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이 나의 징계를 받았기에,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2. 예수님이 나의 질고(질병)를 받았기에,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53:5b.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3.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고 죄가 되셨기에, 나는 주님의 의로움을 입고 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위 구절이 이사야53:10을 바울이 인용한 것인데,
구약의 속죄 제사의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혼을 속죄 제물로 드리셔서
그 분의 영혼은, 인간을 대신해서 죄가 되셨습니다.
신학자가 아니라도, 거룩한 교환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지고 죄가 되셨고
우리는 주님의 의로움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21을 다시 봅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교환이 일어난 것을 보시겠죠?
저를 따라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을 지고 죄가 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대신 받아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받으십시오.
그보다 더 낮은 수준의 의로움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교환 divine exchange’에 관한 또 다른 말씀은 히브리서 2:9절입니다.
교환에 관한 많은 말씀이 있지만, 이것이 가장 짧고 단순합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죄가 되었다면,
그 분은 그 벌로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라고 말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말씀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이 나 대신 죽었기에, 나는 주님의 생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맛보았고,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함께하게 하셨습니다.
저를 따라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경험했고,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1~2시간 안에 나누는 이 진리는, 제가 수많은 시간을 들여 몇 년 동안 연구한 것입니다.
제게 큰 축복이고 특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음의 먹구름 아래서 살아갑니다.
그런 현실이 문학, 음악, 미술, 건축,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뜻도 되지만,
생명의 활기, 생명의 기쁨, 생명의 환희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생명의 활기로 살아갑니다.
웃음꽃이 번지고, 마음이 평화롭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며.. 찬양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행하시는 섭리를 발견하면서.. 주님을 더욱 신뢰합니다.
◑5.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저주를 받았기에, 나는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십자가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나무는 죽은 나무든 산 나무든 모두 나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저주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21:22~23은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가 된다고 합니다.
구약을 알고 있는 모든 유대인은
십자가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이, 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보도록 저주가 되었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갈3:14절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저주의 근원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5~6년 동안, 저주에 대해 연구하게 하셨습니다.
저주와 축복이 있다는 사실만 말해주고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은 말해주지 않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기에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저주는 거의 개인이 아닌, 가족이나 더 큰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저주에 관한 핵심은, 수 세대에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치르신 ‘거룩한 교환’을 통해
우리 가정이, 저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가 되셔서, 우리는 저주의 해방 뿐만 아니라
이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 말을 고백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천사가 모두 주목합니다.
함께 합시다.
“예수님이 저주가 된 까닭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6. 주님이 나의 가난을 당하셨기에, 나는 주님의 부요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저는 모든 기독교인이, 막대한 돈과 고급차를 가진다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필요가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나누게 하심입니다.
고린도후서 9:8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모든 영역에 풍성하게 갖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도 축복되기 때문이며
저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히 주셔서 나누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가난한 사람처럼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주님이 당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옷을 단정하게 입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지갑 없이 파송하였을 때
부족한 것이 있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큰 집에 살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아래 파송된 이들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잠시 저주에 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저주의 말씀이 어디에 있을까요?
신명기 28장은 축복과 저주에 관한 것입니다.
처음 14절까지는 축복에 관한 것이고, 남은 54절은 저주에 관한 것입니다.
저주가 무엇인지 알기 원한다면 찾아서 읽어보십시오.
축복을 누려야 할 믿는 자인 당신이, 저주를 경험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주에 관한 말씀 중 두절을 보겠습니다. 신28:47~48절입니다.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요와 기쁨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우리가 믿지 않고 불순종하면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4가지 고통을 주목 하십시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48
이것이 무엇입니까? ‘풍족한 가운데 빈곤’입니다. :47~48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봅시다.
그분은 24시간 못 먹어서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주님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기에, 남의 묘를 빌려야 했습니다.
부요한 주님이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가 부요하게 되기 위함입니다.
