 국그릇도 제일 큰 것이어야 하고, 떡을 먹어도 다른 사람이 하

나들고 먹는 동안 그 아이는 입에다 하나물고 양손에 하나씩 쥐고 새끼를

한꺼번에 먹곤 했습니다. 배가 부르다 못해 올챙이 배처럼 튀어나와도 계속

먹다가 바닥이 나면 물러서는 아이였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튀어나오고 씩씩거리며 쉼쉬는 사람

 

 

 

을 짜구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별명은 [짜구]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위하수병에 걸려 밥을 먹지 못하게 되자 신경

과민 증세가 합병되더니 고등학교 지학도 포기했습니다. 몸은 젓가락처럼

마르기 시작하고 노이로제 환자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시대는 꾸러기들과 짜구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흔하다

는 점입니다.

 

1인당 한 호멜! 그것이 정량입니다. 욕심부리지 맙시다.

 

2. 비축이 불가능했습니다.

 

19절을 보면 "다음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그런데

20절을 보면 만나를 그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는 매일 아침 나가서 거두는 것이 귀찮은 사람이었을 것이고, 다른 하

나는 그 결과를 시험해 보고픈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고 했

습니다.

한 호멜을 넘게 거둔 것들, 즉 정량초과분의 만나는 썩고 냄새나고 벌레가

생겨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은 그날 거둬다가 그날 먹어

야 하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속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마태복음 6:34을 보면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

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낱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도 그날 것으로, 걱정도 그날로 자족하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19 이하를 보면 여러해 동안 먹고 살 돈과 양식을 창고에 쌓

아놓고 인생을 즐기려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독백합니다. "내 영혼

아 여러해 쓸 문건이 창고에 가득하구나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꾸

나"라고.

그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나님이 주신 양식은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에 비축이 불가능합니다. 썩고

냄새나고 도둑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20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

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다 먹지도 못할 것,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챙기고 쌓고 숨기려다가 망하

는 사람들이 추태는 다시 한번 [그날의 만나]가 주는 뜻을 되새기게 해줍니

다.

 

3. 안식일분은 비축이 가능했습니다.

 

23-24을 보면 안식일 전날 아침에 나가 만나를 거둘 때 이틀분을 거두라고

했고 안식일에 먹기위해 거둔 만나는 썩거나 냄새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안식일은 밖에 나가 먹을 양식을 거둘 필요가 없었고 그날은 만나도 내리

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신 후 쉬던 날입니다. 성경은

그날을 하나님의 날이라고 했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

 

 

 

라엘 민족은 그날 사사로운 일이나 오락을 금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지켰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도 내리지 않고 거두러 나갈 필요도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

도 그날은 쉬셨고 백성들도 쉬는 날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쉰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쉬는 것과 자기를 위해 쉬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 인식은 영적인 것이며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얘기입니다만 산좋고 물맑은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

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피로를 풀거나 여가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지은 호화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별장주인이 자살시체로 그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과 정신적 쇼크로 인한 자살이었습니다. 쉬기 위해 만든 별장에서

왜 자살을 해야 했겠습니까?

참된 쉼은 먹고, 마시고, 여행을 하고, 돈을 쓰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

다. 참된 안식은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참 쉼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참된 안식의 비결인 것입니다.

안식일은 만나를 거두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해서 늦잠을 잔다든지, 놀

라간다든지, 죄를 짓는 날로 여기면 안됩니다.

 

최소한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주님을 생각하고, 위해서 심부름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주신 양식이었습니다.

 

32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광야에서 먹인 양식"이라고 했고 35절을 보면

40년 동안 먹었다고 했습니다.

저절로 땅 위에 내린 양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양식입니다. 만

나가 처음 내린 것은 출애굽 한지 한달이 지난 달이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2월 15일로 되어있습니다. 연대로 따지면 BC 1446년이 됩

니다. 그리고 만나가 그친 것은 41년째 되던해 유월절 직후였습니다.

