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멀리하는 삶 (이사야 59장 9-19절) 1. 정의롭고 공의로운 삶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정의’란 단어다. 9절에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라는 표현이 나오고 11절에 “정의를 바라나 없고”라는 표현이 나오고 14절에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라는 표현이 나오고 15절에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한 9절과 14절에는 공의가 없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이 말씀들을 보면 이사야가 이스라엘로부터 가장 회복되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임을 알 수 있다.
믿음이 인간의 헛된 욕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나 인간의 이기주의를 포장한 포장지가 되게 하면 안 된다. 믿음은 하나님을 축으로 삼아 삶의 바퀴를 굴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삶을 비춰보며 사는 것이다. 너무 영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말라. 예배 중에 혼절할 정도로 감동해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지 않으면 교인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도 필요하지만 악을 깨뜨리는 말씀도 필요하다. 공감이 없는 믿음은 문제지만 공의가 없는 믿음은 더욱 큰 문제다.
2. 성실하고 정직한 삶
본문 14절을 보라.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세상이 되자 사람들이 땀을 흘리지 않음으로 성실함이 없어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거짓말이 만연해졌다는 뜻이다. 회개할 때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서 성실과 정직을 앞세워 살라. 일확천금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삶과 정도를 걷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
어떤 학생은 공부는 안 하고 시험 시간에 커닝을 한다. 그런 습성이 몸에 배면 어른이 되어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려고 하고 땀도 없이 돈을 벌려는 태도가 생긴다. 쉽게 돈을 벌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땀을 흘리라. 게으름은 기회와 시간을 낭비하는 악이다. 그것은 물질 낭비나 음식 낭비보다 나쁜 것이다. 게으름을 낳는 풍요는 저주다. 게으른 상태에서 풍요를 추구하면 남의 것을 빼앗는 삶에 몰두하고 정도보다 편법을 좋아하고 땀이 없이 기적적인 성공만 바라본다. 땀의 의미를 알고 땀흘리는 삶이 복된 삶이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본문 19절을 보라.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고 그 행한 대로 여지없이 갚으시고 원수들은 무섭게 보응하시고 보복하시기 때문이다(15-18절).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아무 벌도 주시지 않고 마냥 죄를 눈감아 주시는 분으로 알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 불의한 기득권의 대변인처럼 나서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시겠는가? 자기가 과거에 흘렸던 땀의 산물로서의 기득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선대가 흘렸던 땀의 산물로서의 기득권도 사회는 어느 정도 존중해준다. 그러나 거룩한 사회성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기득권은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를 부른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듯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면 안 된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그 심판의 절정은 앞으로 종말 심판 때에 온전히 나타날 것이다.
4.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
사람들은 가끔 의문을 품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이 왜 저렇게 잘 될까?” 그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죄에 대해 철저히 간섭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죄를 지어도 그냥 내버려둔다. 놔둬도 망할 사람을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영적인 무식은 결국 무서운 심판을 낳는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적인 무식은 사실상 가장 무식한 것이고 불행과 멸망의 최대 원인이 됨을 조만간 깨닫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최고의 축복의 원천이 된다.
구원 받은 후에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상, 가치관, 사고방식을 온전히 버리고 수시로 나타냈던 미신적인 태도도 온전히 버리면서 이렇게 고백하라. “하나님! 하나님 뜻을 외면하고 제 인생이 제 것인 줄 알고 맘대로 살았던 저를 용서하시고 제 삶에 찾아와주셔서 늘 주관하소서.” 그런 고백과 함께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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