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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이해 〓/성경 성립과정 이해

성경의 형성사 및 번역사

by 【고동엽】 2007. 2. 4.
 
 

성경의 형성사 및 번역사

초기의 히브리 구약성경은 BC 1450년에서 BC 400년까지 무려 105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모세의 성경 기록이  BC 1450-1400년경에 오경을 기록했다. 구약의  말라기는 BC 400년경에  기록했다. 처음 구약성경은 고대 히브리어로 가죽이나 파피루스로 기록되었다. 
 

정경이 되는 과정에서 율법서는  BC 444년에, 예언서는 BC 400-200년,  성문서는 대략 BC 165-100년경에 이루어졌다.   예언서는 BC 300년이 지나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대체로 40∼66장)는 그 기록자들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이사야서의 뒤에 부착시켰다.

 

다니엘서는 BC 167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에스더와 역대상.하 그리고 에스라.느헤미야도 너무 늦게 작성되어 역사서 부분에 포함시킬 수 없어 성문서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AD 500년 이전의 히브리 사본에는 장모음을 표시하는 일부 자음을 제외하고는 모음체계가 없었다. AD 600-950년에 즉 거의 1500년이나 걸쳐오면서  마소라(Masoretes) 유대인 학자들이 정확한  발음을 위해  모음체계와 악센트를 보안해냈다.  마소라 학자들의 히브리 성경 연구는 5세기 후에 성경을 인쇄하는데 있어서 기틀을 마련했다.

인쇄된 히브리성경의 제일 첫 부분은 시편이었다. AD 1477년에 시편일부를 처음에 인쇄했으며, 1488년에는 모음부호와 악센트가 첨가된 히브리 구약성경 전체가 첫 출판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거의 20년 동안은 주로 헬라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유일한 성경이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신약성경이 없었다. 최초의 신약성경인 야곱보서가  AD 45년에 기록되었다. 요한계시록은 9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가장 뒤늦은 책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구약만을 성경으로 사용하였다. 베드로는 스데반(행 7:2-53), 빌립(행 8:32-35), 바울등은  구약(행 2:14-16)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신약의 모든 기록자들은 구약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영감적 기록은 구약에서 영감을 받는 계시에 근거하였다.

신약의 복음은 초기에 구전을 통하여 전파되고 구약 역사와 예언에 비추어 해석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마침내 글로 기록되어 AD 70년경에서야 공관복음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교리적인 설명이  필요하게 되다보니  바울서신과 그 외 다른  서신들도 이를 위해 기록되었다. 교회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개괄적 설명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다.


마르키온은 영지주의자로서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가운데 10편만을, 그것도 많은것을 삭제 한 후 자기들의 교리적인 근거로 삼았다. 정경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다른 문서들의 출현으로 정경을 명확히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그 첫째 표준은 "사도성"이었다. 기록자가 진실로 사도인가? 아니면 마가복음의 기록자나 누가복음, 사도행전 그리고 히브리서신의 기록자의 경우와 같이 그가 사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둘째 표준은 "내용"이었다. 그 주제나 그 주제의 취급과 영적인 특징이 성경으로서 합당한가? 이러한 기준에 의해 위문서들은 제거되었다.

 

셋째 표준은 "보편성"이었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문서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는가?

 

