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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성경관 /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by 【고동엽】 2021. 11. 4.




개혁주의 성경관
변 종 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개혁주의는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표준이 되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
는다. 이에 대해 이근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고 기록된 말씀은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믿고 ...”1)
이러한 성경관이 고신 설립자들의 신앙이었다. “신사참배 반대자들은 영감된 하나님이 말씀
의 절대적 권위를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생명을 걸고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우
상숭배에 응하거나 동참하지 아니하려고 몸과 마음을 바쳐서 충성하였다.”2) 이러한 신앙은
고려신학교 교육이념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고, 그대로 가르치며 또 장로회 원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리대로 교리와 신학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여 생활의 순결과 순
교적 이념으로 교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3)
그러면 성경은 어떤 책인가? 개혁주의 교회는 성경을 어떻게 보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다음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I.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경(正經, Canon)’이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말한
다. “이 모든 책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I장 2
조) 대한예수교장로회 십이신조 제1조는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이 ‘성경’을 웨스트민스터 신
앙고백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written)’이라고 부르며(I장 2조), 벨직
신앙고백은 ‘그(하나님)의 거룩하고 신적인 말씀’이라고 부른다(제2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 자체의 증거에 의한 것이다. 마태는 이사야 7:14
을 인용할 때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다(마 1:22). 호세아 11:1을 인용할
때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고 말한다(마 2:15). 그리고 마태복음 2:5에서
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되었다”고 말하며, 17절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
1) 이근삼, “신사참배 문제를 재검토한다”, 「개혁주의 신학과 한국교회(이근삼 전집 2)」(서울: 생명의 양식,
2007), 192.
2) 같은 곳.
3) Cf.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부산: 고려신학대학원 출판부, 1996), 41;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역사편찬위원회, 서울: 총회출판국, 2002),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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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바 라고 말하며 절에서도 선지자로 ” , 23 “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이 세 구절에서 ‘선지자’
앞에 다 전치사 ‘디아’(를 통해, 로 말미암아)가 사용되어 있어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사용된 ‘도구, 수단’임을 보여준다. 또한 마태복음 3:2, 4:14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지자 앞에
전치사 ‘디아’가 사용되어서 선지자는 ‘도구, 수단’임을 말해 준다. 이러한 예는 그 외에도
무수히 많다(마 8:17, 12:17, 13:35, 21:4; 행 2:16, 4:25 등).
다른 한편으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이사야의 예언’이라고 말하며(마 13:14), 또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라고 하여(마 15:7; cf. 행 2:25,34, 7:48) 이사
야를 ‘주체, 행위자’로 말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 칭한다.”고 말하
기도 한다(마 22:43,45). 한편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
였다”고 하기도 하고(행 1:16),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 말씀하셨다”고 하기도
한다(행 28:25). 여기서는 성령이 주체이고 다윗과 이사야는 도구, 수단으로 나타나 있다.
선지자 또는 다윗을 어떤 때는 ‘주체’로 말하고(행 2:25,34, 7:48), 어떤 때는 ‘도구’로 말
한다(행 2:16, 4:25). 또는 그냥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셨다”고 말하기도 한다(행 13:47).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대해 ‘두 요소’를 보게 된다. 곧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이다.4)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말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
해 말씀하셨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진
리를 표현하기 위해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을 ‘제일 저자(Auctor primarius)’라고 부
르며, 성경 기록에 사용된 사람들을 ‘제2 저자들(auctores secundarii)’ 또는 ‘인간 저자들’
이라고 부른다.5)


