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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 (시 31:1-23)

by 【고동엽】 2021. 12. 11.

어떻게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을까? (시 31:1-23)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썩어 없어질 우상을 믿고 사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미워하시니, 나는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주님은 나의 고난을 돌아보시며, 내 영혼의 아픔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를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내 발을 평탄한 곳에 세워 주셨습니다.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히려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서, 잠잠하게 해주십시오. 오만한 자세로, 경멸하는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거슬러서 함부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의 입을 막아 주십시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려고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복이 어찌 그리도 큰지요? 주님께서는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복을 베푸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날개 그늘에 숨기시어 거짓말을 지어 헐뜯는 무리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고,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시어 말다툼하는 자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기에,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사람은 가차없이 벌하신다. 24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군과의 전쟁이 단 6일 만에 끝났다고 해서 사람들은‘6일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세계는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아랍 연합군은 오일머니로 엄청난 부를 축척했고 어마어마한 군사 장비들을 보유한 상태여서 군사력이나 군인의 수나 경제력 등이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 이스라엘군은 이렇게 성명을 발표합니다.“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최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이 이야기를 듣고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 당국은 극비리에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섰지만, 어떠한 최신 무기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6일 만에 아랍 연합군을 물리치고 성지인 예루살렘을 다시 찾았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을 승리를 거둔 후 그 비밀 병기를 밝혔습니다. 그 비밀 병기는 바로 그들이 믿는 야훼 하나님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누구나 실제 전쟁에서 이처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 믿는 경우에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이나 직장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담대하게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이라고 선포하십니까?

시편 설교는 얼핏 보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인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이 시편을 언제 다 설교하나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을 한편 한편 강해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설교자나 철학자나 성경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목동이었고 장군이었고 왕이었습니다. 그 말은 다윗은 어느 누구 보다도 바쁘고 문제가 많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믿는 것인지 시편 31편에 나옵니다.

시편 3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9절에 보면 다윗은 얼마나 울었는지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절에서는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11절에는 이웃도 친구도 자기를 버리고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3절에서는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7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7절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도 하나님 보다 더 크겠습니까? 다윗은 수도원이나 목사의 서재나 학교 도서관에서 이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이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어떻게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까? “미친 사람이나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빈정거릴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이 너무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계속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이 재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실재로 피난처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시 31:1-4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 ...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믿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알튼 링크 레터라는 미국의 천재가 있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가 열 개나 되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 정부의 고문이기도 했고 세계 관광 명소인 디즈니랜드의 모든 설계를 계획한 분입니다. 성공자, 실력자가 된 그는 어릴 때부터 믿던 예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대통령도 그를 귀히 여기고, 세상 사람들이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대해 주니, 그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14세 된 딸이 가출하더니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살게요.' 끔찍하게도 이것은 자신의 인생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딸의 시체를 안고 그는 후회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떠나지만 않았어도, 내 딸을 데리고 교회만 나갔어도 내 딸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더니, 내 생명 같은 내 딸이 이렇게 자살했구나. 내 인생이 무너지고 말았구나.' 그는 그제서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어설프게 믿지 말고, 정말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시편 31편을 한 절 한 절 다 살펴보고 싶지만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다윗은 5절에서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이런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라고 고백하십니까?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예수님 한 분 으로 충분합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 결코 극단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엠마오 가는 길, 영성디렉터로 오신 한 목사님께서 고백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성찬식 때, 죄를 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마음은 무거운데 처음에는 특별한 죄가 생각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주님이 한 가지를 드러내시더랍니다. 소박한 욕심이 하나 있었답니다. 담임 목회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는데,“그저 가족들 먹고 살고, 아이들 고등학교까지는 공부시킬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만은 받을 수 있는 교회 정도는 허락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소박한 욕심은 욕심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목사도 남편이고 아버지인데, 이 정도야 당연히 구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설 때, 주님은 그것 조차 내려놓으라 하셨답니다. 그 때서야 목사님은 자신이 아직 주님을 온전히 믿고 맡기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눈물로“주여, 백지 위임을 합니다.”고백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너무나 놀라운 평안과 기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아직 하나님을 대면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구할 것이 없어집니다. 정말 다 맡기게 되고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믿어집니다.

다윗은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4절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속으로 생각하고 웅얼거리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고백하고 선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프랜시스의 기도가 있습니다. 너무 잘 알아서 식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주간 이 기도문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불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문에서 저는 성 프랜시스가 정말 예수님 때문에 진실로 행복한 자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정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왕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렇게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6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환한 얼굴로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믿음은 엄청난 믿음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어려움이 크고 대적이 많다 하더라도 다윗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다윗도 휘청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2절 내가 포위되었을 그 때, 나는 놀란 나머지 ‘내가 이제 주님의 눈 밖에 났구나’ 생각하며 좌절도 했지만 ...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되는 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순간 다윗의 그 강한 믿음도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정한 회개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22절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내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거나, 마음이 강팍해지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기쁨을 되찾은 것입니다.

엠마오 가는 길 영성수련회에서 참석자들의 깊은 회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우리가 다 불 속에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통곡소리,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난 후, 정말 모든 이들에게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어린아이 같아졌습니다. 불편한 것이 많은데도 다들 천국에서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말할 수 없는 영적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진정 믿었기에 그는 말할 수 없는 시련 중에도 일어나서 외쳤습니다.

23절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너희 모두 주님을 사랑하여라. ...

24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아,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여러분,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고, 병들어 고통을 당하십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져 고통 받는 분들이 있습니까? 실패로 인하여 좌절하신 분이 있습니까? 죄책감으로 무너진 분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윗과 우리는 처지도 시대도 사람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은 하나님이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다윗이 믿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믿음으로 살지 못했지만 다윗과 같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무엇 보다도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18세기의 스코틀랜드 제임스 프레이저 목사님의 사모님은 악처로 유명했습니다. 목사님이 저녁에 사택에 돌아오시면 사모님이 있는 방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서재로 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모님의 온갖 악담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고 저주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그것이 미워서 서재 램프에 기름을 넣지 않고 난로에 석탄을 넣지 않았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깜깜한 서재에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움추렸다 하면서 서재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니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밤에 그가 얼마나 벽을 쳐댔든지 벽 한쪽이 움푹 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프레이저목사님이 다른 목사님들과 대화하는 중에 대화의 주제가 아내였는데, 목사님들이 아내 자랑을 하더랍니다. 그 날 프레이져 목사님도 사모님 자랑을 하였답니다.“제 아내는 여러분들의 아내보다 나에게 훨씬 잘합니다.”사모님이 악처로 소문이 나 있기에 다른 목사님들이 의아해 하였는데, 프레이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제 아내는 제가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거든요. 그것은 아무 아내나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프레이저 목사님이 죠크를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정 하나님을 믿었으며, 예수님께서 그에게 늘 기쁨을 주셨고, 충분히 행복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기가막힌 기쁨을 주십니다.

다윗의 시들을 훝어보면서 처음에는 언제 이 시편을 다 설교하나 했지만 이제는 정말 대단하다는 감동이 옵니다! 우리의 시 한편이 성경에 실려도 말할 수 없이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 많은 시편이 성경에 실렸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한 두 번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정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환경에 눌리고 사람에게 시달리는 삶을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면 어떻게 살까?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어떤 처지에서도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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