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죽어도 예수를 믿습니다
제정시대 때에 만주 연길현에 종성동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은 함경북도 종성 사람들이 개척한 동리로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침례교회도 하나 있었다. 그런데 1939년 11월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공산당원들이 이 마을을 습격하고는 교인과 동리 사람들을 예배당에 몰아 넣고는 불신자는 좌편에 교인들은 우편에 갈라 서라고 명령했다. 이때에 한씨 부인이 "나는 죽더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는 우열로 나서자, 너도 나도 60여 명의 교인들의 이에 따라 나섰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은 이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던 김영진 목사를 끌어다가 완전히 옷을 벗겨 쇠사슬로 결박한 다음 교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면도날을 들고는 발목으로부터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칼을 목에 대고 "너 이래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다짐시킬 때에 김 목사는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하며 '예수, 예수'할 때에 공산당원들은 그의 생식기까지 잘랐다. 이때에 김 목사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는데 독이 오른 공산당원들은 "너희들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렇게 죽이겠다."고 소리 소리 쳤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 배교하는 자 없이 모두 엎드려 울부짖어 기도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김영진 목사 후임으로 종성교회에 부임했던 한기춘 목사가 중언한 내용인데 말세에 이와 같은 때가 이르리니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님은 교훈하고 계신다.
2.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성 루시안(S. Lucianus)은 이단과 싸우다가 9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311년 맥시미아노 황제가 박해할 때 그도 잡혀서 끌려나가 심문을 받을 때, 그가 위대한 학자임을 아껴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 주고 부귀끼지 주겠노라고 약속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만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한 마디만 말할 뿐이었다. 재판하는 법관 앞에서도 일체 말하지 않고 다만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였다는 것이다. 감옥에 그를 면회하러 찾아온 성도를 보고 자기는 판자에 쇠사슬로 묶여 누워 있으면서도 도리어 신자를 보고 신앙을 끝까지 지킬 것만 권면했다. 그리고 그가 쇠사슬에 묶여 누워있는 그의 가슴을 제대(祭臺)롤 삼아 그 위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고는 그 다음날 끌려나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박해자들은 그의 시체에 큰 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에 던져 넣었으나 2-3일 후에 시체는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랑하고 고백해야 할 말 -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들어와도, 유혹이 눈웃음쳐도, 죄가 미혹시켜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외쳐 야 할 말,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3. 죽음을 넘어선 사랑
로마시대 북아프리카의 어느 지방에 펄페튜아라는 젊은 여인이 주 예수님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감옥을 방문해서 로마 법정이 요구하는 대로 예수님을 배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에게 아첨해서 자유 얻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재판할 로마의 치안관은 잔인한 법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로마법을 집행해야 하지만 이 여인을 사형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처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수차례 그녀에게 말하면서 그녀를 설득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치안관의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관은 그녀를 향하여 “너는 그리스도인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간단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녀를 원형극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녀는 군중들이 고함치는 원형극장에서 굶주린 짐승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그러나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용감했습니다.
4. 폴리갑의 순교
초대교회시대는 교회에 대한 많은 핍박이 있었고 수 많은 사람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서머나의 감독 이었던 성 폴리캅이 있었습니다.(A. D.69-155)
그가 순교할 때의 일 입니다. 그는 자기를 체포하러온 병졸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준뒤 화형대 앞에 섰습니다. 그때 호민관이 폴리갑에게 지금이라도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고 주님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왕이시요, 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겠는가?" 하고 화형의 장작더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외칩니다. "그대들은 한시간 가량 사르고 없어질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장차올 심판의 불을 모르는가? 왜이리 지체하고 있느냐 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그는 아주 평화롭게 찬양을 불렀으며,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서는 천사들이 그에 화답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결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육체적인 쾌락때문에 반쯤은 딴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도 없고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5. 토마스 모어의 순교
[유토피아(Utopia)]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교수형을 당할 때의 일이다. 사형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그때에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성경에서 보면 스데반이 죽을 때에도 사도 바울은 이를 합당히 여기고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끝까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마침내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그도 순교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 같은 순교자끼리 친구가 되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을 믿는다. 오늘 내가 당신들의 손에 죽지만 언젠가 당신들도 회개하여 주님 앞에서 친구로 만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것을 믿고 기도한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이다.
