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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1부 제1장 서론 성경신학의 성격과 방법 / 게르할더스 보스

by 【고동엽】 2021. 11. 4.

게르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


제 1장 서론 - 성경신학의 성격과 방법
신학이란 어원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학문”(the science concerning god)이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 신학을 정의하면 신학은 마땅히 계시에 기초해야만 한다. 비인격적인 대상들과는 달리 영적이고 인격적인 존재가 스스로를 열어 보여주는 한에 있어서만 우리는 그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영적인 생명은 그 본성상 감취어진/닫혀진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영역에 대해서는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인격과 영적인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오셔야만 우리는 그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창조는 신외지식의 산출의 첫 단계인 것이다.
계시의 필요성에 대한 더 큰 이유는 죄로 인해 사람들이 처하게 된 비정상저인 상태로부터 제시 될 수 있다.


1. 신학의 4대 분야
일반적으로 신학을 다룰 때는 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의 4대분야로 나눈다.
넓은 의미에서 주경신학은 다음과 같은 분야의 연구를 포함한다.
- 사람의 탐구과정에 나타나는 순서 ① 성경기록의 내용 연구의 진행과 인도하심 ② 계시의 성문화 과정 ③ 일련의 책들이 모여서, 통일체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 ④ 하나님의 실제적인 자기 계시 - 하나님의 활동이란 관점에서 그 과정을 살피면 그 순서 계열은 4→2→3→1로 바뀔 것이다.


2. 성경신학의 정의
성경신학은 성경에 보존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과정을 다루는 주경신학의 한 분야이다. 성경신학은 신적 행위의 완성된 산물로서가 아니라 그 신적 행위로서의 계시를 다룬다.
그 신적 행위 자체의 주요한 성격은 다음과 같다.
(1) 계시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 계시는 한 소진적 행위 안에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진적 행위의 긴 과정 중에서 전개된 것이다. 계시는 그것 자체로 자족하게 서지 않고 구속과 연관된다. 구속은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나타나게 되는 인류의 각 세대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계시는 ‘구속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구속이 점차로 전개되듯이 계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과정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계시는 구속이 계속되는 상황 중에서 그쳐지기 때문이다.
객관적-중심적 구속행위는 인간밖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말하는데 성육신과 속죄,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주관적-개인적 구속행위들은 인간 주체속으로 파고드는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중생, 칭의, 회개, 성화 그리고 영화이다. 객관적이고 중심적인 구속이 다시 나타날 미래의 한 시대만이 남아 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 때이다.
(2) 역사 안에서의 ‘계시의 실제적 구현’ - 계시의 과정은 역사와 동시에 일어날 뿐만 아니라 역사 안에서 구현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달리심과 부활이다. (3) 계시 가운데서 관찰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성격 - 모든 증대는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점진적 증대가 유기적으로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유기적 점진성이란 씨형태로부터 완전한 성장에의 도달을 말하낟. 그러나 질적인 의미에서 그 씨가 나무보다 덜 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구속과 계시는 점진적 성격을 가지며 구속이 천천히 진행될 때, 또는 잠잠할 때 계시도 이와 같은 보조를 취하게 된다. 성경 가운데서 많은 상이점과 차이점이 성경의 절대성과 무오성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내재적으로 풍성하고 복합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러하시기 때문이다.
(4) 성경신학 연구에 결정적인 네 번째 측면은 계시의 실제적 적용성에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지적인 단순히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적 계시는 참으로 종교적인 만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끊임없는 의지의 사용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헬라적인 의미는 사람 마음에 있는 어떤 대상의 실재의 반영을 말한다면 셈어적이고 성경적인 의미에서는 삶의 내면적 경험과 실제적으로 부합되어 있는 어떤 실재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의미에서 ‘안다’는 것은 ‘사랑하다’‘하나만을 사랑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알려지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3. 성경신학이란 명칭이 가져왔던 다양성
이 명칭이 처음에는 조직신학 연구에서 사용되었던 ‘참고구절의 모음’을 지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다. 그 후엔 경건주의자들이 교의를 다룸에 있어서의 아주 학문적인 방법에 반대하는 데에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학문분야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론을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은 개블러인데 그의 논고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의 바른 구분에 대하여”에서 성경신학의 특이한 점은 방법론상 ‘역사적인 취급’에 있다는 것을 바르게 지적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그 원칙을 지작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그가 속해 있던 합리주의의 영향아래 있었다. 합리주의의 특징은 역사와 전통을 덜 존중하고 종교적인 지식의 유일하고 충족한 원천으로서 이성을 아주 존중한다는 것이다. 합리주의의 가장 중요한 난점은 진리와 신앙의 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지 않은 자기 주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합리주의의 반대는 전통의 원천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정하이며 이 입장에서의 성경신학의 전체 방법론은 전통의 형태로서 역사를 높이 평가함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불신하는 것이다.
성경신학이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당시 신학일반에 영향을 주던 철학적인 조류이기 때문에 그랬을 뿐 아니라 특히 성경신학이 가진 특성에 의해 그러했다. 오늘날엔 성경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진화론 철학에 영향을 받고 있다. 첫째, 세계과정에 대한 진화의 가정에 의해 발견된 질적인 진보가 종교적인 진리의 출현에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진화론 철학은 실증주의 군에 속하는 것이다. 실증주의는 소위 물자체라는 내재적, 개관적인 실재를 부인하고 단지 인상의 세계인 현상세계만이 알려질 수 있다고 한다.


