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기 |
문화(주제별 예화모음)
▣ 문화의 의미
문화는 라틴어로 쿨투라(Cultura)다. 그것은 종교의식과 경작하고 파종한다라는 ‘쿨투스’에서 기원했다. 종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신앙 차원에서 문화가 발생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기독교문화도 이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일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인간이 모여 하늘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표현한 문화적 활동이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적대시하고, 명령을 거스르는 ‘바벨탑의 문화’는 지금도 곳곳에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문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좋은 선교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사명을 그 시대 속에서 잘 감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정직과 희생의 모습을 갖춘 신앙인의 삶이 모일 때 아름다운 새 문화를 이룰 수 있다.
/장학일목사(예수마을교회)
▣ 위대한 문화
전 인류 중 1300만명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각 분야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힘의 원천은 교육이다. 유대인들은 책을 보물처럼 다루어 왔다.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 무렵 성경을 펼쳐들고 그 위에 꿀을 떨어뜨려 성경에 입을 맞추게 한다. 평생 성경을 꿀송이처럼 생각하며 살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삶의 지혜와 힘을 얻는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화와 문명은 수없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리스 문명도 500년밖에 번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구약성경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나 로마를 보면 위대한 유적에 의해 기억되는 문화가 많지만 유대인은 유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적을 그들의 가슴 속에 세웠기 때문이다.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와 민족,가정은 번영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 문화는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
1. 두 인격의 괴리 : 제주 선교 둘째날 거의 1시간에 걸쳐서 형제들이 나와서 찬양하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건전한 형제 순으로 나왔다. 그러나 분위기가 관용적인 분위기이고, 뜨거워지자 교회에서는 숨기고 있던 자아들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의 이원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의 본 모습을 보이는 "커밍 아웃"하기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라는 이중적 구조에 익숙해져있다. 그래서 쉽게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 신앙생활이 피곤한 이유 : 바람피우는 사람은 피곤하다. 왜? 두 가지 가치와 잣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멘텔리티가 신앙인에게도 나타난다. 세상과 교회라는 두 가지 세계 속을 살아간다. 그래서 바람 피우는 사람의 피곤함이 신앙인에게 있다. 원래 신앙은 신나고 즐거운 것인데,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3. 두 인격의 일치 : 표출된 "끼"를 긍정적인 복음으로 연결시키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기쁨이 충만해졌다. 이제 우리 교회의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젊은이들 속에 숨겨져 있는 문화를 끌어내어 복음으로 재해석하고, 그들의 문화를 무기로 삼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화는 교회를 풍요롭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잃은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기도 하다.
/전병욱 목사
▣ 고급 문화 체험
대중 문화는 알려 주지 않아도 너희 스스로 찾아갈 수가 있지만 고급 문화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구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자라는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몇 가지. 그게 과연 뭘까? 몇 가지를 꼽자면 여행과 독서 경험의 공유, 자연에 파묻히기, 악기 연주와 감상, 즐거운 글 쓰기 체험, 올바른 대화, 봉사 체험, 운동, 함께 즐기기 등이 있을 것 같다. 엄마는 여기에 고급 문화 체험을 보태고 싶다.
- 최승은의《엄마 마음》중에서-
* '아침편지 아트센터'가 문을 연 지 어느덧 1주년을 맞았습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고급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실험'을 해 본 1년이었습니다. 다녀가신 분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서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문화는 삶입니다. 우리의 환경이자 힘이며 미래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제사 문화를 예배문화로
유교 제사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이조 시대 때부터입니다. 유교에서는 효자로서 어버이를 섬기는데 있어서 3도를 말합니다. ① 살아계실 때에는 봉양하고 ② 돌아가시면 그 상복을 입고 ③ 상이 끝나면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이 조상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불효라."했습니다.
