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시128:1~8
1시간 기도를 하자고 <1시간 기도운동>을 제창한 것은
우리에게 이제 진짜 기도해야 될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 '1시간 기도'는 꼭 1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에 책도 나오게 됐고, 다시 <1시간 기도운동>을 올해 연말까지 *2019
온 교우들이 하기로 했는데
이유는, 아직도 현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기도하는 일에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시간 기도를 하나님이 만약에 억지로 시킨다면 간단합니다.
정말 기도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오면, 1시간이 뭡니까, 2시간 3시간도 하루 종일도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야 기도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감동을 주시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일어나던,
또는 이처럼 이렇게 <1시간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듣던,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소원을 주셨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도, 나라의 문제도, 우리에게는 지금 기도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어려운 문제는 '걱정하라, 염려하라'고 주신 게 아니고
'기도할 때'라고 주신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 할 것이요'
고난당하는 때가 왔고, 어려운 때가 왔다는 말은 그냥 단순합니다.
'아~ 기도해야 될 때구나!' 하는 걸 알면 됩니다.
▲본문 시편 138편은 다윗의 시편 인데,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본문 시138편을 가만히 읽어 보면, 다윗이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내가 부르짖었을 때..'
어지간하면 부르짖게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나에게 힘을 한껏 북돋워 주셨습니다' :3
7절,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내 원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며..'
이렇게 참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다윗은 기도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기도를 하는 것 때문에 치러야 할 불편함이 있다면, 절대로 불편한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도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 하셨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불편함은 그 희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을까요?
우리를 구원하여서, 하나님께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히10:19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본래 우리는 죄인이라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존재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주셔서, 우리는 이제 '아버지!' 라고 부르면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담력을 얻게 된 겁니다.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복이,
사실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하게 하시려고 주신 은혜는 엄청난데
실제로 우리는 기도를 안 하는 거예요.
▲이 시간에 여러분이 실제로 기도가 되는 사람인지, 안 되는 사람인지 잘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지금 영적 상태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도가 되는 사람은, 정상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거고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불신자 처럼 사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 살지만 불신자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려고.. 기도하게 해 주신 건데
기도를 못 하니까.. 우리의 삶이,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는 거지요.
◑기도함으로써 영혼이 강했던 다윗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게 힘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3
3절에 '내가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나에게 힘을 한껏 북돋아 주셨습니다.' (새번역)
다윗이 무슨 힘을 받았을까요?
골리앗처럼 그렇게 거인이 되었거나, 돌을 번쩍 들어서 옮기는 장사 같은 힘을 얻었거나
활을 더 멀리 쏠 수 있는 그런 능력자가 된 걸 말하는 걸까요? No
영혼이 강해진 겁니다. 다윗의 영혼이 강해진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이 가지는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본문 시138편도, 아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기도에 대한 간증인데..
분위기는 감사 분위기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그런 기색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얼핏 읽어 보면 기도인지, 감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들 앞에서 내가 주님께 찬양을 드리렵니다.' (새번역)
2절 '내가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경배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주님의 진실하심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이름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강한 자, 영혼의 힘을 받은 자의 아주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다윗은 참 영혼이 강인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데,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데 그냥 살려줍니다.
그것은 다윗이 착하다는 뜻이 아니고, 영혼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영혼이 강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의 감정, 그리고 입술의 말, 행동 하나하나가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은
영혼이 강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겁니다.
사울은 왕이 되고 난 다음에 그만 교만하고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도, 하나님 앞에서 그는 끝까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유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1시간 기도>를 할 때,
힘들어도, 또 아주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위해서.. 1시간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기도할 때 '힘들어요 죽겠어요 살려주세요..' 그렇게 끝납니다.
5분 기도하고, 10분 기도하면 그렇게 끝납니다.
근데 여러분 1시간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기도의 내용이 중간에 확 틀어집니다.
힘듦을 하소연하던 것이 변하여, 감사가 되고, 찬송이 되고
그리고 믿음이 생기고 담대해 지게 됩니다.
"1시간을 기도하자"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힘을 부어 주시도록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제 아내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급히 수술을 받았습니다.
19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도 제 아내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게 된 일이 있었는데,
감사한 것은, 건강 검진을 통해서, 그 병을 미리 진단했고
두 번 다 그렇게 잘 치료받게 된 거죠.
그런데 이번에 19년 만에 다시 아내를 간병 하면서
아내에게서 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 아내에게서 담대함, 평안함을 보았습니다.
