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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 제4강 (김세윤 교수)

by 【고동엽】 2021. 11. 4.
바울신학 제4강


지금까지는 서론을 하였고 이 시간부터는 바울의 신학을 시작하겠는데 첫째로 바울의 사도로의 부르심 바울의 소명에 대해서 하겠다.


Ⅱ.사도바울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이해를 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첫 시간에 이야기한대로 바울은 사도로서 선교사이며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사도직과 연관시켜서 그리고 선교와 연관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사도 바울에 대해서 또는 바울의 사도됨에 대해서 먼저 시작하려고 한다.


1.소명전의 바울
소명전의 바울을 살펴봄으로써 바울의 신학적인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아주 기본적으로 바울은 이스라엘인 이고 베냐민 지파인이다(롬11:1/빌3:5/고후11:22). 따라서 바울은 로마 이름인 바울과 더불어 유다 이름인 사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행13:9).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많이 한다. 원래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었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회심하여 바울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거짓말로 은혜를 많이 받게 한다. 그런데 그런게 아니다. 내가 78년에 처음 한국에 와서 바울을 강해할 때 이것을 말했더니 어떤 목사들이 ‘그게 아니라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인데 큰 자로 교만하게 까불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께 되게 두들겨 맞고 회심하고는 겸손을 표시해서 작은 자라, 바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소리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 이른바 토착화된 한국의 신학이다. 나도 바울에 대해서 꽤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것은 읽어본 적도 없도 본일도 없다고 했더니 ‘하눅 주석책에는 다 그렇게 쓰여졌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한국의 두 주석책에는 다 그렇게 쓰여졌다고 한다. 그것 모두 거짓말이다. 내가 아무리 떠들어보아도 소용이 없길래 다시 연구해서 가르친다고 했다.


paulos라는 말은 물론 라틴말로 작은(little)이라는 형용사이다. 그러나 아주 흔한 로마 이름이다. 그러나, 사울이라는 말은 큰 자라는 의미가 없다. 그냥 괜히 지어낸 말이다. Paulos(작은)라니까 사울은 큰가보다고 생각했는가 보다. 여기서 사울이 큰자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둘째로 또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당시에 많은 헬라 유대인들은히브리 이름과 로마 이름을 겸해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9에 누가는 거기까기 사울로 부르다가 그 이후부터 바우로 부른다. 그런데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다메섹 회심 사건을 9장에서 말하고 있다. 9장에서 13장 까지는 계속 사울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울이 바울된 것은 다메섹 도상 회심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엇하고 관계가 있느냐? 13장 이후는 바울이 헬라 세계에서의 선교활동과 관계가 있다. 헬라 세계인 로마 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니까 자연히 그의 히브리 이름보다는 로마 이름을 쓴다. 그러니까 행 13장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편지들은 모두 다 헬라말 쓰는 이방 교회들에게 보내느 것이므로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쓰는 것이다. 사울이 바울이 된게 아니라 원래 헬라 유대인들, 특히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히브리 이름 하나, 그 다음에 헬라 이름 하나 중앙에는 바울 가가 로마 시민권을 받을 대에 스폰서 역할을 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름이 세 부분이었다. 나의 스승인 F.F.Bouce의 한 친구가 바울의 가문이 로마 시민권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추측하길 바울의 집안 이 대대로 천막쟁이였다고 하면서 또한 그는 2차 대전 때에 전공을 세운 영국장교여서 군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하길 BC 64년에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서 유대인을 잔뜩 잡아갔다. 그래서 포로로 잡으면 노예가 되므로 그들은 폼페이 장군의 군대에 부역하는 노예가 되었는데 그후 폼페이가 아시아에서의 전투에서 대승하였다. 그래서 이때에 바울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아마 끌려가서 천막짓는 노예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맏은 군대의 야영을 위해 중요했기 때문이다(옛날에는 천막이 아주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그런데 그후 북부 아시아 전투에서 폼페이 장군이 대승하여 그때에 전공을 세운 이유로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그중에 아마 바울의 할아버지는 바울 만큼 똑똑했는지 하여 공을 특별히 많이 세우고 로마의 시민권을 받게 되었고 바울 가문은 어쩌면 시민권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그런데 근거는 하나도 없다. 다만 바울의 집안이 천막쟁이였다는 것과 당시 천막쟁이가 군대에게 유용했고 폼페이가 노예를 많이 잡아갔다는 듯의 여러 주변 몇가지 사실은 얼기설기 해서 그럴 듯하게 소설을 쓴 것이지 진짜는 하나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바울의 가운데 이름을 Pompey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운데 이름은 모른다.


