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능선 구축하기 사62:6~7
◑기도의 능선이란?
①‘능선’이란, 산 아래서 보면 산과 하늘이 맞닿은 선으로
개, 고양이로 비유하면, 목부터 꼬리까지 가장 뾰족한 등뼈 부분에 해당된다.
등산을 할 때 능선을 타고 오르면, 산 좌우 아래가 다 보이기 때문에 시야가 좋다.
시야가 좋아서, 이쪽 편 하나님의 역사도 보이고, 저쪽 편 마귀의 역사도 다 보인다.
②‘기도의 능선’에 올라가려면, 일단 기도가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등산할 때, 일단 능선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기도도 어떤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다.
(북)제주 시민들 중에, 한라산에 막혀서
반대편 (남)서귀포에 못 가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한라산에 올라서면, 전에 안 보이던 산 반대편/건너편도 보인다.
우리 중에, 기도의 능선에 올라서지 못해서,
늘 산 이쪽에서 맴도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능력/생각의 한계’ 안에서 맴돈다.
그러나 기도의 능선에 올라서면, 산 반대쪽이 훤히 보이게 된다.
즉,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그 선을 넘어서.. 새 영역으로 진출하게 된다.
③기도 자체가 교두보요, 능선이다.
전쟁을 할 때 능선과 고지를 점령해 보시라.
작전(영향력을 미칠) 범위가 훨씬 더 넓어진다.
또한 반대로 능선을 적에게 빼앗기고 나면, 한참 뒤로 후퇴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어떤 역사를 이루려면,
가장 먼저 점령하고, 차지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있는데,
그 영역이 바로 <기도>라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기도의 능선>부터 구축된 경우를 본다. (바로 아래 예수님의 예 나옴)
지금 기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부흥/하나님의 역사의 선행지표이고,
지금 기도가 계속 힘이 없다는 것은.. 침체/마귀 역사의 선행지표가 된다.
④<기도의 능선>을 구축한다는 뜻은
개인적 적용도 되지만, 단체적 적용의 뜻이 더 강하다.
나 혼자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동전선line을 이루어 함께 점령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설교문 맨 마지막에 더 자세히 설명)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또한 밤 새워 기도하시고.. 12제자를 선택하셨다.
기도하신 후에는.. 반드시 새 역사가 일어났고,
새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깊은 기도가 있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고 나면..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또한 나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달라지게 된다.
산 이쪽 편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능선에 올라가면 반대쪽이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전에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반대쪽 사역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보이니까...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는 기도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위 본문 이사야62:7절에,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해 놓고
너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
여러분, 황홀한 말씀이다.
우리 자신/가정/자녀/교회/민족에..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면..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역사가 일어나긴 하는데, 단 한 번 일어나고 그치니까.. 부흥이 안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쉬지 않고 계속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되는 비결을, 이사야 선지자가 설명하고 있다.
<너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집에서 자녀가 입시공부를 할 때, 부모는 옆에서 쉬지 못한다.
옆에서 성경을 보든지, 기도를 하면서, 자녀를 응원해 준다.
곁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더라도, 아예 드러누워 쿨쿨 자는 부모는 없다.
어린 자녀가 청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옆에서 거들어주게 되어 있다.
어린애가 청소하는데, 옆에서 낮잠 자는 부모는 없다.
우리가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고, 밤에 집에서 기도하면
하나님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신다는 것이다. 기도 응답 하시게 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가 ‘기도의 능선’을 구축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 인물은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하루에 3번 기도했다.
그는, 왕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진다는 법령을 알고도
창문을 버젓이 열어놓고, 하루 세 번 여전히 기도했다.
그래서 결국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만큼 그의 기도가 순교적인 능력이 있었다.
하루 3번 기도하면서, 기도의 능선을 구축한 다니엘에게
다음 2가지 역사가 나타났다.
◑1.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면, 마귀의 궤계가 다 보인다.
▲적이 안 보이면, 적에게 패한다.
개인/가정/교회에서 왜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는가?
마귀의 작전, 마귀의 궤계가 자기 눈에 안 보일 때.. 그렇게 된다.
