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대의 문제 해결책 (고린도전서 2장 1-5절) < 고난을 슬기롭게 이용하십시오 >
어느 날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아덴으로 갔습니다(행 17장).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전도하면서 그는 자신이 믿기 전에 배웠던 철학적 사고에 믿음을 더해서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덴 전도는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복음을 철학적으로 제시하니까 사람들이 별로 반응하지 않았고 설교도 영 먹히지 않았습니다. 고작 반응이 있다는 것이 “어디 다음에도 한 번 더 무슨 말 하나 들어보자!” 하는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사역에 회의도 생기고 사명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설교의 실패는 어떤 실패보다 큰 수치심을 줍니다. 고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수치감입니다. 고난은 지나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지만 수치심은 수치스런 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이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목회를 포기하고 싶을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나 뒤에서 비난을 들을 때가 아니라 말씀이 먹히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죽 쑨 날에는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고 유난히 그날은 더 피곤합니다.
아덴 전도에 실패한 사도 바울도 그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그 상황을 극복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가 무슨 수치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때 한 가지 깊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 자세가 바로 사도 바울의 최대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일을 잘하고 싶은데 잘못해서 수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항상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실패도 합니다. 어떤 실패는 큰 수치감을 동반합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때 다시 십자가로 향하면 실패는 반드시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고난을 슬기롭게 이용하면 인생의 귀한 약이 됩니다. 고난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마십시오. 사실상 고난보다 고민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고난 때문에 고민하는 데 너무 시간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 성공과 능력의 최대 원천 >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의 실패와 수치감을 극복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고린도 전도에서 그는 화려한 웅변과 철학적인 아름다운 말로 전도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1-2절). 바로 거기서 영혼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는 초라한 것이지만 “십자가 외에는 구원도 없고 어떤 축복도 없다.”는 진리를 믿을 때 바로 거기서 진짜 능력이 나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말은 멋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독선을 질타하며 말합니다. “너무 기독교만 구원이 있다고 하지 말라!” 굉장히 듣기에 좋은 포용력이 있는 말 같지만 그 말에는 큰 오해가 있습니다. ‘독실’과 ‘독선’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해입니다. 독실과 독선은 엄연히 다릅니다. 독선은 없어야 하지만 독실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배우자만 바라보고 삽니다. 그것이 독선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독실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지만 깊은 관계로 들어가면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독실’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아덴처럼 헬라의 중심 도시인 고린도에서 그의 주장이 통할까 두려웠습니다. 철학적 논리를 가지고 화려하게 전해도 안 되는데 사람 죽이는 형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전하면 사람들이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3절). “고린도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고린도 전도는 대 성공이었고 결국 신약교회 중에서 가장 큰 교회가 고린도 지역에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아덴에서의 실패와 고린도에서의 성공 사이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환경도 유사했고 전하는 사람도 똑같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었습니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즉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결국 십자가는 성공과 능력의 최대 원천입니다.
왜 십자가에는 그런 능력이 나타납니까? 십자가를 전하면 성령님이 임하시고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기 때문입니다(4-5절).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나가면 신기하게 문제와 사탄이 퍽퍽 나가떨어집니다. 루터가 어떻게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까? 그에게는 힘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자기편도 거의 없었습니다. 종교개혁 초기에 그가 가진 것은 십자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십자가 하나로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우면 산과 같은 문제도 정복할 수 있지만 자기를 내세우면 작은 문제에도 넘어집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력 있는 삶의 4대 정의(1) (고린도전서 4장 18-21절) (0) | 2022.12.20 |
---|---|
성령님이 하시는 일 (고린도전서 2장 6-11절) (0) | 2022.12.20 |
메시야를 통한 3대 역사 (미가 5장 1-9절) (0) | 2022.12.20 |
참된 목자 (고린도전서 4장 14-17절) (0) | 2022.12.20 |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2)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 (0) | 2022.12.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