/곽선희 목사 설교 예화
6. 마지막 설교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 이후 4차 검속에 전후 7년 간의 옥고를 겪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감옥에서 순교하신 분이다. 일본 경찰이 그를 회유하려 잠시 가출옥시켰을 때 그는 자기가 시무하던 산정현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했다. 다음은 그 설교의 일부분이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80이 넘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나의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교우님들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산정현교회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려합니다.
(말씀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 주목사님의 음성도 비장하여졌고 만당의 교우들은 모두 눈물로 성경책을 적시며 흐느껴 울었다. 독사의 눈 같은 일본 형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여 철석같은 마음이 변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 때문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설킨 인정의 줄 때문에 주님 따라 가는 길이 방해를 받는다면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부모나 처자를 사랑하고 아끼되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이 마지막 설교 속에는 참된 순교자의 의연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7. 똥을 퍼먹은 허임
1840년 1월 30일 순교하여 103위 성인 가운데 오른 허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포청에 끌려갔는데 심한 혹형으로 배교를 하였었다. 그러나 곧 그것을 뉘우치고 즉시 재판관을 찾아가서 말했다.
"나는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그걸 뉘우칩니다. 입으로는 배교하였으나 마음으로는 교우였고 지금도 교우입니다."
재판관이 그를 다시 옥에 가두었는데 옥사장들이 그를 괴롭히며, "말로 취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네가 뉘우친다는 표를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소변이 가득 찬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저 통에 있는 것을 퍼서 먹고 마셔라" 그러자 허임은 서슴지 않고 그 것을 한 사발 듬뿍 퍼서 단숨에 삼켜버리고 다시 뜨려고 하니 옥사장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 두어라, 그만 둬. 그렇지만 여기 십자가가 있으니 네가 배교하기 싫거든 십자가 앞에 엎드려라."
허임은 꿇어서 이마를 땅에 대고 조아리며 배반하였던 예수를 온 마음을 다해 통회하고 예배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배교를 취소하고 심한 매질과 함께 옥중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8. 주님을 파는 아버지는 원치 않습니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고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간수들은 굶은 쥐들을 감방에 들여 놓아, 그는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눈을 잠시 붙이려고 하면 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쥐들을 쫓아야만 했습니다. 간수들은 그를 2주동안 밤낮으로 세워놓고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의 14살난 아들을 데려다 그의 앞에서 사정없이 채찍질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러자 그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치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악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습니다. 감방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9.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주후 32년 경 겨울에 로마 황제는 군인들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은 이교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 칙령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그 직분을 잃을 뿐 아니라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300년 동안 무적의 사단이었던 12사단의 대장은 자기들의 부하를 불러 모아 놓고 그 칙령을 읽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2사단 군사들이여, 여러분은 여러 전투에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황제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제국의 가이사에게 충성을 다 하는데 앞장섭시다. 내일은 우리 사단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얼마 뒤 두 명의 군인이 장군을 찾아 와 12사단에는 40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그들은 이교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장군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들에게 말하시오, 만약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무기를 압수당하고 그 직책에서 쫓아 낼 것이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리 알고 깊이 생각하고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시오," 그 날 밤 진영에서 4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시편을 읽고 찬송을 불렀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제사 참여를 거부하자 처형하라는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다. 팔과 목이 묶인 채 제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얼어붙은 호수 근처로 끌려갔다. 해가 지자 그들은 벌거벗긴 채 호수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들이 세운 큰 전과(戰果)를 참작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호수 옆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고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한 사람을 위해 따뜻한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이들이 호수 가운데로 끌려가자 차가운 바람이 얼어붙은 호수 위로 불었다, 목욕탕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은 호숫가에서 장작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 보초병은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 가자 찬송 소리가 약해졌다. 그 때 보초병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와 함께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천사의 찬송 소리가 바뀌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39명, 순교자 39명, 그리고 39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때 그 보초병은 따뜻한 목욕탕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즉시 그 보초병은 무기를 놓은 채 소리 질렀다. "여기 내 옷을 입으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소!" 그리고는 그 보초병은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를 향해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다음날 아침 장군은 죄수들을 끌어내라고 명하였다. 얼어 죽은 시체들이 호수 한가운데 쌓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보초병의 시체도 있었다. 그가 주님을 안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10. 순교자 기념관
용인에 가면 한국선교백주년순교자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 3층을 올라가면 그곳에 한국에서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순교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에 순교자 사진 마지막에는 사진박스는 있는데 사진은 없었습니다. 대신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자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젠 당신이 순교할 차례입니다.
