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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4장8-13 /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 8일(월)■
 
(요한계시록 14장)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묵상/계14:8-13)


◆ 큰 성 바벨론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오늘 본문을 대하기 전에 우리는 이 당시의 세상이 666표를 이마나 오른손에 찍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숭배할 것을 강요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죽이고 감옥에 넣고, 매매조차 금지한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이들과 맞서는 두 증인이 있어서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다. 성도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척 고생할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장의 고난이 힘들어서 변절하면, 후에 오는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둘째 천사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질 것을 예언한다.
바벨론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이것이 지금 이라크에 있는 고대 유적 도시 바벨론이 아님은 분명하다. 고대 바벨론 제국의 수도였던 바벨론은 지금 폐허 상태이며,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사 13:19-22). 사담 후세인이 여기에 도시를 재건하는 도중에 미국과 전쟁이 났고, 그 와중에 제거되었다. 그리고 화려했던 사담 후세인 궁은 낙서로 가득 찬 아이들 놀이터로 몰락했다.


그렇다고 오늘 계시록에 언급된 바벨론을 너무 영적으로만 해석해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는 바벨론을 여러 번 언급하는데, 큰 도시(계14:8), 각종 무역이 성행하는 곳(계18:15), 바다에 인접한 곳(계18:16-20) 등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실제적인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 듯하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미국의 항구도시일지, 유럽이나 아시아의 항구도시일지 알 수 없으나 거기에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조직이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모든 나라에 진노의 포도주를 먹인 자라고 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알리는 말씀은 그것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대단해 보이는 그 권세와 위용도 겨우 한 시간 만에 끝장난다(18:10).


그러므로 대단해 보이는 세상 권세일지라도 기죽지 말라.
당장의 고난이 힘들다고 거대한 권력에 굴복해서 따르게 되면, 그가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질 것이다. 그가 진노의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 함께 마시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짐승에게서 받는 고통은 기껏해야 3년 반이지만, 그를 따름으로써 받게 되는 고통은 영원하다.


오늘 경고하는 말씀이 이것이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11)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해도, 정작 핍박이 시작되면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소수가 될 것이다.
학생들을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당장 하기 싫으니 놀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선명하지만, 당장 힘들고 고되니 타협하는 신자들이 무수할 것이다.


따라서 이기는 방법은 진실한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하는 일이다. 혼자서는 이기기 힘들어도 둘 또는 셋 이상이 모이면 극복할 수 있다. 이때는 한 사람이나 한 조직만을 맹종하면 안 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사람이나 조직이 배교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살후 2:3). 오로지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 여럿과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평소에 믿음을 확고히 갖고,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 시험이 닥쳐서야 공부하는 학생에게 무슨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 성도의 인내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지니어라


이기는 자들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자들이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단순히 십계명이나 모세의 율법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신약의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 범사에 감사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등이다.


사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 두 가지는 서로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앙고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를 깊이 사랑하고, 따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신비의 세계다. 성경은 집사가 되려고 해도 믿음의 비밀을 아는 자라야 했다(딤전 3:9). 믿음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믿음은 좋은데 행위는 형편없다는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를 잘 안다.
믿음이 좋으면 그는 필히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어떻게 믿음은 좋은데 행위가 형편없을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정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주님께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자.
주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자. 거기에서 주님을 알고 배우자.


◆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되다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 이후'라고 하신다. 지금이란, 언제를 기준으로 하시는 말씀일까? 요한이 기록할 당시일까, 아니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를 강요받는 그 시기일까?


'지금 이후'를 예수님의 부활 이후라고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고 교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환난 속에 있는 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지금 이후'란 짐승이 지배하는 시대이며 무수히 많은 핍박에 직면하게 된 때다. 이러한 핍박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것이다. 과거에는 여기서 핍박하면 저기로 피하면 되었지만, 아마도 이 시대에서는 피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이런 핍박의 시대에 죽임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전하는 위로다. 여기서 언급된 죽음이 꼭 순교만은 아니다. 여러 재앙 속에 따라오는 자연재해나 병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죽음일지라도 주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그것은 복되다.


성도에게 '죽음'이란 평생의 수고를 그치고 편히 쉬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니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런 약속 가운데서 죽음을 오히려' 복'으로 받아들이라는 하나님의 격려다. 십자가의 대속를 철저히 믿는 자만이 확신 가운데서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속히 데려가지 않으시는 이유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며(마 28:19-20),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하라는 것이고, 이런 우리를 핍박하는 세상은 심판받아야 마땅한 곳임을 드러내는 일이다(살후 4-9). 성도들의 순교는 후자에 속한다.


어떤 분은 순교당할 자신이 없다고 걱정하는데, 염려할 필요가 없다. 순교는 영광스러운 일이며 아무나 취할 수 없는 영광이기 때문이다. 이제 갓 수영을 배운 사람이 올림픽 메달 걱정하는 격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첫째 천사가 외친 영원한 복음,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경배하는 일이다(계14:6-7).


주 예수여,
참으로 예수님을 믿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믿음의 비밀을 알게 해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자로 살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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