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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옥스퍼드대학의 복음주의 사상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 대담-정성욱 목사

by 【고동엽】 2021. 11. 5.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복음주의 사상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복음적인 교회'가 21세기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의 뒤를 이어 21세기 복음주의를 이끌고 갈 대표적인 차세대 복음주의 사상가요 신학자이다. 1953년 생으로 현재 옥스퍼드대학의 역사신학 석좌 교수를 맡고 있으며, 영국 성공회 소속 신학교였다가 지난 1996년부터 옥스퍼드대학의 정규 단과대학이 된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의 학장을 역임하면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4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100여 편의 연구 논문 및 서평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기고한 바 있으며 세계적인 신학 강연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 로는 「마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Luther's Theology of the Cross), 「종교개혁 신학사상 입문」(Reformation Thought: An Introduction), 「칭의론의 역사」(Iustitia Dei: A Histor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교리의 기원」(The Genesis of Doctrine), 「칼빈의 생애 」(John Calvin: A Biography), 「기독교 신학 입문」(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Evangelicalis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등이 있다.
이 대담은 1999년 12월 1일 맥그래스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의 제자인 정성욱 목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교수님께서 기독교로 회심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때 저는 기독교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71년에 제가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했을 때, 저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훌륭한 삶의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저는 저의 삶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과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강연하는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그 결과 저 자신이 기독교가 진정 무엇인지에 대하여 무지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회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기독교가 진정으로 어떤 종교인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죠. 그후 저는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한때 성공회 교회의 목사로서 자유주의자의 길을 걸으셨는데 그때 "생각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복음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계셨었죠?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셨는 지요?

저는 1970년대에 옥스퍼드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는 이곳 옥스퍼드에 자유주의 신학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책들이 출간되었는데 그중에는 제임스 바(James Barr)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책과 존 힉(John Hick)의 책 「성육신의 신화」(The Myth of God Incarnate)가 있으며 두 책 모두 1977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두 책 모두 생각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복음주의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복음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된 이유는 복음주의자로서는 학문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더 이상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제가 자유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 저는 자유주의가 신학적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지적 엄밀성이 결여되어있는 반면, 복음주의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지적 엄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목회의 측면에서도 자유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저는 1980년부터 1983년까지 3년 동안 목회를 했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저는 자유주의가 죽어가는 사람들과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주의는 훨씬 더 줄 수 있는 도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 그렇게 복음주의로 회심하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교수님의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은 누구입니까?

저는 1976년에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신학자는 칼 바르트였습니다. 저는 바르트가 학문적 엄밀성을 가지고 신학 작업을 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바르트는 신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의 입장 중 많은 부분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는 신학이 학문적으로 매우 진지한 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유럽의 종교개혁 신학 특히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신학을 연구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학이 성경에 기초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목회적으로도 대단히 의미가 있으며, 더 나아가서 현대의 상황에도 많은 빛을 던져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칼 바르트와 위르겐 몰트만 같은 현대신학자들이 루터와 칼빈을 그들의 신학 작업에 원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은 저 자신의 신학적 사유에 있어서 중대한 참조점이 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의 본질
일단 여기서 교수님께서 자유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복음주의에 대한 간략한 정의를 내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을 짚어 주셨으면 합니다.

자유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여전히 논쟁이 있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자유주의는 신학적 주장을 개인의 경험이나 문화적 가치관에 의해 정당화하려는 형태의 신학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주의에 있어서 성경은 극히 부차적인 중요성만을 갖게 됩니다. 개인의 경험이나 문화적 규범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근본주의는 성경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신학적 운동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사유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됩니다. 저는 근본주의가 성경을 중시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1920년대 미국에서 생겨난 운동입니다. 그 당시 미국의 문화는 점점 덜 기독교적인 문화로 세속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근본주의는 이러한 상황에 도전하고 저항하면서 사회와 문화로부터 분리되거나 격리되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근본주의는 세상을 도피해서 자신들만의 게토(ghetto)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근본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세상을 도전하고, 세상에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본주의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사유와 삶에 있어서 성경의 최고권을 크게 강조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세상과 관여하며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칼 헨리(Carl Henry)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한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주의가 다음 세기에도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깊이 관계할 가장 중요한 신앙 운동이라고 믿습니다.

복음주의에 대하여 좀더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생각에는 복음주의의 신학적, 신앙적 뿌리는 무엇입니까?

