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영향력을 꿈꾸라 (이사야 60장 19-22절) < 특출한 콘텐츠를 개발하라 >
교회역사를 살펴보라. 교회가 ‘복음’이란 위대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보니까 점점 사람이 몰리고 힘이 생겼다. 힘이 생긴 것까지는 좋다. 힘이 있어도 힘을 선용해서 교회를 떠올릴 때 ‘희생’을 떠올리게 하면 그 힘은 더욱 큰 감동의 원천이 된다. 그런 삶이 성 프랜시스의 삶이다. 반면에 교회가 힘이 생기니까 세상처럼 힘을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삶이 중세 교황들의 삶이다. 그래서 중세가 암흑시대가 된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를 지나며 점차 교회개혁의 공감대가 생기자 곳곳에서 종교개혁 사상가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 왜 루터와 캘빈 등만 부각되었는가? 현재 루터란 교회의 무형왕국은 전 세계에 약 7천만 명이 속한 공동체로서 약 600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런 거대한 무형왕국의 형성 요인은 루터에게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내는 탁월한 실력과 루터의 글과 사상을 통해 형성된 루터란 신학이란 강력한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캘빈으로부터 비롯된 장로교회의 무형왕국도 전 세계에 약 1200만 명이 속한 공동체로서 약 600백년간 지속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장로교의 힘은 압도적이다. 전 세계 장로교인의 80% 이상이 한국에 있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캘빈의 삶과 성품과 신학에 대한 서구의 많은 비판에도 현재까지 캘빈주의가 건재한 이유는 그가 26세에 쓴 <기독교 강요>를 비롯한 몇 개의 강력한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영속적인 찬란한 무형왕국을 원하면 먼저 강력한 정신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저도 예수 믿고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강력한 콘텐츠를 주소서! 저희 교회에도 주소서!”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기만의 독특한 달란트가 있다. 그 말은 자기만의 특출한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복된 운명을 위해 필요한 것을 이미 그 안에 충분히 두셨다.
필자도 2가지 콘텐츠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나는 <네트영어>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기초재정을 주시면 그것으로 더 많은 재정을 창출하고 그 재정으로 수많은 선교사들을 돕고 수많은 선교중심적인 교회를 세우고 지원함으로 나눔을 핵심가치로 한 건강한 무형왕국의 지경을 확대시킬 것이다. 또 하나는 <성경 66권 전권강해>다. 현재까지 약 80% 완성시켰다. 2026년쯤 그것이 완성되면 계속 다듬어 작품성을 높이고 필자가 80세가 되는 2040년까지는 영문으로도 완성해 천년 영향력을 가진 문서로 만들려고 한다.
< 천년 영향력을 꿈꾸라 >
무형왕국 중에도 공동체의 실체가 있는 교회와 같은 ‘유형적인 무형왕국’이 있고 문서처럼 공동체의 실체가 없이 영향력을 미치는 ‘무형적인 무형왕국’이 있다. 유형왕국이 강하고 지속적이고 영향력 있게 되려면 모세의 양팔을 들어준 아론과 훌이 필요하듯이 무형왕국에도 그런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교회에서 건강한 무형왕국의 꿈과 비전을 이루는데 담임목사를 도와서 큰 역할을 하는 영적인 아론과 훌이 되라. 그런 거룩한 꿈과 비전을 품고 교회를 섬기면 얼마나 복된 교회생활이 되겠는가?
자기만의 특출한 콘텐츠 개발에 최선을 다하라. 아니면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최대한 후원하라. 예수 믿고 인물 되는 꿈이 이뤄지려면 그런 특출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 한민족이 세계적인 리더국가가 되려면 그런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 그것을 위해 자신도 최대한 준비하고 자녀들과 이웃들에게도 그런 콘텐츠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도전하라.
지금 우리 민족의 때가 오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못지않게 강대국 틈에서 큰 시련을 겪으면서 한때 나라까지 잃었다. 그런 시련을 통해 복음에 열린 민족으로 빚어지다가 마침내 복음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회복의 은혜를 입었다. 그처럼 시련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국가는 하나님의 남다른 은혜를 얻고 결국 주변 나라들을 무릎 꿇게 만든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는 메시지다.
복음을 가진 국가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영적인 영향력이 커지고 복음을 가진 개인도 천 배의 경제력과 능력과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그런 천년 영향력의 축복을 꿈꾸며 나아가라. 결코 현재의 위치에서 포기하지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무한한 축복의 가능성이 열린다. 자기 생각과 팔이 닿는 범위 안으로만 하나님을 한정시키지 말라. 하나님은 내 생각과 능력 이상으로 큰 천 배의 축복을 주시려고 이미 준비하셨다.
성도의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을 자기 팔과 생각이 닿는 곳까지만 돕는 분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장벽을 만날 때마다 절망한다. “이제 끝났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나 경험이나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는 끝났어도 하나님은 그 범위 안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앞으로 자신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믿고 나아가라. 그러면 반드시 내일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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