(1)바울이 원래 베냐민 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의 가자 위대한 인물은 이스라엘 초대 사울왕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고 지었을 거이다.


(2)중요한 것은 다소 출생이었다는 것이데 다소는 로마의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경계위치에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이었으며 헬라 도시여서 희랍과 동양의 인종과 문화가 섞였던 곳이다. 또한 그 지방의 수도로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하여 철학과 수사학의 학교들이 있었고 상당히 학문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바울의 편지들 중에 나타나는 헬라적 요소들이 바울의 다소 배경에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바울이 헬라 철학과 수사학의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거의 확실하다. 특히 바울과 바울보다 조금 먼서 산 알렉산더의 필로를 비교하면 바울은 필로만큼 헬라적 영향을 받영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소의 회당 훈련이 헬라 문화를 바울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화란의 W.Von.Unnik라는 학자는 행 22;3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증명하려 한다. 바울이 아주 어렸을 때 예루살렘으로 바울 가족이 이주했기 때문에 실제로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다소의 영향을 별로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행22:3에서 바울은 자기의 자서전적 자료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다. 내가 다소에서 낳고 이성(예루살렘)에서 자라고 이 성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내가 교육을 받았다(이것은 Von. Unnik이 증명한 바 없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자서전을 쓸 때에 또는 어떤 사람의 전기를 쓸 때 인생의 성장기를 이처럼 3단계로 말한다. 어디서 낳고 어디서 자라고 어디서 교육 받음을 말한다.


이런 것을 보면 교육받는다는 말은 자란 것과 교육받은 것이 같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란 것이 교육받은 것보다 앞설 수도 있다. 따라서 교육받는 것이 보통 7-8세부터 시작된다면 자란 것은 최소한 이때부터 이거나 아니면 그 전부터라는 말이다.


바로 이런 자료를 근거로 해서 W.Von.Unnik는 말하길 바울이 5-6세쯤에 바울의 식구가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해서 바울이 당시 헬라세계의 자서전적 서술방식으로 자기가 다소에서 낳고 다소에서 자란 다음에 예루살렘에서 교육받은 것이 아니고 다소에서는 다만 낳기만 하고 아주 어렸을 때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서 예루살렘에서 자랐으며 거기에서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사실 헬라적인 배경은 아주 약한 것이고 오히려 예루살렘 배경이 강한 것이다.


행 22:3에서의 ‘바울은 어렸을 때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라서 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결론과 잘 화합을 이루느 또 하나의 바울 배경의 요소는 바울이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바리새적 교육은 예루살렘에서만 가능했다. 유대 땅에서만 가능했다. Diaspora 세계에서는 바리새 운동이 아직 확산되지 않았고 또 어쩌면 바리새 운동은 확신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유대땅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바리새인이었다는 사실도 바울이 예루살렘과 더 밀접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이 스승은 랍비 가말리엘 1세라고 한다. 왜냐하면 가말리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랍비가 또 있기 때문이다. 가말리엘의 아들 2세가 또 있었다. 그 가운데 바울의 선생은 할아버지 도는 아버지에 해당하는 가말리아 1세 밑에서 공부했다.


또한 바울은 자기가 히브리인이라고 한다(고후11:22/빌3:5).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Εβραιος라 하는데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Ελληνιστης 라는 말과 반대되는 말이다.


Ελληνιστης의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지금도 일부 토론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다수 의견이 무엇이냐면 헬라 이방인이 아니고 헬라유대인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밖의 로마 지국에 흩어져 사는 diaspora 유대인들로서 모국어인 아람말을 잊어버리고 헬라말을 쓰는 유대인들을 Ελληνιστης라고 한다.


반면에 Εβραιος는 diaspora 세계로 이민한 지 최근이어서 아직도 뿌리가 남쪽 유대 땅에 있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그래서 언어도 힙리아(아람)말을 모어로 쓰는 사람들이다.