사실 35년전 입니다. 제가 군목시절에, 군대에서 다리를 다쳐서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아서
어쩌면 장애인이 될 그런 절박한 처지가 되었을 때,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는 목사인지..' 형편없는 제 믿음의 실상을 보고서 (회개하고)
그게 저의 회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세월이 지나서 19년 전에
제 아내가 암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는
저희 내외가 다 믿음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상황 자체는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런 수준까지는 가지를 못했습니다. 19년 전에는요.
(19년 전에 수술로) 여전히 믿음의 다룸을 받았고
저와 제 아내가 그 일을 통해서, 많이 믿음이 자랐던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2019년에 아내가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게 되는 일을 지켜보면서
뚜렷하게 제 아내 속에 변화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물론 수시로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자!" .. 그렇게 살아왔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누려지는 놀라운 평화,
주님께 맡겨지는 믿음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제 아내의 기도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를 늘 보았습니다.
목사인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그동안에 쭈욱 살아왔는데..
그로 인해서 제 아내의 "영혼이 강해졌다"는 것을 평소에 느꼈습니다.
그러니 이번 수술은 더 평안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 19년 전보다 영혼이 더 강건해져 있었으니까요!
기도는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부어 주시는 시간입니다.
▲제 아내의 이번 입원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1시간 기도"에 대한 제 마음이 그냥 확정 되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1시간 기도를 해? 말어?' 하는 것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인들 중에 힘들어 하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영성일기 쓰라고 해서 겨우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또 1시간 기도 하라는 거야?' 이렇게 말할 분도 있을 것 같았어요.
교인들을 힘들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는 것처럼도 느껴졌어요.
그런데 제 아내의 입원 치료 과정을 통해서
그런 생각이 싹 없어졌어요.
대신에 '이건 정말 반드시 필요한 거야!'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시는 게 아니고,
우리를 짐에서 가볍게 하려 하심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1시간" 하나님한테 기도하면,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1시간 기도> 책을 출간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믿어 주지 않아서 질문드리는 건데
기도는 죽고 사는 문제가 맞습니까?'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질문을 하는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어요.
'기도가 진짜 죽고 사는 문제인가?' 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결론이 안 나신 분들!
여러분 한번 감정이 확 비틀어지고, 가지지 말아야 될 감정에 사로잡혀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다 있으실 겁니다.
즉 두려움에, 분노에, 근심에 사로잡혀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그런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겁니다.
유혹에 빠져서 말하기 부끄러운 죄를 지은 사람도 있습니다.
본인도 얼마나 부끄러우며, 그 가족과 자녀들이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죠?
'영혼이 약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누구나 다 자기 마음에 거룩하게 살려는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이 자기 마음의 중심이 오셨으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살기는, 육신에 이끌려서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혼이 약하니까요!'
그래서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기가 살아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진짜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시험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7절에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을 주시고, 손을 내미셔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며
주님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고난의 길 한복판에 있어도,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1941년 8월에 한상동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평양 형무소에 끌려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정말 얼마나 힘든지 페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감옥에서 완전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한데..
어느 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누가 "한 목사!" 하고 부르는 겁니다.
감옥에서 도대체 누가 나를 "한 목사"라고 부를 수 있나? *거기는 몇 번 이렇게 부르죠.
벌떡 일어나서 보니까, 또 소리가 들립니다.
"기도해! 기도하라!"
그는 하나님의 친 음성인 줄 깨닫고,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3일 낮밤을 기도했어요.
그리고 3일째 밤에, 자기 마음에 그 고통과 그리고 마음의 두려움과
그리고 앞날이
우리 주님께 다 맡겨지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 '염려를 주님께 맡겨라' 그랬지만.. 맡겨져야 진짜로 맡기는 겁니다.
아무리 주님께 '내 근심 염려를 맡기고 싶어도, 맡겨지지 않는데' 어떻합니까?
그런데 3일을 그렇게 기도하고, 염려 근심이 주님께 맡겨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편안한 잠이 들더래요.
그리고 꿈을 꿨어요. 그렇게 편안하게 자면서 꿈을 꾸었어요.
얼마나 넓고 푸른 잔디밭에, 거기에 한상동 목사님이 서 계신데
윗옷을 다 벗었는데, 몸에 살이 붙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팔뚝에 근육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꿈을 깼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고쳐 주셨구나!'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를 고치셨군요!'
그렇게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밤마다 열로 고생하던 것이 다 없어지고
기침도 사라지고, 평양 형무소에서 과거부터 앓아오던 폐병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면 약속하셨어요.
