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 받은 크리스천 되기 행1:1~1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 : 권세와 능력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이번 주일부터 사도행전 강해를 시작합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서 굉장히 마음이 흥분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 사람의 감정으로 흥분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과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온 세상에 나아가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 뒤 큰 권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흥분해서 씩씩거리던 예루살렘 시민들이
3천명, 5천 명씩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개인적 회심은 물론이요, 빌립보에서처럼 가족들의 회심도 일어났습니다.
회개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카타콤 생활
로마에는 카타콤. 지하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피해 집도 버리고, 재산도 포기하고,
공동묘지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주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까지
무려 300년 가까이 지하 공동묘지에서 지낸 것입니다.
거기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기를 몇 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이 지하 동굴에 묻힌 시신만 200만구나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인구가 100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의 시신이 이 카타콤에 묻힌 것입니다.
어떻게 로마 교회 성도들이 300년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카타콤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주후 약 30년~60년 사이 기록)은 정말 흥미진진한 성경입니다.
그 뒤를 카타콤으로 이어져 내려갔고,
이런 부흥은 카타콤 이후도 지난 2천년 동안...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고 믿지만,
성령의 권능은 일부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들으면 “나도 십자가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지만, 성령의 권능에 대하여 들으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성령의 권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신앙생활은 내 체질하고 잘 안 맞아!..”하고
별의별 의견이 많습니다.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모든 기독교인에게 해당된다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도 모든 기독교인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삶은 권능의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 무능력한 이미지입니다.
어느 기관에서 불신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담배 안한다가 첫째이고, 제사를 거부한다, 욕하지 않는다,
예배드린다, 기도한다, 전도한다, 말 잘 듣고 성실하다.
그러나 좀 나약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크리스천 상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수 믿는 사람 모습이 그럴까요?
술 담배 안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표시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크리스천의 이미지는 매우 도전적(권세적)입니다.
거인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다 사자 굴에 들어갔던 다니엘과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용광로 같이 타는 불에 던져졌던 세 친구들을 보십시오.
전쟁터로 나가면서 군대 맨 앞에 성가대를 앞장 세워 행진했던 여호사밧 왕!
도대체 평범한 사람은 발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말할 수 없는 위협과 방해 앞에서, 한 손에 칼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쟁기를 들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했던 느헤미야가.. 크리스천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권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도무지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잡아 죽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1천 명을 죽였습니다.
무능한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 삼손이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할 때”였습니다. 삿15:14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받고 온 세상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무사안일하게 살다가... 부끄러움 당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일평생 평탄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오해(미혹)가 없습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약간 과장을 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군대에서 편안하게 지낸 이야기는 절대 안합니다.
고생했던 이야기를 할 때, 그 얼굴 표정을 보면 아주 자랑스러워합니다.
최전방 부대에서 고생한 사람은.. 해병대 출신 앞에서는 입을 다뭅니다.
해병대에서 무지하게 고생한 사람도.. 특수부대 출신 앞에서는 조용합니다.
그들은 군대에서 고생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때를 자랑>합니다.
TV보고, 휴가 다니고, 축구하고 즐겁게 지낸 시간을.. 아무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가서,
이 세상에서 무사안일,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얘기가 없습니다.
어떤 군목이 월남에 가서 사역하다가, 사단 훈장수여식에 참석했는데,
전 사단 병력이 모인 자리에서, 최전방에서 목숨 걸고 사투를 벌였던 용사들이
차례로 나와서 단상에 올라가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았습니다.
전사자들에게도 훈장과 특진이 추서되었습니다.
단상 뒷자리 의자에 앉아있던 군목 목사님은, 거기서 잠깐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후방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천국 가서 아무 훈장도 못 타면 큰일이겠구나!’
오늘 오후 우리 각자가, 한 번 서로 간증해 봅시다. 내게는 어떤 ‘무용담’이 있는지?
있기는 있는데, 혹시 30년 전 것 아닙니까? 금년의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잘 믿고 복 받아 무사태평하게 살자’는 것은, 그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사명감당하고 살라’가 바른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이미지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받은 예수님에 대한 인상은
주변에 아이들을 거느린, 조용하고 인자하신 남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이 거의 다 그렇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그림에, 예수님은 항상 어린 양 한 마리를 품에 안으시고
많은 양떼를 이끌어 가시는 분으로만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물론 조용하시고, 인자하신 이미지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다른 인상에 대하여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은 너무 거칠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안식일을 폐하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그들에게 예수님은 반드시 죽여야 될 만큼 위험한 인물,
그냥 살려두면 너무너무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를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보십시오.
