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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의 은혜 / 창세기 28:10-19

by 【고동엽】 2021. 12. 11.

벧 엘 의 은 혜

창세기 28:10-19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터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터와, 쉼터와, 배움터입니다. 삶의 터전, 삶의 기초가 되는 곳을 학교라고 말하고, 일터를 직장이라고 말하며, 쉼터를 가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움터가 있어야 되고, 일터가 있어야만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쉼터입니다. 일생동안 인간이 쉰다는 것이 큰 복인데 그 쉼터가 곧 우리의 가정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내가 살고 있는 가정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쉼을 얻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가정을 갖는다는 것은 쉰다는 것인데 쉰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쉽니다. 만약에 미운 사람을 만나면 그 마음이 쉬지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진리가 있는데 거기에는 보화라는 신비가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가족이 보화지, 직장도, 돈도, 명예도 아니고 이 사람이 내 보화야’ 이것을 느끼면 그 자리에 안식이 옵니다. 가정에 돌아갈 때마다 사랑함으로 쉼을 얻고 가족을 보면서 ‘천하보다 귀한 보배들이 여기 있구나!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은들 이 보다 귀할 수 있을까’ 그것을 마음으로 느낄 때 그 자리에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세상에 나가서 출세 못해도 괜찮습니다. 돈을 조금 못벌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가정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보화처럼 여길 때 그것이 만족인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모든 공허를 채우는 만족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도 이 세상 것으로는 만족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미국의 부자가 종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열심히 일하던 종이 하루는 마당을 쓸다가 한숨을 쉽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한숨을 쉬는고” “예, 일만불만 있으면 내가 잘 살 수 있는데 일만불이 없어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그때 주인이 “일만불만 주면 행복하겠나?” “예, 행복하죠.” “그래, 내가 일만불을 줄테니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면서 주인이 돌아가자 종이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10만불 달라고 할 것을...”

인간이 어떤 사람도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 세상 것으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서 마음에 만족이 옵니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한 보화로 알면 거기에 만족이 옵니다. 남편과 아내를 보화로 아십시오. 자식을 보화처럼 아십시오. 그러면 그 자리가 행복한 자리가 됩니다.

우리는 귀중한 집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집을 가야만 진리를 압니다. 그 집이 바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 다른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을 보화처럼 알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는 그 집이 바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를 받는다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은 심령이 강건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를 받는 사람은 직장에서, 일터에서 하는 일이 형통합니다. 그래서 이 집에서 은혜를 받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성경 가운데서 축복을 잘나서 받는 사람도 있고, 믿음이 좋아서 받는 사람도 있고 여러 형태가 있지만 야곱이라는 사람은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신비가 벧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최초의 계시와, 영감과, 은혜를 입은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벧엘이라는 이름을 야곱이 짓습니다. 물론 아브라함도, 이삭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과,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아서 땅에서 살 수 있는 축복이 바로 교인됨인데 교회에 대한 계시와 은혜를 야곱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 은혜가 바로 벧엘입니다. 벧엘의 은혜를 받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10-11절)

야곱이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잡니다. 자기 형과 함께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불안했습니다.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죠, 형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죠, 그러니까 에서가 한을 품고 있습니다. ‘이놈이 내 장자의 명분을 빼앗더니 축복까지 빼앗아 가 내가 저놈을 죽여야지’ 하고 이를 갑니다. 야곱은 어느 한날 편안한 잠을 못잤습니다. 불안합니다. 언제 형이 덮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가 불안한 어느날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아, 네 외삼촌이 사는 하란 땅으로 가서 거기 살아라 네 형이 너를 언제 해칠지 모른다.” 그래서 야곱이 집을 떠나 자기 외삼촌 집으로 가는데 도중에 해가 집니다. 그래서 그는 피곤한 몸을 들 가운데 누워서 풀잎을 요로 삼고 낙엽을 이불 삼고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습니다. 그 자리가 지금까지는 맛볼 수 없는 안식처였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자리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여기 와서 안식을 얻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안식합니다. 직장에 가도 안식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안식을 못얻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 가도 안식을 못얻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세상은 온통 환난이요, 전쟁 마당과 같습니다. 여기 올 때마다 안식을 얻으십시오. 우리가 어린시절 어머니의 가슴은 고향이요, 어머니 계신 곳은 안식처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잠이 듭니다. 이 아이가 잠들었을 때 어머니가 잠깐 뉘어놓고 어디 나갑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엄마가 없으니까 마구 울어댑니다. 언니가 장난감을 주고, 비스켓을 주어도 울어댑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어머니 품에 달려와서 안식을 얻습니다.