II. 성경의 영감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뜻과 생각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사용 방
식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감동’ 또는 ‘성령의 감동’을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이란 단어는 원어로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인데 ‘하나님에
의해 불어넣음 받은(inspired by God)’이란 뜻이다.6) 이 단어는 수동태적 의미7)로서, 기록
당시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록자를 감동하셔서 그가 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령의 특별한 역사이다. “인간 저자들은 성령에 의해 강력하게
인도되고 조종되었다. 그 결과, 그들이 쓴 것은 오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 지고
(至高)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두 다 하나님이 원하신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
은 인류를 위해 신앙과 행동의 무오한 규칙을 형성하였다.”8)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
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그러나 개
역개정판의 이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원문을 직역하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
4) Cf. A. Kuyper, Dictaten Dogmatiek, II, 2e dr. (Kampen: J. H. Kok, ), Locus de Sacra Scriptura, 84.
5) Cf. S. Greijdanus, Schriftbeginselen ter Schriftverklaring (Kampen: J. H. Kok, 1946), 7, 45f.
6)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rev.
and ed. by F. W. Danker, s.v.
7) Cf. C, Bouma, De brieven van den apostel Paulus aan Timotheus en Titus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42), 333.
8) W. Hendriksen, I & II Thessalonians, I & II Timothy, Titu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6),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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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낸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말한 것이니라.”가 된
다. 즉,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는 ‘사람들’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였다’를 수식한
다. 이것은 ‘성경 기록자’가 영감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내용 곧 ‘성경’이 영감되었
음을 말한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3:16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지
자들이나 사도들의 생애 전체가 염감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예언할 때 그
리고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생각과 말 또는 글을 주장하셔서 일점일획의 오류
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기록자 영감’에 대
비하여 ‘기록 영감(graphic inspiration)’이라고 부른다.9)
성경의 ‘영감(inspiration)’은 성령의 ‘조명(illumination)’과는 구별된다.10) ‘영감’은 “성령
이 성경 기록자들에 대해 행사하는 특별한, 초자연적 영향으로서 이것에 의해 그들의 말들
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며, 따라서 완전히 무오하다.”11) 따라서 성경의 ‘영감’은 성경
기록 당시에만 있었던 특별한 성령의 사역이며 ‘성경 무오’와도 직결된다. 이에 반해 성령의
‘조명’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12)을 말하는데
(요 16:13, 엡 1:17-19, 요일 2:27),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완전하지 못하며 때때로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성령의 충만한 지배를 저항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타락할 수 있으며 실제로 타락했다. 따라서 교회를 진리의 기준으로 삼거나
교황을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에 반해 ‘영감’은 성경 기록자가 성경을 기
록할 때에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전혀 오류가 없이, 그 내용과 문장뿐만 아니라
각 단어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역사하신 것을 말한다. 이러한 특
별한 역사는 성경이 기록될 때에만 역사하신 것이며,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는 더 이상 없
다.


III. 개혁주의 영감론


1. 축자 영감(逐字靈感, verbal inspiration)
축자 영감(inspiratio verbalis)은 성경의 사상뿐만 아니라 글자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되었다는 것인데 이레네우스,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등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
리고 흐라퍼메이어, 카이퍼, 바빙크, 워필드 등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였다.13) 오병
세 박사도 “성경의 영감은 (단순히 사상만 아니라 그 단어들도 포함된) 축자적(逐字的=
Verbal)”이라고 하였다.14) 박윤선 박사도 축자영감 교리가 전통 교회의 성경관임을 역설하
였다.15) 이근삼 박사도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한국 장로교회 보수주의의 기본 사상
9) A. Kuyper, Encyclopaedie der heilige Godgeleerdheid, II (Amsterdam: J. A. Wormser, 1894),
492-501.
10) ‘계시(revelatio)’ 또는 ‘영감(inspiratio)’과 ‘조명(illuminatio)’ 사이의 구별에 대해서는 A. A. Hodge,
Outlines of Theology (London: Banner of Truth, 1972), 68을 보라.
11) B. B.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Phillipsburg: Presbyterian & Reformed,
1948), 420.
12) Cf. 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6e dr., I (Kampen: J. H. Kok, 1976), 356.
13) Cf.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373-385; A. G. Honig, Handboek van de Gereformeerde
Dogmatiek (Kampen: J. H. Kok, 1938), 96; Warfield, Inspiration and Authority, 423-426.
14) 오병세, 「신약 개설」, 총회교육위원회 편 (부산: 고신출판사, 1990), 20.
15) 박윤선, 「성경 신학」, 11판 (서울: 영음사, 198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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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16)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우리는 신앙과 생활의 정
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살고 그대로 전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으며, 그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쉽게 잘 알 수 있도록 간추려 놓은 것으로 역대 교회 지
도자들이 기도와 신앙경험에서 고백한 신조들을 우리가 함께 고백하면서 장로교회의 일치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17)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
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으며(마 5:18), 사도 요한은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
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다(계 22:19).
‘축자 영감’은 성경의 사상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사상 영감(思想靈感, thought
inspiraition)’, 그리고 성경의 사실(事實)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사실 영감(事實靈感,
inspiratio realis)’ 등에 반대된다.18) 사상 영감이 옳지 않은 것은 ‘글자(단어)’와 ‘사상’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은 글자를 통해 표현된다.19) 이와는 반대로 17세기에 단어의
모음과 구두점까지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등장하였다(inspiratio punctualis). 그러나 히
브리어 모음은 나중에 맛소라 학파에 의해 첨가되었으며, 구두점도 대부분 후대에 찍어 넣
은 것이므로 이러한 주장은 맞지 않다.


