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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대천덕 신부님 대천덕 신부님 관련글 출처
성현경 목사
지난 달에 마침 제인 사모님께서 1945년 토레이 신부님을 만나셨고
미술공부하시면서 사시던 집을 찾으실 때 뉴저지 우리 집에 오셨다.
붉은 벽돌로 지은 그 집 내부가 기억나신다고 하신다.
내가 현제인 사모님과 찾는 동안
나는 토레이 신부님을 만났던 순간들이 감격으로 떠올랐다.
대학을 입학한 1978년 겨울,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날이었다.
청년부 수련회로 예수원에 만 하루가 걸려 도착했다.
예수원 기슭 개천이 얼마큼 얼었는지를 몰라 건너가면서
얼음 위에서 기도를 안할 수 없었다. 호롱불과 연탄난로,
그리고 어두운 새벽 예수원 입구 계단 아래 개천에서 추운 세면,
그 후 아침 식사는 양념도 없는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음식이었다.
그렇게 사시는 토레이 신부님의 삶에 놀랐다.
그리고 장로교에 다니던 내게 토레이 신부님의 강의는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하나님의 뜻(Will)을 알려면 의지(Will)를 드리라는 요한복음 7:17과
다음날 두 종류의 성령충만
그리고 신앙의 성장 일곱 단계를 예수님의 생애에 맞춰 계단식으로
그린 강의였다.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인용구절을 그렇게 많이 적으시는지
성경도 모르는 나에게 ‘성경말씀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는’
토레이 신부님의 자세가 각인되었다.
그리고 하루 강의 중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성경과 과거 역사 안에만 계셨던 주님이 지금 내 안에 들어오시려는 순간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그 삼일간의 방문은 지금껏 내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감사함이 도무지 식지를 않는다.
예수원에 수련생으로 머물 기회가 없었고 허락되는 사흘씩 다녔던 방문객일 뿐인데도
<신앙계>에서 토레이 신부님 칼럼을 도서관에서 복사해 스크랩하면서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기면 예수원으로 발걸음이 옮겨졌었다.
그 때는 상담을 받게 되었다. 제 얘기를 들어주시는 동안 종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저녁식사 종인지 몰랐다.
신부님은 종소리에 의식하지 않으시고 그저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주셨는데
다 들으시고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내 안에 드는 생각은 토레이 신부님도 모르시겠다고 한 것을
내가 풀려고 했던 것 자체가 교만처럼 느껴졌고
꼭 알아야 겠다는 마음에서 놓임을 받았다.
그리고 토레이 신부님 안에 있는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가르침 없이
내 속에 전이되어왔다. 평강과 함께.
지금도 잊혀지지 않던 토레이 신부님의 말씀 “잘 모르겠는데요.”
군대를 제대하고 내 길에 절망이 왔다. 다시 찾았던 예수원.
토레이 신부님은 아프셔서 주치의로부터 하루에 서너시간 이상 활동을 금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교제와 기도 가운데 하산하려던 날, 아침 성령께서 토레이 신부님 내외분에게
상담을 받도록 정회원회의에서 말씀이 있었다고
짐을 싸고 만나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지식의 말씀을 통해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주님은 계시하셨다.
아내의 말하는 습관이 내가 남편으로 머리인데 제가 밖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전달된 것인데
그것이 아내의 문제인 것처럼 오히려 제가 고치려 한다는 것,
그러면서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습관이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무시했던 그 말습관이 답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
두어시간을 들어주시면서 주치의 권면대로 허리가 아프신가보다.
그 아프신 상태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러 지체중의 하나일 뿐인 저를 위해
성령을 순종하시는 그 모습은
지식의 은사에 대한 매력보다 더 주를 배우게 했다.
‘나도 저렇게 순종해야지’하는 소원이 생기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은사보다 더 사모하게 되는 토레이 신부님의 순종.
그리고 그 날 제 얘기를 들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은사’보다 ‘긍휼’에 내 마음은 적셔졌다.
저의 고뇌는 토레이 신부님안에 있는 예수님의 ‘긍휼’로 씻어내렸다.
참 어려운 문제였지만 긍휼은 놀라웠다.
부산에서 부교역자로 첫목회를 배우던 시절
토레이 신부님이 부산에 한 신학교에 오셨었다.
전화를 드려서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 때 숙소에 수염을 기른 한 형제님과 함께 계셨는데
나라에 전쟁의 경고에 대한 말씀이 기도중에 생각난다고 상담을 드렸다.
토레이 신부님은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어 보여주시면서
그 해 초 전쟁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받았다고 공감해 주신다.
수 년이 지난 후에 그 수염기른 형제님을 만나게 되어 전해들었다.
그 때 다섯 도시를 방문하시는 동안 개인적으로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는데
처음 보는 저를 만나주셔서 제가 누군지 궁금했다고 하면서
얼굴이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저를 만나주신 것이 이유가 무엇일까 나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저를 개인적인 친분으로 기억하실 것도 분명히 아닐텐데 ..
어떤 일의 펼요에 따라 만나신 것도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시는건가,
내가 불쌍하셨나.. 지금도 모르겠다.
신부님은 나에게 어느 교회, 어느 선교단체에 있는지 물으신 적이 없다.
아무 내세울 것도 없는 이름모를 한 지체중에 하나인 나에게
그분은 주님을 보여주셨다.
토레이 신부님과의 마지막 만남은 1983년에 사할린에서 격추된 KAL 007기 때문이었다.
제가 부산에서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KAL기 사건에 대해
신부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갑자기 가게 되었기 때문에 교단파송을 받지 못했다.
교회와 교파로부터 개인적인 분리가 될까봐 주께 질문이 생겼을 때
마침 부천 새소망의 집에 토레이 신부님이 와 계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뵜을 때 토레이 신부님은 이스라엘로 가는 저를 안수해 주셨다.
토레이 신부님이 내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다.
그 분의 글을 외울 정도로 많이 읽었지만, 그 분의 긍휼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토레이 신부님이 그렇게 보여주신 대로,
하늘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날 때까지 나도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을 그렇게 섬기면서 살고 싶어진다.
내 인생에 그 분의 공간이 빈 것이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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