(김홍진목사)
11.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남서쪽에 리틀턴이라는 지역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25명과 용의자 2명이 총기 난사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 가운데 살아남은 여학생이 증언한 놀라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불량 서클 단원이었던 '트렌치 코트' 마피아단원 둘이 총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학생들을 난사하고 있었을 때, 그곳에는 17살 된 캐시 버넬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총을 들고 있던 학생 하나가 그녀에게 총구를 목에 겨누고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냐?" 만약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어"(Yes, I believe in God). 그러자 그는 총구를 캐시의 가슴에 겨누고는 마구 총을 쏘았습니다.
캐시의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미국 크리스천 십대들 사이에서 "Yes, I believe in God"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플로리다 주의 한 도시에서는 2천 5백 명의 십대들이 모여 감동적인 신앙고백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의 이름 역시 "Yes, I believe in God"이었습니다. 이 집회는 마약 속에 찌들어 죽어가던 미국 크리스천 십대들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운동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장로, 집사, 권사라고 하면서도 빌라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자인 캐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삶과 죽음을 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성경의 가치관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내 출세와 경제적인 이익을 앗아간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동원
12. 순교자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자기의 화형집행 형리를 감독하던 치안판사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이옵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치안판사는 너무나 놀랐다.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니 어찌 불안하며 두려우랴. 무디 선생은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문이 열린 것이 보이는구나”
라고 하며 기쁘게 세상을 마쳤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천국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쁘게 죽어갈 수 없을 것이요. 기쁘게 죽어가지 않을 자가 어찌 천국에 가겠는가. 마지막 모습이 그의 행방을 말해 줄 것이다.
13. 순교의 피
3.C. 170년경에 시리아의 안디오크스 에피파네스가 유대 종교를 말살해 버리고 완전히 헬라화를 시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8만명의 유대 사람들을 죽이고 10만 명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의 신을 모셔 놓고 강제로 숭배를 하게 했으며 돼지고기를 가지고 성전을 더럽혔고 성전을 창녀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 때문에 생명을 바쳤습니다. 특히 유명한 사건 하나는 일곱 사람의 형제에게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성기라고 했는데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하나씩 차례로 학살을 당했습니다. 장남은 차바퀴에 결박을 하여 돌려서 죽이고 차남은 쇠못 장갑으로 가죽을 벗겨서 죽였으며 셋째는 능지 처참을 했고 넷째는 혀를 자르고 다섯째는 산 채로 돌방아로 장어서 죽이고 여섯째는 시뻘겋게 단 쇠꼬챙이로 창자를 찔러서 태워 죽였으며 일곱째는 불가마에다 볶아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일곱째는 여섯 형제에 대한 그 고문과 학살을 수시간 동안 보면서도 결코 그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지킨 순교의 퍼가 면면히 흐르고 흘러 신약의 순교의 퍼가 흐르고 전도자들의 순교의 피가 흐른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한국 사회에도 카톨릭과 개신교의 많은 순교의 피가 이조 시대와 일제 시대와 공산치하에서 이렇게 흐르고 흘러서 우리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함부로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종교 중파 하나로, 유명한 사람의 철학이나 성현의 가르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게 진실한 사람들이 자기와 단 한번만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 것뿐만이 아니고 자기치 매 순간 순간을 통해 진실되게 증언해 준 진리입니다. 이 생명의 복음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순교의 피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들처럼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 이것을 후대에게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14. 순교의 결실
영국 전역에 인쇄된 성경이 퍼진 것은 1537년의 일이었다.
1536년 종교개혁자 윌리엄 틴과 그의 친구들이 2년동안의 복역끝에 화형을 당했는데 이를 계기로 성경이 보급됐던 것이다.
당시 윌리엄 틴과 그의 친구들은 종교계급을 비판하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앞장섰다가 반대파의 밀고로 헨리 8세에 의해 체포,구금됐었다.
윌리암 틴은 화형에 처해지기전 『주여,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말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영국 전역에 성경을 보급시킨 주인공은 바로 헨리 8세였다.
15. 거룩한 순교
베트남 항공기 사고로 순교한 오형석 선교사.그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선교지인 캄보디아에서 순교했다.
그는 사고 전날 한국을 떠나면서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선교의 오지다.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곳이기에 더욱 선교활동이 필요 하다.
선교활동이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라면 나는 이곳을 선교지로 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선교사는 죽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는 곧 순교」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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