2. 만전 영감(萬全靈感, plenary inspiration)
‘축자 영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만전 영감’이 있다. 이것은 성경의 부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영감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만전 영감’에 반대되는 것은 ‘부분
영감’이다. 부분 영감에 속하는 것으로는 ‘종교 윤리적 내용’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고유한 의미에서 계시된 말씀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만 영감되었다는 견해, 그리고 구원하는 믿음에 관련된 것만 영감되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20)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인 영감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에서 말씀과 사실, 종교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사람들이 말한 것들은 함께 엮어져 있어서 분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1)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단일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견해에
의하면 결국 성경 안에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되
고 만다.22)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마 5:18-19, 눅
24:27,44, 요 10:35, 롬 15:4 등).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실패
와 불순종도 오늘날 우리를 위한 ‘거울’과 ‘경계’가 된다(고전 10:5-11). 따라서 성경의 모
든 말씀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
다.
16) 이근삼,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고백의 정착화”, 「이근삼 전집」2, 159.
17) 이근삼, 앞의 글, 165.
18)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378-341, 406.
19) Cf. Honig, Handboek, 96f.
20)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406.
21)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408f.; Honig, Handboek, 88.
22) J. van Genderen-W. H. Velema, Beknopte gereformeerde dogmatiek (Kampen: J. H. Kok, 1992),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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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기적 영감(有機的靈感, organic inspiration)
‘유기적 영감’은 ‘기계적 영감’에 대비되는 것이다. 기계적 영감은 17세기와 18세기의 루
터파와 개혁파 신학자들 중 일부에서 있었던 견해인데, 성경의 영감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생각하였다. 성경은 ‘성령의 구술(口述)’로 생각하기도 하고, 인간 저자들은 ‘성령의 펜들’로
생각하기도 했다. 성경 각 책의 기록자들은 성령의 손에 있는 ‘의지 없는 도구들’로 생각되
기도 했다.23) 이런 견해를 ‘기계적 영감(mechanic inspiration)’이라 부른다. 이런 견해에서
는 성경에 있어서 ‘신적 요소’가 부각되는 반면에 ‘인간적 요소’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말에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유기적 영감
(organic inspiration)’을 주장했다. 이 견해는 성경 기록에 있어서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
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 기록자의 전인격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말씀하시
는 분은 항상 성령이시지만, 기록자의 특성과 개성이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하셨다.”24) 박
윤선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유기적 영감설은, 성경 저자들이
그 저술에 있어서 자신들의 지식도 사용했다는 것이다.”25) 오병세 박사도 마찬가지로 설명
한다. “성령은 인간 저자의 인격을 통해서 역사하시면서 동시에 인간적 오류가 개입되지 않
게 하신 것이다.”26)
그러나 유기적 영감론에서는 종종 ‘신적 요소’보다는 ‘인간적 요소’가 더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27) 실제로 벌카우어는 유기적 영감론을 가지고 성경에서 인간적 요소를 말하면서 성경
비평을 받아들이는 데 사용하였다.28) 또한 화란개혁교회 신오달 교단이 1980년에 채택한
성경관 보고서(God met ons)에서도 성경의 유기적 영감을 말하면서 여러 가지 성경 비평
을 옹호하고 있다.29)
따라서 ‘유기적 영감’이란 용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흐레이다너스는
1917년에 이미 성경의 영감에 대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기 위해 사람의 영을 ‘접촉하는 것’
도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곧 하나님의 영이 영감된 내용을 사람의 영 안에
‘집어넣는 것’도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본질
적으로 하나일 때에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
이의 인격적 구별이 합당하게 존중되고 유지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30) J. 캄프하이
스 교수도 마찬가지로 성경관과 관련하여 ‘유기적(organisch)’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말아
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둘 됨(twee-heid)’에 대해 아
무 것도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거기에 대해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23)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5.
24) Honig, Handboek, 94. ‘유기적 영감’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의는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409를 보라.
25) 박윤선, 「성경과 나의 생애」(서울: 영음사, 1992), 202.
26) 오병세, 「신약 개설」, 20.
27)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8f.
28) G. C. Berkouwer, De Heilige Schrift, II (Kampen: J. H. Kok, 1967), 426-447.
29) God met ons. Over de aard van het Schriftgezag. Rapport aangeboden aan de synode van Delft
1980.
30) S. Greijdanus, Schriftgeloof en exegese van het Nieuwe Testament (Rotterdam: Libertas, 1917), 64