40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먹기위해 수고도 땀도 흘린 일이 없습

니다. 자고나서 집 밖에 나가면 지면에 덮여 있습니다. 그것을 거둬다가 요

리를 만들어 먹으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만나사건 속에서 다음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욕심부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욕심부리고 한 호멜 이상을 거둬들이면 썩고 냄새나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만나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그날 넉넉한 양식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욕심부리다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

았습니다. 한번으로 끝났으면 존경받고 행복했을 집권자들이 헌법까지 뜯어

고치면서 두번 세번 하려다가 비명에 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월급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 돈이나 삼키려다가 철창신세를 진사람들과

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도 듣고 있습니다.

욕심, 그것은 비극의 씨앗입니다.

만나는 아침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스러졌습니다. 24시간 땅에 널려있는

양식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필요한 양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

니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만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늦게 나가면 만나가 없

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사모해야 합니다.

광야의 만나는 영원한 생명양식의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에서 거둔 곡식을 먹게 된 날부터 만나는 그쳤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는 이 세상 떠나면 모조리 끝나게 됩

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행위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48-49를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

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라고 했고, 6:51를 보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만나, 생명의 떡입니다. 세상 것들을 영원한 양식

으로 생각하면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

자가 됐고, 43세에 미국의 정유산업을 장악했고,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려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고 소화불량으로 우유와 크래커로 연명했습니다. 그리고 공포심

에 사로잡혀 수십명의 보디가드가 지켜야 했고 불면증으로 매일 밤을 뜬눈

으로 지샜습니다. 의사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각 신문들은

그의 특집과 죽은 다음에 실을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각 신문들은 그의

특집과 죽은 다음에 실을 조사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경

을 읽다가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회개하고 거듭나기 시

작했습니다. 그는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구호단체, 의학연구소,

대학 등을 도왔습니다. 페니실린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개발된 것입니

다. 그는 건강을 되찾아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영원한 만나를 발견했고 먹

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어야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사람답게 가치있게 뜻있게 보람있게 살려면 영원한 만나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풍요롭게 되시기를 축

원합니다.

 

발행일 : 940918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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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제 목 :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고전 2:12-16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고백과 선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구원 받았다'

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과 '나는 그리스도인

이다'라는 고백이나 선언은 자주 쉽게 합니다만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고백은 흔한 고백이 아닐뿐만 아니라 쉬운 선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리스도인이란 구원받은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

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끝에서 바울의 당당한 고백과 선언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은 바울 자신

의 개인적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삶은 어떤 것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영이란 마귀의 영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2을 보면 마귀를 가리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

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마귀영을 받으면 마귀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마귀의 속성이 밝혀져 있습니다.

1) 마귀는 거짓말쟁이 입니다.

요한복음 8:44을 보면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오도합니다. 진리를 부정하고 침을 퇴핵시킵니다. 마귀가 사상 속에 들어가

태어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꾸며댑니다. 거짓

말은 마귀의 영이 사주하는 것입니다.

 

2) 간교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그 간교성에 아담도 하와도 넘어졌습니다. 간교한 마귀

는 오늘도 많은 사라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3) 헐뜯습니다.

욥기 1:9을 보면 사탄이 욥을 헐뜯고 중상모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귀

는 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인색합니다. 비난하고 부정하고 공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4) 난폭합니다.

쇠사슬을 끊는가하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자해행위를 일삼습니다.

 

5) 위장합니다.

심지어 광명의 천사로까지 자신을 위장합니다. 마귀는 변장술의 명수입니

다. 성자로, 애국자로, 위인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위장합니다.

 

6) 교만합니다.

본래 천사였던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타락해 마귀가 되었

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시험할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꼬였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때 행복합니다. 인간은 신이 되어

도 안되고 짐승이 되어도 안됩니다.

 

7) 범죄를 유발합니다.

마귀의 영이 운행하는 곳엔 온갖 사건과 범죄가 꼬리를 뭅니다. 한숨 쉴

겨를도 없습니다. 살인, 폭력, 마약, 뉴에이즈운동,성폭행, 강도, 절도 등

범죄사건들은 마귀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토록 잔인하고 무서운 마귀의 영을 받으면 어떻게 되

겠습니까?

