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석의이해
תישׁרב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성경은 창조로 시작하고 구원으로 시작하지 않는다.성경종교는 구원 종교이다. 그러나 구원의 책인 성경은 구원으로 시작하지 않고 창조로 시작한다. 기독교는 창조와 타락과 구원으로 성립한다. 창조가 그 시작이고 근본이며 전제이다. 창조가 있어야 구원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책인 성경은 창조로 시작하고 창조를 제시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으로 창조가 시작되었는지를 웅장하게 제시한다. 모든 종교 문헌들 중에서 성경처럼 웅장하고 장엄한 문장으로 시작한 서책이 없다. 성경만이 창조를 분명하게 선포하고 창조로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수수께기로 우주가 인간에게 제출된 것이 아니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창조 자체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선포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조 사실의 기록이고 창조의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은 상상이나 머리의 고안이 아니라 창조 사건 자체를 기록하고 있다. 이 창조의 기록은 창조주 자신에게서 온 계시이다.
창조 사건에 인간 증인이 없었지만 이 창조의 기록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다. 창조의 시작과 함께 시간이 시작되어 창조는 역사적 사건으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를 역사적 사건으로 계시하였다.
창조가 있으므로 구원이 성립한다. 창조가 모든 존재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창조로 시작하고 피조세계의 모든 일들이 창조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구원도 창조로 시작하고 가능해졌다. 창조없는 구원은 구원이 아니고 멸망이며 무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들이 무로 돌아감을 구원으로 제시하고 주창한다.
창조는 성경 종교에만 있다. 구약에 기초한 유대교와 신구약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에만이 우주의 발생이 창조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고 믿으며 공포한다. 성경만이 창조를 가장 확실한 진리로 선포하는 것은 성경이 창조주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자신이 자기의 창조를 계시하셨으므로 창조를 확실한 진리로 담대히 선포할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창조 자체를 계시하고 설명한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의 기록이다. 창조주 자신의 자기 창조의 계시이고 설명이므로 성경이 창조에 대한 아무런 변명이나 양해를 구함 없이 담대히 바로 창조를 발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는 하나님만의 일이고 다른 어떤 존재의 일일 수 없다. 창조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창조일 수가 없다. 창조가 창조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또 창조기사가 바른 창조의 기록인 것은 창조주 자신의 자기 창조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진리여서 담대히 이 창조를 진리로 전파하고 선언한다.
기독교는 창조로 시작하므로 창조를 선포하고 창조로 시작한다. 창조없는 기독교는 성립하지 않는다. 창조를 제거하고 구원만 말하고 주장하면 기독교가 아니라 그노시스주의가 되고 이방 종교의 해탈이 된다. 이방 종교들은 창조가 거부되고서 성립한다. 창조의 부정내지 창조의 거부로 구원이 성립한다.
그것이 모든 이교의 근본이고 그 구별점을 이룬다. 창조가 부인되면 구원이 아니고 멸절이다. 창조가 인정되고 성립해야만 구원은 구원이 된다. 창조가 부정되면 구원은 존재의 부정이고 개별존재들의 무에로의 소산이다. 그런 것은 결코 구원이 아니고 창조 이전의 무에로의 회귀이다.
그런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고 또 바랄수도 없는 일이며 구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종교 더 정확하게는 창조주가 구원자가 되는 기독교만이 인류의 구원이 된다. 즉 창조가 있는 종교만이 참 종교여서 바른 구원을 제시한다.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셨으므로 구원할 수 있다.
이방 종교들은 구원이 목표이어서 창조에서의 해탈을 그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구원은 창조에서의 탈출이 아니고 죄와 사망에서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창조가 있어야 구원이 있고 창조가 없이는 구원도 성립하지 않는다.구원은 창조주에게서 나 오고 다른 근원에서 오지않는다. 마니교는 모든 창조가 선하고 전능한 창조주에게서 오지 않고 두 다른 근원에서 오므로 구원은 악의 세계인 물질 세계에서의 탈출이다.
그러나 그 구원자는 전능하사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가 아니므로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가 없어서 빛과 어두움의 투쟁의 연속이지 해결이 없다. 다른 이방종교들은 더 심각하다. 범신론인 힌두교나 불교등의 종교에는 구원만 말하지 창조가 없다.
힌두교의 구원은 존재자들이 우주의 영혼인 브라마와 합일하여 인간이 자기의 존재를 상실하는 것으로 친다. 불교에서는 구원 혹은 해탈은 죽을 때 의식의 흐름이 소산되어 무로 돌아가 생의 바퀴 곧 윤회의 과정을 벗어나는 것이다. 육체는 죽음으로 끝나고 의식의 흐름이 소산되어 완전히 개체가 없어지는 것이 구원 곧 해탈이다.
이방 종교들은 만물의 존재를 영원부터 있는 것으로 말하므로 창조에서 혹은 자기의 개별 존재에서의 해탈 곧구원은 자기 개체를 말살하는 것이 구원이 된다. 그런 것은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므로 구원이 아니고 종교가 될 수없다. 성경종교 특히 기독교만이 참 구원 종교인 것은 창조주가 구원자가 되사 구원을 이루므로 참 구원이요 영원한 구원이다. 그러므로 창조없이는 구원은 성립하지 않는다. 구원은 창조가 있으므로 가능해졌다. 구원이 창조의 부정이 아니고 창조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타락은 창조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그 타락은 존재의 변형이 아니고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다. 선한 창조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구원 사역이 시작되었다. 구원 사역은 창조의 부정과 멸절이 아니라 창조의 회복과 완성이다.
천지 만물은 창조되었다. 만물은 영원한 것이어서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천지가 아무리 광대하게 느껴져도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고 창조되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영원하여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 창조되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영원하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자는 창조주 뿐이고 다른 모든것은 다 창조되어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피조세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만이 영원하므로 스스로 존재하고 만물을 창조하였다. 물질이 영원하다고 하는 주장은 진리가 전혀 아니고 거짓이며 성립불가능한 발언이다.
물질이 영원하면 그 개별적인 존재들인 모든 개물도 다 영원해야 한다. 그러나 개물들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질도 다 작은 개물들의 합성으로 성립한다. 따라서 물질이 영원하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고 아무 반성과 사고없이 튀어 나온 발언일 뿐이고 또 증명과 반박을 할 수 없는 자들에 의해서 맹목적으로 수납된 것 뿐이다.
만물이 영원하면 구원도 불가능하고 인간의 존재는 아무 의미도 없는 우연적인 존재이고 불가사의한 존재일 뿐이다. 아무리 인간 자신이 자기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도 그것은 인간의 허구 뿐이어서 의미와 가치 욕구를 채워줄 수가 없다. 무의미한 존재가 자기의 존재를 연속시키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만물과 인간이 창조되지 안했으면 허무한 것 뿐이다.삷의 목적도 방향도 없고 의미와 가치도 없어서 얼마간 먹고 즐기며 고생하다 죽는 비참한 존재일 뿐이다. 창조되지 않은 존재는 어디서 오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단지 무의미의 허공에 잠시 떠다니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현대 물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에서 물질이 스스로 발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 창조된 세계에서는 물질이 있으므로 미세 물질들이 변형하여 나타날 수 있지 스스로 미시적 물질이 자동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무에서는 창조없이 물질이 스스로 발생할 수 없다. 물질이 전혀 없는 세계에서는 그런 물질의 발생이나 변형을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질 세계에서만이 물질의 발생과 변형을 말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다.
모든 천지 만물은 창조되어 존재하게 되었고 다른 방식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창조를 부인하고 다른 방식을 고집하는 자들의 주장은 다 억설이고 창조를 부인하고 싶어서 여러 이론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죄 때문에 생겨난 인간 지성의 반역이고 인간의 다른 존재 방식일 뿐이다.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반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 뿐이다.
변형된 인간의 사고 방식아니면 창조를 시비함을 상상할 수도 없다. 창조가 진리이며 창조만이 만물의 바른 존재 방식이다.거대한 천체나 작은 존재자들도 다 창조로만이 성립되었고 그 존재를 계속할 수있는 것이다. 작은 것들은 만들어지거나 창조될 수 있으나 거대한 것은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지 사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전능한 창조주는 거대한 우주를 단번에 창조할 수 있으므로 단번에 창조하였다.
하늘은 천계를 뜻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주이다. 땅도 천체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 뿐이지 천체요 우주의 한 부분이다. 하늘과 땅은 창조되었다.그것이 천지의 바른 존재 방식이다. 만물은 예외없이 창조주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다른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진리이므로 성경이 말한 만물의 존재 방식이 바른 것이어서 만물은 창조되었다.
이 창조의 진리는 학적 증거와 논증에 의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받아드리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떠한 수학 공식이나 철학적 사고도 증명이나 부정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우주 설명 도식도 그것은 하나의 이론 체계일 뿐이지 창조 사실 자체를 변경시키지 못한다. 존재하게 된 것은 다 창조에 의하지 변하는 개물들이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창조 자체의 탐구로도 창조의 사실을 세울 수 없다. 그것은 만물의 성질을 말하고 그 존재 법칙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존재의 유래는 밝히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존재의 탐구는 그 자체안에 매이고 그 밖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의 유래는 성경 계시로만 바르고 분명하게 말하고 알 수 있다. 만물의 유래는 인간의 사고 영역의 능력과 범위를 벗어나고 사고의 방식을 벗어나기 때문이다.천지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만물은 영원에서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창조로 이루어졌으므로 그것은 시간과 함께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태초는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을 뜻한다. 창조의 경륜은 영원하고 창조주의 창조 작업도 영원에 속하지만 창조역사에 의해서 창조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는 시간 형태를 띄게 되었다.
만물이 더 정확하게는 물질이 존재의 모습을 형체화하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 된다. 시간은 물질의 운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여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면 거기에는 반드시 시간이 나타나게 되어있다.그것이 바로 태초이다. 태초는 창조가 그 존재를 시작한 그 순간이다.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하기 이전은 영원이요 존재하기 시작한 그 순간이 바로 시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혹은 시작에로 표현하였다.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면 시간이므로 시간은 만물 창조와 함께 시작하였고 만물의 존재와 함께 나타났으므로 시간도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대로 시간도 만물과 함께 창조되었다. 따라서 만물이전에는 시간은 없었고 영원이다.
영원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므로 창조후에도 하나님은 영원자로 계시고 영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영원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속하고 시간은 물질과 유한한 피조물들에 속하여 그 유한 개체들의 존재 방식이 된다. 사물들은 시간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면 언재든지 시간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태초는 창조 말씀이 물질로 변형된 그 순간을 지칭한다. 시간은 처음 창조와 함께 형성되었지만 그 다음의 창조 정비는 시간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만물은 시간내에서 존재하고 그 시간내에서 소멸된다. 그 소멸은 시간의 방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사물은 존재하기 시작하면 시간을 그 존재 방식으로 갖고 존재가 소멸되면 그 개체는 시간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시간의 종식이 그 사물의 존재의 끝을 뜻한다.
처음 창조는 첫날에 이루어졌다.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므로 시간이 시작되어 첫날에 만물 곧 천지가 창조되었다. 창 1:1의 창조는 창조 과정의 제목이 아니고 첫날의 창조를 뜻한다. 처음 창조는 전 세계의 출현이다. 이 창조의 전체가 첫날에 출현해야만 시간이 가능하므로 창조는 전체로 첫날에 이루어졌고 그 다음 시간부터서는 정비되었다.
개혁신학에서 말한 것처럼 원시 물질이 처음 창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첫날 창조는 우주의 전체적 발생을 뜻한다. 원시 물질이 처음 창조에서 이루어졌으면 그다음 날들에 천체들이 형성되는 것이 되어 많은 시간을 요하여 6일에 창조가 다 정비될 수 없었다.
처음 창조에서 우주가 그 전체로 형성되므로 6일에 창조가 다 이루어질 수 있었다. 첫날 창조후 모든 만물은 시간의 방식으로 존재하므로 6일간에 정비되게 되었다. 창조주가 권능이 모자라므로 6일간에 정비한 것이 아니고 창조된 모든 만물들이 시간의 존재방식을 가지므로 6일간을 정비에 소요하셨다.
창 1:1의 창조가 첫날의 창조가 아니고 창조의 제목이면 우주는 언제 발생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고 창1:2의 지구의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첫날의 우주 창조에서 그다음의 단계들을 바르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창조주는 전능하므로 온 우주를 창조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할 필요가 없다.
그의 무한한 지혜와 권능 때문에 짧은 순간에 우주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또 그의 창조 경륜은 영원하므로 무한한 권능으로 자기의 경륜을 실현시켜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만물을 출현시켰다. 그의 무한한 권능은 그의 경륜을 실행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무한한 지혜자와 무한한 전능자는 순간에 창조를 이루는 일이 쉬운 일이다. 경륜의 실행의 방식은 계시되지 안했어도 그의 사역의 결과는 나타나서 창조가 순간에 이루어지고 진행되었음은 잘 나타내준다.
태초는 무에서의 창조를 전제하고 내포한다.태초에 천지 창조는 그 이전에 아무런 사물들의 존재가 없었음을 지시한다. 그것이 태초로 표현하고 있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은 무에서 창조되고 무에로 창조되었다. 이미 있는 물질들에서 만상의 정비가 아니고 만물은 무에서 비롯되었다.
맨 시작에 만물 곧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는 아무런 물질이나 무형태적인 사물들이 존재하지 안했음을 뜻한다.무에서의 창조이고 무에로 창조해 넣음이기 때문에 태초라고 밝혔다. 태초가 시간의 시작이므로 태초 이전에는 만물이 존재할 수 없고 영원이므로 사물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태초를 표현하는 브레시잇트 (תישׁארב)는 종속절로 해석할 수 있는 종속 접속사가 될 수 없다. 브레시잇트는 오리게네스의 6경본 (hexapla)에서는 바레셋트로도 읽었음을 밝히고 사마리아 오경도 빠라싯트로 읽었으니 문맥과 창조를 전체로 바꾸는 방식의 독본은 불가하다. 그런 독법은 명백한 문맥이 허락하지 않는다.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기존의 물질을 정비하는 창조는 암시된 바가 없고 또 불가능하다.
처음 창조는 무에서의 창조이므로 창조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창조주만이 자기의 창조를 계시할 수 있는데 그 창조주가 만물의 창조가 무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태초가 만물의 존재의 시작이므로 태초이전에는 사물들의 존재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태초로 무에서 만물의 시작과 시간의 시작을 밝힌다.
무는 발트의 주장처럼 무적인 어떤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아니다. 무적인 것 (das Nichtige)은 형이상학적인 존재여서 하나님이 자기 창조를 처음부터 감싸지 않으면 창조를 삼키는 그런 존재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원론이어서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하나님과 마주섬을 뜻한다. 그러면 마니교가 되어 창조와 구원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무는 글자 그대로 무이지 무적인 것이 아니다.
무는 하나님 외에 아무런 존재자가 없음을 뜻한다. 하나님만이 존재하고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히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존재하므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무는 하나님이 그의 권능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무에 창조를 이루므로 만물이 존재하개 되어 무가 창조 이전의 상태임을 현시한다. 창조가 창조인 것은 무에서의 창조이고 무에로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천지의 창조주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영원자이고 무한자인 한 존재자이므로 그의 이름을 하나님으로 밖에 밝힐 수 없다.창조주는 무한한 영이고 절대적 존재자이므로 하나님이란 자기 호칭만이 합당하다. 창조주만이 유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로고스 곧 성자 혹은 그리스도가 창조자라고 지목한다. 요 1:2-3에 의하면 하나님의 로고스 곧 로고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히 1:2도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고 주장한다.
히 3:4-6에서도 그리스도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임을 분명히 한다. 골1:16도 그리스도가 만물을 창조셨다고 가르친다. 그러면 전통적인 신학의 가르침대로 아버지에게서 유래한 만유를 아들 곧 그리스도가 현창조로 창조하사 창조주가 되셨다고 말해야 한다.
창조는 창조주를 필연적으로 내포한다. 하나님만이 창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경륜을 따라 그의 무한한 권능과 지혜로 천지를 창조하므로 창조주로 불리우게 되었고 그의 권능과 지혜를 확인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가 창조를 이루었으므로 창조는 그의 권능과 지혜를 현시하고 그 지혜와 권능 때문에 창조주로 경배되게 되었다.
창조는 하나님이 무에서 자기와 다른 존재자들을 만들어 자기 옆에 두는 것을 뜻한다. 창조이후에는 하나님은 창조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으로 계시지만 창조주가 되었으므로 창조없이는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창조는 하나님의 신분확인 작업이다.
창조로 하나님이 전능자로 무한자로 영원자로 확인되고 인정되었다. 또 칼빈의 가르침처럼 창조로 하나님이 가시적이 되기까지 하였다.하나님은 창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인격이므로 자기의 경륜을 이루기를 기뻐하사 창조를 이루셨다. 자기의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셨다.
무한한 권능과 지혜도 나타내야 권능과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창조를 이루므로 창조주가 모든 지혜와 권능의 원천이 되었고 그의 영광이 현시되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는 기구이다. 그의 엄위와 권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을 담지한다. 그러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므르는 자리이다. 허공에는 영광이 반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창조로 하나님은 영광의 주가 되었다. 따라서 영광은 하나님에게 귀속하고 그에게만 속하여 그에게 합당하다.
하나님은 창조로 영광이 그의 존재방식임을 확인하였다. 본래 영광은 하나님에게만 합당히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영광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영광은 하나님의 존재에 필연적으로 귀속하고 영광이 없어지면 하나님으로 인정될 수가 없다. 따라서 영광과 하나님의 존재는 분리할 수가 없다.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현시하기 위해서 창조를 이루셨다.
하늘과 땅은 지구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표현이다. 땅도 천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모든 천체와 영의 세계를 포함한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으므로 영의 세계도 태초에 창조되었고 영원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창조전에는 하나님 뿐이셨으므로 영의 세계도 그 전부터 존재할 수 없다.
천지 창조에 하나님은 영들의 세계와 모든 천체들을 창조하셨다. 모든 만물은 다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영들도 영원한 존재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만이 영원하고 그외의 모든 만물은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영원한 존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영들도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창조가 시작되어서 존재한 것이다.
하늘이 먼저 언급되었으므로 하늘의 창조에 영들의 창조가 먼저 임을 알 수 있다. 영들의 창조와 함께 모든 천체들이 창조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천체들이 멀고 너무도 크기 때문에 그 존재가 경이로워서 창조에 의하지 않고 다른 방식 곧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될 만큼 압도적이지만 피조세계에 그런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창조주에 의해서 창조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창조가 모든 만물의 존재 방식이고 그 존재의 시작이다. 존재가 따로 있고 존재자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존재자들이 생겨나므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존재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존재자들외에는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존재의 개념은 존재자들에게서 추상된 것이고 존재가 보편적으로 있으므로 존재자들이 거기에 동참한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를 허락받았다. 그 존재를 허락받은 것이 물질들의 변형이다.
일단 창조가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새로운 창조가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된 영역에서 변화와 변형만이 있을 뿐이다. 창조세계 밖에서 새롭게 존재자들이 출현해서 창조세계로 편입되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무에서 새로운 존재가 출현하여 창조세계에로 편입되어 들어오는 것은 없다.