n.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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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31) 구약학자 리덜보스도 J. 1926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 ‘유기적 영감’이란 용어에 대
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언급을 하였다. “영감에 있어서 주
된 것 곧 초자연적 성격이 이것(‘유기적’이란 용어)에 의해 표현되지 않고 있다.”32) 벨까우
어도 초기에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였다.33) 즉,
인간적 도구(인간 저자)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독립화하는 위험이다. 그래서 인간적 도
구는 신적 ‘요소’ 옆의 독자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유기적 영감의 핵심은 인간적 도구 또는
기관의 독립화가 아니라 성령이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신다는 것임을 잊게 되었다고 한
다.34) 이러한 위험성은 ‘유기적 영감’의 주된 주창자인 바빙크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
러나 이 유기적 견해는 첫 번째 요소인 성령의 저자됨을 부인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35)
아펄도른의 판 헨더런과 펠러마 교수도 유기적 영감은 성경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론은 아니라고 하면서, ‘유기적’이란 것이 영감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다.36) 캄펀의 B. 캄프하이스 교수도 영감은 ‘다양성(veelkleurigheid)’을 가지고 있다고 하
면서, 획일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해무 교수도 ‘유기적’이란 용어의 문제점
에 대해 지적하였다.37)
따라서 우리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해야 한다. 성경 중에서 역사서를 기록
할 때와 선지서를 기록할 때의 영감의 성격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복음서를 기록할 때와
서신서를 기록할 때도 그 영감의 성격이 좀 다를 수 있다. 또 하나님의 계시가 직접 주어질
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을 뛰어 넘어서, 심지어는 반(反)하여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기를 주저한 사무엘에게 하
나님이 왕을 세우라고 타이른 것(삼상 8:4-9)이라든지, 여로보암을 책망하고 돌아가는 유다
의 선지자를 속여서 데리고 온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뜻밖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건
(왕상 13:20-22)이라든지, 선지자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미래의 일을 예언한 경우 등이
있다(사 53장, 호 11:1 등). 그래서 선지자들은 자기가 예언한 것이 어느 때,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한다(벧전 1:11). 이러한 것들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
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음을 말해 준다(사 55:9).
따라서 우리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도구
로 완전히 사용하셨지만, 그들을 통해 기록된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IV. 잘못된 영감론
그러면 성경의 영감에 대한 이론 중 대표적으로 잘못된 것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31) J. Kamphuis, In dienst van de vrede (Groningen: De Vuurbaak, 1980), 63. Kamphuis 교수는 Abraham
Kuyper와 Herman Bavinck의 유기체 사상이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성경적
사상과 맞지 않다고 비판한다(특히 이 책 61-68을 보라).
32) J. Ridderbos, Gereformeerde Schriftbeschouwing en organische opvatting (Wetenschappelijke
samenkomst op 30 juni 1926 te Vrije Universiteit, Amsterdam), 23.
33) G. C. Berkouwer, Het probleem der Schriftkritiek (Kampen: J. H. Kok, 1938), 314-318.
34) Berkouwer, Het probleem der Schriftkritiek, 317.
35)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405.
36)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8.
37) 유해무, 「개혁 교의학」(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7), 116f. (또한 거기 있는 각주 221과 222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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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계적 영감론(mechanic theory of inspiration)
17세기에 루터파와 개혁파 교회 일부에 들어왔던 견해인데, 성경은 하늘로부터 구술(口
述)된 것으로 보았다. 성경의 저자들은 ‘비서’, ‘서기’ 또는 성령의 ‘펜’, ‘손’ 등으로 불리었
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의 손에 잡힌 ‘의지 없는 수단들’로 기능한다고 여겨졌다.
이들은, 성령께서 인간 저자들을 사용하실 때 수동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
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잊었다.38) 오병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영감설 중에는 더욱 철
저한 듯이 보이는 기계적 영감설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그대로 받
아 적었다는 것으로 저자의 개성 및 능력 등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다.”39)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의 저작에서 ‘구술’이나 ‘펜’, ‘손’ 등의 단어가 나타난다고 해서
섣불리 그가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했다고 결론지으면 안 된다. 칼빈의 성경관에 대한 연구
로 화란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D. J. 드 흐로트(De Groot)는, 칼빈이 성령이 성경
을 ‘구술했다’고 말할 때 이것은 비유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영감 받
은 자들이 기록한 모든 것에 대해 성령이 책임진다는 것을 의도한 것 이상은 아니다.40) 이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 기록자들이 텔렉스처럼 받아 적었다는 의미는 아니다.41) 드 흐
로트는 이렇게 말한다. “영감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기계적인 사상도 칼빈에게서 아주 멀
다.”42)


