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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능력과 축복 (누가복음 23장 34-43절)

by 【고동엽】 2023. 1. 2.

용서의 능력과 축복 (누가복음 23장 34-43절) < 용서의 능력 >

 옛날 초나라의 장왕이 잔치를 벌일 때 밤에 갑자기 촛불이 꺼졌다. 그때 한 신하가 술김에 왕의 애첩에게 입을 맞추었다. 애첩은 엉겁결에 그의 갓끈을 잡아떼고 왕에게 말했다. “왕이여! 지금 한 신하가 소첩을 추행해서 그의 갓끈을 잡아떼었으니 그를 잡아 죽이소서.” 그때 왕이 명령했다. “신하들은 다 지금 갓끈을 떼라.” 그 명령으로 애첩을 추행한 신하는 찾지 못하게 되었다. 왕의 용서로 그날의 잔치는 피바람으로 끝나지 않고 즐겁게 끝났다.

 2년 후,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초나라가 연패해 매우 위급해졌을 때 한 장수가 군사를 몰고 와 진나라를 물리쳤다. 장왕이 그 장수를 치하하며 누구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폐하! 신은 옛날 폐하의 애첩에게 무례한 짓을 했습니다. 그때 폐하의 관용에 감동해 늘 폐하의 은혜를 갚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이제 갚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용서하면 용서받고 축복도 받는다. 다윗과 요셉은 용서에 탁월했기에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다.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하면 하나님은 더욱 높이 들어 쓰신다. 능력과 축복을 원하면 용서를 잘하라. 용서는 쉽지 않다. 쉽게 “다 잊었어. 용서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용서란 중심으로 해야 하기에 어렵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하면 능력도 생기고 병도 치유되고 축복의 문도 열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편에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33절). 마태복음 27장 44절에 나오는 ‘강도들’이란 표현을 보면 두 강도가 다 예수님을 욕했다. 그런데 본문 39절을 보면 두 강도 중 하나가 예수님을 조롱하자 다른 강도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40-41절).”

 그렇게 말한 후 예수님께 고백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하소서(42절).” 그 고백을 받고 예수님은 천국을 허락하셨다. 왜 그 강도는 예수님을 욕했다가 곧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했는가?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 사이에는 본문 34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용서의 기도와 말씀밖에 없었다. 그 용서의 기도와 말씀을 듣고 그 강도는 깊은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것이다.

< 용서의 능력을 얻는 길 >

 용서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이고 십자가의 핵심 의미다. 그러나 성도조차 용서를 잘 못한다. 용서는 최대 능력이다. 용서의 능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충분히 기도하라

 본문 34절 전반부를 보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가상칠언 중 첫 번째 말씀은 ‘용서의 기도’였다. 용서는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는 잘 되지 않기에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하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아직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하면 문제 해결과 응답 이전에 자신이 변해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자신을 얽어맨 불안과 질병과 저주의 사슬도 풀린다.

 용서해 달라는 은혜만 구하지 말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능력도 구하라. 용서는 기도할 때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라. 상처가 너무 커서 기도가 잘 안 될 때도 힘써 기도하라. 기도하면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를 당한 것이 축복이고 배반하지 않고 배반당한 것이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상처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상처는 급속히 치유된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면 길이 막히지만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용서하면 길이 열린다.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는 있는 용기가 생기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이 크게 보이면서 용서가 쉬워진다. 기도가 달라는 소리로만 넘치면 얼룩진 마음이 더 얼룩지게 된다. 기도는 용서하지 못해서 얼룩진 마음의 창을 닦는 거룩한 작업이다. 기도의 승리자가 될 때 용서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2. 사람을 이해하라

 예수님은 용서의 기도를 하시며 계속 말씀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왜 미움이 생기는가? 사람과 상황을 잘 몰라서 생길 때도 많다. 사람의 연약성을 더 많이 이해하면 더 많이 용서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내게 상처를 주면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라. 교회나 가정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사람이 가깝게 지내면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사소한 것으로 실망할 때가 더 많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관계가 가까우면 기대치보다 이해치를 높이며 살라.

 부부도 행복하게 살려면 상대나 상대 집안의 결점을 말하지 말라. 사람과 산은 멀리 볼수록 좋듯이 사람은 가까이 할수록 단점이 드러난다. 그때 단점을 자꾸 드러내지 말라. 남의 신체적 약점이나 교육적 약점이나 인격적 약점을 드러내어 고치려고 하지도 말라. 행복은 서로 고마움을 느끼고 서로의 약점을 용서하고 덮어줄 때 얻는다. 상대의 약점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말고 치명적인 약점과 수치는 공개하지 말라. 기도제목을 나눌 때는 입이 특히 무거워야 정떨어지지 않고 축복도 떨어지지 않는다.

 기도제목을 나눌 때 “남편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는 해도 “남편이 자주 외박하는데 기도해주세요.”라는 식의 기도제목은 함부로 내놓지 말라. 잘못하면 기도 제목을 나누는 것이 험담과 가십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교회와 가정에서 남에게 흠이 될 만한 얘기는 특별한 교육 목적 외에는 최대한 삼가라. 서로의 과거도 용서하라. 아무리 마음이 상해도 과거의 잘못을 자꾸 들추지 말라. 속상할 때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추면 관계가 깨진다. 사람은 다 부족한 존재다. 그 사실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용서할 수 있다.

3. 말씀에 순종하라

 용서는 선택이나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내게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는가? 감정을 따르면 나를 무시하고 큰 아픔을 남기고 떠난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조건 용서하라. 하나님은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용서하라고 하셨고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정말 구세주임을 믿는다면 용서하라는 명령에 “예! 용서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용서의 문이 열릴 때 기도응답의 문도 열린다.