하늘과 땅이 함께 창조되었으므로 하늘과 땅 밖에 새로운 물질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의 시작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으므로 창조외의 다른 방식에 의해서 존재자들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은 모든 존재자들의 총화이다. 경험의 총화는 세계로 말하여도 모든 존재자들의 총화는 하늘과 땅이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 곧 모든 존재자들의 전체를 창조하셨으므로 다른 존재가 창조에 추가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창조는 완결된 세계이다. 그러므로 창조에는 변화와 변형은 있어도 새로운 창조는 성립하지 않는다. 창조후에는 발전을 거친 창조의 완성만이 있을 뿐이다. 창조의 완성은 이루어진 창조의 완성이지 새로운 창조의 출현이 전혀 아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창조를 보존하시고 보호하신다. 보존과 보호는 새로운 존재자들이 새롭게 추가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창조된 세계는 창조주가 보호하고 보존한다. 그리고 그 창조 목적에 이르도록 창조를 완성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어도 창세기의 창조 기술은 지구를 중심한 창조의 정비를 기술하고 있다. 모든 천체들의 창조 기술은 필요하지도 않고 인간이 감당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기사는 지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전체 창조의 사건과 내용은 창조주의 몫으로 남았다.
따라서 창조의 완성후에 창조의 비밀을 인류에게 공개하실 것이다. 그 때에도 하늘들의 전체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여 창조의 신비는 하나님에게만 속하여 인류의 지식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일거리로 남을 것이다. 탐구가 계속되어도 창조의 비밀은 계시로만 가능해질 것이다.
창조 말씀에 무한한 힘을 동반시키므로 천지를 창조하셨다.창조주는 전능하시므로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손으로 수고함이 없이 말씀으로만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의 말씀은 전능자의 말씀이므로 능히 창조를 이루셨다. 전능자이므로 이미 있는 물질이 아니고 말씀으로만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처음으로 물질적 세계와 영들의 세계가 창조되었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의 전능이요 합당하게 창조주가 되신것이다. 플라톤의 설명에 의하면 데미우르고스가 기존의 영원한 물질을 가지고 현상을 조성하되 자기보다 더 높은 차원인 이데다들에 의해서 만상을 조성한 것이 아니다.
그런 조성은 창조가 아니라 조성일 뿐이다. 창조는 무에서 모든 유를 만들에 내어 무에다가 정열하는 것을 말한다. 조성도 대단한 업적이지만 그것은 창조가 아니다. 창조는 무에서 처음으로 만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창조 작정을 따라 창조하였고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다른 존재와 의논하여 창조를 이룬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는 단독 창조가 아니고 협동이다. 그러면 일은 창조주가 하여도 다른 존재자의 지혜에 의존했으므로 하수인으로서 일한 것이고 자기의 독자적인 사역이 아니다.
이런 창조 사역은 희랍인들에게나 가능하고 성경의 창조애는 불가능하다. 창조는 한 창조주의 단독 사역이고 협동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이루는데만 전능한 것이 아니고 창조 계획에서도 전능하므로 혼자서 계획하고 혼자서 만물 창조를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전능성이다. 창조는 창조 계획과 창조 수행으로 구성되는데 이일을 하나님이 홀로 이루시므로 합당하게 창조주가 되시고 창조주로 불리우게 되었다.
전능한 창조주는 말씀으로만 창조하셨다. 그는 전능하므로 자기의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아무런 어려움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만 하시므로 창조를 이루어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방식이다. 하나님이 전능자이므로 말씀하므로 창조를 이루었다.
말씀에다가 다른 육체적 곧 인격적 수고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전능자일 수 없다는 증거이다. 창조주는 말씀만하므로 창조를 이루므로 합당히 창조주가 되셨다. 무에서 창조하시는데 다른 수고가 필요하지 안했다. 말씀외의 다른 수고를 한다는 것은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조성하였다는 것 밖에 다를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므로 말씀으로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말씀으로 사역하신다. 그것이 창조에서 처음으로 현시되었고 그후의 모든 사역 과정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창조주는 전능자이므로 말씀만 하시고 다른 방법을 갖고 있지않다. 모든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는 다른일들을 다른 방식으로 일하실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만물이 나타났다. 그것도 동시에 나타났다. 거대한 우주가 전능자의 지혜와 작정대로 그대로 물질의 형태로 나타났다. 말씀이 물질들을 이루어냈다. 말씀만하므로 무에 만물들이 진열하여 나타났다. 그가 계획한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말씀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말씀이 하나님의 사역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기 위해 말씀에 무한한 힘을 동반시키셨다. 그 힘이 만물로 형태화하였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말씀으로 표출되므로 그 계획이 그 사물들의 위치와 성질과 법칙이 되었다. 말씀에 무한한 힘을 동반시키므로 모든 사물들은 에너지의 변형 형태로 존재하고 에너지의 변형형태로 그 존재 방식이 바뀌어지면 사물의 변화를 말한다. 힘이 형태화하여 사물을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전능은 힘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계획하였다. 전능자는 계획없이 일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창조를 미리 계획하셨다. 모든 창조가 미리 계획되었으므로 천지는 쉽게 단숨에 창조되었다. 그의 지혜가 무한하므로 그의 창조 계획은 완벽하였다. 완전한 창조 계획은 완전한 창조를 이루어냈다.
전능자는 완전한 계획을 하므로 수고없는 창조를 할 수 있었고 단번에 이 계획을 실현할 수 있었다. 완전한 계획이므로 시행착오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말씀만 하므로 존재하게 되었다. 계획이 영원하므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은 영원하지만 영원한 계획은 영원한 창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계획이 실현되는 것은 물질 형태를 띄므로 시간과 함께 시작하고 시간안에서 진행되었다. 계획의 실현은 계획 작성과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창조 사역 자체는 하나님의 사역이므로 시간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를 이루시고 진행하셔도 그 창조 밖에서 일하시고 하나님으로서 일하시므로 그의 사역 자체도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창조 사역은 창조 세계내에 속하지 않고 시간내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역의 결과는 시간의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의 창조 활동은 영원에 속한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 완전하므로 창조는 하나님의 지혜를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창조는 다 하나님의 작정의 형태화이므로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이다.각 사물은 하나님의 지혜의 반영이므로 사물을 바로 탐구하면 하나님의 창조 지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무한한 지혜로 각 사물이 형성되었으므로 각 사물들이 지닌 지식도 끝이 없다. 하나님의 지식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인간 지혜의 한정 때문에 작은 사물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화 지식을 다 읽을 수가 없다. 하나님만이 사물들에 나타난 자기의 지식을 다 읽을 수 있다.
창조후에는 모든 발생과 변화는 다 창조 내의 사건들이다.창조로 만물의 범위가 확정되었으므로 새로운 창조가 추가되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창조내에서 모든 변화와 발생이 이루어진다. 정해진 창조이후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현재 무에서 사물들이 스스로 발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조 밖에 선 존재자만이 그런 것을 상정할 수 있으나 창조 세계내에서는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무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존의 창조세계의 변형이지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억설이고 억측이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아무도 무에서의 물질의 발생을 관찰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주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창조주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의 투사일 뿐이다. 창조후에는 창조 밖으로 부터 새로운 물질의 유입은 없고 다 창조 세계의 변형일 뿐이다. 물질이 새롭게 무에서 발생해서 창조 세계에 가입한다는 것은 창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 물질의 새로운 발생은 창조가 다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창조가 완결된 현재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창조주의 허락없이 새 창조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세계가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창조가 완성에 이를 때에 새로운 물질의 존재 형태가 나타날 것이어서 그때는 새 창조처럼 보일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경배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다.하나님이 창조를 이루신것은 창조주가 하나님이 되어 피조물들의 경배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지혜와 권능을 인해 그를 찬양하고 경배하지만 합리적 영적 존재들에 의해 경배와 섬김을 받으신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지으셨다.
여기는 아직 인간 창조가 나타나지 안했으므로 인간에 의한 하나님 섬김을 아직 말하기 이르나 모든 창조 기사가 인간 창조를 목표하고 기술되었고 인간의 창조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심을 분명히 하므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찬양과 경배를 기뻐하시며 사람들에 의해 창조주로 인젇되고 그를 인해서 경배받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의 존재 목적은 창조주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땅이 혼돈하고 비어있었으며 어두움이 깊음의 얼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을 감싸시었다.
천지가 창조되어 질서 주입을 기다린다.
창 1:2의 땅의 상태는 창조 직후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천체와 땅이 창조되었지만 빛이 아직 이르지 안했으므로 질서가 세워지지 안해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혼돈과 공허는 무적인 어떤 괴물로부터 창조가 이루어졌으므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아직 질서가 도입되기 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물질과 형체들의 창조는 질서를 내재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다. 질서는 창조주의 섭리이다.
지으신 창조를 다스릴 때 질서가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어진 창조가 창조주에 의해서 통치될 때 거기 질서가 나타나는 법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없이는 질서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그가 창조를 다스려야 질서가 정열된다. 창조된 천지는 그러므로 창조주가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심이다. 수면위에 운행하심은 하나님의 신이 물을 품으심을 뜻한다. ףחר는 부드럽게 움직여 다니는 뜻과 함께 품다는 뜻을 갖는다. 라하프는 수면위를 운행하면서 물을 암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품음을 뜻한다. 피조물은 언제든지 창조주가 보살펴야 보존되고 질서가 유지되지만 이 처음 창조의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여 하나님의 신이 친히 물위를 배회하실 뿐아니라 물과 땅과 모든 창조를 품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모든 창조를 그 손으로 붙드심을 뜻한다. 창세기 저자는 미완료형 분사 תפחרמ 므라헤펫트를 사용하므로 빛이 창조되기 까지 하나님의 영이 친히 땅과 물을 붓들었음을 밝힌다.창조된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질서를 주입해야 혼돈을 벗어나게 된다. 여기 창 1:2가 말하고 있는 것은 창조된 만물이 창조주의 질서 주입을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땅을 먼저 정비하고 질서를 도입하셨다. 땅이 인간의 거주지요 또 하나님의 백성이 살면서 하나님을 섬길 자리이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가 이루어질 곳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구의 정비를 먼저 시작하셨고 창조의 정열을 지구를 중심하고 이루셨다.
그러므로 창조의 첫날을 포함하여 그후에 진행되는 모든 정비는 바로 지구를 중심하고 이루어졌다. 땅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지 안해도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있어서는 창조의 중심이므로 지구가 하나님의 창조 관심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혼돈하고 공허한 것은 지구만이 아니고 모든 창조들의 상태이지만 지구를 정비하시며 빛을 베푸시므로 모든 우주의 질서도 함께 세우셨다.
지구의 정비와 질서가 바로 세워지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후 인간에게서 그의 영광을 찬양받으시고 그 찬양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고 섬김을 받으셔야 하므로 지구의 질서 도입을 먼저 이루셨다. 하나님이 섭리하기 전의 처음 창조 상태는 하늘들이나 지구나 다 혼돈하고 공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조에 창조의 보존은 필수적이어서 창조와 보존 혹은 섭리를 분리할 수 없다.
4. 땅이 혼돈하고 비어있었다.
והבו וחת 토후 와 보후는 질서 도입이전에 질서가 전혀 없는 상태를 표현한다. 정상적으로 움직이거나 그 기능를 발휘하지 못함을 뜻한다. 지구가 창조되어 물질들의 뭉치로만 있고 모든 구성분자들이 제 기능을 행사하지 못함이다. 이것은 발트의 주장처럼 무적인 어떤 괴물에서부터 창조가 나왔으므로 하나님이 은혜로 창조를 그 괴물로 부터 지킴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붙드시므로 창조가 무로 다시 돌아갈 아무런 위험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를 이루셨는데 창조가 위협받는 상태에 있을 수 없다. 또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였는데 어디에서 위협세력이 나타날 것인가? 그런 사고는 하나님의 전능을 바로 고려하지 않음이요 이원론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나타난 미숙한 사고일 뿐이다. 이원론적 세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만이 전능자이시고 그만이 존재자이신데 그가 피조물들을 지으셨으니 창조는 창조주에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이 가르친대로 이 모든 창조가 하나님이 붇드시고 지키시지 않으면 한시도 존재하지 못하고 다 무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창조된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섭리로만이 존속하고 자기 기능을 할 수 있다.
땅이 공허한 것은 땅위에 채워질 식물들과 동물들이 아직 나타나지 안했다는 뜻에서 표기되었다. 뒤에 이루어질 창조 상태를 염두에 두고서 처음 상태가 모든 생물들의 거소가 아직은 못되고 거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혼돈과 공허는 창조가 정비되지 못했음과 정비후의 상태를 염두에 두고서 한 표현이므로 땅이 정비되면 얼마나 풍성해져서 땅이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고 아름다울 것인지를 예시하고 있다.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었다.모든 창조에 아직 빛이 오지 안했으므로 모든 창조가 어두울 뿐이다. 흑암이 깊음위에 있다는 것은 창조된 우주가 얼마나 크고 광대한가를 헤아릴 수 없다는 표현이다. 빛이 아직 창조되지 안했으므로 모든 창조가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광대해서 모든 것이 어두움으로만 보였다는 것을 지시한다. 흑암은 괴물이 아니다. 흑암 어두움은 타락한 세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타락은 창조가 완전 정비되어 정상적인 운행이전에는 불가능한 사항이다. 흑암은 글자 그대로 빛이 오기전 창조를 헤아릴 수 없는 상태이다. 모든 천지가 어두움 뿐이었다.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므로 시작되었다. 빛이 없어도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다 보시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누구도 처음 창조를 볼 수 없음을 말한다. 처음 창조는 아무도 볼 수 없게 어두움으로 감쌌다. 그러므로 처음 창조는 창조주만이 보시고 다음의 단계를 어떻게 정비하실지를 예시하기 위해서 흑암으로 감쌌다. 흑암으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다 알리지 안했음을 말한다.
어두움은 두껍기도 하지만 깊다고 말해야 한다. 거대한 우주에 우두움이 덮어싸고 있으니 깊음이란 표현외에 다른 방식이 없다. 어두움으로 우주의 어떤 괴물을 상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하나님이 처음 창조를 어두움으로 감싸신 것은 처음 창조후 정비까지 시간이 필요했음을 말한다. 요사이 우주 발생론에 의한다면 처음 물질의 상정후 폭발에 이르기 까지 필요한 시간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대폭발이론은 과학적 이론이므로 확실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설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가설이 여러 과학적 증거들에 의해서 증거를 받아 이론으로 세워져도 그것은 과학적 해설일 뿐이므로 확실한 것이 아니고 단지 임시적이고 잠정적일 뿐이다. 다음 세대에서 다시 수정되고 폐기될 것이 분명하다.
어두움은 처음 창조를 감싸심이요 아직 개방하지 안했음을 지시한다. 창조를 공개하는 것은 빛의 도입으로 이루어졌다. 빛으로 창조의 모습들이 피조물들의 눈에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심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를 그의 손으로 붙드심을 뜻한다.창조주는 언제나 자기의 창조를 내어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붙잡아 유지하신다. 처음 창조는 아직 질서가 도입되지 안했으므로 창조주가 친히 붙드실 밖에 없다. 처음 창조 특히 땅을 하나님이 붙드심은 땅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살며 하나님을 섬길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창조는 이제 막 창조되어 모든 사물들이 자기 기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하나님이 자기 손으로 붙드셔야 했다. 어두움 속에서 자기들의 형질들이 다 고정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손을 벌려 땅과 물을 붙드셨다. 물이 아직 다 정비되지 않는 땅위에 출현하였으니 땅위에 잘 붙어있으려면 창조주가 손으로 붙드시는 길 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기 창조를 처음부터 붙드셨다. 따라서 이신론의 주장처럼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다 이루셔서 법칙과 성질들을 넣어놓으신 후에는 스스로 운행하도록 내어버려 두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성립하지 않는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붙드심 없이는 존재를 계속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기의 창조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며 간섭하신다.
하나님의 영을 חור 라고 표현했으므로 바람으로 말할 수 없다. 아직 태양이 나타나지 안해서 기온의 변화가 없는데 어디서 바람이 나와서 물들의 표면위에 움직이며 불어댈 수 있는가? םי?לא חור 루아흐 엘로히임은 성경 전체의 문맥과 교회의 이해에 의해서 성령으로 이해해야 바르다. 삼위 하나님이 모든 창조에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루아흐 엘로히임을 주어로 받는 동사 정확하게는 분사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수면들 위에라고 표현함은 이미 지구가 여러 대륙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지시한다. 바다가 넓고 온 지구를 물이 다 덮고 있었지만 한 바다이었다면 물들의 표면들의 위에 ם?מה ינפ?לע 알 프네 함마이임이라고 표현하지 안했을 것이다. 이미 대륙들과 대 산맥들 혹은 대간들이 세워져서 물들이 땅위의 여러 곳을 덮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로는 모든 지구를 덮고 있었어도 지구상의 여러 구조들 때문에 여러 바다로 구분될 수 있었다고 볼 것이다.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אֹור׃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 빛의 창조는 질서의 도입을 뜻한다.
첫날 첫 순간에 온 우주가 창조되어 창조주의 정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정비의 시작이 빛을 창조하심이다. 빛의 창조는 질서의 도입이다. 빛이 있으므로 사물들이 자기들의 본성과 그 법칙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서는 빛의 창조와 함께 시작한다. 빛이 있는 곳에는 혼돈이 있을 수 없다.
빛을 창조하시므로 천지는 우주가 되었다. 빛의 창조 이후에는 모든 만물들이 주어진 질서와 법칙을 따라서 운행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땅위의 혼돈이 제거되었다. 빛이 오면 혼돈이 계속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혼돈의 제거를 언제든지 빛으로 이루셨다. 죄악 세계에 진행된 혼돈도 빛으로 해결하셨다. 그 빛이 물리적인 빛이 아니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빛일 경우도 동일하였다. 죄가 인간 사회에 도입된 가장 큰 혼돈이었는데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 죄악을 제거하셨다.
따라서 빛의 창조는 빛만의 창조가 아니라 빛의 창조와 함께 질서를 세우심을 말한다. 빛의 창조후에는 혼돈이 제거되고 모든 창조가 자기 질서를 지켰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므로 질서도 세우셨다. 빛이 비춰진 세계에는 언제든지 질서가 지배한다.
처음 빛은 모든 드러남의 근본이다. 빛은 모든 드러남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를 드러내기 위해서 빛을 창조하셨다. 빛이 창조되므로 어두움이 물러가고 혼돈이 제거되어 사물들이 자기의 본성을 다 드러내게 되었다. 어두움을 제거하는 길은 빛을 도입하는 길 뿐이다.
그러므로 어두움에 싸인 창조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빛을 우선적으로 지으셨다. 처음 빛으로 자기 창조를 드러내신 창조주는 빛을 세상에 있게 하므로 계속적으로 자기의 창조를 드러내신다. 빛이 있으므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할 수 있다. 빛이 있는 동안은 창조는 계속적으로 자기의 얼굴을 드러내어 창조주의 지혜를 현시할 것이다.
빛으로 모든 사물들이 그 본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드러남은 다 빛에 속한다. 하나님은 빛으로 자기의 창조를 드러내 보이셨다. 또 피조물들로 빛을 발하므로 자기의 본성과 법칙을 드러내게 하셨다. 빛은 감추어진 것이 드러내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드러내셨으므로 빛으로 지목되었다 (요일1:5). 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로고스도 창조주이시므로 빛이라고 지목되었다 (요1:4-5).