어거스틴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나는 안식이 없었나이다.”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헤매고 다녔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울며 탄식하던 인간들이 여기에 와서 하나님 품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으며 은혜를 받을 때 나도 세상도 간 곳 없고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13절)

아버지의 음성을 잘 듣는 자식은 효자가 되고 또 복을 받습니다. 부모가 무식하다고 부모의 말을 안듣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사람은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는 학식으로는 모자라도 교훈됨에 있어서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해서 교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교훈을 하늘의 음성으로 받는 자식은 하늘의 효자요, 땅의 효자가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그 아버지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으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가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사랑의 언어를 보냅니다. 하늘의 언어를 보냅니다. 이 음성을 잘 듣는 것이 복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하늘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한 말씀 한 말씀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학식이 있나 없나 유창한 상식이 있나 없나 그것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을 들으려고 여기 오는 것 아닙니다. 하늘의 언어를 들으십시오. 그때 복이 됩니다. 세상의 유창한 언어를 쓰는 교수가 얼마나 많으며 박사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설교 들으려고 여기 왔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고 여기 온 것입니다.

저는 우리 어머님이 지금도 하신 한 말씀이 기억납니다. 11월달이 되면 서리가 내립니다. 주인이 목화 좋은 것은 다 따가고 제대로 피지 않은 것은 안따갑니다. 그러면 저희 어머니는 그것을 남의 밭에 가서 따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밤새도록 길쌈을 해가지고 실을 뺍니다. 그것을 빼서 만든 옷이 무명 옷인데 솜이 안좋으니까 삼베 옷처럼 생겼습니다. 그것을 물감을 들여가지고 설날이 오면 입혀놓고 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아들 인물나네.” 이 한마디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이 계속 들려옵니다. 그 옷은 어머니의 눈물이 함께 어우러진 옷입니다. 서리내린 후에 남이 내버린 것을 딸 때는 얼마나 눈물이 나겠습니까 남편 잘못 만나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겠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제가 성경의 진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에덴동산에서 죄지은 인간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죄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양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서 입히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집에 올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가죽 옷을 우리에게 입히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신 눈물과, 십자가에서 쏟이신 피가 어우러진 옷을 입히십니다. 그것을 입히시면서 아버지께서 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아들 인물나네.”

새천년 새해에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내는 한 남편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기까지 그 아내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한 남편으로부터 만족함을 얻기까지 그 아내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한 남편으로부터 행복을 얻기까지 그 아내는 행복이 없습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한 아내를 통해서 만족함이 없는 남편은 영원히 만족함이 없습니다. 한 주님으로부터 만족할 수 없는 성도는 세상 어디에 가서 만족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목사에게서 만족함을 못얻는다면 어디에 가서도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부모에게서 만족을 못얻는다면 어느 부모에게서 만족을 얻겠습니까 우러러 그 부모에게 엎드려 절할 때 눈물이 나면 그 부모는 자기의 전부의 비밀을 알려주는 부모입니다.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의 집에 와서 하늘이 보낸 사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12절)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를 돕는 것이 천사입니다. 땅에 보낸 천사가 어머니입니다. 교회에 오면 목사가 천사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서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주의 사자의 축복된 간구가 하늘에 오르고 하늘로부터 축복의 말씀이 내려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집은 내 집이다. 하고 은혜를 받으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때마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장소는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 묻는다면 물론 집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고, 세상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곳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현장이 성전입니다. 여기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17절)

이 집에서 하늘문이 열립니다. 이 집은 하늘문을 여는 집입니다. 교회가 하늘문을 여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가 닫히면 하늘이 닫힙니다. 그래서 나라가 닫힙니다. 이북이 왜 가난합니까 교회문을 닫으니까 하늘이 닫혀서 그럽니다. 하늘이 닫히니까 나라가 닫힙니다. 하늘문이 닫히면 교회가 닫힙니다. 교회가 닫히면 다 닫힙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교회를 버리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다 버리게 됩니다. 소련이 교회당 문을 닫았습니다. 동구권이 문닫았습니다. 그래서 공장이 문닫고 나라가 닫혔습니다. 하늘이 닫히면 지혜가 닫힙니다. 하늘의 복이 닫힙니다. 종탑이 올라가면 나라가 올라가는 것이요, 교회당이 넓어지면 국력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가지를 알아야 됩니다. 하늘문을 여는 곳은 교회입니다. 이 집이 잘못되면 나라가 망합니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교회를 국교화 할 때부터 로마는 천년동안 세계를 지배하는 왕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이 기독교가 왕성할 때 땅덩이가 좁고 생산이 없는 나라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퓨리탄의 신앙이 미국을 건너가 미국이 복음의 나라가 되어서 주일이면 공장문을 닫고 쉬면서 찬송하고 예배하니까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신앙으로 세운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때가 언제까지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교회가 잘될 때 세계를 지배합니다.

교회가 잘되면 나라가 잘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잘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교회가 문이 닫히면 경제, 문화, 사회, 경제 모든 것이 닫혀버립니다. 성전에 와서 은혜를 받으십시오. 성전에 와서 은혜를 받을 때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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