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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삶의 비극 -룻기 1장 1-5절

by 【고동엽】 2022. 12. 8.

< 베들레헴을 떠난 엘리멜렉 가족 > 오늘 본문은 베들레헴을 떠난 엘리멜렉 가족의 비극과 왜 그런 비극이 있게 되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룻의 이야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사 시대란 첫 사사 옷니엘 때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이 등장할 때까지 대략 300여 년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 사사 시대 어느 날, 유다 땅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다 베들레헴에 있던 한 가정이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잠깐 거하게 되었습니다. 누구 가정입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유다 땅에서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간 가정의 가장은 엘리멜렉이었고,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였으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그 이름의 뜻을 보면 그는 신앙적인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룻기 1장 19절 말씀을 보면 나중에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온 성읍에 그들의 귀환이 화제가 되고, 가까운 친척 보아스가 베들레헴의 거부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엘리멜렉 가문도 상당히 유력한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그들의 출신지는 베들레헴 에브랏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나중에 미가 선지자로부터 메시야의 태어날 장소로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와 베들레헴 에브랏은 같은 지명으로 구속사적인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입니다. 그들이 왜 베들레헴을 떠났을까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아마 흉년이 너무 심해서 베들레헴을 떠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룻기 1장 21절에 나오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라는 말씀을 보면 엘리멜렉 가정이 비교적 물질적으로 풍족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단순히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주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엘리멜렉 식구들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요양 목적으로 모압 땅으로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엘리멜렉이 첫 아들의 이름을 ‘병약한 자’라는 뜻을 가진 말론이라고 지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을 ‘허약한 자’란 뜻을 가진 기룐이라고 지었던 점을 생각할 때 말론과 기룐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 모압 땅으로 떠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물질 및 건강을 위해서 고향 땅을 떠났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얼마 후에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점차 장성해서 모압 여자 중에서 각각 아내를 취했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또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결국 모압으로 이주한지 10년쯤 되었을 때 두 아들마저 죽고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진 재물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어려워도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 어려워도 믿음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삶에 흉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 흉년의 기간에도 하나님을 정말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 흉년의 때에 믿음을 버립니다.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한데, 바로 그때 믿음을 버리거나 약해지니까 믿음의 소중함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될 기회가 항상 뒤로 미뤄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 시험의 문턱만 넘으면 한 단계 발전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엘리멜렉은 안타깝게도 그 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갑니다. 처음에 갈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변명거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를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빠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의 태도와 똑같은 태도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했습니까? 육신을 위해서 신앙을 팔고, 현실을 위해서 이상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나중에 에돔 족속이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삶이 황폐하게 됩니다. 말라기 1장을 보면 그들이 다시 일어서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헐어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절).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는 것 같아도 곧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처럼 엘리멜렉은 흉년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가는데 1절 말씀을 보면 처음에는 모압 지방에서 우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거한다(sojourn)”는 말은 “잠시 거처를 정하여 지낸다”는 말입니다. 즉 “다시 돌아오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세상으로 가고 예배를 빠집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그 단어가 “유한다(remain)”는 말로 바뀝니다. 잠시 살려고 갔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그곳에 완전히 정착했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먹고사는 것이 조금 나아지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잠깐만이라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말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세상이 좋아 보이고, 세상이 좋아 보이면 잠깐만 그곳에 있겠다고 세상으로 가지만 바로 그때 불행이 닥쳐오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서 그 가정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맙니다. 엘리멜렉은 죽고 자기뿐만 아니라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도 다 죽습니다. 한 가정에 세 명의 남자가 모두 죽었으니까 이 가정은 사실상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점차 재물도 없어지고 거의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그 고통이 룻기 1장 20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인데, 그가 나중에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와 사람들이 자기를 나오미라고 부르니까 나오는 자기를 더 이상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쓴물 인생’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또한 21절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고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자리를 떠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고 빈 인생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면 얼마 후에 땅의 것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을 버리면 얼마 후에 결국 땅의 것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인생에 흉년이 들어도 신앙에는 흉년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 봉사의 자리, 믿음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고난을 피하면 얼마 후에는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면 얼마 후에는 반드시 고난 이상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으로 고난을 축복의 재료로 삼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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