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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낙(Adolf Von Harnack)의 역사신학』

by 【고동엽】 2021. 10. 30.
『하르낙(Adolf Von Harnack)의 역사신학』


하르낙은 성경연구에 역사 비평을 접목시켜 역사적 확실성을 바탕으로 복음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사람이다. 지금까지 교의(Dogma) 중심적인 정통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교의는 인간들이 예수의 복음에 덧붙인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의 신학의 예수의 복음을 기초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복음이므로 우리는 그 복음을 바로 알고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이지만 그의 역사비평은 복음주의 학자로부터 외면될 수 없는 것이며,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던 그의 열정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을 준다.


1. 학문에 대한 열정에 바친 그의 삶


하르낙은 1851년 5월 7일에 지금 러시아의 영토인 도르팟에서 태어낫다. 그는 도르팟과 에어랑겐 대학에서 공부를 한 후, 라이프찌히 대학교에서『영지주의 역사문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얻은 후 1년 안에 다시 『영지주의 문제』를 다룬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그는 25세에 대학교수가 된 후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의 신학을 정립시켰고 베를린 대학에 초빙되었을 때는 연구가로서, 비평가로서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주창자로서 크게 알려진 때였다. 하지만 프러시아의 문화부는 하르낙의 가르침과 고백에 대해 우려해 임명되기 전 베를린 교회의 최고 협의회와 상의를 하였다. 교회의 최고 협의회도 하르낙의 신학과 신앙고백적인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생각 속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가 권위 있게 선포하고 승인을 요구하는 교의는 무관하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약성서에 대한 저자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 했고, 기적에 대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와 교회 사이에는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르낙은 교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문교부의 후원, 황제 빌헬름 Ⅱ세의 추천으로 교수직에 오를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학문적인 업적과 역사가로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프러시아의 학술 회원이 되었다. 그의 학문적인 열정과 학문에 대한 사랑의 샘은 끝없이 흘러나 신약성서, 교부들, 종교개혁과 개신교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1600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교회사에 관한 글을 썼다.


그가 남긴 최대의 업적 중 하나도 1886년부터 쓰여진 3권의 교리사(History of Dogma)였다. 그는 여기서 기독교의 신조들이 형성된 배경과 발전 과정을 역사 비평학적 관점에서 서술했으며, 기독교 교리 형성 과정에서 기독교가 조우한 두 가지 사상 중 영지주의는 비판하고 배격하였지만 헬레니즘은 그대로 받아들여 기독교가 헬레니즘화 내지 지성화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그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긴박한 질문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해답을 제시하려는 데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주로 역사적 연구 자료로 공관 복음을 사용하였고 그 안에서 예수가 가르친 복음(Gospel of Jesus)과 예수에 관한 복음(Gospel about Jesus)1)을 날카롭게 구분하였다.


하르낙은 일평생 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을 얻지 못했지만, 그의 학문적인 성과는 빛을 더해 세습귀족의 작위, 베를린 왕립도서관장의 직위를 받고 빌헬름 황제의 학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신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신학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는 시도를 통해 개신교의 문화를 인류의 문화사 속으로 널리 심는 역할을 하였다.






2. 기독교에 대한 역사 신학적 이해방법


19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는 역사를 통해 모든 학문에 대해 검증하고 확실성을 부여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시대 조류는 역사 신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역사 비평을 통해 신학을 역사적 확실성 안에서 검증해 보고자했다. 하르낙도 그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관찰을 통해 신학을 검증하여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찾고자 했다.