적의 침입이 안 보이니까, 대비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 보이는 이유는, 고지와 능선을 점령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하고,
반대로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된다.
기도 중에, 마귀가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궤계가 (능선에 서면) 다 보인다.
엘리사는, 적(아람 군대)이 어느 경로로 올 것인지,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또한 자기 집에 누가 찾아 올 것까지 다 미리 알고 있었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해서 <마귀의 역사>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보이면, 마귀에게 안 속는다. 마귀가 역사해도 금방 이긴다.
능선에 올라가면 적의 동태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적에게 속을 이유가 없다.
100% 명확하게 비디오처럼 보일 때도 간혹 있겠지만,
보통은 7~80% 어렴풋하게 어떤 징조, 계시, 싸인, 꿈, 환상, 음성, 강박관념을 주신다.
그래서 자기가 그 보고 들은 것을, 현실에서 잘 분변해야 한다.
자기가 보고 듣지만, 잘못 엉뚱하게 해석/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분변 훈련이 필요하다.
▲캄캄해서 두려운 사람들
(2006년 8월) 어제 뉴스에, 윤달 때문에 난리 난 것을 보았다.
윤달에는 아기를 출산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래서 주부들이 앞당겨 제왕절개로 분만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윤달에는 귀신들이 휴가가기 때문에, 반대로 이사 가는 것은 좋고,
수의를 만들어 두는 것도 좋다고 한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에게 짓눌려 산다.
그래서 까짓것 윤달도 두려운 것이다.
이사 마음대로 가는 것도, 혹시 화가 닥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무궁화 위성을 쏘아 올릴 때도, 어느 날이 길한지 날짜 받아서 쏘아 올렸다는
후문이 들린다. reportedly
이유는 영적으로 두렵고 캄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눈이 있었던 바울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기도하던 바울과 실라는
옥터가 무너지는 기적을 체험한다. 차꼬도 다 풀려버렸다.
그런데 그들은 감옥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지금은 나갈 때가 아니다’ 는 지시를 주셨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기도의 능선이 구축된 사람은, 모든 사건이 닥칠 때
이것이 무슨 뜻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일인지 정확히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기다렸더니, 간수장이 자결하려다가,
도망가지 않고 무너진 옥 터에 가만히 있는 바울 일행을 보고
너무 놀라서 감동받아서, 온 가족과 함께 예수 믿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 일을 통해서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만약 '지진을 주신 목적'이 바울을 옥에서 건져 내는 것이었다면
아마 아예 바울을 옥에 넣지도 않게 하셨을 것이다.
그 '지진의 목적'은, 바울을 탈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간수의 집안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이 있었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님의 정확한 지시를 따를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도 중에
그런 ‘영적으로 민감한 시각’을 갖고서,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언, 예견적 능력이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부흥이 오는 조짐>을 안다.
<재앙이 오는 조짐>도 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2.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면, 하나님의 역사(장차 되어질 일)가 다 보인다.
여러분, 고지와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는 이유는, 시야가 트여 다 보이기 때문이다.
적군의 동태와 움직임까지 다 보인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 그 고지와 능선을 빼앗으려고, 엄청난 희생까지 치른다.
우리가 기도로 높은 고지에 올라가면,
거기서 하나님께서 다 보여주신다. 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에게 행하실 일들이, 기도 중에 내게 깨달아진다.
▲하루 3번 기도하던 다니엘은, 장차 되어질 일들을 환하게 보게 되었다. 단9~10장
기도하던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바벨론의 포로 70년이 차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도 다 알게 되었다. 단9장
다니엘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제 70년이 거의 다 차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은 하나님께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매달렸다.
그렇게 예언된 사실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그 때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와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주었다.
▲다니엘의 ‘기도 능선 구축‘
그런데 그 70년은,
앞으로 이 인류 역사가 끝나고 예수님이 다시 재림해 오시게 되는,
이 인류 역사의 종말과 관련된 하나님의 신비를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것이라는
(2중적 예언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단10장)
그러자 그 이상이 너무 크고 두려워
그 비밀을 깨우쳐 달라고, 다니엘은 금식기도에 들어간다.