미국에 가서 보면 안다. 이민 1세대는 한국말을 쓴다. 2세대 부터는 한국말을 다 잊어버리고 영어를 쓰는데 거기서 1세대에게 우리나라는 한국을 가리키고 거기에 사는 미국 사람은 미국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2세대부터는 우리나라는 미국을 일컫는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한국인이라 하면 아직 한국 말하고 한국을 우리 나라라고 하는 이민 1세대를 가리킨다. 2세대는 소위 미국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민 2세대를 헬라 유대인이라 할 수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배경을 알 때 바울이 스스로를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자기가 diaspora로서 자기가 태어난 다소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려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거기서 자라고 아마도 아람어와 헬라어, 둘다 모국어로 쓰며 교육받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는 다소 출신으로서 Ελληνιστης로 통하였고 다시 로마 세계 diaspora로 나오면 Εβραιος로서 인정된 것 같다.


그래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에서 말하길 예루살렘을 팔면서 고린도에 침투한 거짓 사고들이 자기들야말로 순종 이스라엘 히브링ㄴ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주장하니까 바울 자신도 ‘자도 그 사람에 비하여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면서 ‘나도 이스라엘인-히브리인이고, 내가 아람어로 하기로 하면 그들보더 더 잘한도 조금도 자기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의 사상적 배경은 거의 유대교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어떻게 헬라어를 잘하고 또 헬라 문화,종교적인 논술을 그 편지들에 반영하느냐?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레스틴과 예루살렘이 BC330년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 땅을 정복한 이래로 유대 땅은 계속해서 헬라 사람들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비록 BC 160-164년 정도까지 80-90년동안 마카비 형제들에 의한 하스모닝나 왕가의 유대왕국 지배가 있었짐나 하스모니안 왕가도 이때쯤 되면 이미 헬라화된 왕가였다. 그래서 BC 330년부터 바울 당시까지 AD35년이라고 하면 약 350년 동안 헬라 사람들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헬라말이 예루살렘에서 아주 많이 통했고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묘비라든가 또는 묘에 갇힌 부장품 같은데 보면 헬라말과 아람말이 같이 쓰이고 있었고 예수의 제자들 중에도 헬라 이름을 가진 안드데아,빌립 등이 있었다. 보통 헬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헬라말이 아주 많이 통했다. 심지어 랍비학교에서도 헬라 말을 가르치고 헬라 철학도 조금 가르쳤다. 그래서 헬라의 철학 사상 또는 종교사상이 유대교에도 많이 영향을 주어서 쿰란 문서에도 보면 헬라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도 헬라 문화를 충분히 바울이 얻을 수가 있었다. 또 바울 보다 조금 늦게 산 사람이며 예루살렘 출신 유대인으로 처음에는 유대 국수주의자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로마에 부역한 헬라말을 매우 유창히 쓴 학자가 바로 요세푸스이다. 요세프스가 원래 예루살렘 출신 열혈당 장군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스물 몇 살 부터 장군이 되었다고 자기 자랑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에서 쓰고 있다. 나중에 주후 67년 쯤에 에스파시안 장군한테 항복하고 그 사람이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자기가 계시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에스판시안이 아중에 드디어 황제가 된다. 그래서 그는 완전히 유대민족을 등지고 그 사람은 중의원에서 로마 황실에서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거기서 요세푸스가 많은 책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헬라어가 유창한헬라어이다.


그래서 바울 당시에 팔레스틴에서도 유창한 헬라어를 배울 수가 있었고 헬라의 사상적인 영향을 접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헬라어는 유대교를 통해서 중계된 헬라 사상이다. 그ㅐ서 나중에 바울이 이방 세게에서 선교할 때 주로 70인역-헬라어역을 쓰는 이유는 물론 이방 사람들에게설교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울이 벌써 헬라어에 능통하여 헬라어에 익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G.Bornkamm 같은 사람들은 바울의 다소 배경이 후에 그로하여금 이방인들에게로 사도가 되게 하는데 공헌했다고 주장을 한다. G.Bornkamm의 ‘바울’이라는 책이 있는데 상당히 좋은 책이다. 아마 한국말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독일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린 책이다. Ridderbos의 책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조금 구식이지만 구식으로는 제일 잘 쓰인 책이다. 이런 책과 Bornkann의 책과 견주어서 읽으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한국의 보수 쪽에서는 Ridderbos가 교황 다음 쯤 되는데 Ridderbos가 쓴 책중에 가장 훌륭한 책은 ‘바울’책이다. ‘하나님 나라’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다.


