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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청빈 예화모음 19편

by 【고동엽】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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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한 삶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3가지 발전 동기에서 살아갑니다.
하나, 학식과 인품을 고상케 하려는 인격적 발전
하나, 사회에서 신분과 계급을 높이려는 사회적 발전
하나, 재물을 많이 획득하려는 경제적 발전

시대와 세상에 따라 이 세 가지 발전 동기 가운데 어느 한가지에 집착하여 다른 두 가지 발전 동기를 희생시키는 것이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사회적 신분과 계급 발전을 위하여 돈과 인격을 무시한다든지 경제적 발전을 위하여 인격과 사회적 발전을 무시한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비들은 인격적인 발전을 위하여 사회적, 경제적 발전 동기를 포기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고 탐하고 헐뜯고 비방 흑색 선전 하는 그 근본 동기는 사회적 발전과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롯하는 것임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인간 악을 제거하지 않고는 인격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비들은 선비의 사상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청빈한 삶을 최고로 꼽았습니다.

우리 선비 사회는 제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한 사람보다 수 만금을 쌓은 부자보다 청빈한 선비를 더 알아주었습니다. 청빈은 고행이며 본능의 억제입니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에게 청빈은 부자연한 것입니다. 청빈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청빈은 한 인간의 전체 인생 그리고 인생 저 너머에까지 이르는 고귀한 가치와 내적 수련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입니다.

참판을 지낸 김정국은 바로 이 청빈의 삶을 사신 선비입니다. 그는 재물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뭇 사람의 비난을 받고 있는 한 친구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20년을 빈곤하게 사는 동안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이 각 두어 벌 있었으나 눕고서도 남은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있고 주발 밑바닥에 남은 밥이 있었소....듣건대 그대의 의식과 저택이 나보다 백 배라 하는데 어찌하여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들을 모으는 것이오. 필히 있어야 할 것은 오직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환기할 창 하나, 햇볕 쬐일 마루 하나, 차 다릴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청산을 찾아갈 나귀 한 마리면 족할 것이오. 이 열 가지는 비록 번거롭지만 늙으막을 보내는데는 하나 하나도 빠질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이 외에 더 무얼 쌓으려 한단 말이오. > (이규태, 선비의 의식구조,220쪽)

청빈과 가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청빈은 가난이 아닙니다. 가난이 곧 청빈도 아닙니다. 청빈은 치열한 구도자의 삶의 형식이며 고귀한 단순성을 향한 투철한 의지입니다. 청빈은 삶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과 관련된 그 어떤 것입니다. 가난은 누추하나 청빈은 정갈하고, 가난은 비굴하나 청빈은 그 기상이 청청하며, 가난은 창백하나 청빈은 화기가 넉넉합니다. 
 

 

 

 
 
 

 

 

간소한 삶
 
영성적 삶을 위한 바탕은 묵언, 청빈, 섬김입니다. 나의 느낌으로는 묵언, 청빈, 섬김이라는 삶의 태도가 갖는 분위기는 화려, 복잡, 번영, 사치, 성공, 높은 지명도, 최고급, 네온사인, 비싼 물건, 광이 나는 싸롱,.....이런 등등의 분위기가 아니라 무엇인가 담담, 고요, 담백, 은은한 향기, 으젓한 돌항아리, 한옥을 떠받치는 굵은 기둥, 보람, 휘날리는 산맥, 넉넉한 여유, 고귀한 단순성,.....이런 등등의 분위기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최근 법정 스님이 쓴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는 명상 에세이의 한 구절이 내가 요즈음 느끼는 그 영성적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어서 여기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 뒤늦게지만 나에게 소망이 있다면 새삼스럽게 견성이나 성불이 아니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 견성과 성불이라는 늪에 갇혀 잔뜩 주눅이 들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정진 하고 있지만 나는 견성도 성불도 원치 않는다. 모든 성인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 본래 청정 本來淸淨 >을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 본래 청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기 위해 정진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이룰것인가? 이것이 현재의 내 유일한 소망이다. 의식주를 비롯해서 생각이며 생활 양식등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누리고 싶다. 사들이고 차지하고 한동안 쓰다가 시들해지면 내버리는,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의 악순환에서 될 수 있는 한 벗어나고 싶다. 끝없이 형성되고 심화되어야 할 창조적인 인간이 어찌 한낱 물건의 소비자로 전락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그 소유가 곧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겠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만 본질적인 내 삶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법정,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샘터, 174쪽 >