2. 이원론적 영감론(dualistic theory of inspiration)
이 견해에 의하면 영감은 성경의 부분에 제한된다(부분 영감). 대개는 종교・윤리적 내용
만 영감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부분은 전적으로 인간 저자의 책임으로 돌린다. 종교・윤
리적 내용에는 오류가 없지만, 그 외 부분에는 온갖 오류가 다 발견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18세기의 제믈러(J. S. Semler)는 성경 중에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룻, 역대기, 아가
서, 계시록은 영감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대체로 소시니안들, 알미니안들과 합리주의자들이
이 이원론적 견해를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성경의 단일성을 파괴한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성경을 결코 그렇
게 나누지 않았다. 이 견해에 의하면,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 할지를 결정하는
판단의 기준은 자기 자신의 통찰력이나 종교적 체험 또는 자신의 다른 그 무엇이 된다.43)


3. 동력적 영감론(dynamic theory of inspiration)
이 견해에 의하면 영감은 성경에서 기록자들에게로 넘어간다(개인적 영감). 성경 기록자
들은 하나님 가까이 살았으며, 따라서 그들의 사역은 경건하고 숭고한 성격을 가진다. 그들
38)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5.
39) 오병세, 「신약개설」, 20.
40) D. J. de Groot, Calvijns opvatting over de inspiratie der Heilige Schrift (Zutphen: Nauta, 1931), 158.
41) R. H. Bremmer, In gesprek met oudere en nieuwere theologen (Kampen: J. H. Kok, 1991), 40.
42) De Groot, Calvijns opvatting, 155 (Bremmer, In gesprek, 40에서 인용).
43)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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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성령의 영감하고 성화하는 능력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 영감(靈
感)과 각 그리스도인이 받는 조명(照明) 사이에는 단지 점진적인 차이만 있을 뿐 원리적인
차이는 없다. 이 동력적 영감론의 대표자는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이다. 그에 의
하면 신약 기록자들은 독특한 영감된 저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첫 저자들일 따름이다.
신약의 특권은 영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초성에 있다.
그러나 이 동력적 영감론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된다. 성경은 ‘성경’이 영감되었다고 말
한다(딤후 3:16).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말한 자들에 대한 ‘성령의 감동’(벧전 1:21)과 모
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성령의 인도’(롬 8:14)를 구분해야 한다. 동력적 견해에 의하면
성경과 모든 종교적 문학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 차이가 없게 된다.44)


4. 실행적 영감론(actualistic theory of inspiration)
칼 바르트는 전통적인 성경관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인간의 말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고착화되고 말았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영감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항상 미완료된
현재 시간이다. 증인들에게 증거를 주신 성령은 그것을 듣고 읽는 자들에게도 진리의 증거
를 주신다. “전체로서의 이 자기 계시가 성령의 감동 곧 선지자들과 사도들 말씀의 영감이
다.”45) 성경의 영감은 교회의 생활과 그 교인들의 생활에 항상 다시 일어나는 신적인 결정
이다. 여기서 영감은 그 자체로서는 오류가 있고 실수하는 인간의 말인 성경 본문에 대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발생하는 이적이다. 바로 그
순간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 오늘날 일어나는 영감은 성경이 영감되
었다는 사실을 손상시킨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신적인 결정이라는 의미의 실행
적 영감관은 성경에 기초해 있지 않으며 바르트의 실행적 계시 개념에서 흘러나온 것이
다.46) 오병세 박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고등 비평과 역
사적 예수 연구 등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성경을 구하려는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으나 역사
적 산물인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함으로 역사적 정통 성경관에서 떠났다.”47) 박윤선
박사도 마찬가지로 평가한다. “바르트는 그 적극적 내용에 있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믿지 않으니 잘못이다.”48) 바르트는 또한 성경 자체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
다고 주장한다.49)