G.Bornkamm 같은 사람은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 세계의 전체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 그리고 헬라 언어를 배우고 헬라 문화에 익숙하여서 팔레스틴 우물안 개구리로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세계적인 선교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게 설득력있는 설이 못된다.


첫째로 바울은 설령 팔레스틴에서 자랐지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에 대한 의식이 항상 있었을 것이다.


둘째 앞서 이야기 한대로 예루살렘 스스로가 헬라 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로마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서 헬라 언어와 문화를 습득할 수 있어서 헬라 세계에 대한 의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지역이었고 또한 당시 유대교는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교의 선전을 열심히 했던 때이다. 특히 헬라 세게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이 이방의 우상숭배체 참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상 숭배의 헛됨과 미련함을 증명하고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이 옳고 유대교의 율법에 의한 삶의 청결함, 순결함, 의로움 등을 굉장히 자랑하는 문서들을 많이 발달시킨 때였다. 그래서 바울이 그런 것을 많이 미리 접했을 것이다.


또한 갈5:11에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전에는 할례를 선포하는 유대 선교사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 받고 나서는 할례와 율법을 선포하는 유대 선교사가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선교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를 들어 G.Bornkamm도 이렇게 주장한다.


바울 당시에 유대교에는 선교사라는 직업이 없었다. 또 선교사라는 이름도 없다. 오늘날까지도 유대교는 선교사라는 이름이 없다. 유대교에는 구조상 선교사가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토론에서 요세푸스의 책이 중요한데 그의 책을 보면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아디아비니 왕한테 가서 모세 율법을 갈쳐서 그 왕으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유대교가 당시 헬라 사람들에게 선교를 했느냐? 않했느냐?를 토론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또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욕할 때 ‘너희들이 제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산을 넘고 바다를 거치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고 하나를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갈 자로 만들다’는 말도 이 context에서 많이 토론이 된다. 이말은 어뜻 보면 유대 선교사가 유대교 신봉자 하나를 얻기 위해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넌 것 같이 그렇게 열심히 헌신적으로 일한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요세푸스 이야기와 예수의 말씀이 이런 갈등을 있을 때 토론이 된다.


앞어 이야기한대로 바울 당시의 유대교는 선교사가 있지 않았다. 아시 말하면 한 종교 공동체에 의해서 그 공동체의 신앙을 선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는 정식으로 없었다는 말이다. 바로 요세푸스가 이야기하는데로 아나니아같은상인이 장사하는 동안에 사적으로 자기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에게 모세 율법을 가르치고 여호와를 증거해서 유대교 신봉자는 얻는 일을 더러 있었겠으나(요세프수는 아나니아를 바리새인이라고 한다)특히 예수 말씀을 유의해서 diaspora유대인들의 증거로 유대교의 매력을 느낀 이방인들을 팔레스틴 유대인들이 ‘아, 저런식으로 우리 회당에 한 발 걸치고 있으면 재미 없으니 우리 식으로 철저히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회심시키기 위해서 그 때에 바리새인이 팔레스틴에서 파송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은 더러 있었을런지 모르나 유대 회당 하나가 정식으로 어떤 사람 하나를 지명하여 ‘너는 유대교를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파송하는 이런 일은 유대교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다메섹 도상 회심 전에 혹 할례를 선포하는 일을 가끔 했어도 그것은 전적으로 비직업적인 것이고 비항구적인 것이고 아나니아와 같이 장사같은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 가끔 자기와 접촉하는 사람에게 몇 번 소개한 정도였을 것이라는말이다.


그래서 바울의 배경이 바울이 나중에 이방인 선교사가 되는데에 공헌을 했다는 것은별로 신빙성이 없는 논지이다.


*바울의 신학적 배경*


바울은 도대체 다메섹 도상 회심 전에 어떠한 신학을 가지고 있었느냐? 여기서 중요한 구절, 빌3:5,6에서 두 문장이 나온다. 이 구절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 회심 전의 자기 과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팔일만에 할례받은 언약 백성의 일원’이었다. 곧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주신다. 베냐민 지파이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 히브리인의 원래의 의미는 diaspora세계에 사는 사람은 모국어(히브리어-아람어)를 지탱하는 사람이다. 그의 부모들이 일찌감치 팔레스틴에 이주 간 것을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엄격히 말하면 Ελληνιστης인데 자기가 이렇게 말한다. 다음 두 구절이 중요하다.