처음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반사이다.처음 창조가 아직 정비되지 안해서 드러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빛을 있게 하셨다. 그 빛은 피조물들에게서 나온 빛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의 반사이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를 자기의 영광으로 비취시므로 우주를 드러내시고 밝히셨다. 그것이 처음 빛을 있게 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정비되지 않은 피조물은 아직 빛을 낼 수가 없었다. 천체들은 어두운 세계를 밝히기 위해서 빛의 담지자들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빛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기를 나타내실 때 빛으로 나타나셨고 빛이 바로 그의 영광의 표현이었다. 종말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나타나므로 새예루살렘에 별들의 빛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계 21:23).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참 빛이므로 피조물들이 발하는 빛을 하나님의 거소에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피조물들의 빛은 피조세계에 타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두루 비취므로 더 이상 다른 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재창조시도 빛을 비추셨는데 더 이상 피조물에게서 나온 빛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하셨다 (고후 4:6). 재창조는 더 영광스런 빛으로 이루어야 처음 창조와는 구분된 영광스런 창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다. 그 영광의 빛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것은 그의 영광의 빛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만 말씀하셨다.말씀하시므로 모든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은 창조의 정비도 말씀하시므로 이루셨다. 빛이 있으라고만 하시므로 빛이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전능을 표현한다. 자기의 손으로 땅을 붙드신 하나님은 빛을 있으라고만 하시므로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 후에 이루질 정비도 말씀하시므로만이 일을 이루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있으라고만 하시므로 있게 되는 것이 창조주의 전능을 뜻한다. 전능자는 손으로 친히 수고할 필요가 없다. 말씀하심으로 모든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도 말로 일을 이루어낸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빛이 생명의 시작이다.하나님은 빛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도입하셨는데 빛으로 생명을 시작하셨다. 무에서 창조된 만물들은 빛이 비취므로 질서를 가져 자기 기능을 행사하여 그 존재 기능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빛은 질서를 세움이므로 사물들이 자기의 본성을 나타내게 하였다. 따라서 빛이 모든 만물들이 존재하여 자기 기능을 다하게 하는 생명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들은 빛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의 모든 운행도 빛이 비출 때에만 가능하다. 현우주의 운행은 다 빛아래서만 가능하고 빛이 비출 때까지 계속된다. 빛이 모든 생명체들과 무기물적인 존재자들의 기능의 시작이고 생명이므로 처음 창조후에 빛을 있게 하셨다. 빛없이 생명의 존속도 불가능하고 다른 존재자들도 자기 기능을 행사할 수 없다. 빛이 사물들의 본성을 드러내주고 그 기능을 행사하게 촉발하기 때문이다.
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וַיַּרְא אֱלֹהִים אֶת־הָאֹור כִּי־טֹוב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하나님이 그 빛을 보시니 좋았으므로 하나님이 그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빛이 하나님의 창조를 드러냈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하나님의 창조가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빛과 함께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현시되었다. 현시된 것은 피조물들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고 권능이었며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므로 빛이 온 우주에 두루 비취게 되어 창조가 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질서와 법이 운행되므로 창조가 선한 창조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빛을 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빛으로 자기의 영광이 드러났으니 창조는 선하고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빛이 좋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만족을 표현함이다.원문대로 번역한다면 그 빛이 좋다고 보셨다. בוט?יכ רואה אריו 와이야레 하오르 키이 토오브. 하나님의 뜻대로 또 명령대로 빛이 이루어졌으므로 하나님은 만족하셨다. 그 빛이 있게 되므로 창조가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영광을 현시하므로 하나님이 만족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셔도 자기가 지으신 것을 기뻐하셨다. 자기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져 드러났으므로 하나님은 만족하사 선하고 좋았다고 하셨다.
빛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대로 이루어졌음을 표현한다.하나님은 자기의 지혜로 모든 사물들을 다 생각하시고 계획하사 이루셨다. 그러므로 명령만 하시므로 그 지혜가 구체화하였다. 빛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빛의 창조에서 즐거워하셨다.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대로 이루어졌으니 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다 선하고 아름다워 하나님이 만족하신다. 하나님은 착오없이 일하사 계획대로 사물들이 조성되었고 빛도 마찬가지로 조성하셨다. 빛이 하나님의 영광의 반사이지만 영광의 반사는 명령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의 사역을 만족하심을 표현한다.
빛을 보심은 빛을 즐김을 뜻한다.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자기의 즐김을 위해서 창조하셨으므로 빛을 지으시고 그 빛을 즐기셨다. 어두움이 아니라 창조가 빛으로 나타났으니 기뻐하시고 자기 손의 조물을 즐기셨다. 따라서 빛의 있음 이후의 모든 정비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즐기셨음을 계속하여 표현하셨다. 빛을 즐기신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즐기시며 지금도 자기 손의 조물들을 즐기고 계신다. 자기의 창조위에 자기의 눈을 두루 두시면서 모든 창조의 구석 구석을 즐기신다. 즐김은 빛이 있어야 가능하다. 빛이 보는 것이므로 보아야 즐길 수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눈은 육체적 눈이 아니지만 빛으로 그의 즐김을 뜻한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심은 천체가 운행하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빛이 비추므로 모든 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그림자를 이루어 빛과 어두움이 교대하게 되었다. 처음 빛이 어디서 두루 비치든지 간에 물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그림자를 형성하였다. 그것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라는 말씀의 뜻이다. 빛이 비취므로 천체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다. 거대한 우주가 빛이 오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천체들을 빛으로 움직이신다. 빛으로 운동이 창조 세계에 도입되었다.
빛으로 창조의 세계에서 어두움은 내어쫓았지만 물체에 의해서 가려진 부분은 어두움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두움도 추방된 어두움이므로 처음 창조의 어두움이 아니어서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비춰진 빛이라도 물체들 뒤에 이루어진 그림자는 어찌 할 수 없다. 그림자도 없이 빛 뿐이면 안식이 없어서 인간이 살 수 없게 된다.
이제부터는 어두움은 빛에 의해서 그 짙음과 깊음이 사라진 어두움이다. 그러므로 그림자로 형성된 어두움은 죽음을 뜻하지 않고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모든 생명체들은 어두움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지만 빛이 비춘이후의 어두움은 죽음에로 까지 이어지는 어두움이 아니어서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빛으로 질서가 주어지므로 모든 천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우주가 움직이므로 그 소리가 대단했겠지만 우리의 귀에는 들리지 않도록 어두움으로 감싸셨다. 또 빛으로 그 소리를 약화하셨다.
빛으로 창조주의 섭리가 시작되었다.빛으로 창조를 다스리시니 창조가 움직이었다. 이것이 창조주의 창조 섭리이다. 창조주는 빛으로 다스리시므로 창조가 창조가 되어 우주가 되었다. 따라서 창조와 섭리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이어진다. 빛이 비추어 모든 창조가 움직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정비는 창조의 다스림으로 나타났다.
창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וַיִּקְרָא אֱלֹהִים לָאֹור יֹום וְלַחֹשֶׁךְ קָרָא לָיְלָה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אֶחָד׃ ף
하나님이 그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으니 저녁이 되었고 아침이 되었으니 첫째 날이니라.
빛을 낮이라 칭하심은 날이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빛을 날이라고 칭하심은 날자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천체들이 움직이므로 시간이 진행되어 날이 되었다. 천체들이 움직이니 시간이 흘러 날이 진행된 것이다. 이제 창조는 빛으로 시간이 진행되어 그 움직임이 날이 되게 되었다. 날은 천체가 움직이는 과정의 단위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심은 활동의 영역을 확정함이다.빛이 활동의 영역이고 어두움은 휴식의 기간이다. 천체는 운동을 쉬는 일이 없지만 밤낮을 확정하므로 창조내에서의 활동은 낮에 이루어지고 밤에는 쉬게 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 모든 생명체는 빛아래서 활동하고 어두움가운데서는 쉬게 되어 있다.
또 모든 천체들도 빛만이 아니고 어두움이 교차하므로 자기 존재와 본성을 유지한다. 빛에서 자기 기능과 본성을 드러내고 어두움에서는 자기들의 본성을 감추므로 수명이 연장된다. 그렇지 않고 노출만 하면 쉬 마모되어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그 수명을 속히 마감하게 된다.빛인 낮에 활동하고 어두움인 밤에 쉬어 자기 존재를 보존할 수 있다.
빛과 어두움의 교대는 각 존재들의 수명을 일정하게 확정하셨음을 뜻한다.하나님은 모든 천체들로 일정한 기간에 활동하고 그이상은 쉬게 하셨다. 그것은 바로 그 존재의 형체 변화를 뜻한다.피조물들이어서 하나님 처럼 영속할 수 없음을 뜻한다. 피조물들은 피조물로 남아야 하고 그 존재 방식을 바꿀 수 없다.모든 천체들은 무한정 활동하는 것같아도 그럴 수 없다.시작된 것은 무한정 연속될 수 없다. 그것들은 자체의 빛을 발사할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하여 운행되고 그 이상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주에서 새로운 별들이 출현한다는 보고의 뜻에 속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 것은 하루가 지구의 운동으로 확정되었음을 뜻한다.모든 천체가 빛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지구도 움직이어서 한바퀴를 돌았다. 그러므로 지구 상에 빛과 어두움이 교차하여 지구가 자기 일을 벌써 잘 수행하였다. 시간은 천체의 움직임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시간의 진행이 지구상에서 잘 이루어졌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는 첫째날은 24시간 하루이다.여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는 지구의 운동을 중심으로 계산되었다. 그러므로 24시간 하루이다. 첫 창조는 거대한 창조이지만 지구의 운동 주기인 24시간대에 이루어졌다. 창 1:1의 창조는 우주 전체 창조이지만 그 시간 표기는 지구의 운동을 중심으로 계산하였다. 지구의 운동은 24시간 주기로 이루어진다.따라서 처음에는 지구가 오랜 시간동안 공전하고 그후에는 24시간으로 운행을 단축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서 지구는 24시간 단위로 운동하도록 하셨다.
또 처음 독자들이 알아듣는 하루는 저녁이되며 아침이 되므로 이루어진 하루이다. 이 하루는 24시간대이고 다른 시간 단위가 전혀 아니다.지금 창조 정비는 지구를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지구의 시간 단위로 말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창 1:5의 첫째날은 지구의 한바퀴 돌음으로 이루어진 하루이어서 24시간대이다.
날자의 지정은 하나님이 시간에 따라 순서대로 일하심을 나타낸다.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창조주가 되셨지만 만물의 정비는 시간을 따라 일정한 시간 구획내에서 일하심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만물의 질서를 위해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정비하신 것이 아니고 시간의 일정 구간을 정하시고 일하셨다.그리하여 모든 정비가 질서를 따라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창조를 정비하시는 일도 순서를 따라 하셨다. 이 일을 위해 하루를 한정하셨다.
하루가 모든 생명체들의 시간의 만족한 단위이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첫 창조를 마감하심을 뜻한다.하나님은 온 우주 창조를 빛으로 운행하게 하심으로 첫 창조를 마감하셨다. 우주의 창조로 첫날을 마감하신 것이 아니고 빛으로 첫 창조를 마감하셨다. 첫 창조는 그 운행을 시작하므로 종료되어 우주가 되었지 혼돈의 상태로 남지 않게 되었다. 법질서를 따라 운행하므로 하나님은 첫 창조를 마감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처음부터서 창조를 우주로 지으셨다. 혼돈은 존재의 시작에서만 그러하고 창조는 처음부터서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우주로 작정되고 우주로 창조되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창조의 종료를 예시한다.첫 창조가 첫날에 이루어졌으니 모든 창조가 다 일정한 기간내에 종료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창조의 정비를 지구의 시간이고 모든 천체들의 시간 단위인 하루를 여섯번 반복하므로 마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그 6일에 창조가 전부 마무리되었다. 6일간 이후에는 모든 창조가 다 완전한 궤도에서 움직이게 되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아침은 재창조의 아침을 예시한다.첫 창조는 완성에 이를 창조이다. 그러므로 첫 창조가 아침으로 시작하지 않고 창조의 마감인 저녁으로 마쳐졌다. 첫 창조는 재창조 혹은 창조의 완성을 바라고 이루어졌다.그 재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하루의 마침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시간에 이루어졌다. 재창조는 부활로 시작하여 부활의 권세로 완성에 이를 것이다.
그 완성에는 아침만 있고 밤이 있지 않다. 창조가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창조의 완성에는 빛만이 있고 또 빛만이 있을려면 별들의 빛으로는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만이 비취게 된다 (계 22:5; 21:23). 첫 창조는 저녁으로 마감하고 다음날로 시작하지만 창조의 완성은 아침으로 시작하여 빛이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창조의 빛은 영광의 빛이 완전히 비췰 때까지만 유효하다. 처음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비쳐졌지만 재창조는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비취인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더이상 어두움은 없다. 하나님의 빛이 직접 비취므로 생명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 충만한 하나님의 생명은 빛으로 보충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창 1: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אמֶר אֱלֹהִים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וִיהִי מַבְדִּיל בֵּין מַיִם לָמָיִם׃
하나님이 말씀하사 물들 가운데 펴짐이 있으라 하시고 물들을 물들로부터 나뉨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새로운 창조 사역을 시작함을 지시한다.하나님이 새로운 창조 사역 곧 창조 정비의 새 사역을 알리심이다. 하나님은 새일을 하실 때마다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창 1:6의 궁창은 둘째날에 이루시는 일이므로 말씀하사 일을 이루셨다. 하나님의 사역의 방식이 말씀하심이므로 그의 창조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하사 말씀하셨다.
물가운데 궁창이 있어는 물이 지구를 싸고 있었음을 지시한다.처음 지구가 창조되었을 때 물이 전체로 싸고 있었음을 이 절이 분명히 한다. 처음 지구는 흙과 돌로 덮였어도 불덩어리였으므로 지구를 식히기 위해서 물로 지구를 덮었음을 알 수있다. 이 사실이 베드로로 하여금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이라고 말하게 하였다 (벧후 3:5). 땅 표면에 물이 가득하였거니와 땅위 공중에도 물이 가득하여 불덩어리를 식혔고 또 물로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궁창의 설치는 물가운데에 대기권의 설립을 지시한다.땅 전체를 물이 싸고 있었을 뿐아니라 땅위 공중에도 물이 가득하였는데 땅이 생명체들의 처소가 될 수 있도록 물들 속에 대기권을 설치하여 물을 땅의 물과 공중 대기권속에 담긴 물로 나뉘었다고 볼 것이다. 대기권에 물이 가득 담긴 것은 지금 대기중에 담겨져 있는 물의 양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양의 물을 지시한다.
물가운데 궁창을 설치하므로 물이 공기에 받치워서 공중에 떠있게 되었다. 물이 공중에서 공기에 의해서 떠받쳐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궁창은 바로 공기들이 형성됨을 뜻한다. עיקר 라키이아 궁창은 벌림을 뜻하는데 물로 닫혀진 지구위를 펴서 즉 물들 한가운데 대기권을 형성하셨다. 물로 꽉 닫혀진 지구를 벌려 즉 물들을 별려 지구를 열고 공기층을 형성하므로 물과 물사이가 벌어져 광활한 하늘이 되었다. 이 하늘은 대기권을 뜻하며 이 대기권으로 하늘이 열려서 천계가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처음 하늘은 지구상에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대기권의 설치는 또 단지 공기들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지구를 둘러 싸서 지구를 생명체들의 생활공간이 되도록한 모든 조치가 다 포함된다. 가령 중성자들로 이루어진 반알렌대라든가 지구의 자기장의 설치를 포함한다. 강력한 자기장이 작용하여 전자장을 쏘므로 대기권 위에 물이 담지될 수 있게 물을 띄워 받쳤다. 또 아직까지 과학이 탐색해내지 모한 지구의 모든 방어장치들도 다 궁창의 설립에 포함된다.
물과 물로 나뉨은 땅위의 물과 대기권 위의 물로 나뉘어 있음을 뜻한다.지구가 식어 생명체가 나타날 만큼 되므로 하나님은 지구의 표면에 생명체의 출현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물을 땅에도 두고 공중에도 두어 지구의 표면을 가볍게 했다. 그리하여 지구 표면에 식물들과 다른 생명체들이 출현하여 거주할 수 있게 하셨다.
물들 사이에 물들로 부터 나눔 םימל םימ ןיב לידבמ 맙디일 베엔 마임 라마임은 물이 땅 표면에만 있던 데서 땅위의 물과 대기권 위에 물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현대 창조론 과학자들이 말하는 수중대 (水中帶)의 설치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수중대를 설치하므로 처음 나타난 생명체들이 처음 거소에서 온도의 격렬한 변동이 없이 살 수있도록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섭리적 조치이다. 수중대의 설치는 너무 뜨거운 온도의 유입이나 해로운 물질들의 대기권에로의 유입을 막아 주도록 설계되었다. 수중대보다는 대기권 위의 바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수중대 곧 바다가 대기권 위에 설치되어 있으므로 지구상의 온도는 밤낮 거의 동일한 온도를 유지해서 처음 창조된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번창이 빠른 시일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나뉘게 하리라는 하나님이 많은 계획을 하셨음을 나타낸다.그냥 궁창이 있으라고 하시지 않고 대기권과 수중대의 설치 또 다른 많은 안전 장치를 설립하기 위해서 그냥 물들 가운데 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고 창 1:6에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라고 하시므로 많은 고안을 하셨음을 지시한다. 단지 궁창만 설치되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미리 계획하셨고 어떤 장치들이 지구가 생명체들의 고향이 될 수 있을찌를 면밀히 계획하셨다.
그렇지 않다면 1:7의 궁창 제조이전에 그렇게 자기 계획을 발표하실리가 없다. 나뉘게 하리라는 자기의 의중을 미리 알리셨다. 지구가 생명체들의 장소이고 더욱이 자기를 섬길 언약 백성들의 거소가 될 것이므로 특별한 호의와 주의로 지구의 정비를 이루심을 알리고 있다.자기 언약백성들의 생활 공간을 마련하심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하셨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창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יַּעַשׂ אֱלֹהִים אֶת־הָרָקִיעַ וַיַּבְדֵּל בֵּין הַמַּיִם אֲשֶׁר מִתַּחַת לָרָקִיעַ וּבֵין הַמַּיִם אֲשֶׁר מֵעַל לָרָקִיעַ וַיְהִי־כֵן׃
하나님이 펴짐을 만드사 펴짐 아래 있는 물들과 펴짐 위의 물들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느니라.
궁창을 만드셨다.창조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껏 창조는 ארב 바라로 무에서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지시했는데 השׂע 아사를 사용하므로 이제는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고 이미 처음 창조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있는 것들을 이용하심을 분명히 한다.