모르긴 몰라도 복음서에 드러나는 우리 주님의 삶의 바탕은 얼마나 담백하고 수수하고 자연스럽고 넉넉하고 단순하신가! 우리 주님은 돈 걱정, 옷 걱정, 입을 것 걱정을 뛰어 넘고 계십니다. 누구를 만나도 위압적이지도 않았고, 주눅들지도 않았고, 내세우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주님이 초라해 보이거나, 째째해 보이거나, 빡빡해 보이거나, 비겁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게 우리 주님입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내가 신비하고 놀라웁게 느끼는 것은 그 주님속에서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 그 무엇 >입니다. 사람을 감동 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랄까? 땅을 치고 통곡케 하는 애절함이랄까? 활화산이 수백장씩 뿜어 올리는 그 힘찬 불기둥 같은 elan vital( 삶의 비약을 일으키는 힘 )이랄까? 하는 놀라운 < 그 무엇 >이 우리 주님이 서신 삶의 자리에 때로는 도도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의장의 월셋집
 
고대 로마의 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보면 독일 선조들의 의식주
는 검소하기 짝이 없다. 옷이라고는 투의라 하여 네모 난 베를 둘러 맺는
것이 고작이요, 치장에 무관심하여 로마와 교역하면서도 옷이나 장신구는
돌아보지 않는다. 집도 화재의 연소를 피하여 둘레에 공지를 두고 짓는데
외관의 미추나 사는데 쾌적여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건재를 다듬거나 모
양을 갖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재를 쓴다.


이 근검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독일 요리 하면 거
칠다는 것이 연상되기도 하려니와 나치스시대의 꿀꿀이죽이라 할 일과요리
를 지금도 즐겨 먹고 있다. 13∼14세기 한사동맹의 중심도시였던 류벡에
가보면 그 6백∼7백년에 지은 옹색한 집들에서 불편없이 그대로 살고있다.


15세기에 지었다는 선원조합의 음산한 집에서는 그 옛 테이블, 그 옛 의자
에서 북독일 요리의 식당을 영위하고 있다. 법으로 내부구조의 개조가 불
가능하기에 옛 구조내에서 현대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불편을 감내한다는
것은 게르마니아의 근검정신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년 가을에 내한한 헤어초크 독일 전대통령이 호텔에 묵었을 때 20장의
수건 가운데 단 두장만을 쓰고, 양말을 화장실에 빨아 말리는가 하면, 외출
할 때는 켜두어야하는 표시등까지 찾아 끄고 나간 것이 화제가 됐었다.


이번에는 독일 하원의 티이제 의장이 독일 근검주의를 구현하여 심금을 울
리고 있다. 30억원짜리 의장공관을 마다하고 20년 살아 정든 30만원 월세
아파트에 눌러살기로 했다니 말이다. 집주인이 잘 닫히지 않는 문짝을 고
치려 하자 월세금 오른다고 거절하기까지 했다.



수행원을 거부하고 비행기 도 일반석에 앉는다는 그다. 세계화는 이같은 정신을 본뜨는 일인데,
55억 원짜리 빌라나 짓고 옷로비 사건 따위만 일어나고 있는 작금이다. 

 

 

 
 
 

 

 

머리칼로 책을 사주신 어머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 : 6)
나이 서른에 나는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가 넝마주이 일을 했다. 넝마주이에겐 종이 한 장, 깡통 한 개, 소 뼈다귀 하나도 전부 훌륭한 자원으로 보인다. 이 정신을 몸으로 배운 나는 종이 한 장이라도 헛되이 버리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무라는 소리가 나간다.