왜 죽은 후 제사를 강조합니까? 제사가 끊어지면 영원히 죽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중시 여기는 사람들의 혼령관은 입귀, 귀신, 명신(신명)으로 나누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입귀는 짐승의 혼과 구별되는 것으로 영혼이라 지칭하는 '귀'입니다. 귀신은 전생에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고 충분한 학식을 소유한 자로서 죽기 전 생존시에 획득한 특수 지위로 말미암아 사후에 일반 귀보다 나은 영혼입니다. 명신 또는 신명은 귀신들 중 천상에 살고 있는 귀신입니다. 후손들의 제사로서 궤양을 풍족히 받는 영혼은 오래 동안 사나 제사가 끊어지면 주림에 못이겨 제 2차 죽음으로 결정적으로 적멸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 제사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상제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는 아닙니다. 이집트. 중국. 페르시아. 로마. 그리이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들은 믿기를 죽은 조상이 신으로 화해 그의 가족과 종족을 적으로부터 지켜주며 상선 벌악을 하는 존재로서 죽어서도 변함없이 돌봐주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문화는 죽은 자보다는 산자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 효는 살아계실 때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후 고기밥 해드리는 것 보다 살아 계실 때 전화 한 통화가 더 중요합니다. 명절 문화는 죽은 자를 위한 문화가 아니라 산자를 위한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추석에 조상 제사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김필곤
▣ 복음화의 문화적 의미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지난 10일 부헨발트 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식에서 “나치의 만행에 대해 독일은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이 시기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희생자와 가족들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과거사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행사는 매년 4월 나치 강제 수용소가 있던 독일 도시들은 지자체별로 열어왔으며, 총리나 부총리, 대통령 등이 연방정부를 대표해 참석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해방 60주년이기에,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기념 행사를 개최한 것입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스라엘 등 26개국에서 온 참관객들과 부헨발트 수용소 생존자 500명, 수용소를 해방시킨 연합군 장교 등이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정신이 바로 종교개혁의 나라 독일이 지닌 기독교 문화, 기독교 정신의 힘입니다. 기독교 문화는 항상 자신을 우상화하거나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보며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일본과 독일이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근본적 차이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복음화된다고 하는 것은 곧 이러한 자기 반성의 정신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힘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마 5:9>
/이주연
▣ 다문화 사회 속 교회
한국 사회는 이제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이민자, 새터민 등 120만 명이 다문화가정 내지는 다문화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혈통주의에 근거한 배타성은 다문화가족들의 적응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다문화 이주민을 돌보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인 동시에 이들을 고국의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는 기회이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나그네를 홀대해 복음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선교, 복지, 교육, 문화의 차원에서 이들을 잘 섬겨야겠다. 그렇지 않을 때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으로 희생된 중국 동포들의 장례와 유족들을 도운 한국교회봉사단의 섬김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 문화적 상상력
나폴레옹 장군이 남긴 명언이 있다.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상상력과 비전에 달려 있다.”
이 말을 우리들에게 적용해보면 다음 같이 말 할 수 있겠다.
“한반도의 미래는 국민들의 상상력과 지도자들의 비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튼튼한 노동력이 힘이었고 산업사회에서는 넉넉한 자본이 힘이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문화가 힘의 바탕이다. 제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도 프로그램을 갖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컴퓨터란 하드웨어는 프로그램이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쓰임새가 있게 된다. 사회의 소프트웨어는 문화적 소재를 뜻한다. 문화가 지니는 힘에 대한 한 구체적인 예로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쥐라기 공원’을 예로 들곤 한다. 그 한편의 영화로 그가 올린 수익금이 한국에서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였을 때의 수익금보다 더 크다는 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문화가 길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의 세계에서 고부가 가치산업이라 일컫는 각종 문화상품들은 창조력과 상상력에 의해 나온 상품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소중한 문화적 상상력은 어디서 얻어지고 길러지는 것일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적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화적 감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화교육을 통해서다. 결국은 교육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 감수성에 바탕을 둔 창조력과 상상력을 높여 나가는 교육인 문화교육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 문화적 영향력
본문: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많은 한국의 기독교 문화사역자들은 미국의 환경을 부러워합니다. CCM노래가 일반 팝 음악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CCM을 접하는 데에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일반 가수 못지않게 성공해서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도 많고, 목회 중인 목사님들 중에도 인기가 많으신 분들은 일반 토크쇼에도 초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적 시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사고가 있기에 미국 문화에 기독교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 시민들이 정치와 사회에 점점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는 조사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명한 주간지인 뉴스위크지에 따르면 1990년대에 비해서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10%나 줄었고 무신론을 믿는다는 사람은 8%에서 15%로 이 역시 두 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의 정치와 사회적인 영향력이 기독교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의견을 나타내 현재 미국 전체 교계에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기독교의 영향이 강했던 미국에서의 변화를 놓고 많은 크리스천들의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문화가 건강해야 그 나라의 사회가 건강합니다. 문화에 기독교적 영향력이 미치면 퇴폐와 향락 대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귀함과 미래를 향한 비전의 씨앗을 심어줄 수가 있습니다. 미국에서조차 기독교의 문화적 영향력이 축소되어 점점 복음을 전파하기에 어려운 시대에 더욱 전략적으로 세상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 기도: 주님! 세상에 문화에 주님의 사랑을 심게 하소서.