물을 정비하기 위해서 궁창의 설치는 새로운 창조가 아니다. 그러므로 창조가 아니라 만들다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 궁창은 물들 가운데를 펴신 펴짐이다. 즉 물들이 펴진 것이 궁창이다. 둥근 활처럼 된 것이 아니고 물들 가운데를 펴신 것 곧 대기권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대기권을 설치하사 물과 물을 나누셨다. 대기권이 물과 물을 나누는 경계선이요 땅 위의 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장치가 되었다.이제 궁창이 땅위에 설치되므로 물이 그 무게로 지구를 압박하지 않고 물이 생명의 근원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위에 배치된 물이어서 대기권이 물을 이게 되었다.대기권 위에 수중대가 설치되어 물이 공기 위에 있어서 운동하므로 대기가 깨끗하고 안전한 삶의 지역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수중대는 노아 홍수 때에 지구상에 쏟아지는 물이 되므로 수중대는 해소되고 공기중에 수증기로만 남게 되었다. 이 절이 지시하는대로는 처음 궁창 위에 바다가 놓여있었다.
물과 물로 나누므로 궁창 곧 펴짐 대기권이 만들어진 것은 대기가 물에서 유래하였음을 지시한다.공기는 궁창이 되어 하늘을 열어 지구상에 보이게 하였는데 궁창이 창조된 것이 아니고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기권이 물로 부터 형성되었음을 지시한다. 모든 공기의 요소들이 물에서 만들어지고 형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물은 통상 산소와 수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으니 물보다 공기가 먼저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물이 먼저 창조되어 물에서 공기의 요소들이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물이 생명 요소의 기본이 됨도 뜻한다. 물없이는 생명체들이 살지 못할 뿐아니라 물이 모든 공기의 재료가 되고 생명체 발생의 기본 요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로 지구를 식히고 물로 대기를 조성하시고 물로 생명체가 살게 하고 생명체를 구성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생명체에 물이 필수적이 되게 하셨다. 물은 지구에만 있게 하시므로 물이 있는 곳이 바로 생명의 근거지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그리고 수중대의 설치는 다른 해독제들을 정화하고 걸러주는 역할을 맡게되었다.창조주는 물을 둘로 나누므로 이렇게 지구상에 생명들이 출현할 수 있는 완전한 공간을 마련하셨다.
궁창을 물가운데 설치하시므로 물을 나누셨다.하나님은 대기권을 물과 물 가운데 설치하사 물을 둘로 나누셨다. 따라서 물은 공기로 분리된다. 바람은 공기의 이동인데 물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은 바람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출애급시에 물을 나누기 위해 바람을 이용하셨다. 처음 창조시 대기층을 만드시므로 물들을 상하로 나눈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신 것이다. 또 물의 이동도 대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공기는 물을 분리하면서도 물과 분리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물이 공기중에 계속 있을 수있는 것도 공기가 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공기가 물을 담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공기는 물보다 이동성이 더 강하지만 둘다 이동성이 그 특징이다. 물도 움직여 다니므로 물로 작용하고 공기도 이동하여 다니므로 공기로서 작용한다. 이렇게 이동이 심한 공기로 물을 머리에 이게 하신 섭리가 기이하다.
그렇게 탄력이 강하고 고체처럼 한 곳에 고정해서 있을 수 없는 공기가 물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물론 공기가 물을 떠받치는데는 지구의 압력과 밀어치는 힘이 함께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직접 물을 담고 머리에 이고 있었던 것은 공기였다. 물이 공기 위에 설치되어 전체로 공기를 감싸고 압박하므로 공기위에 부력 작용을 받아 있을 수 있었다. 공기가 물체들 중에 가장 가벼워도 물처럼 무거운 액체를 담지할 수 있었다.
그대로 되니라는 물이 공기위에 떠있게 된 것을 지시한다.공기 맨 윗층에 물이 바다가 되어 떠있는 것이 기이한 일이다. 이일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었다. 또 하나의 기적이 산출되었다.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로 된 것이지만 공기가 자기의 본성에 거슬러서 이런 일을 맡게 되었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대로 되니라 ןכ-יהיו 와이히 켄. 공기는 그릇에 담아야 다른 물체들을 질 수 있는데 그릇에 담음없이 자기의 자유로운 활동영역에서 큰 일을 하게 되었다.
대기권이 물을 대량으로 머리에 인 이후에 대기권은 통상 물을 자기 안에 품게 되었다. 대량은 아니지만 물을 대기권이 품으므로 물과 공기간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 창조에서는 공기가 물을 자기 위에 이고 살았지만 그후에는 물을 대기권 안에 품어 물의 순환과 이동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은 공기가 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능하게 만들어진 원리이다.
대기권 위에 물이 있을 때는 지금보다 하늘이 더 낮았다.물은 공기보다 더 무거운데 많은 물이 수중대를 형성하여 대기권 위에 설치되었으니 처음 창조시의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지구에 더 가깝고 머리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급시에도 하나님의 기적들이 계속되었을 때에 하늘이 머리위에 아주 가깝게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보고가 있는 것을 보면 처음 창조시 대기권위에 바다의 설치로 하늘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창 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וַיִּקְרָא אֱלֹהִים לָרָקִיעַ שָׁמָיִם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שֵׁנִי׃ ף
그리고 하나님이 펴짐을 하늘이라 부르시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었다.여기 궁창은 천체들의 하늘이 아니라 대기권으로 이루어진 하늘을 말한다.궁창이 하늘이 되었지 천체들의 하늘을 지시하지 않는다. 대기권도 그안에서 희한하고 광대한 일이 벌어지고 생활 공간으로 넓으므로 하늘로 합당하게 불리울수 있다. 지구는 하늘을 상대할 때 직접할 수 없고 대기권 하늘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천체들의 하늘은 대기권을 통해서 하늘로 나타나고 대기권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을 볼 수 없게 되어 하늘을 보는 창이다. 천체들이 보이는 한에 있어서 그 궁창은 하늘과 일치된다.
밤하늘은 별들로 장식된 바로 천체들의 하늘이지만 낮의 하늘은 대기권에 나타난 하늘이다. 낮의 하늘은 태양이 들어와있는 그 대기권 하늘이다. 그 대기권에 들어온 태양은 천체로 넓은 천체 세계에 떠 있는 별이 아니라 지구위에 대기권에 들어온 별을 뜻한다. 해가 들어와 있으므로 대기권이 하늘이다
.
하나님이 궁창 곧 펴짐을 하늘이라고 지목하셨다.궁창이 하늘로 불리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지목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셨으므로 모든 인류가 다 대기권 곧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른다.
펴짐 곧 궁창이 물 가운데서 넓게 벌어졌기 때문에 하늘이다.하늘은 넓은 공간을 통상 지칭한다. 그런데 물로만 지구가 싸여 있었는데 그 물 사이를 벌리고 대기권이 설치되었으니 대단한 벌어짐이고 퍼짐이다. 궁창 עיקר는 본래 벌어져 넓어짐이다. 물이 벌어지더니 그렇게 넓게 퍼졌으니 하늘이라고 불리우기에 충족하다. 물이 벌어져 하늘이 되었다.
물과 대기권 정립에 하루가 소요되었다.하나님은 물과 대기권 정립에만 하루를 소요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셔도 물과 대기권 정비에 하루를 소요하셨다. 물의 정비로 생명이 출현해야 하므로 모든 세심한 조치를 취하셨음을 지시한다. 생명 출현 전에 완전한 생활 공간을 마련하심을 표현한다. 특히 인류가 출현하여 하나님을 섬길 곳이 지구이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출현을 위해 모든 조치를 완벽하게 이루셨다. 이 일이 둘째날 하루에 걸쳐 이루어졌다.
창조가 이틀의 나이를 먹게되었다.둘째날을 마감하였으니 창조가 시간 속에서 진행되어 모든 창조가 이틀의 나이를 먹게 되었다. 정비는 새날들에 이루어져도 처음 창조는 정비의 진행과 함께 나이를 가산하게 되었다. 궁창이 지구위에 출현했을 때는 처음 천지는 이제 겨우 이틀 지났고 무한한 연대가 진행된 것이 아니다. 또 수억년 수 백억년 전에 지구와 우주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짧은 연대 기간에 우주가 창조되어 시간이 진행함에 따라 나이를 먹게 되었다. 영원은 무한 시간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뒤는 바로 영원이다.
창 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וַיֹּאמֶר אֱלֹהִים יִקָּווּ הַמַּיִם מִתַּחַת הַשָּׁמַיִם אֶל־מָקֹום אֶחָד וְתֵרָאֶה הַיַּבָּשָׁה וַיְהִי־כֵן׃
또 하나님이 말씀하사 하늘 아래 물들은 한 곳으로 모이라 또 마른 땅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느니라.하나님이 가라사대 혹은 말씀하사는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심을 지시한다.하나님은 셋째 날 일을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말씀하시므로 만물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말씀하셔서 다음 일을 이루시기로 하셨다. 셋째 날의 사역은 생명출현의 직접적인 준비와 생명의 출현사역이었다.
하늘 아래의 물들을 한 곳에 모음은 지구를 덮은 물을 바다로 모음이다.뚜겁게 덮인 물을 궁창위에로 분리해도 앏아진 바다가 전체로 지구를 덮고 있었다. 그런데 땅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물들을 한 곳으로 모으셨다. 그러므로 땅을 깊게하고 산들을 치솟게 하셨다. 지구상의 여러 산맥들 곧 대간들이 이 때에 돌출되게 하셨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물들을 저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히말리야 산맥 안데스 산맥 우랄 산맥 록키산맥등 세계의 기둥들이 되는 산맥들로 치솟게 하고 땅을 깊어지게 하므로 물을 저장할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이 욥과의 대화에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으느냐 고 물은 말씀의 뜻이다 (욥 38:4, 6).
하늘아래의 물들이므로 궁창위에 설치된 바다 밑에 있는 대기권에 있는 많은 물들도 다 바다에로 모이게 하셨다. 이제는 거대한 물이 바다가 되어 지구의 깊은 곳에 모이고 지구 전체를 덮지 안해도 되게 되었다. 지구 전체가 물이었는데 바다에로 모이므로 물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여 지구를 위협하지 않게 되었다.
물은 바다가 되므로 자기 자리를 차지 하므로 안전한 곳에 머물게 되었다. 땅이 깊어지게 하고 산들로 솟아나게 하신 것을 하나님은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자가 누구냐 고 하셨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 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고 하셨다 (욥 38:8). 산맥들로 바다로 몰려들어 창일하는 물들을 막으심을 뜻한다.
땅을 깊게 하사 물이 몰려들 때 산맥을 세워 힘차게 몰려든 물이 다시 바다에서 육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셨다. 땅을 깊게 하사 바다가 되게 하셨음을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고 물으시므로 이 사실을 밝히셨다 (욥 38:16-17).
뭍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셨다.뭍은 השׁבי 얍바샤 이므로 물이 말라서 나타난 땅을 뜻한다. 본래 땅이 있었으나 마르지 안했으므로 땅같지 않고 늪의 형태의 흙이었는데 마르므로 정상적인 흙이 되어 생명이 살 수 있는 지반이 조성되었다. 이것도 욥과의 대화에서 밝히셨다.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같이 나타나되라고 하셨다 (욥 38:14). 물이 급히 몰려들어 올때에도 흙이 함께 휩쓸려오지 않게 하시므로 진흙에 인친 것처럼 물밑에 있을 때의 흔적이 남을 수 있었다.
물이 증발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제3일에 하나님이 명하시므로 하루 이내의 시간에 모든 땅의 물이 말라서 식물들이 출현할 수 있을 만큼되었다.
뭍 마른 땅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물이 쉽게 증발하였음을 말한다.뭍은 물에 덮인 땅이 말라서 된 것이므로 드러나라고 명령하셨다. 땅이 없는데 땅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물밑에서 물처럼 녹아있던 지표가 굳어져서 된 것이므로로 물의 증발과 함께 땅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이 창조시부터 지구를 덮고 있었고 물에 녹아있었느니 물이 증발하여 땅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시므로 짧은 시간에 땅이 육지가 되고 뭍이 되었다. 물의 증발이 지금 통상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빨리 증발하였다. 노아 홍수 때에는 일백오십일 동안 물이 지구를 넘실대며 있었고 점점 물러가서 물의 증발에 5개월이 필요하였지만 창조시에는 그렇게 오래 걸려 물이 증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에 땅 표면의 물이 다 증발하였다.
창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יִּקְרָא אֱלֹהִים לַיַּבָּשָׁה אֶרֶץ וּלְמִקְוֵה הַמַּיִם קָרָא יַמִּים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하나님이 마른 땅을 땅이라고 부르시고 물들의 모임을 바다들이라고 부르시고 하나님이 좋다고 보셨다.드디어 땅이 출현하였다.하나님은 마른 흙을 땅 곧 지구라고 명하시므로 생명체들과 동물과 인간이 출현하여 살 수 있는 지반을 조성하셨다. 마른 땅이 되므로 그 흙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어 거기에 인간이 부착하여 살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뭍이 드러나므로 물은 바다가 되어 지구가 물과 뭍으로 나뉘게 되었다. 물로만 덮인 지구가 물과 땅으로 나뉘어 서로 보충하며 또 대립하여 삶의 터전으로 그 영역을 분할 받게 되었다.
물이 모여 바다가 되었다.전 지구를 두껍게 감싸고 있던 물이 대기권 위의 물로 분리된 이후 지구 표면을 덮었던 모든 물들을 지구의 낮은 곳으로 모아 거대한 물의 저장고가 되므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뒷받침해주는 생명의 원천이 되었다. 또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들의 본고장이 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그 속에 살 생명체의 출현을 기다리게 되었다. 또 바다를 이룬 물은 한 곳에 모이므로 대기권에로 쉬운 물의 증발을 막음므로 일정량의 물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또 물이 바다에 모여 있게 되므로 궁창의 출현으로 나타난 대기권과 교류하여 지구의 습도를 항상 일정하게 하고 지구를 보호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생명의 터전으로 명확히 구분되었기 때문이다.본래 땅의 창조 목적은 모든 생명체들의 터전으로 세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지 뿐이던 지구 전체가 변하여 산맥들과 산들이 생겨나고 깊어진 곳에는 물들이 모여 둘로 나뉘므로 아름다운 대조를 이루고 생명 출현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이루어졌으니 하나님이 만족하셨다. 말씀만 하시면 지구가 이처럼 변화되니 기적이 연속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족하사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이제 생명 창조에 모든 준비가 다 이루어져서 생명의 출현이 필연적인 단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물과 뭍을 정비하신 바로 그날에 생명들로 출현하게 하셨다. 지구는 죽은 창조물이 아니라 산 지구가 되었다.
창 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וַיֹּאמֶר אֱלֹהִים תַּדְשֵׁ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עֵץ פְּרִי עֹשֶׂה פְּרִי לְמִינֹו אֲשֶׁר זַרְעֹו־בֹו עַל־הָאָרֶץ וַיְהִי־כֵן׃
하나님이 말씀하사 땅 위에 푸른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의 열매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하나님은 땅에서 식물들을 내셨다.하나님은 생명체를 처음으로 창조하실 때에 땅에서 나오게 하셨다. 외부에서 생명을 창조하여 땅에 넣으신 것이 아니고 땅에서 모든 식물들이 나오게 하셨다. 처음 생명체들이 흙에서 나오므로 흙에 붙어 살게 하셨다.
이렇게 생명체들이 흙에서 나오므로 진화된 것으로 여기는 사고가 많아졌지만 그것은 생명의 터전이 땅이 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고 따라서 생명체들이 모든 생명 존속과 유지를 그 나온 땅에서 하도록 그렇게 하셨다. 또 식물들이 땅에서 나와 땅에 붙어 살게 하시므로 지구가 생명체들의 고장이 되고 지구 표면을 보호하여 지구에서 흙과 돌들이 쉽게 이탈되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처음 생명체들인 식물들은 땅에서 나와서 땅에 부착하여 살도록 하셨다. 식물들이 땅에서 나오므로 땅을 어머니로 생명체의 창조자로 보는 것은 창조주를 보지 못하고 현상만을 보는 데서 오는 그릇된 사고이다. 식물들이 사람의 가공없이 절로 땅에서 나오는 것은 기이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땅 자체가 생명을 스스로 산출해내는 것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면 결코 발생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화론은 처음 생명체의 결합을 설명하지 못한다. 생명체들이 땅에서 그냥 나왔다고 하는 생각은 이방인들의 주장이고 미개한 종족들의 창조 망각에서 나온 지어낸 이야기 이다.
하나님은 최초의 생명체들을 미생물로 만드신 것이 아니고 풀과 채소와 나무들로 지으셨다.하나님은 처음부터서 고등한 식물들을 만드셨고 저급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나 아메바를 만드시고 그다음 그 처음 생명체에서 진보하게 하신 것이 아니다.
진화론에 의하면 박테리아나 그보다 조금 더 발달한 생명 형태에서 즉 아메바에서 다른 고등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진화해 온 것으로 주장하지만 처음 생명체들은 동시에 고등한 식물들로 출생하였다. 풀은 자체 영양분을 조달하는 고등한 생명체요 씨맺는 채소도 씨맺으므로 자기 번식과 보존을 스스로 하지 저급한 단계에서 진화나 다음 단계의 진화의 하나의 고리로 창조되지 안했다.
풀과 씨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은 매우 고단위의 생명체들이어서 자기 완결적이지 다음 단계로 진화해 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처음 생명창조에 있어서 처음 식물들은 매우 고도의 생명체들이었고 또 그 자체로 완결된 생명체여서 다음 단계로 전이해 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풀과 채소와 나무들은 모두 동시에 발생하였고 따로 시차를 두고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모든 생명체들이 처음에 창조되었으므로 동시에 발생하고 또 종류대로 지어졌으므로 불변한 종으로 자기 영역을 갖게 되었다.
모든 식물들을 동시에 지으셨다.하나님이 식물들을 종류별로 지으시고 또 동시에 모든 식물들이 발생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처음 저급한 식물들을 창조하시사 실험을 해보시고 그 다음 생명체들을 지으신 것이 아니고 모든 식물들이 동시에 나오게 하셨다. 동시에 지으셨으므로 식물들 중에서 진화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다 완전한 생명체계들을 만드셨으므로 진화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진화의 방식을 채용하지 않으셨다.그런 진화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불가능하다. 생명체가 자기 완결적이 아니고 벌려져있어서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면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생활 체계이므로 자기 존속을 유지할 수 없고 다음 종이 설혹 자기의 생명에서 나타난다면 원래 생명체는 사라지고 말것이다. 지구의 역사에 그런 것은 발생하지 않했다. 또 앞으로도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도 추정만 있을 뿐이지 아무런 증명도 없다. 그런 가설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기 위한 가설일 뿐이고 억측이다. 생명의 신비도 풀지 못하는 과학이고 생명의 정의도 못하는 과학이 어찌 진화를 주장할 수 있는지 황당한 일이다.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식물들은 풀과 채소와 씨맺는 나무들이므로 모두 고등 식물들이요 생존하는 모든 식물들을 첫 생명 창조에서 다 지으심을 말한다.
땅을 모든 생명체들의 본거지와 거소가 되게 하셨다.지구를 생명체들의 본거지로 삼기로 하시므로 먼저 지구를 식물들로 덮으셨다. 모든 지구 표면에 흙이 있으면 거기에 식물들이 살게 하시므로 그 다음 단계에 나타날 생명체들 곧 동물들의 삶의 터전과 먹이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식물을 창조하시므로 대기권에 있는 기체들을 교류시켜 이어서 출현할 동물들의 먹이를 사전에 마련하도록 하셨다. 이제 지구는 푸른 생명체들로 덮여 푸른 지구가 되고 생명체들이 나오고 살아가는 자리가 되었다. 식물들을 지어 땅 표면에 부착해서 살게 하므로 지구가 보존되고 계속 유지되게 하셨다.
