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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5장1-8 / 유리 바닷가에 서서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무리들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 10일(수)■
 
(요한계시록 15장)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묵상/계 15:1-8)


◆ 유리 바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일곱째 나팔은 휴거의 나팔이다. 이제 이 세상에서 핍박과 환난 속에 처해있었던 성도들이 하늘로 옮겨졌다. 이들 앞에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유리'란 말은 휘알리노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인데 투명한 물질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오직 계시록에서만 사용된 단어다.


그리고 '바다'라고 할 때 반드시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 솔로몬은 성전 마당에 지름 4.6m의 물 저장소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바다'라고 불렀다(왕상 7:23). 다시 말해서 상당히 넓은 영역을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래 유리 바다는 하나님 보좌 앞에 펼쳐진 것인데 (계 4:6), 오늘 본문에 유리 바다가 불이 섞여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성도들에게 유리 바다를 통해서 심판의 광경을 보여주시는 듯 하다.


즉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모두 유리 바닷가에 서서 바닥에 깔린 거대한 유리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 있음을 상상케 한다.


아마도 자기들을 그렇게 핍박하고 못살게 굴던 세상이 어떻게 심판의 불로 소멸하는지를 보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 




◆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는 어떤 것일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노래의 내용이 그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의로우심,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노래다.


그런데 어린 양의 노래는 납득이 되지만, 모세의 노래라는 말 신약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주석가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나는 모세의 노래란 심판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모세는 신명기 32장에 자신의 노래를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때 쏟아질 심판에 대해서다. 한 구절만 인용해보자.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신 32:22)


반면에 어린 양의 노래는 마치 베드로의 이런 찬양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즉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노래다.


우리가 예배 때에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진정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면, 아마도 예배가 더욱 예배다우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질 것이다.




◆ 일곱 대접 재앙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일곱 인, 일곱 나팔, 그리고 휴거가 지나갔다.
이제 일곱 대접 재앙이 남았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하늘에 있는 증거 장막의 성전에서 나왔다. 증거 장막 성전이란, 11장에서 일곱 번째 나팔이 불 때 보였던 성전과 일치할 것이다(계 11:19). 계시록 12장부터 15장까지의 여러 사건을 일곱 번째 나팔 이전의 두 증인과 같은 시대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대접 재앙은 단순한 자연재해의 고난과 전쟁의 환난이 아니라 혹독한 심판의 재앙이다. 성도들을 핍박하고 축출한 세상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받아야 할 재앙이다.


그동안은 성도들이 세상에 있기에 제한적이었다면 대접 재앙은 무차별, 무제한이다.


우리는 100년만의 홍수 앞에서 잘 준비된 도시마저 무력화되는 것을 본다. 거대한 자연재해를 인간이 극복하기란 어렵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내리시는 심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곱 대접 재앙 시기에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진정으로 불행한 자들은 핍박받는 성도들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편에 서 있는 자들이다.


주님,
제가 깨어있어서 이 시대를 잘 분별하게 해주십시오.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고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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