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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12장1-17 / 해(sun)를 옷 입은 여자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8월 3일(수)■


(요한계시록 12장)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묵상/계 12:1-17)


◆ 해를 옷 입은 한 여자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오늘 본문은 온통 비유로 가득 차 있어서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본래 비유란 그것을 말한 사람이 해석해주거나, 아니면 그 상황에 부닥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기란 어렵다. 억지로 해석하려고 무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이 비유에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5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기준으로 해(sun)를 옷 입은 여자가 상징하는 것은 마리아, 이스라엘. 교회 셋 중 하나로 본다.


만일 마리아로 간주하면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지상에서의 삶을 압축한 비유다. 용은 아기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으로, 광야는 예수님께서 임시로 피한 애굽으로, 애굽에서 있었던 기간을 1260일로 해석하면 제법 일리가 있다. 그러나 17절의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고 정의한 부분이 안 맞는다.


또한 교회라고 해석하면, 교회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었다는 말이 어색하다. 교회는 오히려 예수님으로부터 탄생한 존재다. 만일 아이를 배어 해산했다는 말을 핍박 가운데 전한 복음이라고 간주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사에서 늘 있어왔던 것인데, 새삼스럽게 1,260일과 광야가 언급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간주하면, 이것은 말세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회개와 연관된다.
나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회개 과정으로 보고 싶다.


이제부터 해석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기억하고 추측성 해석을 너그럽게 보아주었으면 한다.


여자가 해산하여 애를 쓰며 부르짖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모습이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그들이 모두 회심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스가랴서에서 말세에 일어날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라고 본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슥 12:11)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은 기독교를 몹시 혐오하며, 거절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처럼 깊이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회개 직후에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공적이 되어서 공격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1,260일 곧 3년 6개월을 이러한 공격에 노출되며 곤란에 처하게 될 것이다.


◆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마귀의 큰 사역 중의 하나가 참소하는 것이다.
마치 재판정에서 검사가 이것저것 죄를 끄집어내고 유죄 선언할 것을 판사에게 요구하는 모습이다.


마귀가 참소할 때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그것이 없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끄집어내는 그의 지적에 우리는 두려움에 떨 뿐이다. 특히 마귀는 그 사람의 양심이 약한 양심이면 더욱 극성으로 그를 정죄하여 자책감과 자학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누가 나를 위해 변호해줄 수 있을까?


세상 법정에서는 변호사가 하는 일이란, 죄인이 마치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가리고, 그 죄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변호하며, 전혀 의도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늘 법정에서의 변호사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우리의 죄를 그대로 인정한다. 마땅히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다만 하늘의 변호사는 그 죄를 자신이 다 담당하겠노라고 나선다. 이것은 놀랍고 충격적이다.


우리가 참소하는 자를 이기는 방법은 어린 양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 은혜를 믿고 그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잃을지언정, 이런 영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순 없다.


오늘 본문은 해석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명확한 교훈을 담고 있다.
어린 양의 피와 그를 믿는 자들의 믿음의 고백이 마귀의 참소를 극복할 수 있다. 


종종 마귀의 참소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심한 자책감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다. 나도 한때 보상이라는 율법에 빠져 심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죄는 보상해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원망들을 만한 것에 대해서는 적절히 보상해야 함은 올바른 태도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상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심한 율법주의에 빠져서 십자가의 은총을 놓치게 만든다. 


우리의 죄는 나의 보상으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로 용서받는다. 어린 양의 피가 죄에 대한 가장 충분하고도 적절한 보상이다. 그리고 그 피를 믿는 양심은 새롭게 되는데, 그것을 따라서 보상할 때 정상적인 보상이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고 율법주의나 마귀의 트집에 의해서 억지로 한 보상은 결국 사람을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갈 5:4).


사람들은 십자가의 대속은 믿는다고 하지만, 그 피를 증거하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죄사함의 복음을 혼자서 믿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확신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주님,
저의 모든 죄를 어린 양의 피로 씻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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