교환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부요한 주님이 우리의 가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요를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7. 예수님이 수치를 참으신 것은, 나에게 주님의 영광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태 27:35-36 ‘그들은 제비를 뽑아 주님의 옷을 나눠가졌다’
예수님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벌거벗겨진 채 달려 있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어머니인 마리아만이 주님의 십자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멀리 서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히브리2:10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고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예수님은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의 마음 깊숙한 가장 큰 상처 중 한 가지가
수치심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성적으로 학대당한 어린이들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들은 자존감이 없으며 수치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수치를 품고 살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당신의 수치를 견디셨기에,
당신은 그분의 영광을 주님과 나눌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사야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도할 때 하늘을 절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를 언제나 이렇게 숙입니다. 그들은 대게 수치심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에서 구속 받으면 얼굴을 들고 아무런 흠도 없이 주님을 봅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 비밀리에 속박 당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든지 속박bondage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풀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선포합시다.
‘예수님이 수치를 견디셔서, 내가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8. 예수님이 나의 거절을 대신 당했기에, 나는 하나님의 용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절감은, 인간의 마음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거절을 당했던 사람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거절당한 사람의 특징은, 사랑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거절 감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부모의 태도 때문입니다.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궁안의 그 작은 생명체는 그런 거절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대개 거절 감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기들이 가지는 모든 갈망은,
부모가 주는 지속적인 사랑의 손길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가슴에 품어 주는 아버지의 강한 손에서 느끼는 아버지의 강하고 따뜻한 사랑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나 현대 문명에서 많은 아이가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미국의 50% 아이들은 내적으로 거절 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거절 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미국에서 대학 캠퍼스 집회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러 가기 위해, 저는 캠퍼스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설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빠르게 걷고 있는데, 저 만큼 빠르게 마주오던 여학생과 부딪쳤습니다.
그녀는 “프린스 목사님, 하나님께 제가 목사님과 대화하기를 원하시면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만났지만 저는 2분 밖 에는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녀는 20분 걸릴 이야기를 1분에 했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가 뭔지 알겠네요. 제 기도를 따라하세요.”
저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몰랐는데, 결국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자녀이고, 하나님은 진정으로 제 아버지십니다.
저는 거절당한 것이 아니고, 거부당한 것도 아니며
저는 이 우주에서 최고의 가족인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시고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달 후에 그녀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만난 상황을 설명하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해주신 짧은 기도가 제 삶을 바꿨습니다.’
그녀는 거부당한 자에서 용납 받은 자녀로 변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저버렸다면 과거는 변화시킬 수가 없지만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보증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7:45~51입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 구시 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예수님은 육체적 연약함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사망 소식을 듣자 놀랐습니다.
보통 2시간 정도는 더 버티다 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인은 ‘거절감’ 때문입니다.
누가 거절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가 거절했습니다.
우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아들이 부르짖었지만 아버지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귀를 막고 눈을 돌렸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지고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은총으로 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거절을 당하셨습니다.
그 분이 거절당한 직후, 그 분은 영혼을 포기 하셨고,
그 후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 휘장은 너무 두꺼워서 끝을 붙잡고도 찢을 수가 없는 것인데
위로부터 두 갈래로 찢겼습니다. 하나님이 찢으셨다는 확증입니다.
그 휘장은 거룩한 하나님과 거룩하지 않은 인간을 분리시켰던 휘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당한 거절을 당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교환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가 당할 거부를 당하셨기에, 우리는 용납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는 말
거룩한 교환 8가지를 반복 학습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나의 징계를 받았기에, 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2. 예수님이 나의 질고(질병)를 받았기에,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3.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고 죄가 되었기에, 나는 주님의 의로움을 입고 의가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이 나 대신 죽었기에, 나는 주님의 생명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5.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저주를 받았기에, 나는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6. 주님이 나의 가난을 당하셨기에, 나는 주님의 부요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예수님이 나의 수치를 당했기에, 나는 주님의 영광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예수님이 나의 거절을 대신 당했기에, 나는 하나님의 용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진리를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손은.. 내 책임입니다. 하나님 탓 마십시오.--데릭 프린스 (0) | 2023.01.16 |
---|---|
귀신 들린 사람에게, 붕대만 감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렘6:14 --데릭 프린스 (0) | 2023.01.16 |
대천덕, 당신은 실패한 사역자입니다 (0) | 2023.01.16 |
내 기억 속의 대천덕 신부님 (0) | 2023.01.16 |
대천덕 신부( 1918 ~ 2002)Reuben Archer Torrey Ⅲ (0) | 2023.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