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경 번역 역사
1) 해방전의 성경 번역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온 한국교회. 그 성장 뒤에는 하나님의 특별계시(特別啓示)인 성경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기독교 역사는 한글성경의 번역과 보급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어오기 3년 전 이미 조선 민중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글성경 보급과 교회 성장은 이국 땅에서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내걸었던 이들의 피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사 학자들은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100년 먼저 전래됐지만 개신교보다 교세가 적은 것은 결정적으로 성경을 빨리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정도다.
본보는 ‘한국성경의 대탐구’ 시리즈를 통해 한국교회의 근간이 되는 우리말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고 한국교회의 분명한 정체성을 찾아본다.
학계에는 개신교 성서 번역의 시초를 놓고 여러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의견은 1832년 네덜란드선교회 소속 귀츨라프가 충청도 지역에서 한국인의 도움으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 그러나 주기도문을 성경 전체로 볼 수 없는데다 자료마저 남아있지 않아 근거가 미약하다. 둘째는 1866년 토머스 선교사 순교 사건이다. 토머스 선교사는 대동강에서 순교할 당시 한문성경을 조선인들에게 뿌렸다. 훗날 이 한문성경을 받은 한 사람의 조카가 기독교인이 되어 레이놀즈와 함께 성서 번역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한글성경 번역과 직접적 관련이 없어 논지의 근거가 미약하다.
마지막으로 로스역이라 불리는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1882년)의 발간이다. 이것은 분명한 근거와 영향력을 갖고 있어 우리말 성경의 시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성경은 현재 한국 성도들이 즐겨 쓰는 개역개정판 성경의 6대조 할아버지쯤 된다.
◇최초의 우리말 성경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예수셩교 누가복음젼서'(1882년)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선교사였던 존 로스(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1837∼1905), 조선인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어 성경이다. 이들은 중문성경 ‘중국어문리역’을 기본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했으며, 1882년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시작으로 1887년까지 신약 27권을 모두 번역해 ‘예수셩교젼서’를 완성했다.
로스가 중국 선교사로 상하이에 도착한 것은 1872년 8월23일이다. 당시 30세였던 로스는 아내 스튜어트가 중국에 도착한 이듬해 3월 출산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아픔을 겪는다. 갑작스러운 사별을 겪은 로스는 만주 선교에 평생 헌신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윌리엄 목사로부터 “6년 전 토머스 목사가 대동강에서 한국 선교를 위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들어가다가 순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선배 선교사의 한국 선교 열정에 감동을 받은 로스는 결혼 1년 만에 겪은 사별의 슬픔을 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대로 아시아의 마지막 땅 조선에 복음의 문을 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조선인과 로스의 운명적 만남은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는 1875년 선교부의 지시에 따라 중국 유현(維懸)에서 매킨타이어와 동역했다.
1876년 한국어 공부를 위해 어학선생을 물색하던 중 봉천(현 선양)에서 월 4냥의 월급을 주는 조건으로 한국어 교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이응찬이었다. 당시 조선은 엄격한 쇄국정책 속에서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며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878년 봄까지 이응찬과 동향 친구 몇 명이 로스와 요한복음, 마가복음 번역 작업을 진행했으나 주변의 고발 위협으로 잠시 중단하게 된다.
◇복음 전도·한글 보급 계기 마련한 ‘선각자’=성경 번역 작업은 매킨타이어와 같이 진행됐다. 성경 번역 작업은 말씀 연구, 신앙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졌고 이들 초기 멤버들은 의주교회의 초석이 됐다. 1879년 3월에는 한국인 번역자 중 한 명이 세례를 요청했는데 이것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세례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자료에 이름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는 묵묵히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마음에 품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증인일 것이다. 말씀의 능력은 복음에 무지한 조선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었다. 이후백홍준과 전직 관리, 서울 출신 학자 등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나중에 목숨을 걸고 성경을 가슴에 품은 채 조선 땅에 입국한다.
