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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편◑/신학자들

프란시스 쉐퍼-이 시대의 설교와 신학은 세상 지식의 메아리, 메아리일 뿐이다

by 【고동엽】 2011.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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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설교와 신학은 세상 지식의 메아리, 메아리일 뿐이다 / 프란시스 쉐퍼

 

 선지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선지자는 저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 메시지를 되풀이한다. 여러분이 듣는 것은 모두가 메아리이다. 마치 속이 텅 빈 판자집 속에 있는 것 같다. 듣는 것은 온통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일 뿐이다. 이 시대의 신학을 공부해 보라. 여러분이 듣는 것이라고는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뿐이다! 무엇이 메아리치는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 저 사람이 말하는 것, 유물주의 사회학이 가르치는 것, 유물주의 심리학이 가르치는 것, 유물주의 경제학이 가르치는 것, 유물주의 철학이 가르치는 것이 메아리친다. 그들이 신학적 용어를 써서 그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성수로 적신 것처럼 메아리치고, 메아리치고, 메아리친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오 이세대여, 그리고 동요하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들이여, 나는 거듭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바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렘23:2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30절).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1) 이 제사장들은 어떠한가? 이 선지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메아리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히 오늘의 형편과 같다. 우리 세대에 전해지고 있는 신앙에 귀기울여 보면 대개 신앙이 없는 철학자나 사회학자가 말하는 것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너희를 심판에 이르게 할 것이다.”

 

렘12:10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 지도자들이 그 백성들에게 가져온 파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신다. “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훼파하며 내 분깃을 유린하여 나의 낙토로 황무지를 만들었도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정원을 밟아 파괴하였다. 정원을 황폐시키고 황무지로 만든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확실히 그렇다면, 황폐화시키는 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자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23:1) 양무리를 흩어지게 한 자들이 누구인가? 역시 종교지도자들이다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당연한 결과로 인해 너희를 보응하겠다. 절대 기준을 제거한 자유주의는 황무지로 가고 있다. 오늘날의 양무리들은 예레미야 당시의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 흩어졌던 양무리들보다 더욱 흩어지고 있다. 확실히 최대의 죄는 진리를 알고도 고의로 진리를 외면하며, 사람들에게 현대 세속 사상의 메아리인 상대주의를 제시하는 교회에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렘23:11)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 이것은 무엇인가? 상황 윤리 아닌가?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23:13-16)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21절). 그들은 와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였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며 말하였으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 내부에서 흘러나오며 그들 주변의 사회에서 회자되는 것을 메아리로 되풀이할 뿐인 그들 자신의 말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증오하는 것은, 나의 백성들이 나에게 반역을 했기 때문에 나의 심판 아래 있는데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다고 주장하는 그 선지자들이 평화가 없는데 평화, 평화를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롐6:14). 진지한 것을 가볍게 말하며, 온갖 이차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면 제사장들, 선지자들, 백성들이 일어나서 그 메시지에 대항한다.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서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였고).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보고 경악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불태우지 않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도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금서 목록에 넣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석의 형태로 그것을 파괴한다. 즉 그들은 성경을 다루면서 성경을 파괴한다. 역사적, 문법적 해석을 무시함으로써,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역사 속에 있는 명제적 계시인 성경 자체의 관점을 바꿈으로써, 성경의 ”영적“ 부분만이 우리에게 권위를 갖는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파괴한다.

 

스스로를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여러분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손상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말로 표현하신 명제적 의사가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도 슬픔이 차오르지 않고 “당신은 그 결과를 깨닫지 못한단 말이요?” 라고 울부짖지 않는다면, 나는 여러분이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격정이 없이 철학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문학에서, 드라마에서 전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예레미야가 감동되었던 것 같은 감동 없이 우리가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눈물을 흘리던 그 선지자처럼 눈물이 없이 우리가 어떻게 심판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 프란시스 쉐퍼, 『개혁과 부흥』, pp 38-52

 

 

출처: 청교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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