 

바울은 선언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

을 받았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서영은 마귀의 영을 물리치고 교체하는 유일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영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

다.

 

마귀의 영은 수양이나 요가나, 의학적 방법으로 추방할 수 없습니다. 성령

받고 그 능력으로만 이길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이 귀신이 들렸던 사건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 악신들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다윗소년을 데려다가 수금을 타며 찬송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사무엘상 16:23을 보면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

이 상쾌하게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고 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음악이 환자치료요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

러나 단순한 세속음악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더우기 귀신을 자극하는 무당음악이나 록음악은 귀신을 흥붕시키기 때문에

덜 날뛰고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13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소년시설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었던 것이빈다.

그가 받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울의 악신을 내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서 악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령의 세력을

이기려면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마귀는

혼절하여 도망칠 것입니다.

 

2. 은혜를 알게 됩니다.

 

12절 끝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헤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를 셀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

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로

결정됩니다.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리는 사람을 배은망덕자라고 부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어떻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왜 은혜를 잊어 버립니까?

첫째 스스로 됐다(섰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둘째 악한 건망증 때문입니다.

셋째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겠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사는 동안 온갖

박해와 고통을 겪던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아 애굽을 떠나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왕 바로는 그들을 그냥 포기하지 않고 추격대를 동원

해 추격을 감행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고,뒤에서는 추격대가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

고 육지처럼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이 홍해도하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서는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고 감격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뒤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

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사흘전의 기적과 은혜를 기

억 못하는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원망을 일삼는

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우리들이야말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은혜를 그토

록 쉽게 저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

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3.신령한 것을 분별합니다.

 

13절 끝을 보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거의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 홍해가 갈라져 건

넜다는 사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이 먹었다는 사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사건 등 모두가 신비롭고 신령한

사건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받고 구원받았다는 것도

신령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검들은 신령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아니면 이해하거나 수

용하기가 어려운 것들입니다.

메이어(Meyer)는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과 결합된"고 했고, 벵겔(Bengel)

dms " 신령한 일은 신령한 사람들에게 해석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신령한 세계는 신령한 눈으로봐야 볼 수 있고, 신령한 말씀은 신령한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라야 분별할 수 있는 것입

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신령한 것을 깨닫고 분별하고 실천하

는 힘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판단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15절을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신령한 사람이라야 판단능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영분별 능력을 갖기 때문에 판단이나 분별이 가능하

다는 것입니다.

 

둘째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판단받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에 묻혀사는 사람이나 믿음을 떠나 사는 사람은 판단받고 정죄

받을 일이 많습니다만 신령한 사람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신령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

다.

판단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 판단과 부정

적 판단입니다. 운동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주는 것은 긍

정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진 사람에게 이겼다고 판단해주는 것은 부정적 판

단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판단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3을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

는 매우 작은 일이다"고 했고, 4절을 보면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

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판단은 뒷

전으로 미루어 놓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판단만 신경쓰고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나를 의롭다, 깨끗하다. 정당하다고 판단해도 주님이 아니라면 아

닌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해도 주님이 나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시고

의롭다고 판단하시면 그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바울의 고백이 자랑스럽고 부럽습니

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로마서 8:9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뜻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와 깊은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 가진 사람이 됩시다.

그래야 참그리스도인이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행일 : 94091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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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풍요로우신 하나님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창 27:27-29

창세기 27장은 야곱이 자기 아버지인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별미를 준

비한 일과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문

은 이삭이 야곱에게 내린 축복의 구체적 내용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 자신이 복을 주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

면 "내가 너에게 복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너에게 복을 주신다

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밝힙니다. 복의 근원도 주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삭은 복을 비는 사람일뿐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목해

야 합니다.

 

본문이 밝히는 하나님의 축복은 한마디로 풍요롭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자

신이 풍요롭고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빈틈이 있다든지 모자라는 것

은 풍요도 풍성도 아닙니다.