1879년 로스가 2년간의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으로 떠난 사이 매킨타이어는 이응찬 등 조선인과 함께 성경을 번역했다. 로스는 1881년 9월부터 1886년 가을까지 매킨타이어 번역팀이 만들어놓은 신약전서 번역 원고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번역에 따른 비용은 영국성서공회(BFBS,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와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 The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가 지원했다. BFBS의 자료에 따르면 1883∼86년 조선에 보급된 한글성경은 총 1만 7609권이었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초기 선교사가 입국 전 이미 로스가 번역한 성경으로 개종한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로스는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개종자를 배출해 낸 선각자”라면서 “특히 성경이라는 획기적 계기를 통해 조선 민중에게 한글을 보급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성경 번역은 “파나마운하를 하나 파는 것과 맞먹는 일”이라는 게일 선교사의 말처럼 10년 이상 걸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완역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헌신한 두 선교사와 번역에 동참한 한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헌신적 자세는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 어떤 것도 한글성경 사업에서 나를 떼어놓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제 나의 모든 영혼은 그 안에 있다….”(매킨타이어의 ‘The Corea Version’, 1881).
2) 문체 논쟁
초기 성경 번역 과정에서 번역용어와 이론 논쟁 이후 벌어진 것은 문체 논쟁이다. 1930년대 문체 논쟁의 요지는 구어체로 할 것이냐 문어체로 할 것이냐의 문제로 한국 기독교의 성향을 드러낸 것이었다. 논쟁 결과 문어체 번역을 주장한 보수적 서북계의 의견이 관철됐으며 성경에 보수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첫 우리말 성경은 구어체로=우리말 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존 로스는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을 목표로 했기에 표기는 순 한글을, 어휘는 고유어를, 문체는 구어(입말)를 채택했다. 로스는 번역한 성경을 의주 상인을 비롯한 조선 민중에게 직접 읽어보도록 해서 이해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수정했다. 그 결과 나온 ‘예수셩교젼셔'(1887)에는 순수한 우리말과 사투리가 많이 사용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국내에서 진행된 번역 작업은 성서문체, 즉 문어체가 사용된다. 그 이유는 번역을 도운 한국인 조사들이 한문에 능한 사람들인 데다 초기 번역자들이 참조한 천주교 성경이 문어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문어체는 경전으로서 장중함과 위엄을 준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구어체 문장을 읽고 자란 청소년층엔 성경이 구태의연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했다.
◇발단은 신약성경의 개역=1930년대 들어 젊은 선교사들과 한국인 번역자들에 의해 신약개역이 본격화되면서 문체 논쟁이 시작됐다. 발단은 스톡스와 클라크, 김필수가 번역한 ‘요한복음 개역‘이었다. 이들 번역자는 이두식 토인 ‘하나이다’ ‘하엿더라’ ‘이라’ ‘갈아사대’ 등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문어체를 없애고 ‘하다’ ‘이다’ 등의 현대 문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글로 인쇄되는 모든 책과 신문, 잡지 등은 구어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성경은 여전히 문어체 문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문학을 읽는 젊은이들은 성경에 사용된 옛날 책 문투가 눈에 거슬린다고 합니다. 신약개역자회가 제안한 보다 직접적이고 간단한 표현법은 바로 그 상황에 대처하려는 것입니다.”(홉스의 보고서, 1931)
이처럼 신약개역자회는 스톡스가 중심이 돼 현대문을 읽는 젊은이와 교육 수준이 낮은 부녀자, 농민층을 타깃으로 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이고 간단한 표현법’을 추구했던 신약개역자회의 노력은 서북계 교회의 거센 반발로 좌절된다.
◇서북계의 반대와 한국 교회의 각성=’요한복음 개역’에 대해 서북계가 적극 반대했던 이유는 구어체를 속화(俗話·고상하지 못한 속된 말)로 봤기 때문이다. “번역은 본문대로 번역하되 쇽화(俗話)를 쓰지말고 졍음(正音)의 죠션방언으로 하기를 의론하엿사오며.”(‘죠션예수교쟝로회총회 뎨二十一회 회의록’, 1932)
서북계가 새 문체에 반대했던 논리는 “한글 문체는 선교사들이 아닌 한국인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담겼다.
