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23-29
1972년 10월 3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Montevideo)를 떠난 전세 비행기 안에는 15명의 아마추어 럭비 선수들과 응원단으로 따라가는 친구 25명과 승무원 5명, 합해서 45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천기(天氣)가 너무 좋지 못해서 안데스 산맥에 아무런 식량도 없이 동체 착륙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깥에는 모든 것이 다 얼어붙은 상태였습니다. 45명이 67일 간의 사투(死鬪) 끝에 살아서 구출된 사람은 16명이었습니다.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먹고 연명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시체가 부패되지 않고 그대로 얼어버렸기 때문에 꽁꽁 언 시체를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생존자 중 호세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예배와 성만찬(聖晩餐)에 빠지지 않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한 주일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의 집에는 살지를 않았습니다. 신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신앙이 없었습니다. 저는 눈 덮인 산에서 죽음과 싸우며 비로소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찬(聖餐)에 참여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든 것뿐이며 그 뜻이 내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호세라는 청년이 성찬에 늘 참여했으면서도 성찬의 참된 의미를 모르다가 아사(餓死) 직전에 친구의 살을 뜯어 먹으면서 성찬의 참 의미를 알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성찬에 늘 참여하면서 성찬의 의미를 모르고 습관적으로 성찬에 참여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찬의 참 의미를 바로 깨닫고 바로 참여하여서 성찬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찬의 의미
성찬이란 말은 말 그대로 거룩할 성(聖), 밥 찬(餐)자입니다. 거룩한 밥, 거룩한 떡, 거룩한 식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식사에 초대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애 가운데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초대가 어떤 초대였습니까?
이 세상에서 이런 초대, 저런 초대가 많이 있지마는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식사초대는 성찬으로의 초대입니다. 왜냐하면 이 초대는 부산 시장이 초대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초대한 것도 아니고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대하신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이 있을 때마다 나 같은 죄인까지 초대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이 성찬에 빠지지 않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찬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식탁인 것은 성찬에 초대하는 분이 예수님일 뿐만 아니라 이 성찬의 내용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찬의 밥, 성찬의 떡이 뭡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말합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또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의 식사가 뭡니까? 소고기가 아닙니다. 양고기가 아닙니다. 닭고기가 아니고 돼지고기가 아닙니다. 아사 직전에 있던 호세가 죽은 친구의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살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영적으로 아사 상태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서 우리의 밥이 되고 우리의 음료가 되기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어주시고 피를 흘려주시고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피니 받아마셔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찢겨질 살과 흘릴 피를 미리 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실제로 그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영원한 음료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게 될 빵과 잔은 단순한 떡과 잔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사람이 사람을 초대해 놓고 자기의 살을 떼어서 대접하고, 자기의 피를 뽑아서 대접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이 대접하셨습니다.
추락한 비행기에서 호세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친구의 살을 뜯어먹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범죄하여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마치 가지처럼 말라졌습니다.
양식이 없어서 기근(饑饉)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飢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모든 인류는 다 굶어죽고 목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이라는 특수한 양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예수님의 피라는 특수한 음료를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의 살을, 생명의 음료인 예수님의 피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갈기갈기 살을 찢어서 피를 흘려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조금 후에 받게 될 성찬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만이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만이 참된 음료인데 이것을 먹지 아니하면 기근에 죽고 기갈에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주시기 위하여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어서 흘려서 주신 것이 우리가 지금 받게 될 성찬인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생명이 엄마의 피를 먹지 아니하고는 살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고는 살 수 없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 받아먹고 받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들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사제(司祭)가 이 떡과 잔을 들고 축복기도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로 변한다고 화체설(化體說)을 주장하지만 그건 맞지 않습니다. 루터는 이 떡과 잔에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도 같이 공재(共在)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도 맞지 않습니다.
본문 24절에 있는 것처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다, 받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너희에게 하는 것처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렇게 행하여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살을 찢고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게 될 떡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찢어주신 살을 기념하는 것이고 마시게 될 포도즙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떡과 잔이 단순한 떡과 잔이 아닙니다. 그 속에 예수님의 피와 몸이 성령으로 임재 해 있는 떡이요 잔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성찬에 참예하면 이 떡을 먹으면서 예수님의 살맛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포도즙을 마시면서 예수님의 피 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아,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이렇게 살을 찢어주시고 이렇게 피를 흘려주셨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성찬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떡을 주시기 위해서 떡이 되셨습니다. 우리말에 참 재미있는 말이 많이 있는데 불량배들에게 많이 맞았을 때에 어떻게 되도록 맞았다고 합니까? ‘떡이 되도록 맞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격적으로 심한 모독을 받았을 때는 ‘내가 그 사람한테 떡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을 주시기 위하여서 떡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인사불성이 될 만큼 채찍에 맞아서 피가 낭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떡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떡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그렇게 맞으실 분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으로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채찍에 맞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떡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떡이 되어 버렸다고요.
비아 돌로로사(The Via Dolorosa),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보통 사람 같으면 다 자기 십자가 지고 걸어갈 힘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지고 걸어갈 수 없을 만큼 육체가 완전히 떡이 되었습니다.
머리에 쓰신 가시관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완전히 떡이 되었습니다. 침 뱉음과 뺨을 맞아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의 예수님의 고난 장면에서 본 것처럼 벌써 한쪽 눈은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완전히 감겨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완전히 떡이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손에 못이 박혀서 늘어진 그 상태에서는 가슴을 다시 올려주지 않으면 숨이 쉬어지지 못한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육체는 완전히 떡이 되고 말았습니다.