땅이 처음부터서 생명체들의 고장이 되므로 생명이 멀리 외계에서 올 수도 없고 오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했다. 그런 것은 다 창조를 부인하기 위한 사변일 뿐이다. 생명체는 처음 지구에서 시작되었고 지구에 살게 작정되었다. 지구외에는 어떤 별에도 생명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곳에서 생명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וַתֹּוצֵא הָאָרֶץ דֶּשֶׁא עֵשֶׂב מַזְרִיעַ זֶרַע לְמִינֵהוּ וְעֵץ עֹשֶׂה־פְּרִי* אֲשֶׁר זַרְעֹו־בֹו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땅이 그들의 종류대로 씨 맺는 푸른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내니 하나님이 좋다고 보시니라.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이 식물들을 생산하였다.생명은 창조되는 것이고 결코 무기물에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된 것은 다른 종에로 전이되거나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종을 유지한다. 하나님은 종류대로 식물들을 창조하셨고 또 동시에 모든 식물들을 창조하시므로 지구를 풀과 식물들로 갑자기 덮어 아름다운 땅으로 만드셨다. 땅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생명체들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모든 풀들과 식물들은 동시에 그 종류별로 나타났고 이어서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
생명들로 덮였으므로 하나님이 만족하셨다.생명은 아름다운 것이다.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와 움직임을 계속하므로 더욱 아름다운 존재가 생명체들이다. 무기물 뿐이던 땅이 말씀 한 마디로 온갖 식물들로 덮이게 되었다. 그냥 싹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이 성장한 형태로 나타났다. 모든 식물들이 땅에서 나오면서 다 자란 형태가 되어 지구를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생명체들이 땅을 덮으니 이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하나님의 창조가 본래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하니 더욱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족을 표하셨다.
또 그 식물들은 다음에 창조될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또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될 것이므로 하나님이 만족하셨다. 특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인류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먹고 살 식량으로 식물들이 창조되었으니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기뻐하셨다.모든 식물들이 완전한 생명체들로 산출되어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만족하사 좋다고 하셨다.
생명의 근원이신 이가 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하 나님은 생명 자체이시요 생명의 근원이시므로 생명을 창조하셨다. 생명은 생명에게서 나오므로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셨다.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는 생명도 창조하셔야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시고 생명 자체이시므로 생명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다 창조된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생명 자체로서 생명을 지으셨으므로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만 의존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만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창 1: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שְׁלִישִׁי׃ ף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니라.모든 식물들을 하루에 창조하셨다.하나님의 지구 정비에 벌써 삼일이 경과하였다. 지구는 생명 출산의 일과 함께 자기 운동을 다 하여 벌써 세바퀴나 돌았다. 하나님은 처음 생명체들을 식물로 창조하시되 모든 식물들을 창조하시는 데 하루만 소요하셨다. 식물들이 기껏 하루만에 창조되어 하루의 나이 밖에 먹지 안했는데도 다 성장한 형체로 나타났으니 오래도록 성장한 나이를 보이게 되었다.
하나님은 하루에 모든 지상 식물들을 창조하사 생명체들의 근원이 되시고 창조주로서 이름을 더욱 갖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창조를 아는 존재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수십만의 식물들의 종류들이 나타나되 그 종류별로 또 수 십만 수백만 수 억만 개의 식물들이 지구 상에 나타나 지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또 지구를 푸른 행성이 되게 만들었다. 푸른 생명체의 고장이 된 지구를 하나님은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보시고 관심하시게 되었다. 생명체들이므로 하나님이 더욱 그의 시선을 지구에서 떼실 수 없게 되었다.
세째 날은 창조 정비의 반이 경과하였음을 지시한다.하나님의 창조 정비가 삼일이 경과하여 지구가 생명체들로 덮이니 창조 마감이 얼마 남지 안했음을 예시한다. 삼일이 경과한 사이에 물로만 덮여 있던 지구가 생명들까지 다량으로 창조되어 대단한 변신을 경험하였다.푸른 식탁이 마련 되었으니 지구 상에 인간의 출현의 준비가 거의 다 이루어졌다.
창 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광명체들이 하늘의 펴짐에 있어서 낮과 밤 사이를 나누도록 하고 징조와 기한과 날들과 해들을 이루라 하시니.지속적인 빛을 비추기 위해 해와 달을 만드셨다.식물들이 자라 지구를 푸른 땅이 되게 했다. 이들 생명체들이 지속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빛의 공급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지구를 계속해서 비칠 빛의 담지자로 하나님은 태양과 달을 만드시고 그리고 별들로 빛을 내게하셨다.
별들이 처음 이날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진 별들로 지금부터 빛을 내는 발광체들이 되게 하셨다. 그 이전에는 아직 별들이 빛을 낼 만큼 정비되지 못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이제까지는 지구의 공전과 빛이 비췸으로 밤낮이 정해졌는데 이제는 지구의 공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비취므로 밤낮이 정해지게 되었다.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들 때문에 사철과 날자와 연대가 정해지게 되었다.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들이 빛을 비추므로 대기권에 빛과 열로 작용하여 사시 사철이 정해질 뿐 아니라 대기권에 여러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또 하나님은 자기 역사 섭리에서 별들을 이용하실 것임을 예시하셨다. 노아 홍수 때 기상의 과격한 변화 때에도 별들이 크게 작용하였고 이스라엘의 출애급시에도 별들을 이용하사 일을 이루셨으며 또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에도 달과 태양이 멈추어 서고 기상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이제까지는 지구의 운동으로 날자가 정해졌으나 이제부터는 태양이 움직이므로 연대가 정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우주의 나이도 태양의 운동에 의해서 정해지게 되었다.밤낮의 결정이 지구의 운동으로 정해지던 데서 태양과 달과 별들의 운동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창 1: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הָיוּ לִמְאֹו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וַיְהִי־כֵן׃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펴짐에 있어서 땅 위에 비취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태양을 만드사 지구 가까이 가져다 놓으시므로 지구의 궁창 위에 있게 하셨다.하나님은 지구에 생명이 살고 앞으로 인간들이 살곳이므로 지구위에 태양을 고정하사 지구를 잘 비취게 하셨다.
별들도 지구를 비취므로 별들로 남을 수 있었다 .별의 근본 기능은 지구에 빛과 열을 공급하는데 성립한다. 별들은 자체 목적을 갖는것이 아니고 지구를 비추므로 땅에 사는 거주민들로 날자와 연대 와 징조를 알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하려고 주여졌다. 그렇게 많은 별들은 오직 한 목적 곧 지구를 비추므로 지구상의 거주민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때를 깨닫도록 해주는 목적으로 지구를 비취게 되었다. 그것이 별의 존재 목적이다. 그 목적 때문에 별들이 지구 상공에 부착되어 있는 것처럼 지구에서 보여지게 된 이유이다.
창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לִמְשֹׁל בַּיֹּום וּבַלַּיְלָה וּלֲהַבְדִּיל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그리고 하나님이 큰 두 광명체들을 만드시사 큰 광명체로 낮을 다스리 작은 광명체로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또 별들을 만드시니라. 태양과 달이 지구를 비추는 별로 지목되었다.이미 하나님은 별들을 만드실 때에 달과 태양도 만드셨지만 이번에 두 광명 תרואמה을 특별하게 지목하셨다. 이 태양과 달의 언급에서 이 때에 태양계도 만드셨음을 알 수 있다. 태양이 지구 위에 배치될 때 태양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계속적으로 비추도록 하기 위해 태양계를 함께 만들어 태양과 지구에 배속하셨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태양이 큰 빛이라는 것은 지구의 관점에서 이름된 것이다.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있고 또 태양보다 큰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태양이 지구를 비취는 직임을 맡았으므로 지구의 입장에서는 태양보다 더 큰 별이 없다. 태양은 계속해서 빛을 비추지만 지구의 자전 때문에 태양을 받는 쪽이 낮이 되고 태양을 등진 쪽이 밤이 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태양이 빛을 비추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밤낮이 교차하고 지구의 생명이 연속되며 사계절이 유지되게 되게 되었다.
달이 작은 광명이 된 것은 밤에 별들보다 지구에 큰 빛을 주기 때문이다.달은 지구에 달렸으므로 달이지만 아주 작은 별로서 지구를 비추는 별들 중에서 밤에는 지구에 가장 많은 빛을 비추기 때문에 작은 광명이라고 이름되었다.
태양이 없으면 어두움 뿐이지만 달이 비취므로 밤도 어두움 만이 아니고 빛이 있어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잠을 잘 수 있어서 안식할 수 있게 되었다.
밤에 달이 없고 별들 뿐이거나 어두움 뿐이면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고 모든 법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지구에 가득했을 것이다. 다 하나님의 큰 배려이다. 빛없으면 지각도 생기지 않고 모든 기능이 정지할 것인데 밤에도 지각을 갖고 살고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밤에 달이 지구를 계속해서 비취게 하셨다. 달은 작은 조각이 되어 지구를 비출 때에도 지구의 거민들을 위로한다. 그러므로 달의 출현에서 위안을 얻게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별들은 태양계에 속한 별들의 조성을 뜻한다.모든 별들은 처음 창조를 이루셨을 때에 다 창조하시고 이루셨다. 그러나 태양을 지구위에 배치하시고 달도 지구에 배정하실 때에 이태양계를 만드사 태양의 동무가 되어 혼자 지구를 책임진 것이 아니고 함께 지구를 위해 일함을 분명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 태양계를 만드사 태양의 동무가 되게하셨다.
별들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지어졌다.별들의 존재 목적은 지구상에 살며 하나님을 섬길 인간을 위해서 창조되었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를 비추고 열을 줄 뿐아니라 사시와 연대와 징조를 이루므로 인간들로 시간 가는 줄을 알고 하나님을 시간에 맞도록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그러므로 별을 숭배하는 것은 성경 종교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모든 이방들은 별들을 섬겨도 이스라엘과 교회만은 별들을 섬기지 않는다. 별들은 섬길 받을 자가 아니고 섬기기 위해서 있다. 그러므로 별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안되고 엄격히 금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이방들이 별들을 다 섬기는데 성경 종교만이 별들을 숭배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창 1: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יִּתֵּן אֹתָם אֱלֹהִים בִּרְקִיעַ הַשָּׁמָיִם לְהָאִיר עַל־הָאָרֶץ׃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펴짐에 두사 땅위에 비취게 하시니라. 태양과 별들은 지구를 비추어야 하므로 지구위에서 언제든지 비추는 일만 하면 모든 소임을 다한다. 그러므로 지구의입장에서 보면 그 별들은 지구 위의 궁창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여겨진다. 다른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늘과 별을 보는 창이 바로 궁창이기 때문이다. 대기권이 없으면 우리는 별들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별들을 궁창위에 두어 땅에 비추게 하셨다고 하신 것이다.
태양과 별들은 정해진 때까지 지구를 비춰야 한다.태양과 별들은 지구를 비추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땅위에 세워졌으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 빛을 내어 지구와 우주를 비춰야 한다. 그리하여 빛을 주고 열을 주므로 지구에서 생명이 유지되고 활동해야 한다. 그리고 우주도 비추므로 처음 하나님의 영광의 반사의몫을 해야 한다. 태양과 별들의 빛은 사방으로 퍼져도 지구에 그 빛이 닿아야 그것들이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창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לִמְשֹׁל בַּיֹּום וּבַלַּיְלָה וּלֲהַבְדִּיל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그것들로 낮과 밤을 다스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시니 좋았더라.태양과 별들이 빛을 비추므로 이제는 밤낮이 정해져서 모든 천체들이 정상적인 운행을 하게 되었다.별들은 계속 비치지만 모든 천체들이 운동하고 지구도 운동하므로 이제 우주에는 빛만이 아니라 어두움도 있게 하셨다. 온 우주의 별들이 비추지만 어두움이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지구 뿐만아니라 우주에도 밤낮을 있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주야를 주관하게 하심은 별들이 계속해서 비치고 운동하도록 하심이다.주야의 주관은 하나님이 하셔도 별들이 운동하며 비추므로 밤낮이 정해지게 된것을 말한다. 주야를 주관함은 밤낮이 변치 않고 고정해서 주기를 도는 것을 뜻한다.
우주에 어두움과 빛이 교차하니 그것은 장관이었다.모든 별들이 계속해서 비치지만 어두움과 빛이 교차하니 온 우주는 아름다운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겠는가.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광경의 전개이다. 빛은 계속 비쳐도 어두움과 빛이 교대하므로 처음에 쫓았지만 쫓겨난 어두움이 빛에 눌리워 있는 것이 실로 아름다웠다. 전 우주의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웠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그이상 아름답고 좋은 창조가 또 있겠는가? 별들이 빛을 내면서도 어두움이 교차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수줍은듯이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모습은 자기 직임을 다 하면서도 별들이 겸손한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나님은 네째 날 자기 창조를 만족하심으로 한 단계의 창조를 마감하신다.네째날의 창조로 하늘의 해와 달과 태양계가 조성되었다. 이제 지구는 빛을 고정적으로 받으므로 생명체들이 안심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어 푸른 지구가 되었다. 생명체들은 아름다운 것인데 빛이 비취므로 모든 생명체가 자기의 본성을 다드러내게 되었으니 실로 아름다웠다. 생명체는 자라면서 자기의 본성을 다드러낸다. 또 그 구성도 다드러내는 것이 자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생명체의 존속과 자기 현시는 다 빛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고 지속된다. 생명은 빛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이제 생명의 존속과 번창을 위해서 하나님은 빛의 담지자를 하늘에 두시므로 지구가 생명의 장소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네째날의 창조를 마감하시므롤 만족을 표하셨다. 이제 다음 생명체들이 등장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고 인간이 나타날 준비가 많이 이루어졌다.지구의 창조의 목표는 다 인간의 출현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창 1: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이니라.
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רְבִיעִי׃ ף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지구를 비췰 발광체들을 지으심으로 네째날의 사역을 마감하셨다.
네째날에는 하나님은 지구를 비췰 발광체들을 지으시므로 모든 사역을 마감하시므로 그다음 날 생명 출현의 준비를 다 이루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네째날을 마감하셨다. 항속적으로 빛을 지구로 보낼 태양과 달과 다른 별들을 지으셨으므로 큰 준비를 다하셨다.
계속적으로 빛이 비추지 안해서는 생명체들은 출현할 수 없고 또 생명을 존속할 수 도 없다. 그러므로 발공체 곧 빛의 담지자들 תרשׁמה 함메오롯을 지으셨다. 빛이 그 기능을 다하므로 하나님은 그 날의 작업을 완료하셨다.
창 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의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וַיֹּאמֶר אֱלֹהִים יִשְׁרְצוּ הַמַּיִם שֶׁרֶץ נֶפֶשׁ חַיָּה וְעֹוף יְעֹוףֵף 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하나님이 말씀하사 물들은 생명의 영혼의 떼로 떼가 되게 하고 땅 위의 하늘의 펴짐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물들에 거주할 생물들을 종류대로 지으셨다.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작정을 따라 종류대로 바다가 생명체들을 내라고 하심으로 바다에 사는 헤아릴 수 없는 동식물들을 지으셨다. 고기들과 바다 식물들과 동물들과 작은 식물들을 지으셨다. 그런데 물에 사는 생명체들은 떼를 지어살게 하셨다. 그러므로 혼의 떼 שׁפנ ץרשׁ 쉐레쓰 네페쉬를 표현하였다. 창세기에서는 뭄직여 다니는 동물들을 네페쉬로 표현하였다. 물들에 사는 생물들은 떼를 지어 살고 혼자는 살 수 없도록 되어졌다.
하늘 궁창에 새들과 나는 짐승들을 지으셨다.땅에 사는 인간들에게는 바다와 공중은 무서운 곳인데 하나님은 그 바다와 물에 또 공중에 새들로 날게하므로 빈공간이 적막하지 않고 사람들을 동무할 수 있는 동물들을 위험지역에 배치하셨다. 그리하여 땅위에는 인간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새들과 물고기들이 함께 살게 하셨다. 궁창을 삶의 터전으로 배정받은 새들과 나는 짐승들은 땅위의 공중에 살게 되었다. 새들이 공중에 날지만 그 거처는 땅 표면이다. 따라서 ץראה־ לע 땅위 알 하아레쓰를 부가하였다. 그리고 하늘 궁창의 표면이라고 기술하였다. םימשׁה עיקר ינפ־לע 하늘 궁창의 표면위에라고 그 활동 영역을 배정하였다.위험지역인 바다와 물들이 있는 곳과 공중에는 움직이는 동물들이 살게 되었다. 물속에서는 헤엄치며 공중에서는 날아다니며 사는 새로운 거주자들이 추가되었다. 그러면 지구위에는 빈곳이 없이 모든 영역은 다 생물들로 채워져서 지구는 생명체들의 고장이 되었다.
창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יִּבְרָא אֱלֹהִים אֶת־הַתַּנִּינִם הַגְּדֹלִים וְאֵת כָּל־נֶפֶשׁ הַחַיָּה הָרֹמֶשֶׂת אֲשֶׁר שָׁרְצוּ הַמַּיִם לְמִינֵהֶם וְאֵת כָּל־עֹוף כָּנָף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또 하나님이 큰 바다 괴물들과 물들에 떼지어 사는 모든 생명체들을 그 종류대로 또 날개 있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이 좋다고 보시니라.하나님은 바다에 큰 물고기들 곧 바다 괴물들을 창조하셨다.
바다에 떼지어 사는 작은 물고기들만이 아니라 큰 물고기를 지으셨다. 큰물고기들은 םינתה 하탄니님이라고 하므로 바다의 괴물들과 거대한 동물들인 고래와 바다 사자와 사람을 잡아 먹는 상어등 바다에 거주하는 큰 동물들을 표현하셨다. 그냥 바다 물고기들만이 아니고 바다에 사는 큰 동물들도 지으셨음을 밝히기 위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하셨다.
바다는 생명의 보고이므로 물에 사는 많은 생물들을 지으셨다.바다에 사는 생물들은 떼지어 사는 많은 물고기류와 식물들을 지으사 물이 있는 모든 곳들에 살게 하시므로 생명이 번창하게 하셨다. 그것도 종류대로 지으셨다.םהנימל 르미네헴 그 종류들대로 지으시므로 물과 바다에 살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지으셨다. 동물들과 식물들을 지으셔서 바다와 물로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셨다.
공중에 날개로 날아다니는 모든 날짐승들을 지으셨다.새들만이 아니라 날개가 있어 나는 모든 동물들과 곤충들을 지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공중이 쓸쓸하지 않고 많은 거주자들을 가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날개로 나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
והנימל ףנכ ףוע־לכ תא 엣트 콜 오오프 카나프 르미네후. 그것들의 종류대로 모든 날개로 나는 것들을 지으셨다. 공중을 날아다는 동물들은 아름다운 현상이다. 가벼운 공기를 이용하여 날개로 그 무거운 몸을 움직여 다닐 수있으니 여기 하나님의 지혜가 다시 나타난다. 무거운 물체들이 단지 살았다는 것만으로 가벼운 공기를 이용해서 날아다닐 수 있으니 이것이 기이한 일이다.