* 묵상: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 문화를 창조하는 기독교
이 생각이 과연 `내 생각' `내 느낌'일까? 그럼, 이 생각은 옳은 생각일까? 왜 이런 느낌이 들까?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물론, `나의 생각'이란 것이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습득된 가치관에서 오는 것이니, `생판 알짜배기, 벌거벗은 내 생각'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손 치더라도, 진리의 빛으로 조명되는 건강한 생각, 가치관, 느낌들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 생각이란 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렇다면 내 생각을 만든, 그 `나를 둘러싼 문화'가 과연 `건강한 문화'인가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들을 갖고 사는지, 앞으로는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지 적어도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조금 비약하자면, `문화를 주도할 것이냐, 영문도 모른 채 질질 끌려갈 것이냐' 의 문제이다.
요즘 기독교인들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미디어 문화 속에서 새로운(reformed)기독교문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중문화를 `헉헉' 대며 쫓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라디오 뿐 아니라 위성방송, 케이블TV, 컴퓨터 통신 등 뉴미디어의 다양한 소리와 영상들이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 세뇌시키고 있다. 무방비상태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많은 정보들을 기독교 진리와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걸러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여전도회전국연합회 문화홍보부에서는 매년 미디어 강좌를 실시하기로 하고, 현재 `텔레비전 모니터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모니터 교육을 진행하면서 자꾸만 뒷골을 당기는 생각은 `현대인의 삶의 실태' `자유로운 도전과 다양한 자기주장' `다양하고 세련된 표현들' 그리고 이에 반해 `우물 안의 개구리'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의 자기방어' `조잡한 표현들' 등의 우스꽝스런 대비였다.
`저건 사탄이다' `어쩌면 저럴 수 있나' `보지마, 하지마' `기독교에 대한 모독이다' 등등 이런 저항만으로는 절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는 기독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기독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독교가 돼야 한다. 이젠 교회 안에서만의 문화가 아니라 이 세상의 문화를 끌고가는 기독교문화가 돼야 한다.
김여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문화홍보부간사
▣ 문화재 관람료
등산을 할 때마다 마음이 언짢아지는 일은, 그것은 절에서 길을 가로막고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1인당 2000원씩의 돈을 강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매표소 앞에서는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어 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입장료를 징수하는 사람 사이에 늘 말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찰관계자 :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들어가라
등산객들 : 문화재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고, 지나갈 뿐이니 낼 수 없다.
사찰관계자 : 이곳은 사찰 땅이니 관람료 내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
그런데 현행법률상 사유지라 하더라도 사람 다니는 길을 강제로 막아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 관람료를 받으려면 문화재가 있는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야지, 엄한 길을 가로막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조건 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국립공원의 도로나 등산로는 국가 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정비하고 있고 문화재의 관리도 '문화재청'에서 하며 문화재 관리비가 엄연히 국민들 세금에서 지출되고 있는데, 이렇게 강제로 길을 가로막고 돈을 받는 법적인 근거가 무엇이지 궁금합니다. 뭐가 좀 잘 못된 것 아닙니까?
