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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1장1-6 /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5일(월)■
 
(스가랴 1장)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묵상/슥 1:1-6)


◆ 스가랴서의 기록 시기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남 유다 백성은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끌려갔다.
첫 번째는 BC 605년이다. 이때 유다의 왕족이었던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갔다.
두 번째는 BC 597년이다. 이때 유다에 왕으로 등극해서 3개월 정도 다스렸던 여호야긴(여고냐, 고니야)이 18세의 나이로 끌려가서 바벨론 감옥에 갇혔다.
세 번째는 BC 586년이다.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성전은 파괴되었다. 이로써 유다는 완전히 멸망하여 왕조가 사라졌다.


바벨론은 유다를 망하게 한 뒤 대략 47년 후인 BC 539년에 메대와 바사 연합국에 망했고, 메대사람 다리오가 바벨론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 후에 바벨론을 다스리게 된 바사왕 고레스는 538년에 유대인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이때 왕족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42,360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귀환했다(스 2:64)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한 해가 536년, 곧 첫 번째 포로로 끌려간 지 71년 만이고 예루살렘이 망한 지 50년 만이다. 성전 건축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지만 주변 이방 족속들의 지독한 방해 때문에 종종 중지되었다. 결국 성전은 516년에야 완공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지 꼭 70년 만이었다. 이로써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렘 29:10).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70년 만의 회복 예언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망하고 다시 백성이 돌아온 사건이 기준이 아니라, 그들의 성전이 파괴되고 다시 완공된 해를 기준으로 하신 것이었다. 즉 경제적, 물질적 회복이 회복이 아니라 신앙이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이다.


스가랴가 예언을 시작할 때는 성전이 완공되기 4년 전이다.


그리고 참고로 오늘 본문의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섬겼던 메데 사람 다리오 왕(단 5:31, 9:1)이 아니라 동명이인이다.




◆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들에게 '조상을 본받지 말라'고 요구하셨다. 후손이란 조상들을 보고 배우는 자들인데, 이들의 조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부모를 절대로 본받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다.  우리 삶의 표준은 더는 부모와 조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조상들이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악한 길을 걷고, 악한 행위를 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이들의 치명적인 잘못은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도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그 고집이 그들을 죽인 것이다.


미국의 어떤 청년이 어쩌다가 도박판에 빠져들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잃은 데다가 상대방의 비아냥에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서 상대방을 권총으로 쏴 죽였다. 이 청년이 잡혀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이 청년이 본래 착한 심성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많은 사람이 탄원하여 주지사에게 사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주지사는 감동하여 그 청년을 사면하기로 결심했다. 그 주지사가 감옥에 갇힌 그를 면회 가자 그 청년은 그가 자기를 전도하러 오는 목사라고 착각하고 화를 내며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나는 당신들 말이 지긋지긋해요"
"청년, 나는 그게 아니라 좋은 소식을...""글쎄 말하지 말라니까요!"
"잠깐만 대화하면 안 될까?"
"조금이라도 말하면 간수를 부르겠소. 당장 꺼지시오."


결국 주지사는 제대로 말을 붙이지도 못하고 쫓겨나왔다.
그 뒤에 간수가 와서 물었다.
"주지사가 자네에게 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는가?"
"주지사라니요? 목사가 아니었나요?"
"아니, 이 사람아, 그가 주지사였던 것을 몰랐는가? 그가 자네에게 사면장을 주려고 온 것인데, 그것을 몰랐나?"


이 청년은 크게 후회하고 급히 다시 불러줄 것을 요청했지만,  주지사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이 청년이 마지막 사형장에서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을 죽여서 죽는 게 아니다. 주지사의 사면을 거절해서 죽는 것이다."


지옥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해서 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사면을 하셨다.




◆ 말씀을 가까이하라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5)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란 말씀은 그들의 결말을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은 대가가 무엇인지 조상들은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집부리다가 마지막에 멸망하는 순간에 이렇게 후회하는 말을 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6절) 그러나 그들이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다.


고집부렸던 조상들의 결말이 곧 교훈이다. 이제 그들에게 경고했던 선지자들은 지금 곁에 있지 않다. 선지자들이 영원히 있을 순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언제나 선지자들이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선지자 없이 산 적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 선지자들이 남긴 예언의 말씀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지금 선지자가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지자들이 남긴 성경이 있다. 그리고 역사는 성경이 진리임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이제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읽고,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그것이 살길이다. 거대한 일부터 하려고 하면 엄두가 안 난다. 작은 일부터라도 시작해보자.


범사에 감사하는 삶부터 실천하자(살전 5:18).
환경은 무수히 원망할 일로 가득 찼어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자.
하나님을 기뻐하자. 우리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다(시 37:4).
예수님을 경배하고, 그를 증거하는 입술을 갖자(히 13:15).


주님,
위선적인 마음에서 건져주시고,
진실한 신앙을 갖게 해주십시오.
말씀 앞에서 정직하며 겸손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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