“번역위원 중에 조선인측으로 김인준씨와 교제 2인이 잇을 뿐이다… 이와갓치 교회의 생명이오 신앙생활에 유익한 표준인 성서에 대하야 누가 개역한은지 마는지 여하한 상태로 진행한은지 전혀 불문에 부치고 잇다가 남의 손으로 만드러 주는것을 가만히 안저서 그대로 받을 것뿐이겠는가.”(남궁혁의 ‘성서개역위원회를 보고 나서’, 신학지남, 1931)
이는 희년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가 아직도 성서위원회에서 표결권을 가진 위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서북계는 1931년 9월 금강산에서 열린 장로교 총회에서 성경개역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것을 헌의했다. “평양로회쟝의 셩셔번역회에 죠션인 위원을 참가하도록 하자는 헌의는 당석에서 토의하야 교섭위원 3인을 공쳔부에 맛겨 택하게 하실 일이오며.”(‘죠션예수교쟝로회총회 뎨二十회 회의록’, 1931)
◇국어 발전엔 아쉬움으로 남아=1931년 9월 개최된 성서위원회는 장로교 총회는 장로교 총회의 입장을 받아들여 개역성경의 본문을 재고하고 조선장로회총회와 조선감리교연회의 대표자를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렇게 성서위원회와 한국 교회가 구어체 번역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나오자 스톡스 등은 새 문체를 포기한다. 이들은 새 문체가 옛 문체보다 낫기 때문에 향후 한국 교회가 언젠가는 채택할 것으로 보고 새 문체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평안도 중심의 보수적인 한국장로교회가 ‘요한복음 개역’의 채택을 거부한 것은 한글성경에 현대 문체가 도입되는 것을 최소 1세대 이상 연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경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현대 문체가 도입된 것은 30여년이 지난 1967년 ‘신약전서 새 번역’에 와서야 가능했다.
만약 이때 구어체를 과감하게 선택했다면 국어 발전과 언어생활의 대중화에 더 큰 도움을 줬을지 모른다. 어쨌든 논쟁의 결과 성서위원회에 처음으로 한국인 위원이 임명되고 개역 성경번역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3)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번역 원칙
한국이 초기성경 번역과정에서 번역주체와 용어, 번역방법, 문체, 맞춤법 등을 놓고 논쟁을 겪었듯 다른 나라도 이와 비슷한 논쟁을 겪었다. 그렇다면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United Bible Societies)는 성경번역에 대해 어떤 원칙을 갖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UBS는 성경번역에 쓰이는 원문에 대해선 명확히 못 박고 있지만 구체적인 번역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UBS는 최고의 학문적 수준을 만족시키는 과학적인 판본을 번역대본으로 사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구약의 경우 독일성서공회가 발행한 ‘마소라 본문'(the Masoretic Text)이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퀸타'(Biblia Hebraica Quinta)를 사용해야 한다. 신약 대본은‘그리스어 신약'(The Greek New Testament) 최신판이나 ‘네슬레-알란트 그리스어 신약'(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 최신판을 써야 한다.
그러나 번역방법은 명문화하지 않고 있다. 각 나라의 상황에 맞는 번역방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다만 UBS는 “의미가 잘 통하고 정확하며 수준 높은 번역을 하는 데 있다”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UBS는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드란드에서 열린 세계회의에서 “성서의 원어에 충실하면서도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어로 번역한다”는 방침을 내세운 바 있다.
민영진 박사(전 대한성서공회 총무)는 “UBS는 각 나라가 성경번역을 하는 데 정책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성경번역은 UBS가 주창한 기본 원칙아래 각국의 성서공회 상황에 맞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한국교회는 UBS의 권고에 따라 1977년 가톨릭과 함께 공동번역 성서를 만들 때 의미에 근거해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추는 ‘기능 동등성 번역원칙’에 따라 번역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4) 뉴미디어 성경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성경도 새 옷을 입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성경은 활자 성경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70년대 카세트테이프 레코더의 보급은 뉴미디어 성경 시대를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 10여명의 성우들이 제작한 카세트테이프 낭독 성경은 90년대 중반까지 뉴미디어 성경의 주류를 이뤘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CD 플레이어의 확산과 함께 CD 성경에 바통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곧바로 등장한 MP3 플레이어에 다시 그 역할을 넘기고 세대교체를 이루게 된다.
