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9:28-30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죽음이란 자기의 개인의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다. 그러므로 새는 죽는 순간에 슬픈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죽는 순간에 가장 착한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최후의 순간만은 선하게 되며 제아무리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죽는 시간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작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지은 되로 고백을 하고 인생을 잘못 살았으면 잘못 산대로 고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는 순간에는 우연한 말이나 순간적인 거짓 독백이 있 을 수가 없으며 그 사람의 삶의 대하여 가슴에 담고 있는 진실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영 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짧은 인생을 사셨지만 그는 다 이루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십자가위에서도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 다. 첫 번째는 원수들을 향한 용서의 기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였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죽어가면서 회개하던 한편강도에게 구원을 선언한 말씀(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이셨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십자가 곁 에 서있는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효성의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 이니이다.)을 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성부하나님을 향한 절규였습니다.(엘리 엘레 라마 사박 다니) 다섯 번째는 무리 앞에서 완전하신 인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여섯 번 째 말씀이 그 백성을 향하여 내가 다이루었다! 고하신 선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 지를 향한 말씀이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입니다. 정리를 하면 내가 다 이루었으니 내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 연의 법칙이라고 말을 하지만 지연의 법칙이 곧 하나님의 범칙입니다. 불신자가 말하는 자 연의 법칙이나 하나님의 법칙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 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길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한 사람이 출생을 하였다면 그는 곧 죽 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삶을 말합 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의 죽음은 어떻게 끝이 날 것 같습니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사람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30년을 살던지 50년을 살던지 아니 면 80을 살던지 90을 살던지 인생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그의 인생의 삶에 대한 계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 가 끝나면 그 하루의 삶에 대한 결산이 있습니다. 한 달을 시작해서 한 달을 마치면 그 한 달에 대한 결산이 있습니다. 일년을 시작해서 일년을 마무리하면 그 한해의 결산이 있습니 다. 그리고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의 삶에 대한 결산이 있겠지요? 그 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비록 33년의 짧은 생을 사셨지만 다 이루었다고 인생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다 이루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수고에 대한 완성 또는 지불완료! 즉 계산이 끝났다! 그리고 성공과 승리를 뜻하는 말씀입니다. 흔히 우리가 듣는 말로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요구대로(뜻을) 다 이루었다 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의문점이 생기지 않습니까? 아니 33세의 청년으로 죽으면서 어찌 이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팔렸고 대제사장의 음모로 체포되어 억울한 누명 을 쓴 체 빌라도의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어찌하여 다 이루었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많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이 하시던 일은 계속해야 되는 일인데--복음을 전 해야 할 곳도 많고 , 고쳐야 될 병자들도 많고, 굶주린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데, 또한 소외 받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들이 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고 또 일을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인데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죽으면서 어찌하여 승전가를 부르듯이 다 이루었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입 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끝이 없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 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구원사역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온 인 류가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놀라운 사랑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의 아들 예수 는 이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 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 를 생각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자기가 죽음으로서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지만 이것은 놀라운 희생의 수고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놀라운 순종이 아니고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므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래 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 심이 불완전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것으로서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으면 완전히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구원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어릴 때 달리기를 잘했을 것 같습니까? 못했을 것 같습니까? 잘 뛰었습니다. 운동회를 하면 1. 2 등을 했습니다. 제가 설교 준비하면서 전도사님보고 이런 말을 하니까? 웃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못 뛰지만 어릴 때는 잘 뛰었습니다. 첫째 날씬했고요! 둘째 순발력이 있 었고요! 셋째 스피드가 있었습니다. 저의 마을이 냇물가 이거든요? 그래서 물길을 따라 모 래 강변이 아주 길고 넓었어요! 제가 어릴때 김신조 일당이 내려와서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가 김신조가 체포되었잖아요? 그가 어떻게 훈련받았는가? 가 알려졌는데 모래 주머니 온몸 에 둘러메고 연습을 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밤마다 마라톤 선수해 볼려고 새벽마다 달 리고 밤에는 모래주머니 옆구리에 하나 만들어 메고 바지 끝에는 양쪽에 모래주머니 달아서 달렸어요!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몰라요! 잘 안 달려지지요? 그렇게 하다가 벗고 달리 면 잘 달렸어요! 그리고 저의 어머니가 일에 욕심이 많아서 여름새벽에 들에 나가면 늦게 오는 날이 많아요! 그러면 아침밥을 늦게 먹거든요? 그래 학교 안 늦으려고 5리 되는 거리 막 달려 갔어요! 그래도 지각 안하고 결석 개근했어요!
그런데 달리기 중에 재미있는 것이 릴레이어요! 특히 400M 릴레이는 신이나요? 한사람이 50M씩 하기도하고 100M씩 달리기도 하는데 어느 한 사람이 잘못하면 꼴찌가요! 모두다 잘 해야 하거든요? 특히 동리대항 800M릴레이는 신이 났지요? 모든 주자들이 다 잘해야 합니 다. 그런데 제일로 중요한 주자가 누구냐 하면 처음 달리는 사람하고 마지막에 달리는 사람 이어요! 그러나 주자의 사명은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 달리면 그의 임무가 끝이 납니다. 나머지는 다음 주자에게 넘기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달리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예수님은 릴레이의 첫 번째 주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33년 인생에서 복음사역 즉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하여 열심히 뛰어서 다음 사람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성취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그까지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바톤을 쥐고 열심히 달려 오셔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죽는 것입니다. 다음은 제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 속에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뜻은 믿는자를 통하여 계속 이루어 오고 있고 그 마지막 주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시대의 교회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예수님이 해야 될 일 복음전파와 천국복음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병든자 가난한자 상처 받은자를 위 한 예수님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믿습니까?