바다에 생명체들이 떼지어 살고 공중에 날짐승들이 날아다니며 자기들의 생활터전으로 삼으니 하나님의 지혜가 현란하게 빛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손의 모든 조물들을 보시고 만족하셨다.식물들이 살아나서 자라며 지구를 덮은 것도 아름다웠지만 날아다니고 헤엄쳐다니는 동물들이 위험지역으로 불리울 바다와 공중에 거주하며 자유로 활동하니 아름답고 기이하였다. 하나님의 지혜의 작정대로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나와 움직여 다니니 기이하고 하나님의 지혜가 현란하다. 식물들을 먹이로 해서 사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들이 나타났으니 세상은 혼돈과 공허에서 모든 필요한 것으로 채워져서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구체화되어 활동하니 아름답고 신기하였다.
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וַיְבָרֶךְ אֹתָם אֱלֹהִים לֵאמֹר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מַּיִם בַּיַּמִּים וְהָעֹוף יִרֶב בָּאָרֶץ׃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복주시고 말씀하시기를 열매 맺고 많아져서 바다들의 물들을 채우라 새도 땅에 많아지라 하시니라. 동물들에게 복을 내리셨다.이 동물들은 자기들의 활동으로 자기들의 먹이를 구해야 하므로 하나님은 그것들에게 복을 나리시사 모든 환경에서도 살아남도록 하셨다. 활동하여 자기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것들이므로 자기들의 생존 영역을 빼앗길 수도 있고 또 먹이가 모자라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사 생육과 번성을 약속하셨다.
바다 거주자들은 바다를 가득 채울 책임을 지게 되었다.바다가 살아움직일 수 있음려면 거주자들이 번성하여 바다를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다량으로 생산해야 받은 책임을 다 할 수있게 되었다. 바다가 생물들의 거주지이지만 거기에 생명체들이 가득 차야 거주지도 생명체의 고장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다물과 생명체들간에 교류가 있어야 바다도 바다로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다의 물고기들은 후에 사람들의 먹이가 될 것이므로 더욱 번창해야 했다. 많은 떼로 번식해야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식량이 될 수 있으므로 바다는 인류의 먹이를 풍성하게 담고 있어야 했다.이것이 하나님이 동물들에게 복을 내리신 이유이다.
새들과 날짐승들도 크게 번성하여 공중과 땅을 가득채워야 지구가 공허함이 없어진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새들과 날짐승으로 땅에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 공기도 공기를 계속 유지하려면 생명체들과 교류해야 유지될 수 있도록 하셨다. 새들은 공중에 날지만 거소는 땅이 되어 땅위에 집짓고 새끼를 낳으며 살 수 있고 공중에서 활동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새들도 많은 새끼들을 낳아서 지구와 공중을 가득채워야 한다. 그리고 떼를 지어 살므로 그들의 생명을 잘 보존할 수 있게 하셨다. 새들의 번성에 하나님의 복이 붙어있다. 그러므로 새들 스스로도 번성하지만 인간들이 새들을 보호하고 번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새들이 많이 살아있으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사람이 사람들로만 사는 무료함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또 새들은 다음에 하나님께 제사할 때 제물로 사용될 것이므로 더욱 번성해야 하고 번성하므로 사람들이 새들과 함께 풍성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므로 새들과 바다의 거주자들을 축복하사 한없이 번성하게 하셨다.
창 1: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חֲמִישִׁי׃ ף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제5일 창조로 지구에 많은 거주자들로 채우셨다.
지구상에 생겨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그 종류대로 조성되어 지구를 아름답게 장식하였고 사람의 출현 준비가 다 이루어졌으므로 하나님은 5일의 창조를 마감하셨다.
하루 일과가 끝났으므로 저녁과 아침으로 표기하였다.제5일 창조는 하나님의 지혜가 더욱 현란하게 드러났다. 식물들만이 아니라 동물들이 그 종류대로 다 함께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바다와 공중에 살게 될 동물들이 하루 한 시간대에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 생명체들은 자기들의 거주지에서 살 모든 연습을 하여 새곳에서 잘 적응하고 살게 되었다. 하루가 그 생명체들의 창조와 생활 연습으로 충분하였다. 그러므로 하루의 창조사역을 마감하시어서 다음 단계의 출현을 예시하셨다.
창 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וַיֹּאמֶר אֱלֹהִים תֹּוצֵא הָאָרֶץ נֶפֶשׁ חַיָּה לְמִינָהּ בְּהֵמָה וָרֶמֶשׂ וְחַיְתֹו־אֶרֶץ לְמִינָהּ וַיְהִי־כֵן׃
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명체를 그 종류대로내도록 하라 짐승과 기는 것과 땅의 생명체를 그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생물은 היח שׁפנ 네페쉬 하이야 생명의 혼으로 표기되었다. 이것은 지금껏 창조된 생물들과는 다른 차원의 생명체들이 창조될 것임을 명시한다. 생명의 혼이므로 지각과 판단도 할 수 있으며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실려고 하심을 명시하셨다.그냥 살아 숨쉬고 먹이를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동무가 되고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를 지으실 것임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동물들 중에 고등한 동물들을 지으셨다.
육축과 기는 짐승들과 모든 짐승들을 지으셨다.이런 고등 동물들도 공중에서 만들어져서 지구에 내려오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의 거소인 땅에서 나오게 하셨다. 지금은 창조의 정비이지 무에서 새로운 창조가 아니므로 땅에서 모든 육축과 기는 동물들과 모든 짐승이 나오게 하셨다.육축을 먼저 언급하시므로 이 동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 존재들임을 명시하셨고 또 지구가 사람을 위주로 지어지고 있음을 밝힌다.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된 동물들이 이제 나타나게 하시므로 이 동물들을 특히 사람들을 위해서 지으심임을 밝힌다.
모든 짐승들을 종류대로 지으셨다.종류대로 지으셨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므로 후일에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진화를 주장할 것에 대한 방비를 미리하셨다.종류대로 지으시므로 사람들로 그 짐승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종류대로란 말씀을 25절과 26절에서 반복하고 있다. 종류대로 והנימל 르미네후를 반복하고 있다. 종류대로 지으시므로 사람들의 탐구와 사용을 쉽게 하셨다.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יַּעַשׂ אֱלֹהִים אֶת־חַיַּת הָאָרֶץ לְמִינָהּ וְאֶת־הַבְּהֵמָה לְמִינָהּ וְאֵת כָּל־רֶמֶשׂ הָאֲדָמָה לְמִינֵהוּ וַיַּרְא אֱלֹהִים כִּי־טֹוב׃
또 하나님이 땅의 생명체를 그 종류대로 짐승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 하나님이 좋다고 보셨다.모든 육축들과 땅위의 고등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지으셨다.하나님은 말씀하신 모든 동물들이 다 그 종류대로 지으시고 나타나게 하셨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어지고 땅에서 나와도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들이다. 그 동물들은 다 하나님의 지혜로 지어졌으므로 모든 활동을 바로하고 원활하게하여 아무 부족이 없었다. 이미 이 동물들의 먹이가 다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이 동물들의 활동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소, 개, 돼지, 닭, 말, 양 염소 토끼 등의 모든 가축들과 사자 호랑이 코끼리 여우 늑대 등 모든 산 짐승들과 뱀 용 도마뱀 등 모든 기는 동물들이 다 창조되었다.
이 동물들은 사람의 생활 동반자들로 창조되었다.이 동물들은 바다의 생물들보다 훨씬 늦게 출현하여 사람들이 사는 지구 상에 살게 되므로 사람들의 생활 동반자로 지어졌음을 지시한다. 그러므로 네페쉬 하이야 생명의 혼으로 지목되었다. 사람도 후에 창조되었을 때에 산 영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사람과 매우 유사하고 가까워서 사람과 함께 살며 사람을 도울 자들임이 분명하다.
이에서 나아가 이 생명체들은 사람과 한 거주지에 살고 같은 날에 창조되므로 후에 사람의 운명에도 동참하여 인간의 타락시 내린 저주에 함께 동참하여 그 형상과 성질들이 변화되었고 또 사람의 목숨을 위해 제사의 제물이 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 육축이 모든 땅의 짐승들의 이름 전에 거명되므로 우선적으로 가축용 짐승들을 지으셨고 그다음 산과 들에 사는 동물들을 지으셨음을 알 수 있다.
가축용 짐승들은 사람을 위해 일하고 함께 살며 또 사람을 위해 죽게 되었다. 또 가축 뿐아니라 모든 땅위의 짐승들이 사람들의 식량이 되도록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물들 중에 6일에 창조된 동물들이 아주 고등한 존재들이지만 사람을 위해 살고 활동하고 또 식량이 되고 제물이 될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에 배분된 같은 거주지에 살고 사람이 먹는 식물을 먹도록 되었으므로 사람의 식탁에 먼저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 사람을 위한 존재로 지어졌음이 분명하다.
모든 동물들이 자기 본성대로 잘 활동하였다.동물들이 처음 창조되어 지구상에 나타났어도 새로운 환경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활동하고 잘 자랐으니 하나님은 만족하셨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보시고 만족하사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וַ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
또 하나님이 말씀하사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들의 새와 짐승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의논하셨다.사람은 하나님 창조의 왕관이고 하나님의 수고의 면류관이므로 의논하사 특별한 조물로 만드시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의논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사 창조를 맡기실려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를 다스리고 관리하며 그들에게서 섬김 받으시고 찬양받으시기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특별한 창조물인 사람에게서 창조주로서 인정받으시고 그를 인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다른 동물들과 우주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므로 특별하게 지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시기로 하시므로 자기와 유사한 존재를 만드시기로 하셨다.
이런 특별한 존재를 만드시기 위해 지금까지 명령으로만 창조 작업을 하시던 하나님이 특별한 의논을 하시므로 이제껏의 창조물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를 만드실 것임을 알리시기로 하셨다.또 의논해서 사람을 창조하시기로 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이신다. 그냥 맹목적인 생물들을 만들어 그들의 생을 살게 하려는데 있지 않고 사람이라는 특별한 조물을 만드시므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것임을 밝히신 것이다.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는 친구로 삼을 것임을 밝히신다.
하나님이 의논해서 만들 존재는 지금껏 만드셨던 사물들과는 얼마나 구분되고 탁월할지를 밝하시기 원하신 것이다. 그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요 하나님과 교제할 탁월한 존재이다. 더욱이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거룩한 존재이다.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모든 만물들과 또 모든 후손들에게 전파하고 가르칠 그런 존재이다. 모든 인류가 다 전체로 하나님을 섬기면 그 찬양과 광채가 대단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존귀한 존재를 만드시기로 작정하셨으므로 이렇게 의논하사 창조를 마감하시기로 하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창조를 다스리고 지킬 존재가 없다면 창조도 바르지 않다. 이런 위대한 창조주가 창조하셨는데 이 창조를 인해 그 창조주를 찬양하고 섬길 존재가 없다면 그 창조는 불완전하다. 또 창조를 인해서 그 창조주를 창조주로 인정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공허한 창조가 되고 주인없는 창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런 책임을 맡아 일할 존재를 만드시는 일에 자신과 의논하셨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시기로 하심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로 만들기로 하심이다.사람은 그냥 고등 동물들이 아니어서 땅에서 나올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그 손으로 만드실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통상 지성과 도덕적 성품으로 이해해왔다. 이 견해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으로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해 왔다. 하나님의 형상에 지성과 도덕이 포함되지만 이것은 바른 이해라고 볼 수 없다. 루터교회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거룩과 의와 지식으로 말한다.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설 때 나타내는 순정성으로 말하였고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과의 동형성으로 말해왔다.
신형상 םלצ 첼렘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격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인격을 따라 인격체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תומד 데무트 모양도 첼렘과 같은 의미이고 다른 뜻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말로 같은 사항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처럼 사람이 인격이 되는 데 성립한다. 카알 발트처럼 하나님내의 마주섬으로 봐서 사람들이 마주섬 특히 남녀가 결혼하여 남녀가 서로 마주섬을 신형상으로 볼 수가 없다. 인격은 자기의식과 자기결정의 주체인데 하나님이 인격이시듯 사람도 자기의 인격의 복사로 만드심으로 자기의 형상이 되게 하셨다. 타락해도 사람은 그 인격됨을 상싦하지 않는다.사람이 아무리 인간성을 상실해도 인격은 파괴할 수 없다. 인격은 최소한의 형태라도 남아서 사람이 사람으로 남음을 유지한다.
인격에는 지성과 의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의지에는 도덕적 성품이 필수적으로 속한다.사람이 인격인 한에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사람이 타락했으므로 바른 인격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처음 아담이 나타낸 인격이 지금 우리의 상태와 얼마나 다른지 바로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격이시듯이 사람도 하나님의 인격에 상응하게 살고 결정하며 일하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허락하사 인격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일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확정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사전에 계획하신다. 따라서 자기의 복사물이어서 형상이 될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시되 자기의 인격에 따라서 사람을 인격으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창조된 후에 한 결정들은 다 자기의 결정이요 자기의 일이다. 자기의 지식을 따라 결정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자기의 결정에 외적 사물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고 스스로 모든 일을 자기의 계획 곧 지식에 따라 결정하시고 일하셨다.
지식이 결정을 선행한다. 사람의 경우도 지식이 있어야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자기 지식이 없으면 바른 결정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종속하여 독자적인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면 바른 인격이 아니며 인격체로서 바로 선 것이 아니다. 아직 인격이 완전하지 못한 것이고 바른 하나님의 형상이 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결정하면 그것은 자기의 결정이므로 자기의 책임이 된다. 인격은 자기일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시고 스스로 결정하신대로 일하신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일을 다 책임지신다. 사람도 자기의 일을 자기가 책임질 때에만이 인격이 되어 하나님을 반사한다. 사람은 인격이므로 하나님을 바로 반사한다. 인격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이어서 하나님을 바로 반사하기 때문이다. 인격으로 행동하는 한 하나님을 가장 잘 모방하고 잘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인 한 영이다. 영은 자기 초월의 능력을 갖는다. 사고와 지식과 결정에서 자신을 넘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까지 나아간다. 자기 자신에게만 머므로고 자기 자신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격이어서 자기 자신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물이므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게 되어져 있다. 인격은 그 원본에서 완성되고 그 원본에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으로서 참인격이신 하나님의 복사물이므로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의 인격의 그림자이고 하나님은 인격의 원본이고 실체이다.사람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이므로 즉 형상이므로 원본에 마주서야 인격으로 바로 정립되고 확인된다. 그림자는 원형이 있어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에만 하나님을 복사하여 하나님의 형상이다.
모양은 형상과 다른 새로운 요소로서 형상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다. 동의어의 반복이고 강조이다. 그리고 우리의 형상대로 ונמלצב의 ב는 안에서로 가 전혀 아니고 뒤에 나오는 우리의 모양대로 ונתומדכ 의 כ처럼 해석해야 합당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내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즉 자기를 반사하여 원형에 상응하게 지으셨다. 원형에 상응해서 원형을 반사할 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창조하셨다. 형상안에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의 범위가 되고 영역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므로 그와 교제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자기와 유사한 인격으로 지으신 것이다.교제는 인격간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교제는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다.언어는 인격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과 말하고 사귀기 위해서 그를 인격으로 지으셨다.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그렇게 하시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 비밀을 알리시고 자기의 창조의 지혜를 현시하게 하기를 바라셨다.
그런 탐구로 사람은 하나님과 말하여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많은 백성을 만드사 자기의 나라를 이룰려고 하심도 알게하시므로 어떻게 자녀들을 낳고 길러 하나님의 백성될 수 있는지를 가르치시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을 낳도록 하실려고 하셨다.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의논하기를 바라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교제로 바쁘시기를 원하셨고 모든 백성들이 자기에게만 의존해서 살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를 가지셨으므로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자기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다 동시적으로 대화하시고 답을 말씀해주실 수 있다. 자기의 창조물들이므로 그들이 다 나아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시고 좋아하실려고 하셨다.
하나님은 신형상에 하나님 섬김을 그 본성으로 넣으셨다.하나님은 사람들과 교제하시기를 바라시고 기뻐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 섬김으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심장에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당연한 것으로 알도록 종교의 씨를 심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당위의식과 하나님을 섬김이 바로 사람의 본분임을 아는 의식이다. 신형상은 하나님을 닮은 인격을 뜻하지만 바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당위의식을 포함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사람이 자기 본분을 다해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지식을 뜻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김에 기쁨이 있게 하셨다.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김이 사람의 생명이므로 그 생명 행위에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신형상의 증거는 사람이 자기 인격에 대해 갖는 존엄의식으로 표현된다.사람은 인격이므로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의식을 갖는다. 그 존엄의식은 인격체만이 나타내는 현상이다. 아무리 비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자기 인격에 침해와 모독 혹은 무시를 받으면 분노를 느끼며 그런 자에 대한 용서와 용납을 하기 어려워 한다. 자기 인격에 대한 존엄의식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의 복사이므로 이처럼 자기 인격을 가장 존귀한 것으로 여긴다. 자기 인격이 바로 자기의 생명이고 자기의 전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제도나 정치나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인격의 무시에 신적 분노가 일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격을 인격으로 대접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도 인격존중에 성립하고 자녀 교육도 인격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 속에서 불꽃으로 작용한다.자기 인격 곧 사람의 자기의식이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의 복사물이고 그림자이므로 하나님 처럼 창조적인 일을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존재이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이다.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은 것은 창조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위대한 창조를 다스릴 존재를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그냥 피조물이 아니라 피조물을 다스릴 존재이므로 고상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다스릴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님의 복사물 곧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를 다스리려면 창조주에 버금해야 하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피조 수준에서 인격이 되게하여 자기의 바른 결정과 지식으로 다스리게 하셨다. 자기의 창조를 다스릴 존재이므로 이렇게 인격으로 만드시고 자기의 모양으로 사람을 지어 가시적인 신적 존재와 같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들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이처럼 육체 안에다 인격을 넣어 인격이 가시적이 되게 지으셨다. 창조주에 버금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하여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어도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에 버금하는 인격이 다스리게 하셨다.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기는 하나님의 그림자가 한다.
다스림의 대상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들이다.사람이 다스릴 대상으로 지목된 첫째 생물은 바다의 고기들이다. 바다의 고기들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쉽게 잡을 수도 없는 생물들이다. 사람과는 다른 생활 환경에 산다. 우리는 육지 곧 마른 땅에 사는데 물고기들은 바다와 물에 산다. 사람은 물 속에 살 수 없고 그곳에 살려고 하면 죽는 길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바다와 많은 물들의 고기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때의 다스림은 지금처럼 그물로 망을 쳐서 잡는 것이아니라 주 예수께서 고기들을 말씀으로 모아오신 것처럼 말로 모아올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물고기들위에 지배권을 주셨기 때문이다. 타락으로 이 지배권이 상실되어 말로 바다의 고기를 사람이 다스릴 수 없게 되므로 기구들을 이용하여 고기들을 잡게 되었다.