 

히브리어 가운데 '마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흘러 넘치다, 만족

시키다, 온전히 가지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가운데 '플루토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여분으로 남

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풍성하다든지 풍요롭다는 것은 흘러넘치고 만족하게 가지는 것입

니다. 그리고도 여분이 남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풍요가 없습니다. 소비를 미덕으로 치며 세우던 미국도

지금은 불경기와 재정적자로 허덕이고 있는가 하면, 떵떵거리고 큰소리 치

던 일본도 도산하는 회사가 늘어나는가 하면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

다.

 

세게의 지상낙원이는 샹그릴라를 찾아간 어느 언론인은 깜짝 놀랐다고 합

니다 .들꼿으로 레이스를 만들어 걸어주는가 하면 쓰지도 못하는 전화기와

소리도 안나는 피아노를 국보급 유물이라며 자랑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샹

그릴라도 풍요의 세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5:7을 보면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풍성하다고 했고 에베소서

3:6을 보면 영광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시편 86:15을 보면 '진실이 풍성

하다"고 했고, 로마서 2;4을 보면 참으심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7을 보면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세대에 나타내려 하심

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사야 30:23을 보면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도서 3:6을 보면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신다고 했습니

다.

 

이상의 구절들은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그

리고 하나님은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

시는 분이심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토록 풍성하신 분

이라는 사실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는 이삭이 자기 아들에게 빈 복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어떤 것이며 그 복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1. 향기롭습니다.

 

27절을 보면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주신 밭의 향취로다"라고 했습

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이 야곱의 몸을 어루만지며 아들의 체취를 맡아보

았습니다. 그리고나서 내 아들의 몸에서 나는 향취는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밭에서 나는 향취라고 한 것이빈다.

일찌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이삭이 그 땅

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땅의 상속권은 큰 아들인 에서가 차

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라든지 상속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둘

째 아들인 야곱은 달랐습니다. 그의 꿈은 장자가 받는 축복과 재산을 상속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아버지를 속인 후 축

복을 받게된 것입니다.

 

27절이 말하는 여호와의 주신 발의 향취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흙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에서보다는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하면 하나님의 복을 향기롭게 인정하고 갈망하는 태도가 야곱에게 있

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에서는 세상 것들이 향기롭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더 소중하고 향기롭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것들을 높이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일을 소홀히 한다

든지 하나님의 시간을 업신여긴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향기롭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들과 사명들은 향취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소중히 다르고 받들어야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

니다.

 

2.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

도주로 내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야 땅이 기름지고 땅이 기름져야 곡식이 풍성하게 됩

니다. 그리고 곡식이 풍성해야 창고가 차고 포두주가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

다. 바로 그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일생동안 가난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난

리가 났을 때도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셔서 편히 먹고 살 수 있

었습니다.

야곱이 젊은 날 빈손으로 하란에 들어갔습니다만 나이들어 고향으로 돌아

올 때는 갑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때문이었스니다.

 

이스라엘은 땅이 메마릅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면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

람이 수분을 안고 불어옵니다. 그 수분이 밤의 냉기와 만나면 많은 이슬이

되어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이슬은 곡식이 자라고 영글게 해주는 것입

니다.

 

본래 이스라엘 땅은 지금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땅이 아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였습니다. 그런데 계속된 범죄와 타락으로 땅에 함께 저주

를 받아 건조한 땅이 된 것이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에도 이슬을 내리시고 풍성한 곡식이 영글게 해 주

셨습니다.

인공으로 주는 물만 먹고 자란 과일과 이슬을 맞고 자란 과일은 맛이 다르

다고 합니다. 이슬맞고 익은 과일이 더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현재 내가 누리는 복이 크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슬이 끊어지면

안됩니다.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와 계속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

혜는 이슬처럼 기름지고 풍성합니다.

 

3. 영적입니다.

 

29절을 보면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내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내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삭이 애곱을 위해 빈 축복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

은 야곱 개인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받을 복을 예

언난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영광과 존귀를 받게될 것을 암

시적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돈을 물려주는 것은 3대 넘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신적 유산이

나 신앙적 유산은 천년만년 지속되는 것입니다.