인터넷과 모바일 성경의 보급도 주목할 만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발달에 따라 성경 검색 프로그램이 가능한 CD롬 성경이 출시되었으며, 인터넷의 빠른 보급에 따라 오디오와 텍스트 성경은 웹 세상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제 네트워크만 연결된다면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경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미디어 성경의 원조, 테이프 성경=미디어 성경 중 장기간 인기를 끈 것은 카세트테이프 성경이다. 이 성경은 70년대 중반부터 출시됐으며, 신·구약 음성을 120개의 테이프에 담았다. 가격은 테이프 개당 3000원으로 신·구약 전집은 30만원에 판매됐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4만4000원, 컬러TV 한 대 가격이 39만80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히스미디어 박세두(59) 사장은 “카세트테이프 성경은 출시 초기 정말 마음먹고 돈을 모으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고가의 물품이었지만 성경을 사랑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아 1년 만에 수천 개가 팔려나갔다”면서 “지금도 사용의 편리성 때문에 장년층이 꾸준히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낭독 성경이 주를 이루다가 이어 음향효과를 넣은 드라마 성경이 출시됐다. 80년대 중반부터는 빠른 속도로 낭독하는 제품이 나왔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은 90분 테이프 71개 분량이며, 일반 낭독보다 30∼40% 빠른 낭독 성경은 테이프 40개로 구성된다. 카세트테이프 성경과 MP3 성경 사이에 위치한 CD 성경은 보통 신·구약 전체가 50장 분량이다. 아가페출판사도 2007년 ‘쉬운성경 오디오 바이블’을 104장의 CD로 제작해 인기를 끌고 있다.
◇검색 가능한 CD롬 성경도 출시=대한성서공회는 99년 ‘CD롬 성경 1.0’을 출시했다. 이 CD에는 ‘개역한글판’과 ‘공동번역성서’ ‘표준새번역성경’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수록했으며, 킹 제임스 성경 등 3개의 영어성경도 담았다. CD롬 성경은 간단한 마우스 조작으로 성경 문법사전과 원어사전을 연결할 수 있으며, 한글 성경에 관주와 성서 해설을 연동시켜 성경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성경 절별 대조와 단어 검색 기능이 가능하다. 대한성서공회는 2005년 기능을 강화시킨 ‘CD롬 성경 2.0’ 버전을 출시했다.
대한기독교서회도 2005년 성경 검색이 가능한 PDA폰을 선보였으며, 2007년 KTF와 결합상품을 내놓고 성경과 찬송, 교회 소식, 설교를 모바일로 접속할 수 있는 ‘바이블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인터넷 성경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다수의 교회는 홈페이지에 성경 검색 기능을 추가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홀리넷(http://www.holybible.or.kr)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정보통신선교회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목적 아래 99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대표적 성경 검색 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개역개정판 성경부터 공동번역성서, 쉬운성경, 우리말성경, NIV, 중국어성경 등을 손쉽게 비교 검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정보통신선교회 손영수(55) 회장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뿐만 아니라 선교사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많은 크리스천이 홀리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500만 페이지 뷰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성경 필사, 퀴즈, 설교 텍스트 제공 등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성경 대중화 연 MP3 성경=CD롬 성경에서 MP3 플레이어 성경으로 바통이 넘어간 것은 2003년쯤이다. 이후 빠른 속도로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고 MP3 성경이 속속 선보이면서 명실상부한 ‘디지털 성경’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MP3 성경은 5만∼2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의 제품이 출시되고 있으며 히스미디어, 올에이미디어, 다은미디어 등에서 2∼4기가 용량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전자성경은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성경 전체뿐만 아니라 찬송가, 영어성경, MP3, 라디오, 녹음, USB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다은미디어 정용진(43) 사장은 “기존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나 CD 플레이어에 비해 갖고 다니기 편하고 사용이 수월해 주로 40∼60대 장년들이 MP3 성경을 찾고 있다”면서 “다운로드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젊은 층과 달리 장년들은 컴퓨터에 익숙지 않고 시력이 좋지 않다보니 모든 게 장착되어 스위치 하나만으로 작동이 가능한 MP3 성경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중국산 제품의 경우 질도 떨어지고 애프터서비스가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휴대전화 성경을 기획한 대한기독교서회 박만규 기획실장은 “갈수록 더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하나님 말씀과 접하기 쉬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며 “성도들이 더욱 편리한 성경을 찾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개인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 대한성서공회 문헌정보자료실
4만9300여권 자료 갖춘 성서 연구의 보고
성서학 연구의 보고(寶庫)가 한국에 있다?
