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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14장16-21 /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시대가 온다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10월4일(화)■
 
(스가랴 14장)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묵상/슥 14:16-21)


◆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남은 자'는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그런데 종류가 다양하다. 하나님의 재앙 속에서 보호받고 남은 이스라엘 백성(렘 31:7, 미 5:8),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개하고 구원받을 이스라엘 백성(롬 9:27) 등이다.


그런데 오늘 남은 자는 이방 백성이다. 그것도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 백성들이다. 이들이 해마다 초막절에 올라와서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신다.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일이다. 칠 일 동안 지키는 절기다(레 23:34). 유대력은 음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매년 바뀐다. 올해(2022년) 초막절은 10월 9일(일요일)부터 16일(일요일)까지라고 한다.


초막절은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날로서 포도, 무화과 등을 거두어들이고, 풍성한 수확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명절이다. 나뭇가지 등으로 엮은 임시 초막을 만들어서 칠 일간 야외에 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명절이다(느 8:15). 그리고 제8일에는 안식일로 지켰다(레 23:39).


초막절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명절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이 땅에서 통치하시는 때가 되면, 모든 백성이 지켜야 할 명절임을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해석에 혼란을 느낀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자세히 보라!
절기는 그림자이고 그림자를 생성하는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한다. 즉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the reality is found in Christ.)(NIV)


사도 바울은 이방 성도들이 이스라엘 절기를 지키려는 것을 보고 무척 염려하면서 말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


따라서 절기란 참된 실체를 모른 채 지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또한 실체를 아는 자들에게는 그 날짜 지키는 것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오히려 섣부르게 절기를 지키는 것은 복음의 정신을 훼손한다.


가령 유월절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명절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은총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양을 잡아서 유월절을 지키겠다고 하면 과연 우리는 허락해야 할까? 유월절은 이스라엘 국가 자체의 기념일로 국한되어야 한다.


소위 하나님의 교회라는 한국의 한 종파는 유월절 날짜를 정확히 알고 그 날짜에 유월절 지키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런 사고 자체가 그림자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최근에 중국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스라엘 절기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경고한 적이 있다. 모름지기 성도란 그림자와 실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실체 되신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절기를 강조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초막절을 안 지키는 족속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다(17).


이게 무슨 뜻일까? 이스라엘 절기 중에 초막절만큼은 예외인가? 물론 초막절은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니만큼 이 땅에서 수확이 계속되는 한 지킬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한 추수 감사절이 아닌 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러 주석가들이 이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교회에 적용했다. 그리고 이미 성취된 것으로 취급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간단하다.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은 문자적 성취와 영적인 성취가 병행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령 스가랴서 9장 9절에서 왕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언도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실제로 예수께서 나귀 타고 입성하셨다. 성경의 예언이 영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면 구태여 나귀를 타실 필요는 없었다. 그냥 겸손을 상징하는 말씀으로 취급해도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 성취를 위해서 나귀를 타셨다.


나귀 타고 오신 것은 문자적 성취이지만, 예수님께서 왕이신 것은 영적인 의미다. 왜냐하면 당시에 누구도 예수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예수님은 세속 국가의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셨기 때문에 이 예언은 분명히 성취된 것이다.
이렇게 예언의 성취는 매우 문자적이면서 영적이다.


따라서 예언은 성취되기 전의 시점에서 해석하기란 어렵다. 성경의 예언을 지금 시점에서 모두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망상이다.


솔직히 나는 오늘 본문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안달하지는 않는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성취하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스가랴서의 오늘 본문의 예언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 예언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성취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원래 이 구절은 대제사장이 머리에 쓰는 관에 붙인 패에 새겨진 말씀이다(출 28:36). 그런데 말 방울에까지 이것을 붙인다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이겠는가? 20세기 초에 영국 웨일즈 부흥의 시대에는 당나귀도 성령 충만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동물조차도 온순해지는 것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웨일즈의 술집과 유흥가가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재림 이후, 천년 왕국에서나 이루어질 예언이 지금 시점에서 무슨 도움이 될까? 이렇게 현재와 상관없는 먼 훗날의 예언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말을 알고 현재를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주식이 곧 오를 것을 아는데 주식을 파는 사람은 없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곧 독립할 것을 알았다면 그가 독립군에서 친일파로 변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어떤 결말을 가질지 분명히 알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은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친 이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시대가 반드시 옴을 믿습니다.
당장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몰두하지 않게 해주시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슬기롭게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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