κατα νομον φαρισους
κατα ζηλος διωκων την εκκληια


이 두문장에 바울의 신학적인 입장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빌 3:5의 “ κατα νομον φαρισους”라는 구절이 바리새인을 가장 잘 정의하는 말이다.


예수 바울 당시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정확하게 어떤 신학적인 견해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대강 알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오늘날 우리는 바리새인이 누군지 알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바리새인이라는 말 자체도 잘 모른다. 설이 두가지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학자 J.Nensner는 신약의 증거들, 유대교의 여러 증거들, 랍비 문서들을 다 뒤져 가지고 바리새인에 대한 책을 썼는데 거기보면 한마디로 바리새인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거의 확실한 것은 바리새인들이 충산층의 경건운동으로서 율법지키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청결운동-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출 19:5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상을 완성해야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출 19:5에 인용된 벧전 2:9에 그래서 교회에 전가된 하나님의 이상이 ‘너희들은 왕은 제사장들’이다. 원래 히브리어로는 ‘너희들은 제사장들의 왕국이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제사장들의 왕국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비록 제사장들이 아니고 평신도 중간층 신분이었지만 ‘제사장적 이상’인 순결을 완성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자기 몸을 깨끗이 하려고 목욕하고 기도하기 전에 손을 씻고 밥먹기 전에 손을 씻고 하는 이러한 제의적인 순결성을 유지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전에 제사장들에게 적용되었던 레위기의 율법들까지도 자기들에게 적용할려고 애쓴 사람들이라는 것을 거의 확실히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았는지 잘 모른다.


J.Nensner에 의하면 또 하나 확실히 알 수있는 것은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지어 채소까지도 십일조를 했다. 그래서 박하라는 것도 드렸다. 그래서 예수님이 ‘채소까지 십일조를 열심히 한 놈들이 형식을 잘 갖추었는데 외식하는 놈들이다’고 한다.


그런데 빌3:5에 대한 말이 바리새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말이다.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바리새인을 정의하니까 제일 정확하다. 그래서 나의 스승 O.Betz는 κατα νομον φαρισους 가 바리새인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한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은 율법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바리새인이 되었다. 바리새인의 바리새인됨은 율법에 의해 결정된다. 바리새인은 율법에 가장 철두철미한 사람들이다.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지킨 사람들이다. 그래서 율법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자기가 더할 수 없이 철저히 율법주의자 바리새인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바울의 신학적 배경은 율법을 하나님의 계시로 철두철미하게 믿고 그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연구하고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겠다고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으로 열성(κατα ζηλος)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자기가 교회를 핍박한 자다를 것이다. κατα νομον φαρισους와 κατα ζηλος가 평행절을 이루고 있다. 이 때의 열성이라는 말은 심리학적인 카테고리가 아니라 신학적인 카테고리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열성’은 이른바 ‘열성 신학의 전승사’를 가지고 잇다. 열혈당원 이름이 ζηλοται ‘열성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의 모범은 바로 마카비 형제들이었다. 그러니까 주전 164년에 유대교를 폐하고 각 동네마다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모든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신상에 와서 제사하고 절하라고 할 때에 ‘모딘’이라는 동네의 제사장이었던 마카비 형제의 아버지, 마카티아스가 안티오쿠스의 영을 받드는 헬라 장교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거기에 동조한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하나님의 명예와 언약의 율법에 열성을 가진 사람은 나를 따르라’고 해서 드디어 이른바 그 유명한 카마비 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마카비 형제들은 언약과 율법, 하나님의 명예와 이스라엘의 순결을 위해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마카비 형제들은 비느하스를 모범으로 가지고 있었다. 비느하스는 아론의 손자로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에 이스라엘 사람 하나가 가나안 족속하고 동침하므로 비느하스가 그를 창으로 찔러 죽여서 피를 흘렸다. 그는 하나님의 명예와 이스라엘의 순결을 위해 그의 열성이 불타서 그랬다. 그래서 비느하스가 열성 신학의 대표자이며 창시자이다. 민25:1-18/시106:21/ 마카비1서 2:21,26,54/마카비4서18:12 등등에서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위해 열성을 가진자로서 이스라엘의 순결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를 창으로 찔러서 피흘림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속죄의 제사로 인정되었다.