서울 서초동 대한성서공회 빌딩에 위치한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은 세계 최고의 성서학 전문 정보 자료 센터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성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자료실은 성서공회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1995년 문을 열었으며, 세계 각국의 고대근동학 언어학 번역학 고고학 등 다양한 연구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건물 2∼3층 770㎡ 규모의 자료실에는 4만9300여권의 자료가 구비되어 있으며, 5명의 전문 사서가 근무하고 있다. 특히 ‘비블리카’ 등 세계적인 성서학 정기 간행물 698종과 복원성서 554권, ‘더 바이블 웍스’ 등 CD롬 자료 1000여장, 마이크로 필름 자료 7000개, 성서 유물 100여종을 소장하고 있어 성서 연구를 위한 양질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기 간행물의 경우 대부분 창간호부터 소장하고 있으며, 성서학 자료의 최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1000여권의 신간 자료를 입수한다.
자료실 박진희 국장은 “90년부터 5년간 준비 작업을 거쳐 개관했으며 성서 자료에 관한 한 아시아 최대 규모라 말할 수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에콜비블리크와 영국 틴데일하우스를 세계적 성서 전문 도서관으로 꼽는데 신간으로만 따진다면 이들 도서관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기에 세계적 수준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현재 4300명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올해만 해도 3000명이 자료실을 이용했다. 개관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bskorea.or.kr)에서 소장 자료를 검색할 수 있으며, 영문 홈페이지가 구축돼 있어 외국인도 사용이 가능하다.
6)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필요하다”
전문가 좌담회
한글성경의 역사는 한국교회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1882년 존 로스로부터 시작된 한글성경은 한자 문화의 독점을 깨고 조선 민중에게 한글을 전하는 선각자 역할을 했다. 특히 국권을 빼앗기고 유교와 불교의 전통적 가치가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해답을 내놓지 못할 때 성경은 불안하고 공허한 민중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인간 존엄의 참 가치를 제시했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한국 기독교인에게 정신세계의 ‘양태’와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불변의 나침반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에게 한글성경은 신앙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만 가독성이 낮기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2008년 연간 기획으로 마련된 ‘성경대탐구’ 시리즈를 마치며 대한성서공회 9층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갖고 성서 번역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 참석자>
나채운 전 장신대 교수(신약학)
민영진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김정우 총신대 교수(구약학)
이청조씨(23·여·숭실대 기독교학과 2년)
사회 : 백상현 기자
-초기 성경 번역자였던 게일은 ‘성경 번역이 마치 파나마 운하를 파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성경 번역 작업이 지니고 있는 문명사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김정우 교수=초대교회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베르베르족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베르베르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면 그 민족은 지금처럼 남의 나라 말을 쓰며 유목민 신세로 떠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언어가 한 종족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루터가 1534년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지금 쓰는 독일어와 별 차이가 없어요. 루터의 성경이 언어 문화를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글성경의 출발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민영진 전 총무=우리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 세기 전에 성경이 중국과 일본에서 번역되면서 처음부터 한글로 적는 것을 시도했고, 그것이 한글의 정착과 고급 의사 소통 매체로 자리잡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나채운 교수=초기 성경 번역 당시 우리나라에는 성경 빼놓고 한글 전용을 하는 매체는 독립신문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는 성경을 통해 한글 보급에 선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현 시대와 맞지 않는 성경의 문어체는 언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언어 충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들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배용 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청조씨=그동안 성경을 읽어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말씀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에 3장 이상을 읽기 힘들었죠. 성경일독을 한 것은 ‘쉬운성경’을 접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딱딱하고 고어를 쓰시는 분으로만 인식되었습니다. 언어적으로 현재와 상당히 유리된 기분이 많이 들었죠. 이런 상황에서 구어체 성경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성경을 읽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김정우=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게 ‘표준새번역‘입니다. 이것은 한국 신학자들이 원전에 근거해서 다양한 번역을 참조해 만들어낸 성경입니다. 우리말 현대 어법에 맞게 히브리어 원문 형식을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보수 교단이 ‘표준새번역’을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용되었어야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언어 충돌 없이 성경을 접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를 후대에 남겨 둔 셈입니다.