V. 성경의 특성
성경의 특성 또는 속성(proprietas)에 관한 교리는 종교개혁 시대에 한편으로는 로마 가
톨릭과의 대항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령주의자들과의 대항에서 발전되었다. 가톨릭에 대
44)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6.
45) “Diese Selbsterschlieszung in ihrer Totalität ist die Theopneustie, die Inspiration des Prophetenund
Apostelwortes.”(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6에서 인용)
46)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87.
47) 오병세, 「신약개설」, 20.
48) 박윤선, 「성경 신학」, 38.
49) 박윤선, 「성경 신학」, 39. 칼 바르트의 성경관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신학과 현대신학」(「이근삼 전집」4) (서
울: 생명의 양식, 2007), 30-46에 번역 수록되어 있는 네덜란드 깜뻔의 L. Doekes 교수의 강연 원고를 참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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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는 주로 성경과 교회의 관계에 대해 , 신령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주로 성경과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 교리가 정립되었다. 성경의 특성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은 대개 성경의 자증(권
위), 명료성, 충족성, 필요성을 말한다.


1. 자증(autopistia)
로마 가톨릭에서는 교회의 권위를 주장한다. 성경은 교회에 의해 발전되어 나왔으며, 보
존되고 해석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권위가 교회에 위임되었으며, 교회는 정경에 대해
무오한 결정을 해 왔다고 본다.50) 그러나 개혁교회는 교회는 타락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타
락했다고 주장한다.51)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참 교회인지 아닌지 성경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52)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칼빈은,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에베소서 2:20을 인용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
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기 이전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먼저 있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53) 따라서 성경을 판단하
는 권세가 교회에 있다는 주장, 곧 교회의 동의에 성경의 확실성이 의존한다는 생각은 허구
이며 매우 불합리한 생각이라고 말한다.54)
따라서 개혁자들은 성경의 ‘자증(自證, autopistia)’을 주장한다. 자증이란 “성경 자체가
그 신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그 신적 성격은 성경 자체 속에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말
한다.55) 성경은 그 신임성(信任性)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며, 외부의 다른 어떤 것들에 의
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 밖에 있는 인간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을 판단하려는 모든 비평
적 접근들은 옳지 않다.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해 성도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을
때 교회의 결정이 아니라 성경이 최고의 재판관이 된다.56)


2. 명료성(perspicuitas)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은 분명하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은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
가 성경의 해석자로서 역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성령이 교회를 진
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57)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와의 논쟁에서
성경보다 더 분명한 책은 없다고 말했다.58) 성경은 계시(계시)의 책이기 때문에 결코 감추
어진 책이 될 수 없다.59) 성경은 우리가 듣고 이해하고 지켜 행하도록 주신 책이지 감추려
50) Cf. A. B. du Toit,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in: Guide to the New Testament, Vol. I, Sect.
B, tr. by D. R. Briggs (Pretoria: N. G. Kekrkboekhandel Transvaal, 1979), 157.
51) Cf.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1장 4조.
52) Cf. 벨직 신앙고백 제29조.
53) Calvin, Inst. I,vii,2.
54) Calvin, Inst. I,vii,2.
55) F. W. Grosheide, Algemeene Canoniek van het Nieuwe Testament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35), 136.
56)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91.
57) Cf.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101f.
58) Cf.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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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신 비밀의 책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 계시인 성경은 본질적으로 명료성을 그 특징
으로 한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본문들도 있으며 해석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이러한 난점들은 우리 인간의 제한된 이해
력과 현대 문화의 한계성에 많이 기인한다.60)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경은 영적인 책이
기 때문에 육적인 사람들은 영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고전 2:14). 따라서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엡
1: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서
똑같이 분명하거나 모든 사람에 대해 똑같이 명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알고
믿고 지키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성경의 여기저기에 매우 분명하게 말해지고 설명되었다.
따라서 학자들뿐만 아니라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보통의 수단들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그
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제1장 7조) 이런 맥락에서 남아공화국의 헤인스(J. A.
Heyns)는 ‘중심적 명료성(skopiese duidelijkheid)’과 ‘주변적 명료성(periferiese
duidelijkheid)’을 구별하였다.61) 물론 이러한 구별은 도움이 되기는 하나 조심해야 한다. 성
경에서 ‘중심’과 ‘주변’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의 실제거인 어려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칫하
면 ‘주변적인 것’에서의 불명료성을 강조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
앙고백을 따라, 우리가 구원 받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규칙들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계시해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계시해 주셨으나
마귀의 역사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해야 한다(고후
4:4).


