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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12장10-14 / 말세에 이스라엘 회개에 대한 예언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29일(목)■
 
(스가랴 12장)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묵상/슥 12:10-14)


ㅁ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개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회개를 예언하고 있다.
"이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10)라는 말은 손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군병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요 19:34). 비록 로마군병이 예수님을 찔렀을지라도 십자가에 못박고 처형하도록 요구한 무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는 애통과 회개는 언제 성취되는가? 초림 시인가, 재림 시인가?
많은 주석가들이 이 예언의 성취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초림 당시에 적용한다. 그렇게 적용해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베드로의 책망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유대인 3000명의 무리들을 언급하고(행 2:41), 그 외에도 무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믿었음을 알린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이스라엘 전체에서 볼 때 지극히 작은 무리였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예언은 전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거대한 회개다.
이 예언이 초림 시에 성취된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림 시를 말하는 것인지 푸는 열쇠는 로마서 11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말세의 어느 시점에서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예언한다.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26)과 죄를 용서받을 것(26),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것(31)을 언급하고 있다.


애초에 재림은 초림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지만, 오늘 본문은 특별히 마지막 때 재림에 가까웠을 때의 사건이라고 믿는다. 이것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은 여럿이다. 스가랴서, 에스겔 서, 요한계시록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에스겔 서에는 말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을 때 비로소 에스겔이 제시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다.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 43:11)


지금 이스라엘은 제3성전을 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유대교를 고집하면서 짓는 성전은 에스겔 성전이 될 수 없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회개는 아마도 그리스도인의 휴거 이후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절기는 복음의 역사와 관계가 꽤 깊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이상이 유대인의 봄 절기이고, 가을 절기로는 유대력 7월 1일은 나팔절, 7월 10일이 속죄일, 15일은 초막절이 있다. 모두 현대력으로 10월, 11월이다.


나팔절이 그리스도인의 휴거와 관련된다면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개와 관련될 것이다.  물론 재림의 날짜는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이 후의 절기는 날짜보다는 순서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11절에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이란 과거 백성들이 존경했던 요시아 왕이 거기에서 전사하자  백성 전체가 슬퍼했던 사건인 듯 하다. (대하 35:22-25). 이러한 애통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 이전에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들이 복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ㅁ 각각의 회개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현재 이스라엘은 스가랴서의 예언대로 유다가 회복되고 예루살렘도 회복되었으며, 심지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식 인정되고, 미국 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가랴의 예언이 남아있는 셈이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이 자기들을 핍박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역사를 보면 권력자들이 기독교인들을 선동하고 종교를 빙자하여 유대인들에게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홀로코스트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죽을 때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독일의 기독교 목사들 상당수가 동조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십자가를 내세우고 정치의 한쪽 편을 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그 반대쪽 사람들을 전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직 복음을 전할 따름이다.


오늘 본문에는 때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각 회개할 것임을 예언한다.
다윗과 나단이 따로 회개하는데, 이 둘의 언급이 흥미롭다. 나단이란 인물은 성경에서 여럿이 언급되지만, 나는 여기에서 언급한 나단은 선지자 나단으로 본다. 다윗은 왕족이면서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죄인이지만, 나단은 다윗을 책망한 하나님의 선지자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너만 회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회개해야 할 대상임을 암시한다.


레위 족속과 시므이 족속도 묘한 대조다. 레위 족속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무리인 반면  시므이는 다윗을 대적했던 죽어야 할 자였다(삼하 19:21). 백성들에게 미운털 박힌 족속이다. 그런데 시므이 족속만이 회개대상이 아니라 레위족속도 회개 대상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똑같이 죄인이며, 회개 대상이다.


회개도 남편만 대표로 하면 되는게 아니다. 아내도 따로 회개해야 한다.
구원은 개별적이다. 노아 덕에 노아의 가족이 모두 방주에 탔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모두 개별적이다. 남편이나 아내 덕은 살아있을 때만 유효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남의 회개에 기대어 은총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매일 남을 정죄하는 기도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일이다.


주님,
온통 세상으로 가득차 있는 마음을 회개합니다.
세상 문화와 언어적 습관에 물들어 있는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십시오.
주님의 선하심, 거룩하심, 온유와 관용을 알게하시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게 해주십싱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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