복음주의는 다양한 신학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주의가 성경에 헌신하는 면에 있어서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당시에 성경의 중요성이 재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계속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좀더 과격한 입장의 개혁을 요구했던 세바스찬 프랭크(Sebastian Frank)나 후브마이어(Hubmaier)같은 사람들도 중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복음주의의 신학적 뿌리를 형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17세기의 청교도운동(Puritanism) 또한 복음주의의 중요한 뿌리입니다. 청교도운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영어권의 운동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오웬, 리차드 백스터 같은 청교도들은 칼빈의 성경 중심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성경을 삶의 경험에 깊이 관련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영국에서는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회심과 영적 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부흥운동 역시 계속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신학적 운동들은 서로 다른 신학적 관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권 안에서는 아직도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간의 신학적 논쟁과 신학에 있어서 경험의 위치와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뿌리의 다양성 때문에 기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의 주요한 특징들은 무엇이며, 복음주의가 사람들을 끄는 매력은 무엇입니까?

아마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가 네 가지 중심된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하여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유와 삶에 있어서 성경의 중요성,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를 통한 구원의 중요성,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그리고 복음전도의 중요성이 그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개인의 헌신된 신앙 생활과 신학적 논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복음주의가 성경의 중심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주의의 주요한 특징일 뿐 아니라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는 것같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구원에 대한 강조와 그것이 복음주의 신학과 경건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복음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가의 가사들 중 많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또 그것을 통한 우리의 구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좋은 실례가 되겠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을 형성함에 있어서 중심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로,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회심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구원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반드시 중생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며 단순히 학문적으로 객관적 거리만을 유지하는 사람이어서는 않됩니다. 오히려 신앙에 대한 인격적이고 열정적인 헌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신앙은 우리들 자신만이 믿고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하는 어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이러한 선교적 관심을 항상 유지해 왔습니다. 신학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 사역을 효과적으로 증거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의 복음 전도적 관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주의의 학문성과 사회적 책임
20세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복음주의는 학문성이 결여되었다는 점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결여 되어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아마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면 그러한 비판이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2차대전 이후 자유주의의 비판과 도전에 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에 주력해 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는 복음주의의 학문성과 사회적 관련성을 고양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여러 신학대학과 출판사들과 연구소들이 설립되면서 이러한 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주의의 학문적 일관성을 높이기에 좋은 시기가 되었고, 사회정의 문제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 교수님외에도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21세기에 주목할 만한 학자들로 어떤 분들을 교수님은 추천하시겠습니까?

좀 더 연세가 드신 학자들 중에는 제임스 패커(James Packer)와 존 스토트(John Stott)가 있으며, 이 사람들은 깊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두 분의 신학을 연구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사유와 삶에 있어서 심오한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칼 헨리(Carl Henry)또한 좋은 연구 대상일 것입니다. 좀 더 젊은 세대의 인물로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의 케빈 밴우저(Kevin Vanhoozer)를 들고 싶습니다. 그는 조직신학 분야에서 매우 흥미로운 저술들을 내고 있습니다. 또한 영성과 변증 분야에서 언급할 만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밴쿠버의 리젠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과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 그리고 남가주 대학의 댈러스 윌러드(Dallas Willard) 등은 영성 분야에서 아주 심오한 작품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도자들은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요즈음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 분야에서 우리의 활동이 좀 더 활발해져야 하리라고 촉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좀더 나아져야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난의 시대에 부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저술을 남긴 론 사이더(Ron Sider)가 좋은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이 분야에서 대단히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한편 제3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이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옥스퍼드 선교연구원 (Oxford Center for Mission Studies)는 복음적 관점에서 제3세계에서의 사회정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사회참여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때, 환경 문제, 낙태 문제, 핵 문제, 전쟁 문제 등에 대한 교회의 입장 표멍과 참여는 어떠해야 합니까?

교회는 창조 세계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청지기인 우리에게 맡겨진 것임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 세계를 보존하는 데 힘을 쏟되 세상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피조물이며 창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환경 문제나 핵 문제, 인공유산 문제 등 모든 문제가 우리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주의 교회는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되심과 청지기로서의 우리의 책임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알리고 강조해야 합니다.

사회참여와 관련해서 요즈음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여성안수와 여성사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하나님깨서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서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남녀의 차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인식 문제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이 교회에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믿습니다.