바다의 고기들이 사람의 거주지와 전혀 달라서 다스리고 잡기가 어렵다면 공중의 새들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공중의 새들위에 지배권을 주셨으므로 아담은 이름들을 지을 때 새들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만 하면 그 새들이 왔다. 이것은 노아가 방주를 짓고 새들을 그 안에로 불러넣을 때 잘 나타났다. 사람이 가까이 하면 새들이 달아나는 것도 타락으로 사람이 지배권을 상실하므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올바르다.
노아로 하나님이 모든 호흡있는 생물들을 살리려고 하실 때 노아의 수고 없이 새들이 몰려오므로 그것들을 방주안으로 몰아넣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말을 하면 새들이 오는 것이 사람이 새들을 다스리는 방식이다. 처음에 아담은 이처럼 말만으로 새들을 불러오고 다스렸는데 그것이 바로 새들을 이름하고 그것들과 함께 지냄이었다. 지금은 공중의 새들을 불러올 수 없으니 기구들을 이용해서 새들을 잡고 갇우어서 기르며 먹거리로 쓴다.
육축은 일차적으로 가축을 뜻하지만 땅위에 사는 짐승들을 뜻한다. 육축 המהב는 들짐승을 포함하여 모든 짐승들을 말하면 사나운 짐승들을 포함하여 모든 짐승들이 사람의 지배의 대상으로 배속된 것을 뜻한다. 땅위의 짐승들은 사람과 같은 생활 공간애 살고 사람들이 먹는 식물을 함께 먹게 되어졌다. 그러므로 짐승들이 사람의 관리하에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짐승들은 사람의 행동과 운명에 가장 가깝게 관련되어 사람의 저주로 가장 심각한 영향을 입은 생물들이다. 그럴뿐아니라 후일에 사람들을 위해서 제물이 되어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게 되었다. 또 노아 홍수후에 식량의 부족을 메우고 사람의 목숨을 단축하려고 할 때 짐승들을 먹이로 허락하시므로 사람을 봉사하는 종이 되어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되어졌다. 그러므로 땅위의 짐승들이 가장 먼저 사람들에 의해서 가축으로 사육되고 길러졌다.
짐승들은 사람과 같은 날 창조되어 생명의 혼היח שׁפנ 으로 불리우므로 사람과 매우 친근할 수 있음을 지시한다. 처음 창조시에는 맹수들도 다 순한 양과 같아서 아담과 함께 지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고 아담의 명령에 잘 순종하였다. 이런 무서운 짐승들과 땅의 모든 생물들이 다 아담의 말에 순종하여 통치자로서의 위엄이 대단하였다.
다스림의 대상은 모든 땅과 땅위에 기어 다니는 짐승들이다.우리말 성경에는 모든 땅을 다스리라는 것이 생략되어 번역되었다. 모든 땅 ץראה־לכב 브콜 하아레쓰 이라고 맛소라 본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다스림의 대상은 모든 동물들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와 식물들 전체와 땅에 사는 모든 것을 뜻한다. 식물들을 명시하지 않고 단지 모든 지구 혹은 땅이라고 하므로 식물들과 광물들과 물과 공기와 흙이 다 아담의 통치의 대상으로 넘겨졌다. 그 다스림은 관리이고 보존의 사역을 뜻한다.다스림의 대상으로 모든 땅을 넣은 것은 단지 땅과 거기에 사는 식물들과 기는 동물들만이 아니고 천체들에로 그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이해해야 바르다고 본다. 그러면 별들 그중에 특히 태양계가 다 사람의 관리의 영역이 된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땅위에 기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이 되었으니 기는 짐승들과 곤충과 벌레들이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기는 것들이라고 함으로 훗일에 사탄의 도구가 되어 인류를 유혹한 뱀도 아담이 특히 잘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강조함이 들어있다.뱀을 잘 다스리고 돌보았으면 사탄이 뱀을 이용하여 사람을 타락에로 인도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이렇게 하나님은 땅과 그위에 지으신 모든 것을 다 아담의 다스림의 대상으로 넣으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창조를 돌보고 보호하며 바로 다스리게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를 대신하여 창조의 통치자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므로 하나님의 복사물이 되게 하셨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וַיִּבְרָא אֱלֹהִים אֶת־הָאָדָם 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 בָּרָא אֹתָם׃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의 형상대로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그를 남자로 창조하시고 또 그들을 여자로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yhil{a/ ~l,c,B. Aml.c;B. ~d'a'h'-ta, ~yhil{a/ ar'b.YIw: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ומלצב םדאה־תא םי?לא ארביו 하나님은 아담을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계획하고 의논하신 대로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에로 사람을 판박았다. 그리고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게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고 사람에게 있고 다른 데 있지 않다.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므로 남자로 표기된 아담만이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임을 분명히 한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하나님은 아담을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시되 남자와 함께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실제로 지으셨다. הבקנו רכז ותא ארב םי?לא םלצב 브첼렘 엘로힘 엣트 하아담 바라 오토 자카르 우느케바 라고 표현하므로 사람 곧 아담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짐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표현하였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구성한다. 남자만도 사람이 아니고 여자만도 사람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합쳐서 사람이 된다. 이 문장의 표기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그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남자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를 함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냥 지으신 것이 아니고 창조하셨다. ארביו 와이이브라라고 하므로 지으심이 아니고 창조하심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은 아담외에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어도 형상으로 지으셨으니 그것은 창조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형상으로 만드셨다. 사람은 남자만으로 되지 않고 여자와 함께 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그들을 사람이 되게 하셨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므로 둘이 사람이 되고 인격이 되어 창조를 다스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되므로 많은 인류가 되게하여 하나님의 백성 만드시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사람이 된다. 여자를 가진 남자여야 바른 사람이 되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남자와 여자를 사람으로 지으시고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므로 남자가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거나 형상이 아니어서 인격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지 못하게 하시고 동등하게 창조를 다스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므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구가 출생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삼으려고 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아담은 한 사람 아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인류가 되므로 사람이 됨을 명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에 인류가 하나님 앞에 사람으로 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설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복수로 만드셨다. םתא ארב 바라 오탐. 사람은 남자와 여자이므로 그들로 사람을 지으셨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יְבָרֶךְ אֹתָם אֱלֹהִים וַיֹּאמֶר לָהֶם אֱלֹהִים פְּרוּ וּרְבוּ וּמִלְאוּ אֶת־הָאָרֶץ וְכִבְשֻׁהָ וּ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כָל־חַיָּה הָרֹמֶשֶׂת עַל־הָאָרֶץ׃
하나님이 그들을 복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열매 맺고 많아지라 또 땅을 채우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모든 기는 생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셨다.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신 피조물을 먼저 축복하시므로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게 하셨다. 지음받자 마자 축복받은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을 입게 되었다. 자기가 계획한대로 지어졌지만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니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기를 기뻐셨다.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를 축복하셨다.םי?לא םתא ךרביו 와이바레크 오탐 엘로힘.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므로 둘 다 축복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충만케 해야 한다. 즉 열매를 맺고 많아져서 땅을 채워야 한다. 생육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즉 많은 자녀들을 낳아야한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으라 ורפ 프루라고 하셨다. 사람은 많은 자녀들을 생산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사람은 성년이 되면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낳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녀 생산을 제한하는 산아 제한도 합당하지 못하며 더구나 가족 계획의 이름으로 낙태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명령에도 어긋날 뿐만아니라 더구나 살인이므로 절대 불가하다. 땅을 가득 채울 때까지 자녀를 생산해야 한다. 자녀를 생산하면 하나님의 처음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된다.
자녀를 낳을 뿐만아니라 많은 자녀들을 낳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많아지라 ורב 브루라고 명하셨다. 자녀들이 많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자녀들을 많이 낳으면 자녀들로 큰일을 하게 시킬 수 있다. 더우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결혼하면 본능적으로 자녀가 많아지는 것을 바란다.
많은 자녀들을 낳아 땅을 충만케하려면 종족이 되고 인류가 되어야 한다. 큰 나라가 되고 큰 민족이 되어야 땅을 충만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큰 민족이 되고 큰 나라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축복이다.
땅을 정복하는 것은 땅에 속한 모든 것을 활용하고 다스리는 것이다.땅을 정복하는 것은 땅에 속한 모든 것을 활용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정복하여 압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의 비밀을 캐내어 그 비밀을 드러내고 현시하는 것도 포함한다. 땅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가득 담겨져 있으므로 열심히 탐구하여 그 비밀들을 드러내어야 하고 또 이용하므로 창조주의 창조 방식을 반복해야 한다.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하나님의 창조를 반복하고 창조의 법칙들과 질서 그리고 창조의 무궁한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림자로 하나님의 일을 반복하고 연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땅이 사람이 정복할 대상으로 지목되었으므로 땅에 속한 모든 것은 다 인간의 간섭을 받아야 그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땅을 채우라는 명령 다음에 이 땅의 정복 명령이 왔으므로 어떤 땅에든지 거기에 이르면 그 땅의 모든 특성을 연구하여 자기의 거소로 삼고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도록 가꾸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주변의 모든 환경을 살펴서 그 본성을 드러내고 활용하며 또 보호해야 한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사람이 직접 가까이 하기 어려운 생명체들 곧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 그리고 모든 기어 다니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사람의 지배하게 놓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만 했으면 모든 이런 생물들을 다 말로 다스리고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생물들을 다스림은 그것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다스림은 그 생명체들을 남획하고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 그들에게 배정된 삶을 바로 살 수 있도록 그들의 환경을 확정해주고 그들의 본성과 생활 법칙에 맞도록 살수 있게 도야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종족들이라도 다른 종족들에 의해 멸절되지 않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지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다 사람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모든 생명체들 뿐만아니라 모든 존재물들은 다 사람이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 아래 놓이게 되었다. 부서지거나 다치면 다 사람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사람의 살핌과 보호아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지상의 생명체들과 존재들을 다 사람의 손에 위탁하셨다. 사람의 책임이 실로 크고 영화롭다. 그러므로 아담은 창조 당일 부터서 열심히 일하여 관리할 책임을 지게 되었고, 다른 동물들의 운명을 사람의 관리아래 두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직임이 이처럼 크고 영광스럽게 되었다. 이렇게 큰 일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형상이 되게 하셨다.
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וַיֹּאמֶר אֱלֹהִים הִנֵּה נָתַתִּי לָכֶם אֶת־כָּל־עֵשֶׂב זֹרֵעַ זֶרַע אֲשֶׁר עַל־פְּנֵי כָל־הָאָרֶץ וְאֶת־כָּל־הָעֵץ אֲשֶׁר־בֹּו פְרִי־עֵץ זֹרֵעַ זָרַע לָכֶם יִהְיֶה לְאָכְלָה׃
하나님이 말씀하사 보라 내가 너희에게 땅의 표면에 있는 모든 씨 맺는 채소와 씨를 가진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니라.씨맺는 모든 채소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들이 사람의 먹거리이다.사람의 출현 전에 하나님은 지구를 푸른 풀들과 나무들로 덮어 푸른 식탁을 만드사 풍성한 먹이를 마련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것도 넘치는 양으로 가득 지구를 풀들로 푸르게 장식하시고 식욕이 왕성하도록 자극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지구상에 풀들을 먼저 나게 하시고 나무들이 먼저 나오게 하신 것은 지구의 보호와 사람의 생활 환경의 조성도 뜻하셨지만 일차적으로 사람들의 먹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지 않는 산지와 들에도 다 과일과 곡식들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퍼져나가기 전에 미리 모든 주거 가능한 지역들에는 다 먹거리가 될만한 많은 과일과 풀들과 곡식류들이 자라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배려가 얼마나 큰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경작을 하는 곳은 다 풍성한 곡식들을 내게 하셨다.
창조후 사람에게 주어진 먹거리는 채소와 과일과 씨 와 잎이다. 채소를 먹거리로 받는 면에서는 풀을 먹이로 받은 동물들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채소와 곡식과 과일과 씨등 가장 좋은 것들을 먹거리로 받았다. 사람이 건강하고 힘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런 고급 식물들을 먹거리로 주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많은 풀들과 식물들중에서 특히 고급 영양을 가진 것들을 사람에게 주사 먹고 장수하게 하셨다. 열매와 씨와 채소 그리고 뿌리 열매가 사람에게 주신 건강 식물이므로 이런 것들을 먹으면 무병하고 건강하며 오래 살게 하셨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생명체들인 식물들과 채소를 사람에게 주사 먹고 즐거워 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먹거리는 허락받은 것이지 우리의 자연적 권리가 아니다.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신 아름다운 모든 식물들을 사람에게 주셨다. 사람이면 자동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거리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때마다 하나님께 받아 먹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먹거리를 사람이 가꾸고 길러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이 창조 세계의 법칙이다.
많은 인류가 풍성이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구 표면을 푸른 풀들과 나무로 덮으셨다. 타락만 아니었으면 지구상에는 식량 부족이 없었을 것이다. 인류의 반역이 먹이세계에도 미쳐서 오늘날 처럼 식량이 모자라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이 지구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가 거치기 전에는 식량 부족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동물들을 먹는 것은 처음 창조의 법이 아니다.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풀과 과일과 열매와 씨와 곡식을 식물로 주셨으므로 육식은 처음부터서 허락된 것이 아니다. 푸른 식탁이 사람이 먹을 합당하고 건강한 식물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을 잡아 먹는 것은 비상 조치일 뿐이다.동물들을 먹는 것은 노아 홍수후 땅의 황폐로 지구가 식량 생산을 풍성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비상 조치요 처음부터서 허락된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낙원에서부터 육식을 했다고 주장한 헤르만 바빙크의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또 육식을 허락하시므로 인류의 수명을 단축케하여 죄악을 감소하고 억제하려고 하셨다. 육식이 모든 질병과 빨리 죽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육식이 힘을 많이 내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육식을 하면서도 건강하는 비결은 육식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생식 형태가 가장 좋은 것이다.
날로 먹는 것이 처음 식사법이었다.처음 창조주로부터 음식을 지정 받았을 때는 아직 불의 사용이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모든 음식들을 날로 먹었음이 확실하다. 날로 먹으면 영양의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아 적게 먹어도 영양이 풍부하여 활동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니 오히려 많은 인류가 이 식사법을 계속하였더라면 식량 생산과 영양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풀과 채소와 과일도 다 생것으로 먹는 것이 가장 바르고 영양이 파괴되지 않고 싱싱한 영양을 먹는 길이다. 처음 창조시에는 아직 불의 사용이 없는 상태에서 먹이를 허락하셨으므로 생식이 처음 식사법이었다고 함이 바르다. 지금도 이 식사법을 계속한다면 건강하고 질병이 별로 없고 영양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לְכָל־חַיַּת הָאָרֶץ וּלְכָל־עֹוף הַשָּׁמַיִם וּלְכֹל רֹומֵשׂ עַל־הָאָרֶץ אֲשֶׁר־בֹּו נֶפֶשׁ חַיָּה אֶת־כָּל־יֶרֶק עֵשֶׂב לְאָכְלָה וַיְהִי־כֵן׃
또 땅의 모든 생물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위에 생명의 혼이 있어 기는 모든 것에게 푸른 풀을 먹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동물들은 푸른 풀들과 나무의 잎을 먹이로 허락 받았다.땅위의 모든 동물들은 이처럼 푸른 풀과 나무 잎을 먹이로 허락하셨다. 사람은 영양분의 집약체인 씨와 과일과 열매를 먹이로 허락하신 하나님이 동물들에게는 영양이 훨씬 적은 잎들과 푸른 풀을 먹이로 허락하셨다. 사람은 지배자이므로 먹이가 월등하게 우수한 것을 허락받았다. 풀을 먹는 동물들의 소화기관이 사람들보다는 더 소화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는 것은 처음 창조 질서가 아니다.동물들중에는 지금 맹수들이 있고 또 잡식성이 많아서 여러 가지 먹이를 먹고 또 특히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는데 창 1:30의 창조주의 명령에 보면 그것은 처음 질서가 아니고 후에 인류의 타락으로 생긴 저주의 결과로 이루어진 현상이고 또 노아 홍수이후에 푸른 풀들로 식량균형을 이룰 수 없어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신 후부터 동물들도 육식을 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타락시에 내린 저주로 동물들 중에서 일부는 맹수가 되어 다른 초식 동물들을 잡아 먹으며 살도록 조치하셨다고 봄이 타당하다. 또 하나님의 저주로 사람이 동물들위에 지배권을 상실하므로 동물들이 사람까지도 잡아 먹게 되었다고 봄이 바르다. 타락 이전에 사람이 통치자로서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때의 위엄을 보면 동물들이 사람을 헤치거나 잡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저주받으므로 통치자가 지배받아야 할 동물들 밑에 매이고 무서워 하며 심지어 그런 동물들을 섬기기 까지 하는 비참한 상황에 떨어지게 되었다.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וַיַּרְא אֱלֹהִים אֶת־כָּל־אֲשֶׁר עָשָׂה וְהִנֵּה־טֹוב מְאֹד 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הַשִּׁשִּׁי׃ ף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창조와 창조 세계의 질서를 세우심으로 창조를 마감하셨다.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땅위의 모든 것을 다 지으셨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과 사람에게 먹이를 배정하시므로 창조사역을 마감하셨다. 창조만 마치신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에 생활의 법칙도 다 세우셨으므로 창조를 마감하셨다.
모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아하셨다.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어졌으므로 매우 선하고 아름다웠다.하나님의 창조 세계에는 선한 것만 있고 더러운 것이나 악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족하시되 매우 크게 만족하사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셨다.선하고 아름다운 창조가 선하고 아름답게 남느냐 여부는 관리를 맡은 사람에게 달리게 되었다. 매우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이므로 이 창조를 그렇게 보존하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사람의 책임이 되었다. 이런 선한 창조에 악이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결정이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선하고 아름답다.
4. 6일에 천지창조와 지구의 정비를 다 마치셨다.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하늘과 땅을 6일간에 다이루셨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창조가 이루어지고 완성된 것이 아니고 기껏 6일에 창조가 다이루어지고 완성되었다. 전능하신 창조주는 이렇게 쉽게 짧은 기간에 다 창조를 이루셨다. 이제 남은 일은 자기의 창조를 즐기는 일이 남아있고 사람들에게서 경배와 찬양을 받는 일이다.천지창조와 지구의 정비에 6일이면 충분하였다.전능자에게는 6일도 오히려 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6일간에 모든 창조를 이루시고 7일에 안식하시므로 창조의 목표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육일을 사용하셨다.
창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
하늘들과 땅과 그 모든 별들이 다 마치니라.6일간의 사역으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창조의 첫날 곧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한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그리고 인류의 출현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전 정비 작업을 하시는데 6일을 소요하셨다. 이일이 6일에 다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은 창조를 마감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시고 땅을 완전하게 정비하셨다. 그 정비도 처음 창조시 없던 사항들을 지으심이므로 창조라고 함이 합당하다. 첫날 모든 창조가 다 이루어졌고 계속되는 6일간에 땅위의 모든 사물들이 창조되고 정비되었다.
처음 창조시에 없던 대기권의 창설, 물을 대기권 위에 세우심과 모든 생명체들을 창조하시되 나무와 풀들과 모든 식물들을 지으시고 또 모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모든 새들과 모든 나는 곤충들과 땅위의 모든 기는 짐승들과 짐승들과 지상에 거주할 모든 생명체들을 지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마지막 창조로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다.