저는 영국 런던을 들를 때마다 일부러 틈을 내 대영박물관을 찾곤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찾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그곳은 미이라 전시관입니다. 관

리자의 말에 의하면 관람객 수가 제일 많은 곳이 미이라 전시관이라고 합니

다.

 

미이라 전시관은 BC 2천년경 사람들이 시체를 썩지 않도록 처리하여 그대

로 보존하고 있는 사체전시관입니다.

그러니까 전시관에 누워있는 시체들은 적어도 4000여년 전에 살던 사람들

입니다. 딱딱한 석고처럼 누워있는 그들, 어쩌면 4000여년 전 최고권력과

최고의 부를 누리며 살던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당대 최고의 미를 뽑내

던 미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관에 누워있는 사체들은 흉물스럽고 소름끼치는 썩지

못하는 시체일 뿐입니다.

미이라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죽으면 썩어야 된

다는 것, 죽으면 똑같다는 것, 나도 죽으면 저 꼴이 되겠구나라는 것, 그래

서 사는 동안 뜻있고 가치있게 살아야겠다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

다.

물론 개인적으로 생활이 어렵고 사업이 힘들고 직장이 고달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루 3천명씩 굶어죽고 콜레라로 죽어가는 르완다에 비

기면 우리는 영육간에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입니다.

에서는 좋은 조건 속에서 태어나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

는 그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회를 붙잎바고 하나님의 풍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누리고 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연 조건을 고루 갖춘 에덴동산을 제대로 갈무리못한 아담과 하와는 거기

서 쫓겨났습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물려받은 우리도 금수가산 갈무리에 실패하고 금수강

산을 쓰게리 강산, 썩은 강산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것이 자연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명예든 그리고 신앙이건간에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풍요와 풍성을 제대로 갈무리하 못하

면 그것은 순식간에 남의 것이 되고마는 것이빈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바이얼린 교수였던 골드슈타인(Goldstein)은 소련으

로부터 망명온 음악인이었습니다. 그의 동생도 피아노 교수였습니다.

 

그는 위암으로 두번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를 거절한 채 수술을 받았습니

다. 이유는 마취를 하게되면 암기해둔 악보가 망각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

다. 장기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그는 자기 손으로 부고를

만들어 화제를 남겼습니다.

 

부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화를 가져오지 마시오.

둘째 조화대신 부의금으로 해주시오.

셋째 부의금은 현금으로 해주시오.

넷째 모아진 부의금은 전액 장애자 시설을 위해 써주시오.

다섯째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행구좌로 부의금을 송금해주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골드슈타인은 생전에 그가 연주했던 음악보다 더 멋지게 아름답게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누리며 소유하고 있는 복은 개인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

이 작은 사람도 있고 , 보다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빈다.

문제는 마무리입니다.

 

내가 누리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빈다.

내가 내 손이 쥐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든 직분이든 직장이든 정성껏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라는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풍요가 나의 풍요임을 감사합니다.

 

발행일 : 940904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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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 목 : 예정에서 영화까지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롬 8:26-30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들이 미리 정하셨다는 교리를 [예정론] 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8:26-30과 에베소 1:3-14은 예정교리를 성경적으로 증언하

고 있습니다.

흔히 예정교리를 신학적으로 어렵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예정교리란 하나님의 인격적 행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과 앞으로의 계획을

미리 정합니다.

 

10년, 5년, 1년 그리고 하루동안 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예를들어 갑자기 자고난 다음날 러시아를 가겠다든지, 사무실에서 일하다

가 갑자기 일어나 미국을 갈 수는 없습니다. 미리 여행계획을 세우고 비행

기편을 예약해야 합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길가다가 처음 만난 사람끼리 즉석에서 결혼

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만남과 교제, 확인과 점검을 거쳐서 사랑과 조건이

성립됐을 때 결혼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르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구원하시는

그 위대한 계획과 섭리를 미리 예정하시고 진행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

한 사건인 것입니다.

 

왜 예정하시는가?

