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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 (시 32:1-11) |

by 【고동엽】 2021. 12. 11.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 (시 32:1-1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주일 예배에 오신 보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평생 오늘 주일예배에 오신 감각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러 나오기 힘들었던 분이 계실 것입니다. 갈등하며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예배드리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선택입니다. 다르게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따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몰락한 인종을 꼽자면 아메리카의 그 광활하고 아름다운 땅을 다 빼앗긴 채 쇠락한 인디언일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이유는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먼저는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을 때, 프랑스 편을 든 것이다. 인디언들은 열심히 싸웠으나 프랑스의 패배 후 인디언들은 영국군의 모진 보복을 받고 세력이 급감했다. 세월이 흘러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지난번 전쟁에서 영국 편을 들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겼던 인디언들은 이번엔 영국 편을 들어 성심성의껏 싸웠다. 하지만 영국은 패퇴했고, 종전 후 인디언들은 또다시 미국인들의 모진 보복을 받았다. 심지어 앤드류 잭슨(Jackson) 미국 대통령은 1830년 '인디언 제거법(The Indian Removal Act)'을 만들어 그들을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내쫓았다.

살 길이 무엇인지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렇게 두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찾으십니까?

영국의 시인, 챨스 킹슬리“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사람에게는 세상도 길을 비켜준다.”했습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유혹이 문제가 아닙니다. 길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게 상담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은 거의 다 길을 물으시는 분들입니다.

“목사님,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일일이 답을 드리지 못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다윗이 참 부러운 것이 그의 삶에 위기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는 가야할 길을 정확히 갔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굴 속에 들어왔 때, 죽여야 하느냐 살려 주어야 하느냐,

나발로 인하여 극히 분노하여 죽이러 가고 있었을 때, 죽여야 하느냐 살려야 하느냐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것이 드러났을 때, 덮어야 하느냐 회개해야 하느냐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싸워야 하느냐 피해야 하느냐

하나같이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때마다 기가 막히게 살 길을 택했습니다. 다윗은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부럽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길을 보는 눈이 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8절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이것이 다윗이 길을 훤히 내다 보는 비결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또 듣습니다.

9절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마음대로 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창 2: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롬 8:13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소홀히 들으니 혼란스럽고 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할 때, 곤욕을 치릅니다. 그들의 과거의 삶 때문입니다. 군에 가지 않은 일, 자녀 학교 때문에 위장 전입한 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망신을 당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그 때는 다들 그렇게 했어요.”가야 할 길을 보지 못하고 무작정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탈북자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들이 겪는 고통도 그렇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것입니다. 사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북한이 남한 보다 예수님을 더 잘 믿었고 신자의 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 한국 기독교회는 신사참배를 한 뼈아픈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발적이고 전 교회적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이 기독교의 세력을 꺾으려고 교회 지도자들을 집중 협박 회유 공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정은 어떠했든지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감리교 장로교는 교단적으로 "교회는 앞장서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합니다." 하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북한이 저처럼 비참해지고, 평양이 우상숭배의 도시가 되어버린 것과 그 일이 상관없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만일 교회들이 그 때 결사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당장 힘들고 두려운 것만 알았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늘 우리 민족이 이런 아픔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이신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은 다윗은 성공이나 평안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는 성공과 평안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에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시 23: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려 한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 했습니다.

3절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4절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래도 다윗은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4절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윗의 중심이 이러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길이 훤히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과 예수님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실 것입니까? 성공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교회에 부임할 때, 답답하였습니다. 나의 모든 경험,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배당 건축, 빚갚는 일,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 다 제 능력 밖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예수님만 붙잡기로 했습니다.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장로님들이 믿고 따라주신 것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여깁니다.

이렇게 하면 목회 성공한다. 교회 부흥한다, 교인들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말들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 부흥을 목적으로 여기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더 알기 원했습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나를 잘 아시고 교회를 잘 아시고 사는 길을 아실 것을 믿고 오직 주님께만 귀를 기울이고 왔습니다.

재가 그동안 목회하면서 잘한 것은 그것 하나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제게 강한 리더쉽이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예수님을 더 알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조건 하나님에게 도와달라,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두려움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3-4절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이 고백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후, 다윗이 죄책감에 시달렸을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숨기려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그것을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죄책감 때문에 속으로 너무나 괴로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많은 신하들 앞에서 그 죄를 폭로하셨습니다. 그 순간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왕의 권력으로 덮어버리지 않았습니다,

5절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다윗은 큰 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는 지었지만 아직 영혼이 굳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입니다. 다윗은 죄사함의 복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 32:1-2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죄 사함의 축복은 주님 앞에 서 보면 누구나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야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도 누립니다. 살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경건한 자의 기도는 고난의 홍수도 막아낸다고 했습니다.

6-7절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오고, 홍수처럼 밀어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선 자는 결코 그 고난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기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은 4년여에 걸친 노예해방 전쟁으로 전사자의 수가 무려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처참한 전쟁 앞에 남군이나 북군이나 할 것 없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부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였으며, 북부 대통령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남부의 백성들에게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기도야말로 전능하시며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다. 기도는 적과의 싸움에서 남부 연합에 가담한 남군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방패가 되리라.”이 소식을 들은 링컨은 흑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남부 연합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링컨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에서 이익을 차릴 욕심으로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한다는 건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남과 북이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양쪽의 기도가 모두 받아들여질 수 없다. 어느 쪽도 소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링컨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수없이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말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링컨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의를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내편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있는가 물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링컨은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매일 매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이 길을 선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산책을 하거나 산에 가면 해가 비치는 곳과 비치지 않는 곳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해가 비치지 않는 곳을 지날 때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해가 비치는 곳을 지날 때는 입고 온 옷을 벗게 됩니다.

아직도 산에 가면 눈이 녹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응달진 곳입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 주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의 차이는 이 보다 더 합니다.

순간의 혈기로 자녀에게 평생 마음에 상처를 남긴 부모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 가정이 깨어지고 인생이 무너진 남자 성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순간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니 순간의 혈기와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주간 배우 강신일씨의 암투병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암이 몸에 들어온 다음 삶이 다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식성도 달라지고, 생활도 달라지고, 인간관계도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암을 다스리기 위해서입니다.

암이 몸이 들어와도 삶이 달라진다면, 예수님이 마음에 들어오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암이 좋습니까? 예수님이 좋습니까?

암은 왜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예수님을 소홀히 여깁니까?

여러분, 성공에 안달하지 말고, 평안한 삶을 달라고 부르짖지 말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준비하십시오.

주님과 친구처럼 느껴지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성공이고 평안입니다.

갈 길이 환히 보이는 성도가 복된 성도입니다.

시 84:5-7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인생의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성공 보다 예수님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마음대로 살려는 어리석음 마음을 꺽고 하나님의 인도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갈 길이 대로처럼 보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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