복음주의의 영성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영성(spirituality)신학에 대하여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최근에 영성에 관한 책을 저술하신 것으로 아는데 복음적으로 바른 영성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 복음주의적 영성과 가톨릭의 영성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영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성이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정의한다면 그것은 우리 신앙의 질을 고양하고 심화하는 것에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성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전달된 지식이 반드시 마음과 영혼으로 전달되며 적용되게 해야 합니다.
복음주의적 영성이 가톨릭의 영성과 다른 점은 첫째, 영성은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최대한의 유익을 얻도록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더욱 깊이 성경을 읽는 것이며, 성경에서 발견한 내용에 의해 권고를 받으며 자극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유진 피터슨, 제임스 휴스턴, 댈러스 윌러드, 제임스 패커 같은 영성의 대가들이 쓴 저서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복음주의의 영성은 가톨릭의 영성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복음주의 영성 확립에 있어서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영성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개혁자들의 영성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종교개혁이 영성에 대한 아주 좋은 접근 방법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은 복음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특별히 종교개혁은 기독교 신앙을 일상 생활의 영역에 깊게 관련시키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신학자이면서도 목회자였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회중의 일상 생활 영역에 관련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개혁자들의 이러한 현실주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목사님의 의견에 동의 합니다. 개혁자들의 영성이 재발견되고 재적용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의 중요성입니다. 이 점은 여러 번 지적한 바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세상을 도피하지 말고 세상 안에서 우리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신 모든 일들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루터와 칼빈에 있어서 영성은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무장시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 빛을 비추며, 빛의 아들들로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성이 현대 복음주의의 주요한 요소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제3세계의 복음주의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복음주의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형제들에게 바라시는 희망 사항은 무엇이며 또 어떤 조언을 주시고 싶으십니까?

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복음주의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시아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서구 복음주의자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우 종종 서구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서구의 배경에서 읽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서구의 상황에 적용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아시아의 상황과 전혀 다릅니다. 아시아 복음주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기회와 도전은 복음을 아시아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구인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은 여러분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복음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 사회
21세기 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전망과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 세계관이 팽배한 세상에서 어떻게 기독교의 진리를 확신하고 또 증거해 나가야 할까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인 측면과 또 긍정적인 측면을 소개해 주십시오.

서구 사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중요한 세력이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여러 면에서 다원주의를 정당화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입니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수학분야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분야에서는 진리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포스트모더니즘이 진리에 대하여 적대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진리를 끝까지 수호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 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이 세력을 얻겠지만 언젠가 포스트모더니즘도 사라져갈 것입니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앞으로 10년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우리는 진리을 고수하며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의 사회는 점점 더 정보화되고 또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화시대의 교회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요? 특히 인터넷 영상 예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닉까? 그것의 역기능과 순기능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일부 사람들이 매주일 정규적으로 교회당에 나와서 예배드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인터넷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동체의 예배를 대신 해서는 않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친교하며, 기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며 위로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서로를 붙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터넷 예배는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허용이 되어서는 않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주의자로서 인터넷을 잘 활용하여 신앙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복음 전도와 변증에 도움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책이 그 역할을 담당했으나 앞으로는 인터넷이 점점 더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영성생활과 학문적 계획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기도 생활과 말씀 읽기 또는 묵상 생활을 소개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저는 항상 저의 영적 생활을 견고히 함에 있어서 성경 읽기와 묵상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신학자는 성경을 학문적으로만 읽는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영적 양식을 얻기 위해 읽고 묵상하는 훈련을 해왔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 저의 개인적 연약성을 가르쳐주시고 고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저의 믿음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저의 영적인 성장을 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신학자는 단순히 다른 신학자의 신학에 대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학자 역시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개인적인 영성 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연구 관심은 어느 영역에 있으며, 앞으로 조직신학 분야의 대작을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현재 저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학이 신학함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사실 자연과학과 신학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질문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실재를 어떻게 알 것이며 또 어떻게 실재에 응답할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실재에 대한 진실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등의 문제들이 그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부터 5부작의 조직신학을 저술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 신학」(A Scientific Theology)이라고 명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신학의 대화 상대로 이용하고자 합니다. 아마 7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입니다만 저는 너무나 흥미진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와 조언
아직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의 전망과 기대는 무엇인가요? 한국 교회에 대한 인상은 어떠신지요?

한국 교회는 매우 미약하게 시작하였지만 1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의 주요 세력으로 급성장하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에 교회 성장의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여타 교회를 위하여 큰 공헌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또 그렇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서구의 대도시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시드니 등 - 에 있는 한인 그리스도인들은 한인들에게뿐만 아니라 그곳의 서구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또한 지리적으로 몽고와 중국 등 아시아권 선교의 기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복음주의 독자들에게 신앙 성장을 위해 조언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십시오.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신앙 성숙을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않됩니다. 신앙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회를 충성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성장되도록 노력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욱 가까이 이끄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가깝게 동행하십시오. 그러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장시간 여러 가지 질문에 성실히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명지새벽이슬

글쓴이 : 임왕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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