 용서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보람도 있고 더 하나님의 축복도 누린다. 용서가 없으면 심령이 말라지다가 나중에는 죽는다. 미워하는 사람의 심령은 굴뚝과 같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가면 옆집을 약간 까맣게 만들면서 피해를 주지만 그 전에 자기 연통부터 시꺼멓게 된다. “저 사람은 도저히 못 말려.”라고 하지 말고 내게도 많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그의 결점을 덮어주고 용서해주라.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려는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성도로 만들어주실 것이다. 싸움보다 용서를 늘 앞세우라. 방앗간 집과 연탄 집이 싸우면 방앗간 집은 검어지고 연탄 집은 희어진다. 싸움은 서로에게 상처만 된다. 용서를 생활화하라. 용서가 십자가를 지는 일만큼 어려워도 용서하는 마음을 힘써 가지라.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용서하는 것은 축복의 대로를 놓는 것과 같다.

4. 상처를 잘 잊으라

 예수님이 어떻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는가? 군중들의 악한 행동도 금방 잊으셨고 십자가에서 조롱하던 강도의 행동도 금방 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용서가 한없었던 이유는 받은 상처를 한없이 잊으셨기 때문이다. 상처를 잘 잊어야 용서가 가능하다.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가라. 마음이 상해도 과거의 잘못을 계속 들추지 말라. 과거의 잘못을 다리 아래 물처럼 기억에서 떠내려 보내야 새로운 축복의 물이 흘러든다.

 예전에 한 여성이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아홉 살 때 자신을 겁탈한 사람을 30년 후 살해한 사건이다. 그녀는 겁탈 당한 수치와 상처로 30년을 살았다. 그 상처를 떨치지 못해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다. 두 번째 결혼도 원만하지 못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녀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과거를 완전히 끊고 복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강철 영혼도 과거의 상처에 매달리면 현재의 삶이 손상된다. 그래서 복음과 말씀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회개한 죄를 기억하는 기억력이 없으시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려고 하지 말라. 부부싸움을 해도 현재의 일로만 싸우고 과거의 어떤 일을 끄집어내어 “옛날에도 그랬잖아?”라고 하지 말라. 한번 용서한 죄를 재론하지 않는 하나님처럼 자신도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어 재론하지 말라. 과거가 현재를 가두는 감옥이 되지 않게 하라. 과거의 감옥 문을 열고 미래로 나아가라. 과거의 상처도 하나님의 훈련과정이었음을 믿고 깨끗이 잊어버린 후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가면 놀라운 인생 역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 용서는 축복의 기초다 >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은 용서가 없는 것이다. 용서가 없으면 그 마음을 토양으로 삼아 암세포가 독버섯처럼 자란다. 성격도 빡빡해진다. 용서가 없는 것은 자기가 되돌아갈 고향집 다리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용서가 없으면 성령충만도 없고 은혜도 없고 기도 응답도 받기 힘들어진다. 또한 암, 고혈압, 당뇨, 두통, 손발 마비, 위장병, 신경통, 설사 등의 수많은 질병이 생기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죽어간다. 용서만이 살 길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팔이 부러졌는데 치료해도 잘 붙질 않았다. 의사가 “이상하게 부러진 팔이 잘 붙지 않네요.”라고 말하자 환자가 말했다. “그럴 겁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 팔로 아내를 때렸거든요.” 그 후 그의 아내가 용서한다고 말하자 비로소 팔이 붙기 시작했다. 용서와 치유는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 건강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말씀한다. “아무개야! 네가 먼저 용서해라. 그래야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용서는 신앙의 백미이고 축복의 원천이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을 용서하라. 가정과 교회는 용서의 훈련장이다. 서로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때로는 갈등도 생기지만 그때 서로 용서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뤄내라. 내가 용서하면 상대도 변화된다. 예수님의 용서 기도를 듣고 한 강도가 변화되었다. 스데반의 용서 기도가 바울을 변화시켰다. 용서는 배우자와 자녀도 변화시키고 가정과 교회도 변화시킨다. 더 나아가 은혜와 복도 넘치게 만든다.

 어느 날 한 아버지가 뉴욕 출장 중에 고등학생 아들이 상급생에게 맞아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면서 비행기에서 복수심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기도할 때 자꾸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네 죄로 인해 내가 십자가를 지고 용서했으니 너도 이번에 용서해라.” 너무 용서하기 힘들어서 비행기 안에서 16시간 동안 마음으로 수없이 원수를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공항에 도착할 때쯤 그는 살인한 학생을 용서하겠다고 작정했다. 집에 도착하자 학교 선생님이 얼굴을 못 들고 기다릴 때 그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그 학생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재판장에게 그 학생을 관대하게 처분해달라는 탄원서를 써 보냈고 상당한 재정을 아들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얼마나 복된 삶인가?

 요새는 인본주의로 인해 감동적인 용서를 결심해도 “너만 손해야. 나중에 후회해.”라고 미움과 상처를 부채질한다. 또한 사역자가 “과거를 깨끗이 잊고 용서하세요.”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비웃는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용서의 기도를 하자 관리들이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말만 그럴듯하게 하네.”라고 비웃었다(36절). 군인들도 희롱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37절).” 사람은 남의 진지한 용서를 격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웃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용서가 축복의 길임을 믿고 깨끗이 용서하라.

 용서는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축복받는 위대한 길이기도 하다. 용서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그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를 깨끗이 용서하라. 또한 교육상 누군가를 멀리해야 한다면 단호하게 멀리해도 내면에서는 용서가 넘치게 하라.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사람에게 향수를 내뿜는 풀꽃 향기와 같다. 원수와 미운 사람이 생각나면 그 생각 너머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를 충심으로 용서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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