풍랑 위를 걸어보신 예수님,
5천 명이 배고파할 때, 빈 지갑의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예수님,
죽은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로마 병정들에게 “내가 예수다!”하고 당당히 걸어 나오신 분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내게 권능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타락했던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거기서 내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의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를 믿지만 아직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고
권능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오늘 여기에, 성령의 권능을 받는 계획에서
애초에 하나님께서 제외시켜 놓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권능을 받는 삶을 살게 되는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이 말씀을 단순히 성경 구절로 받지 말고 ‘나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받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이 약속을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할 것이라고 믿지 못합니다.
‘나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그 믿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나약하게 하나에서 열까지, 너무 의존적이 되지 마십시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려움이 올 때마다 하늘만 쳐다보면서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예수 믿는데 왜 나는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습니까?
예수님 언제 오십니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목이 빠져라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답답하여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1:11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권능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더 이상 하늘만 목을 빼고 쳐다볼 필요 없습니다.
오늘 내가,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는.. 성령세례까지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 했었습니다. 마16:16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주여! 주여!”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1:5
(신앙고백을 하고, 주여, 주여 불렀던 제자들이) 성령세례를 이미 받았거나,
성령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면.. 왜 굳이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 믿는 고백하면, 성령 받은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 부분이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24:46-48
이 정도면 예수를 믿어도 너무나 잘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증인’되는 것 이상을, 즉 성령충만 받을 것을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눅24;49
예수를 통해 죄 사함, 천국, 영생을 알게 된 것은 너무도 큰 복이지만
그 다음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을 것을 믿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전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4
여러분, 마음에 ‘이것이 성령의 권능인가 보다 성령님께서 지금 내게 역사하셨어!’
이런 ‘답’이 오기 전까지는 이제는 말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여, 성령께서 정말 내게 역사하신다는 증거가 없다면
저는 이제부터 아무 말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살겠다는 각오가 있으면,
반드시 성령의 권능을 힘입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말씀이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권능을 받으리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내 증인이 되리라”는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그날로부터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그러기를 열흘이 지나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큰 불덩어리가 각 사람의 심령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들 입에서는,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부터 제자들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의 성령충만 체험 (간증 2편 보기, 클릭)
<08.10.05 인터넷설교 스크랩, 편집 *원제목 : 너희가 세상을 변화시키라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나요?
- 극심한 고난을 통해서,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기도에 힘쓸 때,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민은, 기도에 전혀 힘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에 힘써질 때가 있습니다.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입니다.
우리는 여러 방면으로 극심한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는 ‘자기 죄’가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사명 감당’하다 보면 고난이 옵니다.
또한 '연단, 훈련'을 목적으로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고난이 오면.. 사람은 부르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세례(처음 받는 성령충만)와 계속적인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후, 승천 후, 두려워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래 저래 극심한 고난이 내게 닥칠 때,
가만히 꾹 참고, 견디고, 인내?하지 마시고
주님께 나아가, 무릎 꿇고, 금식하며,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다 당하지만, 성령충만은 다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통회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하며 부르짖는 심령에게만 임합니다.
비로소 그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프로 선수
프로 축구선수, 프로 야구선수, 프로 골퍼 중에
펠레,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았던 선수들은
<탁월한 자기 기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 잘하거나, 자기 기량이 들쭉날쭉 하지 않고
늘 탁월한 기량을 평소에 항상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기 컨디션 조절을 철저히 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군병들도 마찬가집니다.
어쩌다가 한 번 잘 싸우는 용사도 있고,
잘 싸우다가/저조하다가, 다시 잘 싸우다가/다시 저조한 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탁월한 용사는, 자기 영적 컨디션 관리를 평소에도 철저히 합니다.
그래서 <탁월한 자기 기량을 꾸준히 유지>합니다.
▲내게 능력이 안 나타날 때
누구보다도 자기가 먼저, 자기가 가장 잘 압니다.
기도를 했는데도... 별로 자기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성경공부를 인도했는데도... 마치고 나면, 자기 자신부터 맹송맹송 합니다.
이때는 영적 컨디션이 떨어진 것입니다.
‘프로’는 이 때, 빨리 자기 컨디션을 회복합니다.
세상과 차단하고, 조용한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통회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컨디션이 떨어졌는지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그래서 즉시로 다시 성령충만으로 되돌아옵니다.
‘아마추어’일수록, 컨디션 난조, 슬럼프가 길게 끕니다.
석 달, 반 년이나 오래 끌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축구나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
믿었던 선수의 기량이 들쭉날쭉해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혹시 천군천사들이 요즘 나를 지켜보는 마음이.. 그런 안타까움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यू की-सेओ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가 변화되었다! 행15:1~11 (0) | 2023.01.26 |
---|---|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 히2:1~4 (0) | 2023.01.26 |
귀가 열리게 하소서 요10:27 (0) | 2023.01.24 |
그 능력의 비밀 행14:1~18 (0) | 2023.01.24 |
그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 요21:18-23 (0) | 2023.0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