내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뒤 어머니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당신 혼자 힘으로 키우셨다. 그 고생이야 오죽했으랴. 그러나 그런 형편에서도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정직해라, 책을 읽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 하는 세 가지 당부를 하셨다. 어느 날 기하학책이 필요하게 된 나는 어머니께 책을 사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 읍내에 나갔다 오신 어머니는 내 방에 책을 밀어 넣어 주셨다. 그런데 잘 때가 되어 어머니 곁으로 간 나는 수건을 쓰고 주무시는 어머니가 이상하여 수건을 벗겨 보았다. 어머니의 머리가 짧아져 있었다. 참으로 귀하게 얻은 책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당신은 일생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소리를 플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검과 절약이 바탕이 된 청빈함을 일생동안 갈고 닦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속화된 목회자가 비난받는 세상이다. 실제로 그런 목회자가 많은 현실속에 있다. 목회는 단순하게 하나넘의 말씀만을 전하는 게 아니다. 삶을 나누고 보여 주어야 한다. 세상이 IMF로 시끄럽다. 목회자의 청빈함이 요구되어지는 세상에 살고있다. 

 

 

 

 
 
 

 

 

청빈한 이상재
 
청빈한 이상재 김을한 씨의 저서인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일화집을 보면 8.15해방 직후인 1949년에 이상재 선생 추도회가 열렸을 때에 김규식 박사는 이상재 선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전 생애를 청빈한 생활로 일관하신 분으로 그의 만년은 몹시 곤궁했었다. 그런데 그가 기독청년회 총무로 재직시 하루는 평소부터 선생님을 존경하던 분이 선생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추운 겨울이라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방은 냉냉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추워 어쩔 줄을 몰라해 하던 손님은 약간의 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우선 땔나무나 사십시오."하고 드렸더니 선생은 그저 "고마우이"하고는 돈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한 학생이 찾아와서는 선생님에게 학자금이 없다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생은 아무 말도 없이 조금 전에 받았던 돈을 선뜻 학생에게 내어 주면서 말하기를 "공부나 잘해라." 하는 것이었다. 학생이 나간 후 처음부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내객은,


"선생님! 그 둔을 학 생에게 다 주고 나면 나무 살 돈이 없지 않습니까?"하며 민망한 듯 말하자 선생은 곧 대답하기를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주겠지 뭐!"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의 궁한 사정을 잘 아 는 사람이라고는 그 내객 밖에 없었으므로 내객도 웃으며 다시 나무 살 돈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 이다.


이것은 월남 이상재 선생이 물질에 담백하였던 것과 어려움 중에서도 항상 비국하지 않았 던 것을 알게 하는 말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청렴결백(淸廉潔白)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당으로부터 선거 운동비로 쓰라고 200불을 보내왔다. 그
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난했던 링컨에게는 큰 돈이었다.


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당본부로 되돌려보냈다.
당 본부에서는 놀랐다. 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말을 탔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오. 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이 있어서 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
센트 들었어. 그 다음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오"라는 편지였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한말이 기억난다.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
고 갚지 못하였구나. 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말고 갚아주기 바란다."
깨끗한 가치관과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뒤를 파보아도 떳떳하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나이시안’은 어디에
 
지난 85년에 실시된 태국 방콕시장 선거에서 최초의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잠롱 스리무앙은 4년의 임기동안 방콕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90년 재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뇌물이 아니면 크고작은 민원이 처리되지 않았던 방콕시의 부정이 잠롱 재임기간 중 크게 줄었고,부정부패척결을 향한 그의 발걸음이 성공하자 방콕 시민들은 그에게 ‘나이시안’(깨끗한 남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보통사람으로 돌아간 지금도 청빈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하루에 한끼만 먹고 20년 전의 낡은 옷장을 그대로 쓰는가 하면 중학교 때 쓰던 책상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나는 큰 집을 팔고 정원이 없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그래서 정원을 다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도둑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잠롱의 말이 우리네 귓전을 두드린다.