이와같이 창조가 마감되었다.이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는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창조가 운영되고 통치되는 일만 남게 되었다. 진화에 의해서 새로운 생물들이나 새로운 무기물이 다시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속한 모든 것만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천계에 속한 모든 창조가 지구 정비로 마감되었음을 밝히기 위해 저자는 하늘과 땅과 그들의 모든 군대라고 기록하였다. םאבצ־לכו 그리고 그들의 군대라고 기록되어있다.이로써 땅의 정비와 함께 하늘의 모든 별들도 다 정비되었음을 분명히 한다.그런 모든 창조 사역이 다 마쳐졌다. 그러므로 그리고 마쳐졌다고 기록되었다. ולכיו 와이이쿨루라고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결과로 모든 일이 끝났음을 밝힌 것이다.
창조후에는 새로운 창조가 진행되지 않는다. 창조는 완결되었다.창조주가 모든 창조를 다이루시므로 더 이상 새로운 사물들이나 생물들이 지구상에나 다른 천체들에 도입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는 진화는 없다. 창조주가 진화의 방식을 취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창조는 보존되고 통치되어 그 창조 목적에 이르러 간다. 하나님이 다스리므로 그 본성을 다 드러내며 하나님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그 피조물들의 존재 목적이다.
창 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אֲשֶׁר עָשָׂה וַיִּשְׁבֹּת בַּיֹּום הַשְּׁבִיעִי מִכָּל־מְלַאכְתֹּו אֲשֶׁר עָשָׂ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신 일을 마치시고 그가 하신 모든 일을 그치시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마치셨다.
창조주는 창조를 이루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늘과 땅과 그가운데 모든 것을 다 지으시므로 자기의 일을 마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마치셨다고 기록하였다. וֹתכאלמ םי?לא לכיו 와이칼 엘로힘 믈라크토 라고 라고 명기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마치셨다.
그러므로 더 창조할 것이 없어졌다. 창조가 정비되어 자기의 과정을 다 어김없이 달리게 되었으므로 창조를 그치고 쉬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다 마치고 쉬시게 되었다는 것은 이신론이 주장하듯 하나님은 아무일도 안하시고 창조들이 자기들의 법칙을 따라 그냥 절로 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다스리신다. 다스리는 것은 아무일도 안하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창조를 마감하셨지 자기의 창조를 다스리는 일 까지 그만 두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제 7일에 쉬시므로 자기의 일을 그치셨다.하나님은 6일 동안 힘써 창조 사역을 하셨다. 그러나 일곱째 날 쉬신 것은 모든 질서가 다 확립되어 정상적인 궤도 운행을 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창조에 혼돈이 다 제거되고 질서가 완전해져서 우주가 되었음을 뜻한다.
창조의 정비는 모든 피조세계에 혼돈과 무질서가 완전히 제거되고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 기능을 다하게 된 것을 뜻한다. 질서가 세워지면 안식할 수 있는 것이다. 질서가 아직 완전히 세워지지 안했다는 것은 창조가 끝나지 안했음을 뜻한다. 창조는 무에서 만물의 출현만이 아니라 그 모든 사물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법칙과 본성을 따라 운행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질서와 생명과 아름다움으로의 장식이 완료된 것이 창조의 종결이고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쉬심이다. 질서 없는 창조는 아직 혼돈이다. 거기에는 안식이 있을 수 없다.
제 7일에 자기의 모든 창조 사역에서 쉬심은 더 이상 창조가 없음을 뜻한다.하나님은 창조를 마감하심으로 다른 사역을 남겨 두신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창조는 진행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새로운 창조나 새로운 종의 출현은 없고 창조된 것의 계속만이 있다. 새로운 창조는 창조의 완성시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거의 창조에 버금하는 일이 진행될 것이다.
제 7일에 쉬심은 피조물들에게서 경배받으심을 뜻한다.하나님은 창조를 마감하심으로 창조 목적에 이르러 가셨다. 그 창조 목적은 바로 피조물들에게서 경배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이다. 모든 일을 마치시므로 합리적인 피조물과 비합리적인 피조물들로 부터서 경배와 찬양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 지혜와 권능과 창조에 나타난 엄위와 영광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경배함을 받으셨다.
그중에 아담이 제사장으로 세워져서 모든 창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치고 베푸신 은혜의 창조를 인해 그에게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다. 모든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에 아담이 그 지휘자가 되고 모든 경배를 주관하는 제사장으로 일하였다. 하늘과 궁창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모든 땅과 그가운데 만물이 다 주를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인해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게 된 것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하나님은 이 찬양과 경배를 만족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이다.하나님은 자기의 창조주됨과 하나님됨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창조를 이루셨으므로 이렇게 찬양으로 자기의 사역을 마감하셨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וַיְבָרֶ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וַיְקַדֵּשׁ אֹתֹו כִּי בֹו שָׁבַת מִכָּל־מְלַאכְתֹּו אֲשֶׁר־בָּרָא אֱלֹהִים לַעֲשֹׂות׃ ף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드신 모든 일을 쉬셨기 때문이니라. 일곱째 날을 복주심은 제7일을 예배일로 정하심을 뜻한다.하나님은 7일간 즉 일주일 내내 경배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나님 경배의 날로 정하셨다.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를 베푸셨으므로 경배의 날을 정하사 그 날에 하나님만을 경배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목표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경배함에 모든 피조물들이 그 존재목적을 갖는다. 피조물들 특히 합리적인 존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면 그 본분을 다하므로 존재를 계속 허락받는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 존재 목적에 어긋났으므로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하나님 섬김에 사람의 존재 목적과 그 의의를 갖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성립한다. 따라서 이 존재 목적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루를 정하시고 복주셨다. 그러므로 한주간중 한 날은 하나님 예배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 삶의 길이다.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함은 그날을 하나님 섬기는 날로 구별함을 뜻한다.여기 거룩하게 하심은 제사장을 성별하고 또 죄인을 죄에서 구출해냄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분함을 뜻한다. 왜냐하면 경배받기 위해 일곱째 날에 모든 일을 마감하셨기 때문이다. 일주일 중에서 한 날을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분하는 것은 바로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므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거룩이다. 거룩은 다른데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엄위로우신 창조주를 경배하는 일이므로 이것이 거룩하고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거룩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일곱째 날에 지으시려고 창조하신 모든 일을 쉬셨다고 기록하였다. תוֹשׁעל םי?לא ארב־רשׁא ותכאלמ־לכ? תבשׁ 샤밭 미콜 8므라크토 아쉐르 바라 엘로힘 라아소옷트. 하나님이 창조하사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으니 그의 권리로 하루를 하나님 경배의 날로 정하심은 당연한 하나님의 권리행사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경배받으시기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경배받으시기 위해 일을 마감하셨다. 일을 진행하는 중에는 경배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하기 위해 하나님은 하루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 경배의 날로 정하셨다.
하나님은 쉬시므로 실제로 경배를 받으셨다.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마감을 창조주의 경배로 끝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첫 안식에서 아담과 하와와 모든 피조물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경배를 만족하셨다.경배받으심을 즐거워하시고 그 첫 거룩한 경배를 기뻐하셨으므로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이 경배는 땅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천상에서도 이루어져 모든 천군 천사들이 아담의 경배에 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며 찬양하였다. 이 천상 경배에는 스랍들이 경배를 주관하고 또 그 천사장인 루시퍼가 제사장으로 역사하였다고 말할 것이다.
무생물적인 존재들도 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의 영광을 선포하였다. 모든 창조물들은 다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감사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온 우주가 웅장한 합주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온 우주에 처음으로 찬양송이 가득하였다.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창조가 성전으로 조성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과 인격적인 존재들을 지으심은 경배받으실려고 지으셨다. 경배받으시는 장소는 바로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이다.그러므로 모든 창조가 성전의 구조로 축조되었고 특히 지구가 하나님의 경배를 주재할 사람이 사는 곳이므로 지구가 성전의 형식으로 지어졌다.
낙원의 조성후에는 이 성전의 구조가 낙원에로 옮겨갔지만 그후에도 지구는 전체로 하나님의 성전의 역할을 계속하였다. 하나님이 경배받으시고 경배를 주재할 제사장이 있으면 지구와 모든 창조는 다 하나님의 성전의 특성을 갖는다.아담이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땅은 그 제단이며 삼라만상과 하늘의 모든 세계는 다 찬양대로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사람의 합창과 송축이 아니어도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창조가 크지만 모든 창조가 다 아담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에는 아무런 혼란이 없었다. 그의 크신 이름이 얼마나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그 함성을 인하여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가 컸겠는가? 누가 다 그것을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헤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기록하지 못하였다.타락으로 지구가 하나님의 성전되기에 부적합하므로 하나님은 이 성전을 장막에로 옮기고 예루살렘 성전에로 옮기셨다.
창 2: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이것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들을 창조하고 만드신 날에 하늘들과 땅의 출생들이었다.하나님이 여호와로 호칭된 것은 하나님이 백성의 경배를 받으셨음을 표시한다.성경에 처음으로 창조후 안식일이 경과하여 하나님이 여호와로 호칭되었다. 여호와는 백성의 하나님을 뜻한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םי?לא הוהי 야웨 엘로힘 이시다. 하나님은 이미 백성들의 경배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와로 이름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여호와 야웨는 백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주님이 되셨다. 백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백성의 하나님됨을 영광스럽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창조 마감 직후부터서 창조주에서 야웨가 되시고 이를 기뻐하사 이것을 공포하셨다. 그것이 바로 야웨 엘로힘이다.
이것이 하늘들과 땅의 출생들 תוֹדלוֹת 톨르도오트라고 함으로 창조후의 경우를 말한다. 성경에서 톨르도오트라고 할 때에는 처음 사역에서 다른 과정이 진행될 때 이렇게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이 끝이 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고 처음 창조 때에 다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처음 창조 기사를 보충하려고 한 시도이다. 처음 창조는 모든 창조를 그 순서대로 개관하였으므로 그 비율로 하면 인간의 창조가 첫장에 기술된 것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일장에서 다 하지 못한 중요한 사실을 밝히려고 출생들이라고 표기하였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날에 천지의 출생이라고 하므로 모든 창조는 끝났음을 표시한다.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을 다 마치셨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심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날이라고 하였으니 그 날은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감한 날임을 분명히 한다. םימשׁו ץרא םי?לא הוהי תוֹשׁע םוֹיב םארב?ב 브요옴 아숏트 아웨 엘로힘 에레츠 웨샤마임.
사람을 창조하심이 모든 창조의 목표이고 그 사람과 교제를 함이 그 목적이므로 사람의 창조 과정을 다시 밝히려고 함이다.하나님의 창조의 왕관은 자기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에 있고 그 사람을 자기 백성을 삼아 섬김 받고 경배 받으며 서로 교제하기를 목표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의 왕관을 더욱 영화롭게 하시려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 자세한 사람 창조 과정을 밝히려고 하신 것이다.
창 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도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וְכֹל שִׂיחַ הַשָּׂדֶה טֶרֶם יִהְיֶה בָאָרֶץ וְכָל־עֵשֶׂב הַשָּׂדֶה טֶרֶם יִצְמָח כִּי לֹא הִמְטִיר יְהוָה אֱלֹהִים עַל־הָאָרֶץ וְאָדָם אַיִן לַעֲבֹד אֶת־הָאֲדָמָה׃
들의 모든 관목이 땅에 아직 없었고 들의 모든 풀이 아직 싹나지 안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위에 비가 오지 않게 하셨고 땅을 가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비가 내리지 안했고 경작할 사람이 없었고 밭에 채소가 없었다는 것은 모든 땅이 사람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음을 표시한 것이다.
창조기사는 땅의 창조와 정비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모든 창조의 목표가 사람의 출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 없이 땅의 창조는 완결된 것이 아니고 완결될 수도 없다.사람이 없는 창조는 미완성의 창조이다.사람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이고 하나님의 제사장이므로 사람이 모든 창조의 목표점이 되었다.
사람의 출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작할 수 없었음과 그러므로 소산이 제대로 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3. 비는 노아 홍수 때에까지 오지 안했다.
비는 대기권위에 바다가 있는 한 오지 안해도 식물들과 동물들의 성장과 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기권 위의 바다가 땅위에 필요한 수분과 이슬등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하늘에서 따로 때를 따라 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안했다는 것은 아직 창조를 경작할 사람이 없음으로 비가 올 필요성이 없었음을 밝힌 것이다. 비는 경작을 위해서 필요하므로 경작할 사람이 없으면 비가 올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 사람이 창조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풀과 나무와 채소들이 다 사람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사람이 돌보야 할 책임 사항이므로 경작할 사람이 없으면 그것들이 실제로 있어도 경작할 사람이 없고 또 그것들 보살피고 또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것들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지구상의 창조후에 그것들을 관리할 사람을 필요로 함을 말하기 위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사물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없으면 그런 것은 있은나 마나 하는 것이어서 이렇게 아직 없는 것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후에 사람의 창조가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한지를 말하려고 하고 있다.
들에는 아직 초목이 없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는 경작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없는 것과 같음을 말해준다.
지면을 안개와 이슬이 적시고 있었으니 초목이 무성하고 온땅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사람의 먹거리와 또 사람이 보살펴야 할 것들이므로 사람없이는 없는 것과 같고 또 있어도 별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창 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וְאֵד יַעֲלֶה מִן־הָאָרֶץ וְהִשְׁקָה אֶת־כָּל־פְּנֵי־הָאֲדָמָה׃
물줄기가 땅으로부터 올라왔고 땅의 모든 표면들을 물주었다.사람 창조 전에도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는 조치를 하심을 말한다.사람의 창조이전에도 이미 대기권위에 있는 바다와 바다의 물의 순환 작용 내지 증발 작용에 의해서 안개가 온 땅을 적시므로 초목이 잘 자랄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에서 땅이 나타나게 했고 또 물에서 대기권이 나오며 또 식물들이 다 물과 연관해서 창조되고 살도록 하셨으므로 안개가 지면을 적시므로 식물들이 잘 살 수 있게 하셔서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부족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하셨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땅의 먼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그 사람이 생명의 혼이 되었느니라.사람의 몸을 흙으로 만드셨다.하나님은 지구를 창조하신 후에는 모든 존재들이 다 흙으로 조성되게 하셨는데 사람도 땅의 흙으로 조성하셨다. 그리하여 땅의 거주자로 살 수 있게 하셨다. 사람은 땅에 살아야 할 존재이고 땅에서 모든 사물들을 관리해야 할 존재이므로 사람과 땅이 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땅의 흙으로 지으셔서 지구에 살기에 합당하게 하셨다. 천상의 천사들이 아니고 땅에서 왕노릇할 존재이므로 이렇게 한 근원에서 나오게 하셨다.
생명의 호흡 곧 생기를 불어넣음은 영혼을 창조해 넣음을 말한다.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은 만드셨어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해 넣으셨다. 그것이 생기를 불어넣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만드시기로 하셨으므로 영혼을 창조해 넣어 사람이 되고 산 영혼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특별하게 사람의 영혼을 자기의 형상으로 그의 유사품으로 만드셨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 조성되게 하셨어도 영혼은 직접 새로 만드시므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셨다.
생명의 호흡 곧 생기를 코에 불어넣음으로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나옴을 밝힌 것이다.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은 사람의 생명이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들의 생명의 근원이시지만 특히 사람의 경우에는 그 생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다고 표현하였다.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넣음은 하나님의 본성 실체가 주입된 것이 전혀 아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존재를 받을 수 없다. 또 하나님이 신적 존재로 아담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드시기로 하셨으므로 생명을 주신 것이지 그의 실체를 인간에게 부어넣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그런 것은 범신론에서나 가능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기 존재를 불어넣으셨으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고 유출이다. 그런 것은 다 이교의 사상이고 성경에 근거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산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생기로 생명을 시작되게 하셨다. 즉 숨쉬게 하신 것이다.
생령은 산 영혼을 말한다.사람은 흙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어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후에는 육체적 생명이 아니다. 동물들과 같은 육체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혼으로 살고 하나님에게서 온 생명으로 살므로 그 존재는 영혼이라고 함이 타당하다.영혼이 육체안에 있었어도 그것은 산영혼 היח שׁפנ 네페쉬 하이야 이다. 아담의 처음 존재방식은 지금 우리같지 않고 완전히 살아있는 영혼의 활동 방식이었다. 생명의 혼은 육체의 방식이 아니고 육을 가졌지만 영의 존재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사람의 존재방식은 다 육체의 방식 뿐이므로 처음 아담의 존재방식을 미루어 볼 수 없다.
산 영혼은 인간이 육체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육체로 구성되었으나 영의 존재 방식으로 살게 된 존재를 말한다.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וַיִּטַּע יְהוָה אֱלֹהִים גַּן־בְּעֵדֶן מִקֶּדֶם וַיָּשֶׂם שָׁם אֶת־הָאָדָם אֲשֶׁר יָצָר׃
여호와 하나님이 동쪽으로부터 에덴에 동산을 심으시고 거기에 그가 조성한 사람을 세우시니.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심은 사람의 특별한 주거와 하나님 경배의 자리를 마련하심이다.하나님이 처음 창조된 지구의 정비를 다마치셨을 때는 온 땅이 다 낙원과 같았지만 특별히 아담의 거처를 위하여 에덴 동산을 마련하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기쁨으로 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을 모셨으므로 그곳이 낙원 곧 기쁨의 자리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 낙원은 아담과 하와가 둘이만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경배하는 자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셨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고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권리이다.
낙원은 하나님이 아담을 만나시는 자리였다. 하나님이 편재하시고 온 땅에 함께 계셨지만 낙원에서 아담을 만나시고 교제를 하셨다. 그것은 아담의 예배와 경배를 받으시므로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의 뜻을 알리시고 자기의 경륜을 깨닫게 하셨다.낙원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시는 곳이므로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졌다. 그러므로 이 낙원에서 하나님은 예배받으시기를 기뻐하사 거기에 오시고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낙원의 창설은 낙원을 조성하심이고 특별 식물들을 심으심을 말한다.우리 성경은 낙원을 창설하셨다고 되어있지만 원문에는 심었다 עט?ו 와이잇타이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에 동산을 심으셨다. 동쪽은 저자의 기록 장소를 시내반도의 광야와 이스라엘 변경으로 보면 지금의 중동 지역이 된다. 이란이나 이락이 되고 더 정확하게는 메소포타미야의 어떤 지역을 말한다.
낙원은 그냥 상징적인 곳을 이름하는 것이 아니고 지상의 한 점이다. 발트가 말한대로 지구상에 그 위치를 표기할 수 없는 곳이므로 사람의 거소를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타락 후 하나님이 불칼로 막으사 모든 사람의 접근을 막았으므로 그곳은 경작되지 못해서 나무와 관목들로 가득 덮펴서 그곳을 알 수 없고 또 접근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노아 홍수때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그러므로 후기 랍비들의 해석대로 낙원이 천상에로 인양되었다는 사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이고 그가 그곳에 자기 아내인 하와와 함께 살았으면 그곳은 분명히 한 장소이다.지금 그 조성된 낙원을 지도상에 확인할 수 없다고 낙원을 지상의 한 곳이 아니고 단지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바른 성경 이해의 자세가 아니다.(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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