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1)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1.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성도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라는 4개의 파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 각종 문제를 놓고 의견 다툼과 갈등이 많았습니다. 왜 교회에 그런 갈등이 생깁니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것이 화음이 되어 멋진 하모니를 만들 수 있고 교회는 더욱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다 자기 견해와 성품과 은사와 비전과 방식이 있습니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아름다운 성도가 됩니다. 교회생활을 잘하려면 삶의 스타일과 믿음의 취향에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경건하고 엄숙한 예배를 좋아하고 혹자는 즐겁고 발랄한 예배를 좋아합니다. 찬양도 혹자는 찬송가를 좋아하고 혹자는 복음성가를 좋아합니다.
스타일과 취향에는 절대 선이 없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있는 삶의 특징은 자기 지식이 부족한 줄 알고 계속 배우려는 모습입니다. 좋은 글과 좋은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장 복된 사람은 말씀을 잘 듣는 복된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잘 듣는 것만큼 복된 일은 없습니다.
어느 날, 한 형제가 선을 봤습니다. 호텔에서 만났는데 처음 소개받은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어렵게 얘기를 끌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호텔 정식을 시켰습니다. 그때 스피커에서는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 나왔습니다. 형제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이 곡이 무슨 곡인지 아세요?” 자매가 음식을 천천히 씹고 음미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이 고기요? 맛을 보니까 돼지고기네요.”
귀가 막힌 사람은 가끔 기가 막히게 합니다. 잘 듣지 않아서 귀가 막히고 마음이 막힌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자기 생각과 경험과 상처에 갇히지 마십시오. 많이 배우고 많이 듣고 끊임없이 마음의 폭을 넓히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에 힘쓰십시오. 그런 폭넓은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 교회에 유익을 주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2. 남을 위해 절제하는 성도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이 구절에서 ‘가하다’라는 말은 ‘합법적이다(lawful)’란 말입니다. 즉 법에 저촉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유익한 행동이나 덕을 세우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도 법이 말하는 것 이상의 삶으로서 유익이 되고 덕이 되는 삶을 사십시오.
“어떻게 법에 어긋나지 않을까?” 하면서 살기보다는 “어떻게 남을 유익하게 하고 덕스러운 삶을 살까?”를 생각하면서 사십시오. 불법적인 잘못보다 합법적인 잘못이 인간사회에 더 큰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치를 부리고 초호화판 결혼식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그처럼 불법이 아니면 하나도 문제가 없다는 태도가 더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자신의 정당한 행동이 남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해외 이민교회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면서 부목사에게 주일설교를 맡겼습니다. 그 부목사는 벼르고 벼르던 설교기회가 왔기에 그 동안 자기가 준비했던 말씀 중에서 가장 은혜로운 말씀을 강단에서 전했습니다. 성도들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선하고 새로운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교인들 사이에 “그 부목사님은 정말 능력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담임목사가 돌아왔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들은 가만히 있었지만 일부 성도들은 깊은 생각 없이 솔직히 말했습니다. “목사님! 부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꾸임 없이 하는 말은 담임 목사가 설교를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좋은 부목사가 있어서 얼마나 힘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말에 좁은 마음으로 오해를 품으면 담임목사의 포용성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때 어떤 교인은 한술 더 떠서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일에 부목사님 설교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서 교인들 사이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자주 해외에 나가세요.” 그런 말이 불법과 죄는 아니지만 지혜로운 모습은 아닙니다. 자신은 거리낌이 없이 정당하게 말했지만 그 말이 남에게 상처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바른 행동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행동하거나 바른 말이라고 해서 생각 없이 말하지 마십시오. 어떤 행위를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남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말하고 행동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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