부정을 척결하려는 사람에게는 부정이 없어야 하고,남을 정죄하려는 사람에게는 불의가 없어야 한다.우리시대의 고뇌는 지도자,공직자,정죄의 칼을 든 사람들 모두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잠롱이 받았다는 별명 ‘나이시안’이 필요하다. 

 

 

 
 
 

 

 

랍비의 청빈
 
백년전, 미국에서 온 한 여행자가 유명한 랍비 호페츠 캐임을 만나러 갔다. 그는 랍비의 집에 책들과 한 개의 테이블과 벤치가 있는 단순한 방 한개가 전부인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여행자는 "선생님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당신의 가구는 어디있죠?"라고 랍비가 대답했다.
"내꺼라뇨?" 당황한 미국인이 물었다."저는 단지 이곳을 방문했을 뿐이오. 단지 지나갈 뿐이예요."
"나도 그렇소"라고 랍비가 말했다

 

 

 
 
 

 

 

청빈의 도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한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성 프란시스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인 그리스도만 소유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많지만 청빈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프란시스는 금욕을 해도 불교적인 금욕이 아닙니다. 프란시스는 자기 몸을 가르켜 '네가 좀 좋지 않은 놈이긴 하지만 네가 없어 진다면 못 산다. '고 하며 자신의 육체를 보고 '내 형제여, 내 말 좀 잘 듣거라. 잘 억여 주겠다. 잠을 자야 할 때 재워 주겠다. 필요하면 나에게 협력을 해 다오.'하면서 자기 육체를 달래며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중세 수도원이 부패했을 때도 그 수도원을 비난하지 않고 조그맣게 자기의 수도원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는 '청빈이라는 것이 만덕의 덕이다. 덕의 여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이 고독해지고, 가난해지고, 거룩해지고, 자유로와지고 풍성해졌습니다. 모든 유혹이라든가 과오라든가 파멸, 이런 것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까? 

 

 

 

 
 
 

 

 

물질을 이긴 분
 
존경하는 김재준 목사님이 젊은 날 일본에서 공부하실 때였다. 돈 떨어지고 양식 떨어져 생활이 궁핍하였을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 그래 물질에 이렇게 구애받을 수 있겠는가? 물질로부터 이겨 보리라. 먹는 것으로부터 해방하리라'고 마음 먹고는 삼일 굶고 얻은 것은 기절이라는 결과였다. 결국 물질에 지고 말았다.


해방후 한신대 교수가 되었으며. 6·25 직후는 대한민국 사람 전부가 가난했지만 특히 신학생은 더욱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먹을 것은 물론이요 등록금은 생각조차 못할 실정이었다. 그는 이러한 신학생들을 교수 사택으로 불러들여 먹이고 재우고 등록금을 대신 대어 주었다.


김재준 목사님은 자녀 교육을 위하여 저축하지 않았을 뿐더러 돌아가신 후에도 땅 한 평, 집 한 칸 없었다. 확실히 그는 예수의 정신대로 사신 분이요, 물질을 이긴 분이었다. 

 

 

 
 
 

 

 

거지 근성을 없애자
 
남에게서 무엇을 거저 받기를 좋아하는 것이 망국민 특성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남의 것을 거저 받고도 치욕으로 여기는 마음이 없다.
남이 나에게 무엇을 거저 준다면 모욕으로 알아 물리치는 용기가 없다.
저편에 배나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이면 받지 아니하는 호기가 없다.
남에게 받기 좋아하는 자는 거지와 같아서 의기(意氣)가 소진하고 용기가 죽었으니 저는 퇴영적이요, 진취적이 아니며, 의뢰적이요 독립적 건설적이 아니니라.


에머슨은 말하기를 "저는 저를 위하여 있는 세상에서 빈민굴 학교 생도와 같이, 사생아와 같이, 면허 없는 상인과 같이 쭈뼛쭈뼛 엿보며 사람의 눈을 피하여 숨어 행하는 자가 되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회개하자. 이제부터는 남의 것을 거저 받아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자. 그리하여 용감하자. 왕자 같자. 공공연하게 사람 앞에 주리 끼울 일이 하나도 없게 하자. 이것이 또한 크리스천 도덕으로, 특히 국민에게 부흥되지 아니하면 안될 독립의 도(道)이다. 