△나채운=한국에선 새로운 성경이 나올 때마다 나타나는 충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문어체와 구어체의 문체 충돌과 다른 하나는 신학적 충돌입니다. ‘공동번역성서’와 ‘표준새번역’ 성경의 경우 고유명사 표기가 원어에 가깝다 보니 천주교 성경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았어요. 여호와가 주로 바뀌는 등 문체와 어휘를 두고 홍역을 치렀어요. 미국에선 RSV(Revised Standard Version·1952) 성경이 처음 나왔을 때 일부 교단에선 악마의 번역이라 해서 성경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RSV가 널리 보급됐거든요. 번역을 마쳤다 하더라도 교회에서 금방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성경입니다.
△민영진=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두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형편없는 번역이라 매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000년 이후에나 공인을 받을 수 있었어요. 1611년 출시된 킹제임스 버전도 왕이 학자들을 모아 직접 번역을 주도했지만 결국 40년이 지난 다음에 공인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공동번역성서’와 ‘표준새번역’이 금방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는 성경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젊은 층이 교회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건 아닐까요?
△김정우=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나타나셨듯이 성경은 성육신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예수님이 1세기와 달리 21세기에 오셨다면 현대인으로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번역은 당대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당대의 문화에서 가장 건전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번역돼야 한다고 봅니다. 유의할 점은 성경 말씀을 들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 기성세대라는 것입니다. 기성세대의 문제는 자신의 몸에 맞고 편하기에 언어 독점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자신의 언어적 독점권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청조=요즘 세대가 언어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에 지성적으로 많이 갈급해 하거든요. 성경에서 정확하고 다양한 고유어를 많이 썼으면 합니다. 언어적 탁월성이 있을 때 성경이 새롭게 언어 문화를 앞서 나가 과거처럼 새 길을 제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채운=대한성서공회에서 낸 성경 중에 제일 쉬운 것이 ‘공동번역성서’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어떤 것은 공동번역을 읽는 것으로 대치합니다. 그냥 읽으면 되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이 성경은 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1970년대 개신교가 지닌 천주교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다면 최근 들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성경은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김정우=한국형 모델에 있어서 성경은 예배용과 개인 경건을 위한 것, 전도를 위한 것, 성경공부를 위한 것 등으로 구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배용 성경은 개역과 개역개정, 개역개정을 더욱 업그레이드해서 21세기형 개역개정이 나오는 것으로 해서 성경의 통일성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가 교파적으로 다양하다 보니 최소한 예배용 성경에 있어서는 단일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민영진=개역성경의 전통이 강단에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나의 성경은 수많은 교단과 교회를 일치시키는 응집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청년, 유년, 특수 계층 등을 위한 다양한 성경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오는 성경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민영진=나는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 기독학생회 같은 데서 ‘우리가 읽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경을 직접 번역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요즘 영어성경이 얼마나 쉽습니까? 중·고교 학생들도 ‘우리가 읽을 성경, 우리가 번역하겠습니다’하는 그런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나채운=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 중에서 신앙도 좋고 어학 공부도 많이 한 인재가 다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서공회에서 번역을 맡아야 합니다.
△이청조=사실 젊은 층은 그 부분에 대해 전혀 지각이 없습니다. 교회에선 개역개정판 성경을 읽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것이 성경의 전체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입니다. 자발적 번역의 움직임이 왜 필요한지 젊은이들이 자각할 수 있도록 충분히 알려주십시오. 제대로만 알려지면 인터넷 등을 통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공동번역성서’나 ‘표준새번역’ 같이 이미 나와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활용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알려주십시오.
△김정우=한국교회가 사용해온 개역성경의 핵심 단어들은 정착이 되어 있기에 문체의 유연성을 갖고 전통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번역을 상업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다원화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검증 가능하고 한국교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국민일보 200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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