3. 충족성(sufficientia)
성경의 충족성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성경에 충분히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62) 따라서
이것 외에 다른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cf. 갈 1:8). 또 인간의 저작들을 성경과 동등
한 위치에 둘 수 없다.
로마 가톨릭은 전승(傳承)을 성경과 같은 위치에 둔다. 트렌트 회의(1546)는 구약과 신약
의 모든 책들뿐만 아니라 신악과 윤리에 관계된 전승들을 ‘동등한 경건한 사랑과 존경(pari
pietatis affectu ac reverentia)’으로 받아들이고 경외하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63) 가톨릭
교회는 이처럼 전통을 성경과 같은 지위에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전통의 우위를 가져오게 되
었다. 예를 들면, 성경에 없는 마리아 무죄 탄생, 마리아 수난, 마리아 승천 교리도 제2 바
티칸 회의에서 전통의 권위에 의해 채택되었다(The Church, VIII, 58-59).64) 가톨릭 교회
59) J. A. Heyns, Dogmatiek, 3e dr. (Pretoria: N. G. Kerkboekhandel Transvaal, 1984), 33.
60) Van Gendeleren-Velema, Dogmatiek, 103.
61) Heyns, Dogmatiek, 34.
62) Van Gendeleren-Velema, Dogmatiek, 106.
63) Cf. Van Gendeleren-Velema, Dogmatiek, 107.
64) Vatican Council II, ed. A. Flannery, New Revised Edition 1992 (Northport, NY: Costello Publ.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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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를 위해 성령의 인도를 주장한다 (요 16:13). 그러나 성령은 성경을 벗어나서 성경 외
의 것을 계시하지 않는다. 정경은 1세기 말로 종결되었다. 그 후로 성령은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읽고 깨닫게 하시며 고백하게 하는 사역을 한다.
따라서 66권의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신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성경 옆에 추가하는 것도
잘못이다. 몰몬교나 안식교, 통일교 등과 같이 성경 옆에 또다른 경전을 추가하는 것은 성
경의 충족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성령의 계속적인 계시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성경
의 진리가 심각하게 왜곡되며 부인되고 말았다.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에서 나온 전승만 인정한다. 개혁교회는 첫 네 보
편적 회의(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첫 번째 에베소, 칼케돈)에서 결정된 것들과(이것들도 성경
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65) 세 보편적 신조들(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아타나시우
스 신조)만 받아들인다.66) 그 이유는 그것들이 성경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승
이 성경에 기초해 있고 성경 옆에 위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그것을 받아들인다. 전승은
무엇이 옳고 진리인지를 결정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이 결정한다. 성경은 어떤 보충도 필요
로 하지 않는다.67)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문제가 제기될 때 항상 성경에서 그 최종적인 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


4. 필요성(necessitas)
성경의 필요성은 충족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로마 가톨릭에 의하면, 성경은 유익하지
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신앙을 위해 필요하지만 성경은 아니라고 한다. 신령주
의자들 그룹에서는 성령이 중요하며 성경은 죽은 글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성경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신령한 사람은 더 이상 성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68) 외적
말씀보다도 내적 말씀을 더 높이는 자들은 결국 성령의 가르침을 이성(理性)과 양심(良心)의
자연적 빛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빠지고 말았다.69)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그 자신의 말씀인
성경에 연결시킨다.
성경의 필요성은 실제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어떤 유익이나 열매를 얻으려
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70) 이런 점에서 성경은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다.
1992), 417f.
65) Cf. Calvin, Inst. IV,ix,8.
66) 벨직 신앙고백 제9조.
67)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109f.
68) Cf. Van Genderen-Velema, Dogmatiek, 110.
69)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437.
70) Calvin, Inst. I,ix,2.





- 첨부파일
개혁주의성경관_변종길 교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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