첫째 인간구원이 너무나 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전 교인이 수양회를 가

졌습니다. 수양회가 계속되던 어느날 오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들과 젊

은이들이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깊은 곳과 급류가 흐르는 곳은 들

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사이 두 아이가 깊은 곳에 들어갔다

가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언덕에서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이 옷을 입은 채로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헤엄쳐 두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헤엄쳐 나오려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은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한 분이셨

기 때문에 금년 2월 장로회 신학대학교 동문회에서 그분을 장한 동문으로

표창하고 그 유족을 위로했습니다.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분의 희생을 칭찬하고 평가하고 있습

니다.

두 아이를 구한 목사님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작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 세계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의 희생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됩니다.

 

(1)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이 밝히는대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수 있는 분, 하나님이

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비우고 낮춰 종이 되셨습니다.

(2)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종이 되시고 낮아지신 그 분은 한평생 남을 위해 사셨습니다. 자신의 소

유, 행복은 전혀 외면한 채 남을 위해 사셨습니다.

(3)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남을 위

해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살다가 죽으셨습니

다.

(4)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희생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죄를 속죄하는 희생은 예수님의 경우만

 

 

 

가능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상하고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고침을 받고 사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우리네의 죽음과 다른 점입니다. 성경을 보면 [죄 값은 사

망] 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은 심판받고 지옥갑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으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

니다. 이토록 귀하고 큰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미리 작정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이 귀한가?

(1) 생긴 모습이 짐승보다 귀하게 생겼습니다.

동물 가운데 가장 사람과 유사한 것이 원숭이입니다. 그러나 원숭이 노는

꼴을 보면 진화론이 정떨어집니다. 사람은 의젓하고 잘 생겼습니다.

(2) 하는 일이 귀합니다.

희생, 가치창조, 문화창조, 교육, 역사발전 등 짐승은 흉내도 못냅니다.

(3) 창조가 귀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천지만물과 짐승은 말씀으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

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그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시매 성령에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까.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는 뜻이며.

다. 영적 존재라는 뜻이며.

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습니다. 인간만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

간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깁니다. 만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숭배하거나 섬긴다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토록 귀하게 창조한 인간이 죄짓고 타락하고 멸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

은 그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정의 발전과정은 어떤 것인가, 로마서 8장과 에베소서 1장을 보면 그 단

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미리 정하십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세하게 언급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귀한 일일수록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르십니다.

하나 하나, 한사람 한사람 부르십니다. 성경을 보면 부르신 이야기가 수없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노아를 부르셨고, 모세를 부

르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대 사용하신 호칭이 있습니다.그것은 "내 아들,

내 종, 내 사랑하는 벗, 내 백성" 이라는 것 등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의정부에서 부모잃은 소년이 울고 있었습니다. 미

군이 그를 차에 싣고 부대로 들어가 돌보아 주었고 그 소년은 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그 미군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소년을 데리고 갔고

자기 호적에 정식으로 올리면서 자기 이름인 Donald Smith를 따서 Donald

Lee Smith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미국에서 국민학교,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hicago 에 있는 Illinois 주립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큰

Computer 회사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로 인정해 주는 것, 죄사함 받았다고 인정해 주는 것, 죄없다고 인정

해 주는 것을 칭의(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라고 합니다.

넷째,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옥도 아닙니다. 이유는 천국은 일

본이나 미국보다 훨썬 더 좋기 때문이고, 지옥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한국보

다 훨씬 더 뜨겁고 나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특성은

(1) 하나님이 준비한 나라.

(2) 영원한 나라.

(3) 세상의 나쁜 것들이 없는 나라.

(4)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사는 나라입니다.

 

다.그 영광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한문 속담에 [권력은 10년 못가고 꽃은 1일 동안 계속 피지 못한다]는 말

이 있습니다. 그 뜻은 권력, 영광,아름다움이라는 것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리고 세상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고 결정됩니다. 제아무리 집이 좋고 돈이 많

아도 원수와 함께 산다면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겨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그야말로 그곳이 낙원처럼 될 것

입니다.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화는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결론은 누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를 누리며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로마서 8:28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르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유를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가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발행일 : 940831

분 류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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