마카비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마가비 1서 2:23f에 보면 이스라엘의 순결을 짓밟고 율법과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을 죽임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열성신학의 전통’은 이스라엘 그리고 그 신앙,성전의 순결을 회복하기 위하여 율법을 어기는 자들을 징범하던 운동이다. 특히 외세와 합류하여 유대의 정통신학에서 벗어나는 유대인들을 제일 먼저 그리고 혹독하게 핍박하고 외세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운동이 열성운동이다. 전통신앙에서 빗나간 이단자의 피를 흘리는 것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속죄하는 제사로 생각했다(민25:13).


그러면 어떻게 이스라엘의 순결을 더럽히고 정통신학을 더럽히는 자들이 누구냐? 물론 마카비 시대에는 헬라인들, 셀류키드 왕조와 불의하게 협조하는 자들이다. 로마 시대-예수 당시,바울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과 협조하는 세리들,장사치들,일부 사두개파등 이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거기에 그리스도인들도 들어가게 된다. 요16:2에서 출회하는-너희를 이단자라고 회당에서 내쫓는 일만 발생할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너희를 죽이는 자들이 너희를 죽임이 곧 하나님께 예배-속죄의 제사를 하는 것이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열성의 신학’이다. 그래서 열성의 신학은 항상 피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광과 언약과 율법과 이스라엘의 순결을 위해서, 그 길에서 어긋나고 그것들을 더럽히는 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열성의 신학’이 나타났다. 그래서 ‘열성의 신학’은 항상 피를 동반하고 폭력을 동반한다. 그래서 피흘림이 이스라엘에 대한 속죄의 제사로 인정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바울 당시의 열혈주의자들도 이렇게 폭력적인 운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의 신학적인 과거를 바로 그 유명한 열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되 폭력으로 했다. 갈1;14/빌3:5 등에 보면 ‘교회를 잔해했다’-곧 폭력을 휘둘렀다. 그렇다면 바울이 우리가 말하는 주후 66년에 로마 전쟁을 일으킨 열심당원이었느냐? 아마 거기가지는 안갔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활동한 것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32-34년 사이로부터 64-65년 네로에 의해 수교당할 때까지 일 것인데 빌립보서를 언제, 어디서 썼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로마의 감혹에서 썼다는 옛전통적인 견해가 옳다면 나는 62년이 후에 쓴 것으로 본다.






AD 32-34 AD62 AD65-66
?다메섹 회심 ? ←----?빌립보서 씀 ?전쟁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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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빌립보서를 가이사랴나 에베소 감옥에서 썼다면 그 전에 썼을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바울이 32-34년 쯤 열혈당 원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가지고 AD66년에 드디어 전쟁을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빌립보에서 이 전에 자기의 신학적인 과거를 쓰고 있다. 이전에는 보수 바리새인들이 특히 shammai학파의 영향을 받은 보수 바리새인들이 나중에 열혈당으로서 정치,군사 운동을 발전하는 그런 사람들의 경향을 점점 쌓아가고 있었다. 저점 열혈다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아마 32-34년쯤 열혈당원은 아니지만 신학적으로 그들과 사상적인 뿌리를 경향을 같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신학적인 배경을 조금 더 정확히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보다 조금 전에 팔레스틴에 큰 두 학파가 있어서 팔레스틴에 예수 당시부터는 점점 랍비 학파들이 점점 일어나기 시작하여 랍비가 자기 집에서 랍비 학교를 시작한다. 그런데 나중에 AD 100년 이후 특히 AD3-4이후 랍비들이 자기들의 가라침의 전승을 소급해서 거슬러 올라갈 때 예수 당시 다양했던 랍비 학교들을 대개 큰 두 학파로 從道를 했다.
하나는 Shammai학파이고 하나는 Shammai제자로 시작한 Hillel학파인데 Hillel은 바빌로니아에서온 유대인으로서 Shammai 학교에서 율법을 배웠다.