그는 21일간 기도했는데, 처음부터 그 기간을 21일로 작정한 것은 아니고,
시원한 응답이 올 때까지 계속 기도하다보니 21일이 되었다.
그 21일간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천사가 이상 가운데 나타나서, 하나님의 비밀을 설명해 주려다가,
천사가 이런 behind story를 알려주었다.
공중에 바사군(다니엘이 몸담고 있던 바사 나라에 역사하는 일종의 지역 영)이 나타나,
다니엘에게 계시를 전해주려던 그 천사가 가지 못하게, 중간에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래서 21일 동안이나 공중에서 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21일간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결국 구원부대인 미가엘이 나타나, 바사군 마귀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응답을 가진 그 천사가. 다니엘에게 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다니엘이 21일간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고 계속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응답을 가진 그 천사가 다니엘에게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바사군 마귀가 중간에서 방해한 것이 성공했을 것이다.
다니엘은 기도했지만, 기도가 명쾌하지도 않았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21일간 계속 어떤 영적 세력에 눌려 있었다.
그러나 그가 21일간 계속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했을 때
결국 눌림이 떠나고, 하나님의 응답이 그에게 임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받은 계시가 단10장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운행 계획’이다.
다니엘은 국가적인 계시를 받았지만,
우리 개인은 개인적인 계시, 교회적인 계시를 받을 수 있다.
‘기도의 능선’을 구축할 때만 그렇다.
그 때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일>이 보이고, <마귀가 역사하는 궤계>도 보인다.
이것이 보이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산다.
이것이 안 보이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너무나 답답한 삶을 산다.
‘기도의 능선 구축’이 없기 때문이다.
◑3. 실제로 어떻게 ‘기도의 능선’을 구축할 것인가?
*‘능선’은 ‘고지’가 연결된 선이다. 혼자서 구축할 수 없다.
능선은 여러 사람이 함께 연결해서 구축하게 된다.
즉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려면, 여러 사람이 기도의 고지에 함께 올라야 한다.
새벽기도 때에도, 자기 혼자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와 같이 기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능선’ 구축이다.
더 강력한 ‘영적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구축하는 진지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진지가 된다.
*개인적으로도 기도의 능선을 구축할 수 있는데,
일례로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매일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가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연결된다.
단 하루 드리는 기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도의 부담/사명’을 주시면,
새벽뿐 아니라 저녁 9시에도 기도하는 성도도 있다.
그렇게 기도가 연속되어질 때, 강력한 기도 능선이 구축된다.
*속회 별로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기도 하는데,
속회 식구들끼리 매일 아침 10시에 모여서, 1달간 작정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그 사이에 속회 식구들 가정 문제가 깨끗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남자 성도들, 기관별로 ‘기도의 능선’을 구축할 수 있는데,
매주 목요일 아침, 또는 저녁에
남자 성도들끼리, 또는 기관별로 모여서, 오직 기도에만 열중하는 것이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꼭 기도의 능선을 구축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드린다.
기도의 능선 구축 없이는, 부흥도 일어나지 않는다.
▲패배주의를 떨쳐 버릴 ‘기도의 능선’ 구축
지금 한국 교회에 패배주의가 짙게 배여있다.
‘앞으로 큰 부흥 없어도 좋다. 지금 18%라도 더 이상 깎이지 않고
현상유지라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이런 심각한 패배의식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기도의 능선 구축’에서부터 이미 실패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선교를 완수하는 민족이 되고,
모든 사회 각계각층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남북이 복음으로 통일되고 하나 되는 놀라운 역사...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도의 능선 구축’에서부터 실패하기 때문이다.
능선 반대편 영역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선에 오르지 못하니까!
개인/가정/교회/이 민족도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신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영역이 있는데, ‘기도의 능선’에 진지를 구축합시다!
혼자도 물론이고, 형제자매와 더불어 ‘기도의 전선’을 형성합시다!
▲역사적으로도 예가 있다
18세기에 소수 모라비안들이 당시에 '기도의 능선'을 구축했다.
그들은 24시간 릴레이 기도 같은 것을 계속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이룬 선교의 역사는 미미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당긴 불로 인해
19세기에 개신교 전체에 놀라운 대대적인 해외선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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