 

 

 
 
 

 

 

욕심이 없으니 다 되는 거지
 
장기려 박사는 그의 헌신적인 진료활동을 통해 국내외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 그가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여기는 것은 회갑연 때 함석헌 선생의 축사다. 함석헌은 "그 사람이 어디 능력이 있어서 일을 하나? 욕심이 없으니 다 되는 거지" 라고 했었다.
죽었을 때 물레밖엔 남지 않았다는 간디를 바라보며 장 박사는 자신의 부요함을 부끄럽게 여겼다. 
 

 

 

 
 
 

 

 

거스름
 
모처럼 고향을 찾은 신승하 씨는 친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는 집사람을 따라 중앙시장에 갔었네. 시장 골목 한쪽 귀퉁이에서 파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마지막 한 단이 남았더군. 앉아 있는데도 허리가 꼬부라져 턱이 바닥에 닿을 것 같은 할머니였네.
왠지 한 단 남은 그 파를 떨이해 주고 싶더군. 보나마나 집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게 뻔한 할머니가 좌판을 조금이라도 빨리 거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우리 집사람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야. 그거 얼마냐고 물었지.”
“그래서?”
“팔십 원이라는 거야. 주머니를 뒤적였더니 마침 백 원짜리 동전이 잡히기에 할머니에게 건네 줬지. 벌써 할머니는 파를 비닐봉지에 넣어 집사람 손에 쥐어 줬지. 그리곤 무심코 돌아서는데,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는 거야.”
“왜?”
“거스름돈 이십 원을 받아 가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마침 십 원짜리가 하나밖에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기에 괜찮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안 된다는 거야. 낮에는 파 한 단에 백 원씩 받았지만, 맨 마지막에 남은 이건 제일 나쁜 단인데 백 원 받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는 거지.”
“재미있는 할머니로군.”
“그 순간 아차 싶더군. 그래서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거슬러 주는 이십 원을 받았지.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어. 부끄럽더군. 집사람도 무슨 생각인지 골똘히 하더군.
그 순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이십 원을 절대 받지 않은 그 꼬부랑 시골 할머니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 없었어. 이보게들 우리는 얼마나 엉터리들인가

 

 

 
 
 

 

 

절제와 청빈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보름에 한 번씩 며느리의 가계부를 검사했다. 콩나물과 두부, 연필과 공책값도 철저히 체크했다. 결혼예복을 50년동안 입었다. 손자들의 속옷을 기워주는 것이 그녀의 취미였다.
그녀의 유언은 "나를 위해 꽃을 장식하지 말라. 그리고 1달러를 황금처럼 아껴라"였다. 세수한 물로 머리감고, 머리감은 물로 세탁하고, 세탁한 물로 걸레 빨고, 걸레 빤 물은 화단에 뿌렸다. '절제'와 '청빈'의 상징인 이 여성의 이름은 프란체스카이다. 한국의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의 영부인이다. 

 

 

 
 
 

 

 

퇴계에서 배운 권정승
 
지금으로부터 약 420년 전의 일이다.
권률 장군의 아버지이며 선조 때의 명재상인 백사 이항복의 처조부님이 되시는 권철 대감은 영의정 벼슬까지 올랐지만 항상 학식이 깊고 덕망이 높은 도산 이퇴계 선생을 숭배하고 있었다.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퇴계 선생을 만나 보려고 권철 대감은 어느 날 서울에서 550리나 되는 경상삼도 안동군 도산서원까지 내려갔다.


퇴계 선생은 동구 밖까지 나가 예의를 갖추어 권철 대감을 공손히 영접하였고, 두 학자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 시간동안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러나 그 날 저녁상이 나왔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권 정승과 퇴계 선생이 겸상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밥상에 올라있는 음식이 보리밥에 콩나물과 가지나물 등 채소뿐이었다.


