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보장된 존재 (신명기 33장 26-29절) <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라 >
사람마다 생각 차이로 오해가 생길 때가 많다. 행복은 환경보다 생각에 좌우된다. 불행한 사람은 어디서도 불행을 찾고 행복한 사람은 어디서도 행복을 찾는다. 행복은 조건이나 환경을 초월해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왜 행복을 놓치는가?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과 은혜 속에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깨달음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자신들의 행복을 잘 깨닫지 못했다. 그에 대한 깨달음을 주려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29절).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일은 부모나 목회자나 멘토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필자도 가끔 딸들에게 말한다. “얘야! 아무개 장로님과 권사님과 집사님과 같은 동역후원자들은 아빠 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단다. 그 헌신의 손길을 늘 잊지 마라.”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필자가 전하는 말씀으로 받은 어떤 감동과 은혜가 있었기에 그것을 잊지 못해 헌신의 손길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는 그 헌신의 손길을 통해 사역을 지탱할 힘을 얻었기에 그 은혜를 잊지 못해서 가끔 딸들에게 그 말을 해준다.
어느 날 한 권사가 뒤늦게 예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일을 많이 못하고 천국에 간 남편을 추모하며 선교단체에 큰 재정을 기부해 선교센터를 지어드렸다. 그 선교단체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 선교관 이름을 그 남편의 이름을 따서 <아무개 선교기념관>이라고 지었다. 무명의 헌신이 아름답지만 그렇게 이름을 밝히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역을 후원했던 루디아나 뵈뵈 등과 같은 신실한 헌신자들의 이름을 성경에까지 기록했다. 그 이름들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름다운 이름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는 무명의 헌신자가 사역의 기초를 놓았다. 그 문서에 비록 <아무개 선교기념문서>란 명칭이 붙여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주실 것이다. 또한 그렇게 부모가 헌신한 것을 자녀가 안다면 의식 있는 자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부모님은 은혜를 아는 분이었구나! 내게 이런 좋은 기억을 남겨준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자녀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일은 자녀의 행복과 축복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삶이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는 삶이다.
< 승리가 보장된 존재 >
‘여수룬’이란 ‘의로운 백성’이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별칭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비할 것이 없는 유일무비하신 분으로서 여수룬을 돕기 위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가? 그들의 안전한 처소가 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로 그들을 대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해주심으로 도와주실 것이다(27절). 왜 주일마다 교회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지는가? 하나님의 품에 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부모의 팔에 안긴 아기는 전혀 염려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을 의지하는 자는 더욱 염려할 것이 없다. 앞서서 대신 싸워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일처리를 도와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 아래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한가? 든든한 보디가드만 한 명이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데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은 풍성한 축복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28절).
성도는 최종승리가 보장된 존재다(29절). 승리로 가는 과정에 절망적인 일을 만나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 안에 있으면 결국 승리한다. 사람이 실패하고 불행하게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 밖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자기 가능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존재다. 자연 적응력도 약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그런데 어떻게 만물의 으뜸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돕는 방패가 되어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와주어도 큰 힘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힘이 없어 보이는 교회와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대 로마 제국이 굴복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 엄청난 핍박과 순교가 있었지만 그 순간들을 극복하고 기독교는 짧은 시일 내에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가 되었다. 지금은 교회가 기복주의와 외형주의로 인해 잠시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지만 교회와 성도가 겸손히 제 자리를 찾으면 한국 교회는 다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최상의 복된 공동체가 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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