바우어2) 또한 하르낙처럼 신학을 역사적인 관찰을 통해 조명해 보았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에 영향을 받아 헤겔의 <정반합>이라는 역사 발전이론을 따라 기독교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에 있어 기독교는 전체적인 의식의 표현이다. 교리사는 이러한 기독교 정신의 발전 과정으로서 의식은 객관화와 주관화가 갈등하고 분열하다가 종합되어 가는 것이 교리사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하르낙은 바우어의 교리사 이해와는 달리 교리사를 기독교 정신과 이념의 자기 발전으로 보지 않았다. 하르낙은 교의를 기독교 역사 과정의 결과로서 간주하지만 그는 교의를 기독교 근원적인 요소와 본질에 첨가된 부수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하르낙의 역사신학은 기독교에서 근원적인 것, 참된 것, 변화 속에서 지속적인 것을 찾으려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하르낙에 있어 ‘역사학적 이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서술하였다. “역사학적 이해는 어떤 중요한 현상의 독특하고 특이한 본질을, 그 본질이 옷 입고 있는 잠정적인 역사적인 형태들(형식들)에서 구별하려고 애쓸 때만 이룩된다.” 그래서 하르낙은 기독교사와 교리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껍질(Husk)을 추적하여 벗겨내고 복음의 알맹이(Kernel)를 들어내려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르낙은 오늘날에도 복음이 힘을 발휘하기위서는 예수의 복음과 교의의 무관계성을 드러내고, 복음을 교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교의와 제의 속에, 제도 속에 갇힌 기독교를 해방하려면 복음의 발견이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역설하였다.






3. 복음의 본질


그는 기독교 안에서 교의라는 껍질을 벗고 복음의 알맹이를 찾으려면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에게 집중해야하고 또한 그의 말과 사역이 잘 드러난 공관 복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공관복음 안에도 틀이 있어 기적에 대한 것, 종말에 관한 것 등은 복음을 이야기하기 위한 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예수의 인격과 가르침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4.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와 그 도래, 두 번째,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 영혼에 대한 무한한 가치, 세 번째, 보단 높은 의와 사랑의 계명이다.


하르낙은 전통적인 종말론적인 견해를 버리고 현재에 이루지고 있는 하나님의 내적 통치를 말하였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에게 도래하여 그의 영혼 속에 들어가 그를 붙잡으므로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들의 가슴 속에 이루어지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그것은 능력 가운데 계신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견해에서 볼 때 외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와 관련되는 극적인 요소들은 사라지고 말며 미래에 대한 모든 외적인 소망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부터의 축복, 순수한 종교적 축복인 것이다. 즉 한 인간의 전 존재 속에 침투하여 그것을 지배한다. 겸손한 자에게 임하여 새롭고 기쁜 삶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밝히 보여준다. 이것을 예수 자신이 발견했고 제자들이 발견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아버지시고 그의 자녀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신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과 인간의 영혼이 너무나 소중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설교의 본질적인 것으로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그의 섭리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의 지위와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의 개념들 속에 복음의 전부가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복음은 성서에 증언된 계시의 종교(실증종교)가 아니라 종교 자체이다. 이 종교는 주체와 개체,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대립을 넘어서 영원한 것과 관계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모든 자녀들은 형제 사랑의 윤리적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보다 높은 의와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에 의하여 결합된 종교와 도덕의 근본 문제를 파악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윤리는 종교의식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성향과 동기에서 나오는 보다 높은 의인 섬기는 사랑과 겸손의 삶이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친 복음적 삶인 것이다.






5. 복음의 문제들


하르낙은 예수가 가르친 복음의 근본 요소들을 통해 복음과 관련된 6가지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첫째, 복음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현실적 도피적인 금욕주의 삶은 복음과 무관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세상은 우리가 이겨나가야 할 대상이지 피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예수가 요구한 것은 금욕적 도피가 아니라 자기 부정과 자기희생의 사랑이었다.


둘째, 복음과 빈곤과의 관계에 있어 예수는 경제적 가난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영적, 정신적 가난을 말하였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회개혁자가 아니다.


셋째, 복음과 법과의 관계에 대해서 하르낙은 복음이 근본적으로 정치 질서와 같은 세속적 질문을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복음과 노동과의 관계에 대한 문명의 문제에 대해서 하르낙은 같은 입장을 취했다. 노동과 문명의 발전이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최고의 이상이 되지는 못한다고 했다.