다윗에게만 약속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을 우리에게 부으세요. 우리의 "영혼이 힘"을 얻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8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들에게 갚아주시니,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다윗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 제발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도 그런 기도를 드릴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만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할게 아니고
우리도 버리지 말아야 할게 있습니다.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형편에서도
절대로 우리가 소홀히 하지 않고 반드시 지켜야 할게.. 기도입니다.
"1시간 기도 운동"은 특별히 남자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게 이번에 촉구하신다는 그런 감동을 제가 느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남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 하셔야 합니다.
1시간 기도!
여러분이 기도하면 온 가족이 기도하는 거고, 온 교회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요? 항상 남자가 맨 마지막에 기도하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냥 먼저 기도하면, 모든 사람이 다 기도하는 게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남자에게 지목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딤전2:8절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남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분노하지 마! 다투지도 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억울하잖아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한번은 화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잖아요.
딤전2:8절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부부 사이에도, 직장에서도 분노하지 마! 다투지 마!
왜요? 그러면 기도가 죽으니까요!
기도가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
어떤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바보 소리 들어도, 그게 수지 맞는 길이니까
그 정도로 남자 성도들에게 기도를 주님이 명령 하셨어요.
이번에는 정말 남자 성도들도 한 시간 기도에 동참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결혼 주례 하기 전에 신혼부부에게 문답을 합니다.
'이 자매를 아내로 맞게 되는데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은 있습니까?'
그러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해서 자녀 하나, 둘 낳고 나서
그리고 다시 불러서 '지금도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냐?' 물어보면
신랑은 다 고개 숙이고 대답을 안 합니다. 살아 보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마음이 없어진 겁니까? 아닙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남편이 어디 있어요?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만한 힘이 없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마음은 있는데,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힘을 부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대체 부부생활, 자녀 교육,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겁니까?
기도해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힘을 받아서 해야 됩니다!
▲어느 자매가 결혼하면서, 결혼할 남편될 형제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는데, 다른 게 아니고 자기 전에 꼭 우리 손잡고 기도하고 자자!
그거 꼭 약속해 줘!'
그 형제가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했어요.
밤에 손 잡고 기도하고 자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난 다음에 잘 지키는 것 같았은데
어느 날 남편이 술을 먹고 퇴근을 해서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너무 속상했지만 어떻게 해요? '기도라도 하고 잡시다!'
그런데 남편이 그냥 이불 위에 쓰러져 드러누워 버렸어요.
'오늘은 당신 혼자서 기도해요!'
아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그냥 누워서 자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서 아내의 귀에다 대고
'술 마셨다고 하지 마! 아프다고 해, 그냥 아파서 기도 못 한다고!'
이런 수준의 남자가 어떻게 가정을 책임진다는 말이에요?
가정에서 남편이 앞장서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정말 역사가 나타납니다.
가장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기도를 안 하니
아내도, 아이들도, 그리고 교회도 나라도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1시간 기도를 하자고 그렇게 설교를 했는데, 뉴질랜드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그는 십년 동안 1시간 기도를 해오신 분이에요.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너무 기뻐서
그리고 제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고 알려 드리기 위해서 메일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사진 하나를 첨부 파일로 보내왔어요.
열어 보니까 흉측한 다리 사진입니다.
발등에 무슨 혹이 난 것처럼, 그렇게 언뜻 보기에 흉측하게 보였어요.
"목사님, 제가 10년 동안 매일 1시간 카페트 위에서 그렇게 무릎 꿇고 기도를 하다 보니
제 발등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제 발등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보니까 내가 무슨 큰 병에 걸린 줄 알았는데
기도 하는 동안에 굳은 살이 내 발등에 이렇게 박혀버렸어!' "
그 굳은 살 박힌 발등을 보고 자기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래요.
'여보, 우리가 당신의 기도 덕분에 이렇게 살았나봐!'
이민생활을 아직 경험 안 해 보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이 '이제 끝인가, 죽는가 보다' 그런 순간의 연속이랍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은 가슴이 무너질 때도 많고..
그랬던 수많은 고비들을 어떻게 이겨 나왔나?'
'당신이 그렇게 기도해서 그랬나 봐!
그래서 우리가 살았나봐!'
▲남자들이 일어나서 진짜 기도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 같아요.
'아~ 너희들이 이제 정말 기도 하는구나!'
그 간단한 일을 남자들이 못 해요.
그러나 참 기가 막힌 것은, 기도를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는 거예요.
'기도해야지..' 그러고도 기도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연합이 필요한 거예요. 기도의 연합이 정말 필요합니다.