이제 우리의 모습을 볼 차례입니다. 달리기를 할 때 실실하는 달리기가 어디 있습니까? 쉬 면서 하는 달리기 보았습니까? 천천히 걸어가는 달리기를 보았습니까? 달릴 때는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야 하지 않습니까? 구약에서는 이것을 전심전력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신약에서 는 이것을 충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 나와 있 습니만 무엇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고 합니까? 돈을 버는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있습니 까? 아닙니다. 죽도록 충성은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하나 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대하여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짧은 공생애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죽도록 순종하고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세상에서 다른 일에 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사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죽도록 충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하나님 앞에 그분이 원하는 데로 십자가까지 거부하지 않으시고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지 않으시고 , 그 고통의 짐을 벗어버리지 않으시고, 그 모욕의 짐을 벗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멸시 천대 의 짐을 벗어버리지 않으시고 생명 바쳐 그분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분은 정말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뜻이 없었겠습니까?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어떤 뜻을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이 뜻을 우리는 사명으로 설명을 해도 좋습 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사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까요? 어떤 사명 때문에 예수를 믿게 했고 어떤 사명 때문에 목사의 직분을 주고 어떤 사명 때문에 장로의 직분을 주고 어떤 사명 때문에 집사나 권사의 직분을 주었을까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향 한 어떤 사명이 있길래 지금까지 살려두시고 계실까요? 여러분은 그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나를 보내신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라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 날 사실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언젠가 목사인 제 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김 목사야! 너는 너를 세상에 보 내신 이의 뜻을 이루고 왔는가? 그때 물으시는 질문은 사실 이것보다 더합니다. 다시 합니 다. 너는 너를 세상에 보내신 이의 뜻을 다 이루고 왔는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니 분명히 묻 지 않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여러분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 면 우리의 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 면 지금이라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나는 다 이루었다 할 수 있어야 하고 일년을 마무리하 면서도 나는 금년한 해를 다 이루며 살았다고 해야하고 언제 어느 때든지 이 고백이 준비되 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소리 들을까봐 제일 걱정됩니다. 아니 두렵습니다. 내가 이것을 위해서 너를 보냈는데 ...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너를 보냈는데... 내가 연일 교회를 위해서 너를 보내고 세웠는데.... 나는 너 때문에 손해만 봤다! 나는 김 목사! 너 때문에 시간만 허 비했다! 김 장로야! 김 집사야! 김 권사야! 김 아무것이 성도야! 나는 너를 믿고 그 자리에 세웠는데...? 나는 너를 믿고 거기 보냈는데... 나는 너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 안그렇습니 까? 여러분!
여러분! 어떤 사람이 보내신 이의 일을 다 이룰까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기도에도 부지 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제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말씀합니 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믿습니까? 성경에 부지런히를 찾아보니까 이렇습니다. 나도 너희를 부지런히 찾을 테니까? 너희들도 나를 부지런히 찾아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지런 히 충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350명의 성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신앙이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에도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리 고 주의 일에도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를 저 정도만 해도 원이 없겠는 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데도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해서 부끄럽다고 눈물 을 흘리며 통곡하며 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두움에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때 는 우리가 우물안 개구리 같은 모습으로 우리신앙이 최고인줄 알고 우리가 상당히 잘 믿고 잘 봉사하는 사람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회개 가 안됩니다.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만 보았지 진작 주님은 보지 못하고 있 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 장례 집에 가보면 모두가 바쁜데 안 바쁜 사람이 있습니다. 수많은 가족들과 친 지들 가운데 딱 한사람만이 안 바쁨니다. 바쁜 사람들을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안 도와 줍니다.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뛰는 것보다는 걸어가는 것이 편 하다. 걸어가는 것보다는 가만 앉아 있는 것이 편하다. 가만 앉아있는 것보다는 누워있는 것 이 편하다. 누워있는 것보다는 죽은 사람이 더 편하다.
괴으른 사람은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한가한 사람은 주의 일을 다 이루었다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을 어슬렁어슬렁 해 놓고 서 인생을 잘살았다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편안을 생각하면 주의 뜻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뜨겁게 일해야 합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심도 중 요합니다만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열심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내일에만 열 심을 내지 마시고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일은 부업이 되고 주의 일이 주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생을 해도 제일 남는 고생은 주를 위한 고생 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봉사 중의 제일 큰 봉사는 주를 위한 봉사인줄 믿으시기를 바랍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의 끝날에도 다 이룸이라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기 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매일 매일 생활에서 다 이루었다는 간증이 되기를 원합니 다. 예수님은 다 이루심으로 그의 생애를 끝맺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거룩한 승리에 동참하 여 다 이루심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과는 하나님께 맞기고 우리의 충성으로서 주의 일에 최선을 다했노라고! 다 이루었느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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