Shammai은 아주 극보수자이고 Hillel은 자유주의자였다. 그런데 나중에 랍비 정통에서는 Hillel학파가 승리한다. 그래서 지금의 랍비 문서들을 읽어보면 Hillel을 많이 칭찬하고 Shammai가 아주 인간성이 좋지 않은 앞뒤가 꽁꽁 막힌 사람으로 나온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이방인 하나가 Shammai한테 와가지고 “라비여 내가 발을 하나를 들고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을 나에게 가르치면 내가 할례를 받고 유대인되 되겠소”하니까 Shammai가 몽둥이로 두들겨서 쫓아버렸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또 Hillel학파에 가서 똑같이 말했다 그러자 Hillel이 말하기를 “아 간단하다. 남이 너에게 해주지 않기를 바라는대로 너도 남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 이른바 예수의 사상수훈에서의 황금률의 부정적인 표현을 말하면서 이것이 율법의 전부라고 했다. 예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긍정적인 표현을 했는데 Hillel은 부정적으로 표현해싸.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지 않은대로 너희도 남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말라. 남이 너에게 뺨을 때리는 것을 원치 않으면 너도 뺨을 때리지 말라는 것이다. 황금률의 반대를 말해서 그 사람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Hillel은 이렇데 율법에 대해 자유주의자였고 Hilel은 인간성이 풍부했고 또 이방인들에 대해 열려진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유대인들로 환영했다. 반대로 Shammai는 꽁꽁 막힌자로 율법주의자로 인간성이 부족했고 이방인들을 반대하는 국수주의자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사상적으로 Hillel학파에 속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단 바울의 사상이 상당히 자유주의적인 면에서 봤을 때 이방인들에게 열려진 태도로 인해 Hillel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울의 선생 가말리엘은 지금까지는 Hillel의 손자로 보았다. 그래서 Hillel의 손자 가말리엘에게서 Hillel의 가르침과 사상을 바울이 이어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열려진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이미 이방인들에게 율법(할례)을 전하는 선교일도 종종 했을지도 모른다(갈5:11). 그랬다가 나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연히 이방인 선교로 나갈 수 있도록 다 준비가 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특히 J.Jeremias는 전통 견해를 좀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 바울이 구약을 해석하는 방법과 Hillel이 구약을 해석하는데 도입한 이른바 미돗트라는 방법을 비교해 볼 때 바울이 Hillel의 개발한 구약해석방법을 택했다. 그러니까 바울이 Hillel학파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까지 증명할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주로 J.Newsner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가말리엘이 Hillel의 손자이기는 커녕 Hillel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 더러 도리아 가말리엘이 사상적으로 Shammai학파에 가까왔다. 바울의 선생 가말리엘은 위대한 학자였다. 그래서 가말리엘이 죽었을 때에 랍비 문서에 ‘의가 세상을 떠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가말리엘이 위대한 학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말리엘의 가르침은 별로 전승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말리엘이 위대한 하자라는 것이 랍비 문서에 나오는데 실제로는 가말리엘의 가르침은 몇개 전승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 몇개 안되는 가말리엘의 가르침의 전승을 분석했을 때 아주 보수적인 Shammai학파에 가까웠다. 따라서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Hillel학파가 아니고 도리어 신학적으로 Shammai학파에 가까왔을 것이다. 이것을 더욱 뒷받침하는 것이 열성 신학이다. 열성신학은 Shammai 학파에더 가깝다. 그래서 빌 3:5이 바울의 신학을 도리어 Shammai학파에 가까운 신학으로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자랐다는 것도 J.Newsner의 연구에 의하면 도리어 Shammai학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신학적인 배경을 이렇게 요약할 수있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 바울은 아주 극단적으로 보수파 바리새인으로서 Shammai학파에 속하였고 열혈당의 신학적 동기로 교회를 팝박한 자였다. 이렇게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자로서 이방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방 선교사로서는 전혀 부적격자였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바울의 신학적 배경을 보았다.


2.핍박자 바울
율법과 조상의 전통을 위한 열성을 가졌던 바울은 모세 율법과 성전을 나사렛 에수의 이름으로 비판하던 그리스도인들, 특히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스데반을 중심으로 한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과 성전을 비판했다. 스데반의 긴 설교에서 알 수 있다. (행6장 7장 특히 6:11,13ff) 그래서 스데반을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욕했다고 고소한다 .그러니까 열성당원은 율법과 성전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싸웠다. 이처럼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열성을 가졌던 바울이 자연히 율법과 성전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비난하던 그리스도인들 특히 헬라 유대 그리스도인들(Ελληνισται) 그중에서도 스데반 그룹을 핍박했다.