넷째 표준은 "영감성"이었다. 그 문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딤후 3:16)라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성령께서 이것은 진실하다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는가? 이것이 마지막 기준이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더라면 신약 정경은 올바르게 제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르타고 제3차 교회회의(397년) 여기에서 정경에 대한 최초의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규정된 사항 중의 하나는 교회내에서는 오로지 "정경으로 인정된" 책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목록이 되었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것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히포 교회회의(419년)는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의 목록을 거듭 확인하였다. 이처럼 정경의 선정은 개개의 책들이 자체의 가치를 입증한 후 교회회의에서 확인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겪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298-373년)는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27권의 신약성경에 대하여 "정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약 정경은 교회협의회의 활동을 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개개의 책들이 지닌 영감성과 내적인 권위가 그것들을 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경화하는 결정적인 요소를 이루었다. AD 200년에 이르러서야 신약은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서들을 포함하였다. 그 후 이것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오늘날과 같은 권위와 확실성을 지니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3세기 말에 가서야 모든 외경서들이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그리고 이집트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이 설정한 명확한 구분으로 실제로 어떠한 문서가 정경의 지위를 갖는가에 대한 논쟁은 그치게 되었다.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397년)는 이 결정을 확증하였으며, 이때부터는 어느 신약 문서에 대한 논쟁도 그치게 되었다. 동방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신약 정경은 모든 실제적인 목적에 맞추어 서방에서는 400년에, 동방에서는 500년에 이르러 그 결정을 보았다.

몇 가지 근소한 차이점을 제외하고서는 4세기 초 신약정경에 대한 결정은 현재까지 내려오는 교회의 결정으로 남아 있다.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은 소위 교회의 절대성이라는 권위에 항변하여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구약 정경에 대하여 로마교회는 1546년 「사크로산크타 교령」(Decree Sacrosancta)으로 트렌트공의회 중 14권의 외경서 중 11권을 정경으로 공포했다.

고대로부터 신약만큼 서방세계에 영향을 많이 주었던 문서는 없었다. 어떠한 고문서의 본문도 이렇게 잘 입증되지는 못했다. 거의 5천편의 헬라어 사본(필사본)이 있으며, 초기 번역문서의 사본만도 1만여편이 존재하며 이외에도 수천에 달하는 교부들의 인용문이 있다.


언셜자체 사본은 둥근 종 모양의 대문자로 양피지위에 기록되었으며 800년경까지 신약 필사본에 사용되었다. 현재 300여개의 언셜자체 사본이 남아 있다. 초서체 사본 소문자 필사본은 초서체로서 기록되었는데, 9∼18세기로 추정된다. 모두 합쳐 2,647편의 소문자 사본이 발견되었다.

역본 100년 전의 헬라어 본문에서 번역된 것들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이 가운데서 고대 라틴어역(2세기), 히에로니무스의 불가타역(382-84년), 시리아역(4∼5세기), 콥트역(2∼4세기), 아르메니아역(5세기 초), 고대게오르기아역(5세기), 에디오피아역과 고트역(4세기 중기)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성구집 이것은 연중행사에 통독된 성경 교훈을 담고 있는 교회 예배서이다. 언셜자체와 초서체로 된 2천여 성구집이 남아 있다. 이들의 연대는 280-1600년경으로 추정된다. 교부들의 인용문 이 중에 8만 6천여편 이상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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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라 히브리어 필사본 그 연대는 9세기 말 이전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예언서가 기록된 카이로 사본(895년), 구약 전문이 기록된 알렙포(Aleppo) 사본(925년경), 레닌그라드 사본(1108년에 완성됨)으로서 후자는 키텔의 《Bilblia Hebraica》의 본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1947년에 발견된 2개의 이사야 필사본 사해 두루마리는 우리에게 BC 2∼1세기로 추정되는 구약문서들 중의 하나를 제외한 모든 단편문서와 함께 1천년이나 더 앞선 히브리어 본문을 보여 준다.

 

성경 영어역본
초기 앵글로-색슨어역 비드(Bede)에 따르면 680년경 캐드몬은 일상어로 기록된 성경의 내용을 시로 표현했다. 비드(735년에 죽음)는 요한복음 번역자로 정평이 있었다. 앨프릿 왕(848-901년)은 성경의 여러 부분을 자국어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위클리프(14세기)와 틴델(16세기)시대까지는 성경이 부분적으로 영역되었다.

위클리프역(1382년) 이것은 최초로 완역된 영역본으로 1400년경에 수정되었으나 1415년에 몰수되어 불타없어졌다. 그러나 적어도 170여편의 필사본이 남아 있다. 단점은 헬라어 원본 대신에 라틴어 불가타역을 기초로 했다는 점이다.