ⓒ 최용우
▣ 반기독교 문화의 책임은 교회의 무관심에 있다
문화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문화를 호흡하며 그 자양분을 먹고 마십니다. 공기로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공기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듯이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문화구나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면서도 그 안에서 끝없이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화라는 것이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국교회는 기독교 문화라고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덩치를 키울까 하는 고민의 반의 반의 반만큼도 문화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물을 잘 지을까 하는 데 관심을 쏟는 것과는 달리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문화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들었던 많은 가르침은 문화에 대해 적대시하는 태도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라는 것은 사단의 도구이고 노래(가수들의 노래)라고 하는 것은 신앙인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분야이며 성극 외의 연극은 다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제 안에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이 되겠다든지 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교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이면 신학교에 가라고 했던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신학교는 우후죽순으로 자라났고 수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이 생겼습니다. 공급(?)이 초과되어 더 이상 임지가 없는 무임 목사들까지 넘치는 상황입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신학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열심 있는 신앙을 가진 젊은이들이 전부 다 신학만 한다면 세상 속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는 달리 교회의 빛으로만 살려는 신앙 태도는 너무 좁은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영역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데, 그래서 기독교 문화라는 것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 쪽에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문화는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강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일부 교회가 사회에서 지탄받을 만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동안 교회가 문화에 대해 무관심한 채 그저 개교회 성장에만 모든 것을 쏟았던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교회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주도했습니다. 학생들이 모여 문학의 밤이라도 개최하는 날에는 이웃 교회 학생들 뿐 아니라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기타를 들고 키보드를 치며 찬양인도를 하면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교회에 나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다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이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문학의 밤 같은 것은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될 만큼 최첨단의 문화로 무장한 대한민국이 된 것입니다. 음악과 영상의 화려하고 섬세한 감각은 오늘 날 젊은이들의 혼과 넋을 쏙 빼놓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지금도 문학의 밤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니 얼마나 과거에 묶여 있는지요. 디지털 카메라가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흑백으로밖에 뽑지 못하는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 줄테니 이리 오라는 식입니다. 이제라도 교회는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개교회 중심주의에 빠져서 자기 실속만 챙기려는 좁고 편협한 자세에서 벗어나 세상을 책임질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문화를 변혁시킬 수 있는 문화적 전사들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물론 쉽지 많은 않은 일입니다. 단기일에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도 아닙니다. 그러나 씨를 뿌려야 그 결과를 따먹을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반기독교적인 문화가 되어 그 문화를 호흡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복음의 수용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는 그들의 적대적인 가치관을 깨는 작업만으로도 지쳐 떨어질 만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부터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교인들을 향해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도해줄 것을 촉구해야 하며 젊은이들을 향해 두 손 놓고 잠잠할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되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전략적으로 사람을 키워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연합운동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 동안 대형집회나 이벤트성 행사에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투자했었는데 우리끼리만의 집안잔치로 끝나버린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차라리 그런 돈과 사람을 인재 키우는데 썼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 백범 김구의 문화국가론
요즘 한류(韓流)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국의 영화, 음악, 춤, 드라마, 심지어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가 여러 나라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볼 때면 백범 김구의 ‘문화국가론’을 떠올리게 된다. 선생께서는 우리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 아래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을 품지 못하고 있었던 그때에 이미 우리 겨레가 언젠가는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 뻗어나가 높고 새로운 세계문화의 근원이 되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국가론’을 한결같이 주창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卓見)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김구 선생께서는 우리겨레가 높은 문화를 창출하며 그 문화로서 세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을 예측하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시초를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 사상에서부터 찾았다.
▣ 문화에 관한 금언
0 문화는 언어의 조건이며, 동시에 그 산물이다.(듀우이)
0 국민적인 증오심은 문화가 낮으면 낮을수록 강하다(외일드)
0 기독교적 구미 문화는 죄의 문화이며, 일본의 문화는 수치의 문화이다.(베네딕트)
0 문화의 본질이 종교인 것처럼 종교의 형태는 문화이다.(틸리히)
0 힘을 동반하지 않느 문화는 내일이라도 당장 사멸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처어칠)
/한태완 목사 360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제 예화모음 30편 (0) | 2023.04.07 |
---|---|
민족예화 모음 21편 (0) | 2023.04.07 |
물질 예화모음 50편 (0) | 2023.04.07 |
미련함 예화모음 37편 (0) | 2023.04.07 |
박해 예화모음 19편 (0) | 2023.04.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