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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1장7-13 /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붉은 말을 탄 천사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6일(화)■
 
(스가랴 1장)
 
7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9 내가 말하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 하더라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묵상/슥 1:7-13)


◆ 붉은 말을 탄 자


(8)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


'내가 밤에 보니' - 예언은 말씀으로 주어지기도 하지만, 종종 환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본다는 의미 때문에 선지자를 종종 선견자라고도 불렀다. 선지자란 그 문자적 의미가 '먼저 아는 자'라면 선견자는 '먼저 보는 자'라는 의미가 되는데, 고대에서는 선지자를 선견자라고 불렀다(삼상 9:9).


오늘 스가랴가 본 환상 속에 붉은 말을 탄 천사가 나타났다.
그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다. 그 뒤에는 붉은 말, 자줏빛 말, 백마가 있었다. 그 말들 위에 탄 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환상 자체가 실제적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것이기 때문에 말 탄 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석류나무(myrtle)는 도금양으로 알려진 나무인데 아름다운 꽃이 피는 관상용 상록교목이다. 늘 푸른 나무에 향기가 좋은 나무다. 천사가 이 나무 사이에 섰다는 것은 재앙보다는 복을 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붉은 말을 탄 자가 일러주었다.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10)


즉 이 세 마리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계심을 비유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이나 기후 이상으로 생기는 수많은 재해도 모두 하나님께서 관찰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재난 속에 외로이 놓인 존재가 아님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그의 크신 뜻 가운데 있다.


◆ 천사의 호소


(12)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세 마리 말들의 보고에 의하면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고 했다. 당시 페르시아 치하 속에 천하 통일이 되어서 전쟁이 없던 시절이었다. 언뜻 들으면 매우 바람직한 분위기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들의 바람과는 다르다. 유대인들의 예상대로라면 예루살렘은 다시 회복되고, 활기가 넘쳐야 하며, 예루살렘을 멸한 이방은 혼란에 빠져야 정상이다. 이방이 혼란에 빠져야 유다는 온전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온 이방이 평온하고, 정작 활기가 넘쳐야 할 예루살렘은 무기력하며, 성전 건축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세상은 평온하고 번성하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 나라는 지지부진한 것이 어찌 된 일인가?


천사가 하나님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을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호소한다.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다 되었음을 고한다. 당시 예루살렘 성이 몰락하고, 성전이 파괴된 지 66년 된 시점이다. 이렇게 유다 민족을 위해 중보하는 천사가 있다는 것이 유다 민족으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성도들도 중보자를 가진 자들이다. 성도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 하시는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롬 8:2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자가 되어주신다(요일 2:1). 우리가 무력한 중에도 은혜의 인도하심을 받는 이유가 이러한 중보기도 덕분임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다(13).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를 종종 체험한다. 이러한 위로가 있음이 성도들에게는 큰 복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선한 말과 위로를 배워서 우리도 형제들에게 그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오, 주님, 날카로운 혀와 비난하는 입술, 지적하는 말에서 저를 건져주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선한 말과 위로를 배워서 그것을 그대로 형제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아멘.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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