그래도 그 날은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특별히 북어 무친 것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었다. 퇴계 선생은 언제나 제자들과 같이 이러한 보리밥에 초식생활만 해 왔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니였지만 평소 쌀밥에 고기 반찬만 자시던 권철 대감 입에는 이런 식사가 맞을 리가 없었다.


권 대감은 몇 숟갈 뜨는 척 하다가 수저를 놓았다. 그런데 다음달 아침에 또 그와 똑같은 조반상이 나왔다. 권철 대감은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지만 깔깔한 보리밥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어서 조반상도 어제와 같이 몇 숟갈 떠 자시다가 상을 물렸다.
퇴계 선생이 아니라면 투정이라도 하겠지만 상대가 워낙 스승처럼 존경해 오던 분이라 음식이 아무리 마땅치 않더라도 감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권철 대감은 도산서원에 며칠 더 머물면서 퇴계 선생과 깊은 학문을 토론하고 싶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더 묵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은 예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서울로 떠나게 되었는데, 권철 대감은 작별에 앞서서 퇴계 선생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게 되니 섭섭하오. 내가 퇴계 선생을 만났던 기념으로 귀감이 될 말씀을 한 마디만 해 주시오”
권 대감의 이 말에 퇴계는 옷깃을 여미고,
“촌에 묻혀있는 사람이 감히 대감님께 무슨 여쭐 말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감께서 모처럼 부탁하시니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대감께서 이처럼 먼 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융숭한 식사 대접을 못해드려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감께 올린 식사는 일반 백성들이 먹는 식사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먹는 음식은 깡 보리밥에 된장찌개 하나가 고작이고, 그나마도 모자라서 굶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감께서는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 장래가 은근히 걱정되옵니다.
무릇 정치라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과 백성이 동고동락을 해야 하는데 관과 민의 식생활부터 이처럼 차이가 있으면 어느 백성이 나라를 믿고 살겠습니까? 그 점을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퇴계 선생의 이 말은 권철 대감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충언이었다. 퇴계 선생이 아니고서는 감히 아무도 영의정에게 말할 수 없는 대쪽 같이 곧은 말이었다.
대감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였다.


“참으로 선생님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서도 들어 볼 수 없는 충고입니다. 나는 이번 행차에서 깨달은 바가 많아 집에 돌아가거든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였다.

성인이 성인을 알아본다고 할까, 권철 대감 역시 덕망이 높은 정승이라 퇴계 선생의 충고를 거듭 고마워했다.
서울에 올라온 권철 대감은 가족들에게 퇴계 선생의 말을 자상하게 전하는 동시에, 그 날부터는 퇴계 선생을 본받아 일상생활을 지극히 검소하게 지냈다. 

 

 

 
 
 

 

 

빛의 길을 밝히는 가난한 마음
 
21세기는 다변화 세계, 열린 사회, 투명사회입니다. 지금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요,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등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맞는 자화상을 갖춰야 합니다.

20세기의 목회자가 황소형이었다면 21세기 목회자는 카멜레온형이어야 합니다. 20세기 이전에는 황소형 목회자가 성공했습니다. 미련하고 우직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며 일하는 게 황소형의 특징입니다. 반면 카멜레온은 민감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카멜레온의 특성을 지녔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워 비천한 데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한 데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에 배부르고 배고픔과 풍부와 궁핌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빌립보서 4장)는 사도 바울의 말은 카멜레온형의 목회자이자 전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돌고래와 상어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상어는 힘이 세고 사납습니다. 약한 물고기를 잡아먹고 홀로 다니는 독재형입니다. 반면 돌고래는 좋은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돌고래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잘 하고, 팀워크 형성이 잘 되고,머리가 좋아서 훈련시키면 잘 따라해 보는 이를 기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많은 사람을 유익케 하라”고 말씀합니다. 21세기 목사는 돌고래처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돌고래는 지혜가 있는 동물입니다. 쇼하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뱀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습니다.