로마 병정이 옆구리에 찌른 창으로 물과 피가 다 쏟아졌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며칠동안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당한답니다. 오래가는 사람은 십자가에 일주일 동안 달려 고통을 당한다는데 예수님은 여섯 시간 만에 운명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이미 예수님의 육체는 떡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떡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떡을 먹을 때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떡이 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감격하며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옛 언약은 출애굽기 24장 8절에 보면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들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옛 언약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양이나 소를 끌고 와서 그 위에 네 죄를 다 전가(轉嫁)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을 잡아서 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피를 볼 때에 네가 죽어서 흘린 피처럼 생각하고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죄 사함의 모형이요, 옛 언약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 13장 1절에 보면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그 샘이 열렸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렸습니다. 십자가에서 열렸습니다. 2,000년 전에 열렸습니다.
이 샘에서 쏟아진 피를 마시는 자는 죄 사함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이 피를 흘려주셨구나, 예수님이 창에 찔리신 옆구리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렸구나, 이 잔이 바로 거기에서 솟아난 잔이구나, 생각하고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이 떡과 잔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찢어주시고 흘려주신 피인 것을 나타내는구나, 이 속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성령으로 임재해 있구나 믿고 감격하면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면 약속하신대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영원히 살게 하시고 우리 속에 예수님께서 사시면서 우리를 통하여서 살아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참여해서 이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찬에 참여하는 법
이러한 성찬을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 26절에 보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성찬을 행할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전하라는 말은 선포하라는 말입니다. 말로써 주의 죽음을 선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놓았다고 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아서 영생을 얻게 된다고 나가서 전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서 떡이 되도록 맞으시고, 떡이 되도록 피 흘리시고, 떡이 되도록 죽으신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사실이 믿어지면 오늘 이 소식을 만방에 나가서 증거 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찬 자체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많은 분들이 참여했습니다만 이 가운데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나를 위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찬예식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했다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1년에 네 차례 성찬예식을 합니다만 1년에 두 번씩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고 또 1년에 열두 번, 매달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과거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예배드릴 때마다 성찬예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가 좀 더 성찬예식을 자주 하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피 흘리시고 살 찢어주신 것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7절부터 29절까지 보면 <이 성찬을 받는 사람은 자기를 살피고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살핀다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찬의 의미를 내가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인가,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과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살을 찢어주시고, 나의 죄 사함을 위해서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인가 믿지 않는 사람인가, 이 떡과 잔이 십자가에서 찢어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믿는가, 믿지 않는가, 나 자신의 믿음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확실하게 믿어지는 사람만이 이 성찬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자기를 살핀다는 말은 자기의 행실을 살피라는 말도 됩니다. 성찬식이 있다고 1주일 전에 공고합니다. 왜 1주일 전에 공고하는가하면 1주일 동안 우리 자신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내 믿음도 살피고 내 행동도 살피면서 합당치 않은 부분은 없는가, 내 마음에 거리끼는 것은 없는가,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죄는 없는가, 미워한 대상은 없는가, 나쁜 습관은 없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들은 없는가, 이런 것들을 깨닫고 회개하고 잘라버리는 기간으로 1주일을 준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찬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을 살피고 내 행실을 살펴서 속히 우리가 회개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오늘 본문에 보면 <오실 때까지 전하라>고 했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 땅에서 포도즙으로 하는 성찬은 2,000년 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포도즙, 이 땅의 포도즙이 아닌 하늘나라의 신령한 포도즙을 가지고 성찬식을 할 그때까지 이 사실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성찬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령한 포도즙일 것입니다. 신령한 떡일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진정한 성찬식, 조그만 떡 하나, 포도즙 한 모금이 아닌 정말 식사를 하는 성찬식을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천사들이 수종드는 영광스러운 식탁이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식탁을 기대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성찬의 의미를 바로 알고 맛보는 자가 그 나라에서 그 영광스러운 성찬에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성찬은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하나 되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결합입니다. 우리가 식구들을 뭐라고 합니까?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솥에서 밥을 해서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찬은 본래는 한 덩어리의 떡을 떼어서 줍니다.
그러니까 이 떡 자체가 예수님 이예요. 그 떡을 다 나누어 먹으니까 모두가 다 한 식구요, 또 그 떡이 몸속에 들어가서 소화가 되니까 전부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56절에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그 사람은 주님 안에 있고 주님도 우리 안에 거하는,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이런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오늘 우리가 성찬을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몸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우리 몸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와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우리 몸에서 소화가 되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처럼 성찬에 참여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찬을 통해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은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그 능력 많으신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신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와 하나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지금까지 끊지 못했던 모든 구습들이 끊어지게 되고 우리의 연약한 육체도 강건하게 되고 우리 속에 있는 사탄도 쫓겨 나가는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속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내가 주님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고 나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놀라운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성찬을 통해서 받게 되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의 식탁에 초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성찬의 의미는 우리가 먹는 떡과 마시는 잔이 바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시고 찢어주신 생명의 양식이요, 생명의 음료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이 성찬에 동참해야 합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의 성찬에 동참할 것을 바라보고 이 아름다운 소식을 증거 하라고 했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한 사람들 다 오늘 나가서 주의 복음을 증거 해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 악한 영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내 마음 속에 거하시면 연약한 우리 육신을 강건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연약한 사람이 아니고 능력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여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영육간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성진 목사 설교 중에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찬의 떡과 잔 (0) | 2022.11.18 |
---|---|
성도의 본분 (0) | 2022.11.18 |
성령세례에 관한 고찰 (0) | 2022.11.18 |
성례의 참뜻 (0) | 2022.11.18 |
성찬의 참된 뜻 (0) | 2022.1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