왜냐하면 Pirqe Aboth 라는 미쉬나의 조그만 책이 있다. 이 책의 1:2을 봄녀 세상이 세 기둥 위에 서 있다. 세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데 곧 율법과 성전 그리고 선한 행위의 세 기둥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이다. 온 세상이 율법,성전,선한행위의 세 기둥 위에 지탱된다. 이런 옛날 말들은 그 숙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가 항사 생각해볼려고 해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 그리고 선한 행위는 도덕적인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이 세개가 없으면 하나님의 계시가 없으면, 이 세상이 암흑이 빠지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없으면 인간이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가지고 다 자기 주장이 있어 거지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한 행위가 없으면 또 마찬가지이다. 구구 절절이 맞는 말이다. 그들은 세상이 율법,성전,선한 행위 이 세 기둥 위에 지탱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중에 두가지를 공격하니 그냥 놔 주어서는 되겠는가? 당장에 비느하스이 열성, 마카비의 열성이 나오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잡아 죽여 피를 흘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갈1:13/빌3:5ff/행22:3ff 를 보면 바울은 자기가 율법에 대한 정열 때문에 교회를 핍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왜 교회를 핍박하였는지의 한가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율법을 어겼다고 보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첫째 이유이다.


둘째 이유는 아마 갈 3:13에 나오는 것 같다. 갈3:13에 신 21:23이 인용이 되어 있다. 당시 신21:23은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이해되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하면 갈 3:13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최근에 이것을 확인하는데 4Q Nah 7ff에서 바로 신21:2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어 있다. 또한 11Q Temple(11번째 나온 Temple scroll이라는 문서) 64:6-13에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에게 신 21:23을 적용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21:23이 당시 십자가에 못박혀 죽거나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한 신명기 이해에 의거해서 유대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힌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부화시키고 높이신 그리스도라고 선포하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포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이 저주했는데 그 저주한 증거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신21:23)이 예수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목박혀 주저받은 예수를 부활시키고 높이신 메시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메시야는 정의상 하나님의 축복의 채현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주 받은 자를 높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 우편에 높이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자기가 저주한 자를 그리스도로 세우는 모순을 하나님께서 범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메시야라고 선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케기르마가 율법의 열성을 가진 바울에게도 거슬린 것이다. 그래서 아마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근본이유가 될 것이다(행5:30/10:39/13:29/벧전2:24).


또한 저스틴 마터,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유대인 Thipo와 나눈 대화편의 39:7/89:1-9을 보면 계속해서 예수가 나무에 달려 죽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받은 것으로 나온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스캔들이었다. 그래서 갈 5:11/고전 1:23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거침돌이 되고....하나님이 저주를 선언했는데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하나님이 축복의 메시야의 증거라고 하니 이것은 거침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이유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유인데 이들은 사실은 한 이유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야인 에예수의 이름으로 율법을 비판했기 때문에 그들의 율법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과 모범에 근거한 것일 분 아니라 그리스도이 십자가와 부활을 구원의 사건을 해석하는 데에도 근거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양자택일을 하여야 했다. 율법이냐 아니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냐.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게 저주를 선언하는데 과연 율법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 선포하는 십자가에 달린 자가 진짜 메시야야 그리스도냐 이처럼 율법이냐? 아니면 그리스도냐? 의 양자 택일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바울의 핍박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집작이된다. 히브리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기는 했는데 그러나 그들은 보수적으로 유대 지방에 할 수없이 살아야 하였기에 어느 정도 적응하여 핍박을 덜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 특히 스데반에 의해서 대표적으로 볼 수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수의 정신과 예수의 십자가의 구원의 사건을 정확히 이해를 해서 율법을 비판하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메시야라고 활발히 선포하자 바울은 그들을 폭력으로 대항했던 것이다. 그의 율법에 대한 열성에 의해서 그들을 폭력을 핍박한 것이다. 아마 고전 12:3에서 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가 주라고 말할 수 없고 누구나 성령으로 말하면서 예수가 저주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다. 고 한다 .여기서 두번째 문장 ‘예수가 저주 받은 자다’는 말은 바울이 자기가 핍박하던 사람들에게 선언하도록 강요하던 문장형식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가지고 너 많은 사람이 있는 이 자리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저주 받은 자라고 말하라 그러면 내가 놓아주겠다. 계속해서 예수가 주라고 하면 영청신세이고 돌로 쳐 죽인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미 핍박하러 돌아다니면서 예수가 저주 받은 자라고 말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출처 : 잭슨빌 교회개혁포럼
글쓴이 : JaxHope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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