과거 닫힌 사회에서는 거짓과 폭력의 상어형이 성공했습니다. 앞으로는 상어형은 안됩니다. 투명사회는 진실해야 살아남습니다. 진실해야 신뢰성이 생깁니다. 신뢰성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릅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신뢰성이 없는 목회자나 평신도들은 존경받지 못하며 목회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은 상전이 아니라 충성된 종이 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당회장으로서 말하노니’‘주의 제자로서 말하노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보내는 편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상전을 위해 목숨을 버렸으니 충노입니다. 서울 광나루의 장로회신학대학교 뒷동산에는 주기철 목사님의 돌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주님의 충실한 종이었다는 기념물입니다.


20세기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입니다. 그녀는 가진 것 하나 없이 오직 실천으로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설교한 청빈한 종교지도자였습니다. 아무리 경제부국 시대를 맞아도 성직자의 거룩은 청빈과 정비례합니다. 21세기는 청빈한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바울은 시간을 뛰어넘은 청빈자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처럼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빈 사상과 청부 사상
 
1. "청부사상" :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장길산과 홍길동 류의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사회가 답답하다 보니, 이런 일종의 분배의 영웅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청빈"에 대한 엄청난 경외감이 있다. 예수님도 가난하셨고, 기독교는 가난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청빈만이 옳은 것이고, 나머지 모든 파워나 다수는 악한 것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청빈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청부도 있을 수 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바나바는 부자였다. 그러나 주를 위해 헌신한 깨끗한 부자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청지기 의식이다. 이것은 사실상 청빈과 함께 청부를 추구하는 사상이기도 하다. 막스 베버는 이 힘이 자본주의를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주변을 보면, 악한 가난한 사람도 많이 보게 된다. 없는 자의 악도 부지기수이다.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바울은 빌 4:12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 배웠노라"고 말한다. 착각하지 말자. 가난과 부요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찌되었든 주님 앞에 온전하게 서는 것이다. 삼일교회에서 "깨끗한 빈자"와 "깨끗한 부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깨끗하면 되는 것이다.

2. "중보기도 열풍" : 스펄전 목사에게는 300명의 중보기도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그의 사역을 강력하게 만든 것은 성도들의 중보기도였다. 나는 요즘 효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열매를 거두고,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출18장을 통해서, 우선순위의 중요성, 조직의 중요성, 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의 효율은 "기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사역의 10배, 100배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교회 안에 100개 이상의 중보기도팀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는가!

3. "국군 구국 성회" : 금년으로 3년째 국군 구국 성회에서 말씀을 증거했다. 무려 1만 7명의 장병과 가족들이 참여했다.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귀중한 동역자들이 생각났다. 그것은 군목 목사님들이다. 이들의 빛없는 헌신이 이런 부흥을 가져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교회가 군 선교를 돕는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군의 복음화로 지교회가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군에서 헌신하는 군목들과 군종병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에 중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충성스런 종들이 존재한다. 이런 귀한 자리에서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청렴한 삶
 
잠30: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이성계(태조)가 고려 공양왕을 물리치고 왕이 되자 "신하된 자가 모시옵던 상감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르심은 도리가 아니며 천추에 오명을 남기는 일이 오니 옛날의 장군으로 돌아 가시옵소서"라고 간하던 정이품, 조참판 "최희재"는 해주에 낙향하여 몹시 가난하게 산 청백리였습니다. 수하에 있던 황해 감사가 가까이 있었지만 찾아가지 않고 굶었습니다. 후에 종이었던 덕죄 내외가 준 돈으로 살았고 그것도 후에 돌려주었습니다. 청렴하게 사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믿음의 선진은 청렴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앙에서도 검소와 청렴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참 검소하시네요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을 화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검소한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능한 사람도 필요하고 화통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은 역시 검소한 사람들입니다.

유능한 사람이 많이 벌면 무엇합니까? 불필요한 곳에 낭비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 정서도 해치고 사회악을 조성할 뿐입니다.


"한국인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는 말을 외국 언론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일부 특정인들의 낭비와 사치풍조를 보고 잘못 내린 판단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껴 씁시다. 물도, 전기도, 바다도, 산도 아끼고 사랑합시다.
주위에 "참 검소하시네요"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고 나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힘씁시다.
말도 아껴서 좋은 말만 골라서 합시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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