하르낙은 마지막으로 복음과 기독론 문제에 대해, 또 복음과 교리와의 관계를 다루었다. 그는 먼저 기독론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 전하는 자라는 의미라고 이야기 했다. 즉, 예수가 “나를 믿으라.”고 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 윤리적, 교훈적으로 산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산 사람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복음과 교리와의 관계에 대한 신조 문제에 대해서 하르낙은 복음이 교리의 체계나 우주에 관한 철학이 아니고 복음은 영생을 가져다주는 기쁜 소식이요 바른 삶을 가르치는 교훈이라고 이야기 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목음을 전해야지 바울서신이 말한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6. 복음과 교회사


그렇다면 하르낙은 지금까지의 교회사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예수의 순수한 복음이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도전을 받고 영향을 받으면서 변질되었다고 보았다. 때로는 그것이 교회의 순수성을 찾으려는 시도였지만 결국에는 복음에 새로운 요소와 제한점을 부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복음을 단순하게 하여 그 안에 있는 복음의 순수성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 안에 나타난 크리스천의 신실성과 자유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종교, 예수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7. 하르낙에 대한 평가


하르낙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을 우리에게 준다. 첫째, 복음의 본질을 역사학적 방법론으로써 규명하려는 그의 열정과 진리의 인식을 위한 학문의 자유정신은 높이 평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언제나 동일하게 영속하는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둘째, 그의 신학, 특히 복음의 본질을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와 더 나은 의와 사람의 명령으로 성격화 한 것은 현대적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불의한 사회제도를 용납할 수 없고 더 나은 의를 위하여 투쟁하고 사랑의 계명을 실현하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 세상을 향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선교적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들어난다.


첫째, 예수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 원형의 모본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요소이다. 이것은 예수의 삶의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결과이다. 예수는 분명히 도덕적인 삶, 인격적인 삶에 대해 강조하였지만 이것이 그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복음이 역사적 예수가 설교한 내용의 요약이라면 예수는 복음과 무관한 것이 되고 말뿐만 아니라 예수는 더 이상 기독교의 핵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기독론에 대한 오해가 하르낙의 전체 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둘째, 하르낙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관주의적인 내면적인 견해도 비판되어야한다. 하르낙은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적 성격은 껍질이고 현재적 하나님의 지배, 내적인 결속이 하나님 나라 개념의 알맹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간과하게 만들고 현재적 개념의 하나님의 통치라는 한쪽 측면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범했다.


셋째, 구약의 경전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구약은 교양서로서 사람들에게 위안과 지혜를 주고 권고의 책이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민족문제 등 종교의 순수성을 침해하는 요소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수가 말한 순수한 복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소개한 책이다. 또한 성부하나님이 충만하게 들어난 책이다. 이 책을 그저 참고도서 정도로 여기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그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내재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구약의 종말론적인 개념은 거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겠지만 구약 내부에도 내재적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동일하게 드러난다.






8. 결론


하르낙은 어떻게든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혀내고자 했다. 그것을 역사연구를 통해 밝혀내고자 했다. 하르낙은 최초의 역사 안에는 그것이 담고자 했던 목적과 방향성, 순수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하르낙에게 있어 우리의 복음은 문화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그 문화 안에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르낙은 처음 예수가 말한 복음을 찾아 머나먼 여정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을 밝히고자 자신의 온 열정과 전 삶을 드렸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사변적인 형이상학의 기독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기독교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르낙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나도 그의 신학 전반을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복음의 진정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은 내가 신학을 하면서, 목회를 하면서 가져야할 과제일 것이다. “시대, 문화, 인종, 지역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진정한 복음, 복음의 힘, 그것의 영속성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이 우리 신학도의 첫 번째 질문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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