틴델역(1525-35년) 틴들역의 중요성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본에서 번역본 가운데 최초의 것으로서,  1611년에 번역된 공인 홈정역(KJV)의 근간을 형성했다.

마일즈 커버데일(Coverdale)역(1535년)은  틴델의 학자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는 미완성되어 있던 부분을 독일어와 라틴어 번역을 통해 자력으로 보충하였다. 그는 최초로 인쇄된 완역 영어 성경을 출판하였다.

두에이 성경(1609-10년) 최초로 영역된 로마가톨릭 성경이다.

흠정역(KJV, 1611년) 전술한 초기 번역본과 개정판 가운데 극치를 이루었다. 영국 제임스 1세의 후원으로 제3의 "공인" 영어 성경이 되었다.

 

또한 이것은 13세기 켄터베리의 대주교 스티븐 랭튼(Stephen Langton)의 장구분법과 로버트 에스티엔느(Robert Estienne, 1551년)의 절 구분법을 사용하였다. 이 번역은 1611-1881년까지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개정역(RV, 1881-85) 65명의 영국 학자들이 히브리.헬라어 원문을 직역한 흠정역의 개정판이다.

미국 표준역(ASV, 1901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그린(William H. Green)의 지도 아래 미국 학자들이 출판한 1885년 개정역 미국판이다.

영어 개역 표준판(RSV, 1952년) ; 신약(1946년)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 in the U. S. A)에서 인정된 것으로 구약의 중요한 메시야 어구를 번역함에 있어 의미가 미흡하고 애매한 데가 있다.

새 영어 성경 ; 신약(1961년) 케임브리지의 도드(C. H. Dodd)의 지도 아래 영국 학자들이 출간한 완전히 새로운 번역본. 이것은 고어법이나 체계없는 현대어법을 탈피하여 헬라어 원문의 관용적인 영어 표현을 시도하였다. 미국에서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으나 많은 복음주의자들로 인한 문제가 없지 않다.

현대어 번역은 1898년에 출판되어 20명의 영국 학자가 만들었으며 매우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는다.

웨이마우드(Weymouth)의 신약성경 영국의 침례교 평신도가 번역했으며, 그가 죽은 후인 1903년에 출판되었다. 1924년, 1933년에 다른 사람이 개정했다.

펜톤(Fenton)의 현대 영어 성경 부유한 영국인 페라 펜톤이 몇 년 동안 원어(原語)성경을 읽고, 다른 번역을 참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번역한 것으로 1903년에 출판되었다.

모패트(Moffat)의 번역 스코틀랜드 사람이며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의 교수인 모패트가 번역한 것으로 신약성경은 1913년에, 구약성경은 1924년에, 신.구약 합본은 1926년에 출판되었다.

강변(Riverside) 신약성경 조합교회의 목사이며, 오벌린 신학대학의 학장이었던 발렌타인이 1923년에 출판했다.

스미드와 굿스피드의 성경전서 시카고대학의 굿스피드는 1923년에 그의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시카고대학의 J. M. 포이스 스미드는 맥길대학의 고든, 터론토대학의 미크, 미시간대학의 워터맨과 공동으로 구약성경을 번역하여 1923년에 출판했다.

몽고메리의 100년 기념 신약성경 1924년에 출판되었다. 뉴욕주 로체스터에 살던 몽고메리 부인은 1921년에 북부침례교 총회의 회장이었다. 그의 신약성경은 미국 침례교출판협회의 100년 기념 출판으로 북부침례교 총회의 회장인 몽고메리 부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성경이며 1924년에 출판되었다.

기본영어 신약성경 1941년에 출판되었다. 런던 대학이 S. H. 후크(Hooke)가 8명의 저명한 학자의 협조를 번역했다. 영어의 가장 쉬운 단어 1천개를 사용했으며, 기독교 출판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버클리(Berkeley)의 성경 1959년에 존더반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인쇄가 잘되었고 읽기가 쉽다. 원문을 현대영어로 잘 옮겨 놓았다고 학자들이 평한다. 성경 읽기에 흥미를 주는 간단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놀리(Norlie)의 신약성경 존더반 출판사가 발행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된 책이다.