누가 무너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무너지면 붙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1시간 기도는 반드시 연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거기에 1시간 기도를 반드시 기록하자고 우리가 서로 약속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해야 하니까, 1시간 기도를 하게 되는 거고
그 일기를 서로 나누면서, 격려하고, 붙잡아 주고, 다시 또 일으켜주고, 기도해 주는 힘으로
우리가 1시간을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심령의 상태를 잘 분별 하셔야 됩니다.
진짜 여러분의 심령이.. 영혼이 살아있는 심령인지, 죽어 있는지를 스스로 정확히 봐야 돼요.
여러분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우리가 매일 1시간씩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만나는 시간을 좀 가지면 좋겠어!' 그런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사랑하는 사람하고 '우리가 매일 1시간씩 만나서 좀 데이트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하자..'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1시간씩 만나서 할 일은 너무너무 많지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1시간 동안 있어도 좋지요.
그게 사랑하는 사람하고의 만남입니다. 시간이 아깝지 않고, 금방 가버립니다.
근데 아주 낯선 사람과 만남을 예를 들어 봅시다.
일례로 여러분이 저와 매일 1시간을 만난다면.. 얼마나 부담스러워요?
1시간 동안 뭘 하겠어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게 있어서 1시간 동안 매일 만나겠어요?
그런 답답함이 생긴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증거죠.
여러분은 둘 중에 어느 쪽이에요?
'1시간 기도 하자!' 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하는 것처럼, 그렇게 반갑고 기쁜가요?
아니면 '아니 도대체 언제 시간을 내?'
'도대체 언제 그 1시간 동안 무슨 기도를 그렇게 길게 해?' 이런 마음인가요!
▲헌신과 결단의 기도시간
만약에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가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그러면 이번에 그 영적인 견고한 틀(진)이 깨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돼요.
하나님께서 이번에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허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1시간 기도' 하는 일을 위한 결단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맨날 결단만 하고 예배를 마치나?' 하는 성도님이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결단도 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이 그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요.
우리로 하여금 1시간 기도하게 하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에게만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어요.
오늘도 그래서 결단합니다. 그동안에 수도 없이 기도에 결심을 했다가 관두고..
그러기를 반복했던 사람들이 있으실 겁니다.
이번에는 온 교회가 다같이 결단하자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의 속회에서, 여러분은 어떤 모임을 가든지
계속해서 연말까지 '1시간 기도'를 계속 강조할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2019년 연말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벌써부터 가슴이 막 뛰어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결단하십시오.
'주님 제가 정말 원합니다. 그동안에 제가 기도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생활을 했지만, 이제 거기서 벗어나기 원합니다.
이제 예수를 믿어도 진짜 믿는 그 삶을 제가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1시간 기도의 자리로 저를 이끌어주시고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마음에 결단하시는 분은 일어나서 같이 기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을, 그 마음의 소원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제게 기도할 힘을 주소서!
기도할 때 또 세상을 이길 힘을 주소서!'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부터 기도회 된다는 말을 듣고도
아직도 제대로 기도하지 못한 저희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복을 주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까지 하셨는데
그런 은혜를 받고도 여전히 기도하지 못하는 삶에 머물러 있었음을.. 주님 회개합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의 강권하시는 기도의 독려를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지경을 완전히 바꿔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이제는 기도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려고, 기도에 눈을 뜨게 하시려고
기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려고, 기도의 힘을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인 줄 믿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서 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섰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친히 안수 해 주시기 원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기도의 영으로 저희가 충만케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도 살고, 나라도 살고, 한국교회도 살고, 우리 민족도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부흥이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가 부모 세대로서의 기도의 사명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특히 남자 성도들 위에 주님이 일일이 손 얹어 주시기 원합니다.
남자로서, 가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을 아멘으로 받게 하소서.
그리고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
우리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게 하소서. 주의 역사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렇게 매일 1시간 기도 한 후에 (당시는 2019년 9월)
올해 연말에 하나님의 역사와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주님의 계획하심을 우리 모두가 다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명인 명설교편◑ > 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엡1:1~2 (0) | 2023.01.22 |
---|---|
기도의 능선 구축하기 사62:6~7 (0) | 2023.01.22 |
기적을 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보라 행3:1~10 (0) | 2023.01.22 |
나누는 곳에, 권능과 은혜가 나타나다 행4:32~37 (0) | 2023.01.22 |
나의 생명, 주께 있습니다 요일5:6~13 (0) | 2023.0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