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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42장26-38 / 야곱의 슬픔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6월13일(월)■


(창세기 42장)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묵상/창 42:26-38)


◆ 곤경에 빠진 야곱의 아들들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요셉의 형들은 자기 형제 시므온을 애굽 감옥에 놔두고 집에 돌아왔다. 도중에 그들 중 하나가 나귀를 먹이려고 자루를 열어보니 곡식값으로 지불한 돈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이러면 곡식값을 지불하지 않은 셈이 된다. 가뜩이나 정탐꾼으로 오해받는 마당에 곡식값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갔다고 하면 이것은 크게 빌미 잡힐 만한 사건이다.


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사건 앞에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


이 짤막한 말속에 이들의 세계관 속에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관 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일을 종종 하나님과 연결해서 해석한다. 해석이 잘 안될 때도 많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태도가 자연스럽다. 사십 대가 된 이들은 치기 어리고 잔인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던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야곱은 자식들을 통제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야곱을 보고 자란 이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종종 통제되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많이 낙심하지만, 나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그 모습을 본 자녀들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 야곱의 슬픔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아들들이 돌아왔지만, 한 명이 애굽에 억류되어 있다고 한다.


가장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아들 요셉을 잃은 지 무려 13년이나 흘렀다. 슬프고도 우울한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곡식을 얻으러 갔던 아들들이 시므온을 잃고 왔다. 열두 명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열 명이 되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 있는가?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창 32:12)라고 하셨잖은가?


그것뿐 아니다. 이제 다시 곡식을 얻으려면 베냐민도 데리고 가야 한단다.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보고 위로를 얻고 살았는데, 이제는 베냐민도 데리고 가야 곡식도 얻고, 시므온도 되찾는다고 한다. 베냐민이 가다가 병이라고 들면 어떡하는가? 무사히 돌아올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왜 인생은 이렇게 어려운가?


야곱은 아들들이 원망스러웠다. 왜 베냐민이 있다는 말을 해서 시므온도 잡히게 하고 베냐민까지 데려가게 만들었는가? 그러나 아들들도 요셉의 유도신문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곡식 자루에 곡식값 돈뭉치까지 들어 있으니, 아들들은 애굽 총리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야곱은 괴로웠다. 시므온을 되찾아야 하겠지만, 만일 요셉을 잃은 마당에 베냐민까지 잃으면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들은 모두 사라지는 셈이 된다. 이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시므온을 잃을지라도, 베냐민만큼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베냐민까지 잃는다면, 아마도 야곱은 슬픔에 스올로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에서 스올이란 말은 야곱이 요셉을 잃고 처음 등장했다(창 37:25), 개역성경에는 '음부(陰府-저승)'라고 번역했고, KJV에서는 그냥 무덤(grave)이라고 번역했지만, 개역개정성경은 히브리어 그대로 놔두었다.


스올로 내려간다는 이 말에서 당시 내세에 대한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구약에서 죽음이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올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스올이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려가는 곳이었다. 내려간다는 표현은 스올은 하늘에 있지 않고 땅속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올을 단순히 '무덤'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 비유에서 거기에는 큰 구덩이가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한 무리는 저쪽, 한 무리는 이쪽에 있다고 하셨다(눅 16:26).


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스올에 있는 무리 중 하나님께 속한 무리를 이끌고 천국으로 올라가셨다(마 27:52-53, 엡 4:8). 이제 성도들은 죽으면 스올로 내려가지 않는다. 천국으로 인도될 것이다.


야곱은 슬프고 우울했다. 흰 머리가 더욱 하얘질 것인가? 과연 야곱은 스올로 내려갈 것인가?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이 애굽의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을 모르고 있다. 흉년은 지속되고, 야곱 집에 곡식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야곱의 훌륭한 점은 이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린 자다. 그의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은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 드러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다윗. 시 40:1-3)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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