새 영어 성경, 신약성경 1961년에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증보판 성경 존더반 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처음에 구약과 신약을 별도로 출판한 것을 하나로 합본한 증보판이다.

예루살렘 성경 불어판 예루살렘 성경을 기초로 번역했고, 히브리어 본문과 헬라어 본문을 대조했다. 새롭고 읽기 쉬운 성경이다.

새 미국 성경(NAB, 1970) 가톨릭과 개신교의 학자들이 공동번역한 것이다. 30년 동안 작업하여 문체와 해석의 통일성이 결여되었다.

오늘의 영어 성경(TEV, 1976) 일반 언어학의 반종교적 번역 이론을 기초로 한 최초의 영어 성경. Good News of Modern Man(현대인을 위한 기쁜소식)이라는 표제하에 보급판으로 판매되었다.

새 국제 성경(NIV, 1978) 보수파 개신교의 입장에서 번역하여 원어에 충실하고 의역을 피했다. 영국과 미국의 교인들이 공중예배와 개인연구에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리빙 바이블(LB) ASV를 기초로 하여 현대 영어로 의역한 성경. 읽기 쉬운 구어체로 번역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자세한 것은 《기독교대백과사전》8권 1449-1486면을 참조 바람)


한국에 성경을 소개한 사람은 1832년에 화란 선교사 구츨라프 목사였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한국 사람 이응찬, 백홍준은 1883년에 누가복음 3천부를 발행했다.

1887년에 로스목사는 같은 계통에서 파송된 매킨타이어(John Mclntire)와 함께 신약성경 전부를 번역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 관비유학생 이수정이 1884년에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1885년에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그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1887년에 아펜젤러 역 마가복음, 1890년에 언더우드역 누가복음과 스크랜톤 역 로마서, 1892년에 3인 공역인 마태복음, 1894년에 펜윅(Fenwick) 역 요한복음, 1895년에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1897년에 골로새서와 베드로전.후서, 1900년 5월에 신약성경 전부가 완역되었다.

1904년에 신약전서가 개역되었고, 1906년에 이것을 재수정하여 결정본으로 공인역으로 출판되었고, 1937년에 다시 개역하여 일제 말기를 지나 8.15해방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공인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2. 해방 이후
1961년 1월 25일에 한국 학자들만의 노력으로 마태복음이 번역되었다. 1967년 12월 15일에 새 번역 신약성경이 출판되었다. 한글 고문으로 한갑수, 문장 위원으로 전영택.안신영.임한영.박영준.석용원.김재준 제씨, 원문 대조위원으로 지원용.윤성범.곽안전 제씨, 서기는 정용섭 목사가 수고하였다. 1968년 2월 15일에 신.구교 성경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 김정준 박사, 서기 정용섭 목사, 위원에 배제민.문익환.선종완(신부).최의원(사정상 사퇴) 제씨다. 1971년 부활절에 신약성경 공동번역이 출판되었다.

 

 

 

 위원에는 구교측에 백민관 신부, 최창덕 신부, 김창렬 신부(사정상 사퇴), 평신도측에 김진만 교수(성공회), 이근섭 교수(감리교), 신교측에 정용섭 목사(성서공회 직원), 박창환 목사다. 1977년 4월 부활주일에 공동번역 성서(신.구약합본)가 출판되었다. 한편 생명의 말씀사에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영어판 리빙 바이블을 기초로 하여 1977년에 《현대인의 신약성경》을, 1985년에는《현대인의 성경》을 발행했다. 또한 대한성서공회에서는 1967년에 나온 새번역 신약성경을 수정하고 구약성경을 다시 번역하여 1993년《표준 새번역 성경》을 발행하였으나, 이 성경이 진보적 신학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지나친 의역이라는 이유로 보수 신학계와 교회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내용출처: http://burm.netian.com/menu9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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