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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자가 되라 (요한복음 12장 12-15절)

by 【고동엽】 2023. 1. 7.

평화의 사자가 되라 (요한복음 12장 12-15절) < 비계산적으로 살라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탔다(14절). 어미 나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태복음 21장 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그래서 제자들이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끌고 왔다(마 21:7). 그때 예수님 앞에 어미 나귀와 어린 나귀가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탔다.

 사람과 짐을 태우는데 어미 나귀는 경험이 많은 프로지만 어린 나귀는 아마추어다.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고 돈도 없고 배경도 없고 순수하고 깨끗한 것 하나 뿐이다. 그러면 인간적으로는 분명히 어미 나귀를 타야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셨다. 그 말은 “주님의 축복은 경험 많고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프로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암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맡은 분야에서 프로 이상의 실력은 갖추되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말라.

 하나님은 순수한 아마추어를 돈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보다 더 축복하신다. 가끔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부정적인 말을 한다. “돈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지금 그런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연약하고 경험 없는 어린 나귀도 주가 쓰시겠다고 하니 쓰임 받았듯이 아무리 부족해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쓰임 받는다.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 꼭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주어진 현재 여건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만 잘한다고 쓰임 받지는 않는다. 쓰임 받으려면 십자가의 희생을 앞세워야 한다. 희생이 없는 축복은 가치가 없고 겉으로 보기에는 축복같이 보여도 진짜 축복이 아니다. 희생이란 영광스런 자리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없으면 잠깐은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손해가 되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있으면 잠깐은 손해가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이익이 된다.

< 평화의 사자가 되라 >

 예수님은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타고 무력의 왕이 아닌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예수님은 충분한 무력이 있었다. 천사들도 예수님의 명령을 절대 순종한다. 그래도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참된 평화는 무력이 아닌 사랑과 용서를 추구할 때 주어진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평화가 넘치고 소외와 상처도 없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와 상처 입은 자를 더 아끼시고 살피셨다.

 사람을 밀어내기보다 껴안기에 익숙해지라. 남을 껴안을 때 예수님의 품에 안긴다. 그때 그를 통해 넘치는 생명력이 나타나고 공동체에 생명의 꽃이 핀다. 의롭게 살라는 말이 불의한 사람을 배척하라는 말은 아니다. 선한 목적을 따라 잠시 배제할 수는 있어도 배척하지는 말라. 배제할 때도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품는 마음을 가지라. 빛 된 삶을 살라는 말이 어둠에 속한 사람을 말살하라는 말은 아니다. 선한 목적을 따라 잠시 멀리할 수는 있어도 말살하지는 말라. 멀리할 때도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품는 마음을 가지라.

 사람은 다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평화가 해쳐지지 않는다. 물론 큰 해악을 끼치는 사람은 배척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배척은 상처를 낳고 평화를 깨고 선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만 생각하고 깨닫는 기회를 주는 선한 배제는 평화를 깨지 않고 선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의 인격 자체를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말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

 인간관계를 하면 실망될 때도 있고 인간사회를 보면 실망스런 모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내 현실에 오시게 하라. 예수님은 지금도 베들레헴 구유와 같은 마음을 찾고 계신다.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예수님이 오실 수가 없다. 세상의 어둠을 탓하기 전에 내 마음의 어둠을 탓하고 먼저 평화의 빛으로 내 마음이 밝혀지기를 소원하라. 불의한 세상에 세례 요한과 같이 정의를 앞서 추구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예수님과 같이 평화를 앞서 추구하는 사람은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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