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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6장1-7 / 대접 재앙의 시작(첫째 대접부터 셋째 대접까지)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 11일(목)■
 
(요한계시록 16장)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묵상/계 16:1-7)


◆ 진노의 일곱 대접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마침내 대접 재앙이다. 이 재앙으로 모든 재앙은 끝이 난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대접 재앙을 겪지 않을 것이다. 혹 투명한 유리바다를 통해서 세상의 형벌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직접적으로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도들을 극심하게 핍박했던 그들이 이제 되돌려 받을 시간이다.


◆ 첫째 대접 재앙 - 악하고 독한 종기


(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첫째 대접을 쏟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한 사람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다. 세상 사람 전부가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만 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세상을 향한 심판이 누구 때문인지를 명확하게 하심이다.


666 칩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칩을 박은 이마나 오른손에 부작용이 생겨서 발생한 종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신이 666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백신 부작용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이게 무엇이든 지금 시점에서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이 종기는 분명히 666표를 받는 자들에게 난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함부로 666표를 운운하지 말라. 오늘날 666표로 미혹하는 자들이 많다.


◆ 둘째 대접 재앙 - 바다가 피가 됨


(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가 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둘째 나팔 재앙과 비슷하다. 다만 둘째 나팔 재앙에서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고, 바다의 생물 삼분의 일이 죽었지만(계8:8-9), 대접 재앙에서는 삼분의 일이 아니라 모두 피가 되었고, 모두 죽는다.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들은 죄를 지은 적이 없건만,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서 모든 피조물이 몰살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고대하고 있다(롬 8:21).




◆ 셋째 대접 재앙 - 강과 샘이 피가 됨


(4)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솟으매 피가 되더라


셋째 대접은 셋째 나팔 재앙과 비슷하다.
다만 셋째 나팔에서는 물들의 삼분의 일이 쓰게 되었다고 했지만(계8:10-11), 이번에는 삼분의 일이 아니라 전부다. 그리고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가 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떤 현상일지 모른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홍조 현상일지 아니면 전쟁 때문에 흘린 핏물일지 아니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다른 현상일지... 그러나 나팔 재앙을 통해서 우리는 모의고사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계시록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혹독하게 세상을 다루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에서 계시록을 보면 안 된다. 훗날 세상으로부터 말도 못 한 핍박과 미움을 받게 되면 계시록이 얼마나 성도들에게 위로인지 알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에 사자 밥이 되면서도 찬양하면서 죽었던 성도들부터 근대에 와서는 공산주의자에게 붙잡혀서 산채로 불도저에 깔려 죽은 성도, 자식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자들 앞에서도 자식들을 신앙으로 위로하며 꿋꿋하게 신앙을 지킨 성도, 이들은 결코 자기들을 핍박하고 죽인 자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서를 빌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내버려 두실 마음이 없으시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덜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공의로우시고, 우리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한이 없지만, 공의가 없는 자비는 맘씨 좋은 노인네의 무기력과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임을 잊지 말라. 그의 진노 앞에 제대로 설 자가 없다.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세상 권력이나 마귀가 아니라, 온 우주를 한 손에 쥐어서 부숴버릴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을 때, 비록 하나님의 아들은 이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구했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치 않으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7년 후에 그들과 그들의 자식은 로마군의 포위로 굶주리다가 결국은 수백만 명이 살육당하였고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조롱하고 때리고 핍박했던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중에는 바벨론의 포위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자 너무 굶주려서 피부가 검게 변하고(애 5:10), 아이들까지 삶아 먹는 지경이 되었다(애 4:10).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칼로 죽임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자기를 핍박했던 백성이 이렇게 되자 속이 시원하고 기뻐했을까? 아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비참한 결과를 울면서 가슴 아파했다(애 1:1).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이 모든 결과에 대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5,6)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태도다.


우리는 이러한 공의 앞에서 함부로 하나님보다 더 너그러운 척하면 안 된다. 다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


아멘, 아멘.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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