4. 성경신학의 주요한 원칙들
(1) 계시의 무오한 성격의 인식은 계시라는 명칭의 어떤 신학적 사용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이 유신론의 본질이다.
(2)성경신학은 또한 계시의 기본사역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계시는 밖으로부터 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성경신학은 영감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져 있다. 영감의 문제는 연구되는 ‘진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보증되어지는 요소의 하나로 여겨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5. ‘성경신학’이란 명칭에 대한 반론들
(1) 그 명칭이 너무 보펀적이라는 주장. 이것은 ‘성경적’이라는 명칭이 마치 이 분야만 성경에 기초하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가정이다. (2) 이런 가정에서는 마치 다른 신학분야들이 진리를 교묘히 조작한 죄책이 있는 듯한 생각을 품는 것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성경신학이 성경적 자료를 변형하여 다루는 데서 유일하게 떠나 있는 듯한 자부심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성경신학도 조직신학과 마찬가지로 자료를 변형하여 사용한다. 차이점이라고는 그 변형의 원칙에 있을 뿐이다. 성경신학의 경우에는 ‘역사적’이라면 조직신학의 경우엔 ‘논리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다.
(3) 이 명칭이 다른 명칭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또 있다. 한 분야에 속한 작은 과목을 또 하나의 큰 분야를 제시하는 듯해서 사실은 종속적인 것이 나란히 선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들로 하여 ‘특별계시의 역사“란 명칭이 아주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6. 성경신학와 신학의 다른 분야와의 관계
(1) 성경역사와의 관계 - 이것은 아주 밀접하다. 두 과목은 모두 서로를 넘나든다.
논리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면 존재의 영역에서 세계를 정상화시키려고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과정을 사용하시고 인식의 영역에서는 계시의 과정을 사용하신 것이다. 전자가 성경역사의 자료이고 후자는 성경신학의 자료가 되는 것이다.
(2) 성경총론과의 관계 - 일반적으로 총론이 앞서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에 성경신학은 총론에 의존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 순서가 바뀔 경우도 있는 것이다.
(3) 조직신학과의 관계 - 성경에 의존함의 정도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성경신학은 역사적인 구조를 조직신학은 논리적인 구조를 그 원칙으로 한다. 전자가 발전의 선을 끌어낸다면 조직신학은 원을 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7. 성경신학의 방법론
주로 역사적 점진성의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계시 과정의 구분은 주관적인 선호에 의한 것이 아닌 계시 자체에 의하여 보여지는 구분선과 엄밀히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자체의 구조를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대의 들어섬을 표시하는 계속적인 언약체결의 원칙은 시대구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8. 성경신학 연구의 실제적 유용성
(1) 성경신학은 특별계시의 진리의 유기적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계시의 유기적 구조를 봄으로써 성경신학은 초자연주의의 실재를 위한 기도로부터 특별한 논의를 제공한다.
(2) 성경신학은 합리주의적 비판의 가르침에 대한 유용한 교정수단을 제공한다.
(3) 성경신학은 그 본래의 역사적인 배경으로부터 진리를 제시함으로 새 생명과 참 신성을 부여한다.
(4) 성경신학은 현대의 반 교의적 경향에 반작용이 될 수 있다. 자발적이고 감정적인 종교의 면에 너무 많은 강조가 주어지고 있다. 성경신학은 우리의 종교에 있어서 교의적인 기초의 불가피성을 증거한다.
(5) 성경신학은 신앙에 있어서 근본적인 교리들이 몇 개 안되는 참조구절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6) 성경신학의 가장 큰 유용성은 모든 다른 신학분과와 같이 성경신학도 그 최고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서 찾는다.
“신학은 하나님에 의해 가르쳐지며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 토마스아퀴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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