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2)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 ;3..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
본문 말씀은 전체적으로 이웃을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이지만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정도에서 끝나지 말고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며 사십시오. 그런 삶을 살수록 이 땅에서의 행복지수와 천국에서의 상급지수는 높아집니다. 진짜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 자체를 목표로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출세를 목표로 두고 살면 출세하지 못합니다. 대개 보면 “이웃을 위해 어떻게 도움을 줄까?”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어느덧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성공은 성공 자체를 추구하면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위해 공헌을 할까?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공헌을 할까?”라고 할 때 성공도 주어집니다. 부모들이 인내하며 사는 힘의 원천도 “자녀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대상이 자녀와 가족의 범위를 뛰어넘고 그 대상이 확대될수록 하나님은 더욱 큰 능력을 부어주시고 축복의 지경도 넓혀주십니다. 결국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자신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48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업이 번창했습니다. 여유 자금도 있어서 65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위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사를 포기하고 조금 더 선교에 헌신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처럼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신비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축복은 이웃의 축복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웃이 잘 되기를 바라면 그 소원이 신비한 힘으로 변해서 자신이 잘 되고 이웃이 못되기를 바라면 그 원한이 자신에게도 미쳐서 자신이 못된 일을 겪습니다. 결국 이웃을 위하는 삶이 자신을 위하는 삶입니다. 특별히 성도는 물질적인 헌신에도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두 종류의 물질생활이 있습니다. 빼앗기는 삶과 드리는 삶입니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같은 돈이 빠져나가도 드리는 삶과 빼앗기는 삶의 기분은 천지차이입니다. 천만 원을 선교에 기쁘게 드리는 기분과 천만 원을 사기 당하고 병들어 병원비로 사용하는 기분은 천지차이입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언젠가 돈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빼앗기는 삶을 살지 말고 드리는 삶을 사십시오.
4. 세상의 빛이 되는 성도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하지만 불신자들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32절). 자신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가끔 보면 성도들의 행동이 보기 싫어서 교회가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없도록 삶의 모범이 되게 하십시오. 구원은 행위와 관련이 없다고 하면서 행위를 등한시하지 않게 하십시오.
세상의 빛으로 살기를 힘쓰십시오. 사기를 치지 말고 땀이 없는 열매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믿으면서 점집을 찾아다니고 점집은 찾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복을 내세워 안수하는 곳, 기도해주는 곳, 예언해주는 곳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모습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하느냐?”고 하면서 믿음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주님을 욕되게 합니다.
또한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십시오. 학교를 졸업하면서 공부도 졸업하지 말고 끊임없이 배우십시오.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사십시오. 성도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씨앗을 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 행동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현재의 작은 행동이 큰일을 만들기도 하고 큰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또한 그 작은 행동이 자식 농사의 승패도 좌우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언행을 통해 불신자들을 감동시키고 믿음과 구원의 문이 열리게 하십시오.
어떤 집사님은 구역 예배 후 다과시간에 늘 하품 과일만 먹습니다. 장로였던 아버님이 그녀에게 어디에 가든 늘 남을 위해 좋은 것은 남겨두라고 가르쳤기에 남을 배려하는 삶이 틀에 박힌 것입니다. 옛날 모친들은 평생 자식과 남편을 위해 좋은 것을 양보하며 호강 한번 못해보고 살았습니다. 여권 운동가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불평하며 살았다면 어리석게 산 것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자신의 사는 모습이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고 자신의 사는 모습을 통해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찾고 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과연 달라!”란 말을 하게 하십시오. 참된 기독교와 기복적인 기독교의 구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남을 생각하며 사느냐?”의 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표출된 선교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선교를 못한다면 그것은 형편 문제가 아니라 마음 문제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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