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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연구 총정리〓/바울 서신

바울서신 2 강

by 【고동엽】 2022. 10. 23.

바울서신 2 강

 

김세윤 교수

 

갈라디아서 1

 

1. 수신자에 대해서

첫째로 갈라디아서가 어디에 보내졌느냐? 이른바 바울의 제1차 선교 여행중에 세운 로마의 행정 지역으로서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그러니까 사도행전 13-14장에 보고되어 있는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중 바울이 세운 교회들 곧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더베의 교회들)에게 보낸 것이냐, 아니면 갈라디아 인종의 영토에 있는 교회에 보내어진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갈라디아 인종, 종족들의 영토는 지금의 터어키 북부인데 지도를 가지고서 처음에 이야기한 갈라디아와 두번째 이야기한 갈라디아를 한번 찾아 보십시오. 처음에 이야기한 설을 남부 갈라디아설이라 하고(즉, 바울이 로마의 행정지역으로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이 갈라디아서를 보냈다는 것), 두번째설은 “바울이 갈라디아 종족들의 영토에 있는 갈라디아 종족들에게 보낸 것이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북부 갈라디아설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갈라디아인이라는 소리가 로마의 행정적 지칭이냐 아니면 종족적 지칭이냐 하면 잘 모른단 말입니다. 그래서 행정적 지칭설 이라고도 하고 종족의 영토설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편리하게 남부 갈라디아설, 북부 갈라디아설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의 서론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따라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여졌는가가 일부 결정이 됩니다. 또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여졌는가가 중요한 이유는 바울의 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재 구성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데 증거가 양쪽으로 아주 균형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것을 다 하기로 한다면 시간이 너무 가니까 여러분들이   ?    이나   ?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최근에 이 문제를 제일 포괄적으로 다시 다룬 것은 F.F. 부루스의 갈라디아서 주석인데 아주 자세히 다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읽어 보십시요. 양쪽을 지지하는 논증들이 팽팽히 맞서 있어서 어느 하나가 상대편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우세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할 수 없이 선택을 해야 되는데, 어느설이 과이 더 그럴듯하다고 해야 되는데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F.F. 부루스가 강력히 주장하는대로 남부 갈라디아설이 저울추가 좀더 기울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사도행전에 보면 남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대한 언급은 많으나 이른바 북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바울 시대를 두고 말한다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바울이 여행한 것도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거기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더더구나 알지 못하고 이런 이유들로 잠정적으로 남부 갈라디아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2.갈라디아서가 쓰여진 정황

자, 그러면, 이제 이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여졌느냐 하면, 갈라디아서가 쓰여진 정황을 살펴보면,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침투해서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의 거짓 복음으로 설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1장 6-9절까지에서 그리고 5장 10-12절까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거짓 선생들이었고 그들의 복음이(바울이 거짓 복음이라고 하는데) 무엇이었느냐 하면, 외적 증거(사도행전이나 초대교회의 역사 같은)가 전혀 없으므로 우리들은 이 문제들을 갈라디아서로 재 구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들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에서 재 구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갈라디아서, 곧 바울의 답변에서 재 구성할 수 있는 이들의 특징은, 첫째로 갈라디아서 2:16, 3:2, 4:21, 5:4절은 이들이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 율법과 유대 예식을 지키도록 설득한 것을 시사합니다. 갈 5:2, 6:12-13절은 그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할례를 요구한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특히 갈라디아서 1-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이 인간으로 부터가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으로 부터만 유래한 것을 강력히 변증하고 특히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것을 강력히 변증하는 것은, 이 거짓 선생들이 갈라디아에서 바울의 복음과 다른 복음만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고 바울의 사도직을 무효라고 공격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을 공격했다는 것이 두번째이고 세번째로 갈라디아서 4장 8-10절까지는 갈라디아인들에게 한 ‘στοιχεια’ 라는 말을 초등학문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것을 초등 학문이라고 해석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이 세상의 원초적인 신들 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지 학자들(주석가들)간에 논란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원초적인 영적인 신들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지 주석가들간에 논란이 많습니다. 아니면 초등학문 이라고 해석을 해야하는지... 왜 그러느냐하면, 분명히 영적인 신들로 바울은 지칭을 하는데, 바울은 율법도 ‘στοιχεια’ 일부로 친다고 갈라디아서 4:8-10, 여기 ‘στοιχεια’가 초등학문이라고 번역된 것에 이어서 그것에 예속된, 노예된 그러니까 사람들을 노예로 사로잡는 신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어서 날, 달, 절기 이런 것을 말합니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생각했던 하늘의 별들에 존재한다고 보았던 악령들을 포함한 우주의 이 원초적 신들, 인간들에게 적대적이고 인간들을 죄와 고난과 죽음에 굴종시키는 그런 신들,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런 신들을 어떻게 잘 달래서 자기들의 고난을 면하게 해주는 그런 신들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초등학문 아주 기초적인 도리로서 바울의 자유의 복음과는 반대되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려고 하는 그런 기초적인 도리를 말하는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니면 둘 다를 말하는지...

그래서 영어 번역을 보면 elemental thing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런데, 하여간 갈라디아인들이 이런 ‘στοιχεια’에 되돌아 가고 날과 달과 절기와  해(年)를 지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5장 13-26절까지는 바울은 그들의 자유를 육신을 위한 신으로 주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육신의 열매들에 대조적인 성령의 열매들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세 가지 경우의 데이타을 관찰했는데, 이 세 가지 경우의 데이타에서 전통적으로 갈라디아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은 유대주의자들(Judaizers)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취급하는 문제는 이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설득하는 문제를 대항해서 다투는 것이다 라고 본 것이 전통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세번째 데이타를 염두에 두고 어떤 학자들은 가령 독일의 Lüte나, 금세기 초에 하바드에서 가르쳤던 로옵스같은 사람들은, 이 갈라디아서의 유대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자유주의자들도 (방종 주의자들이라 할까, libertines)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성령의 체험이 그들의 물질 또는 육신의 영역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고 하는 자유 방종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헬라의 영과 육의 이원론에 의해서 이들이 성령을 체험하고는, “아하 이것은 벌써 우리가 영의 영역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미 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지식, 헬라 사람들이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 지식을 우리가 획득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더이상 육신은 우리를 제어하지 못한다. 또는 육신의 영역에 사는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구원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육신의 영역에서 아주 방종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양 전선에서 싸운 것이다. 한 전선에서는 유대주의자들과 싸우고, 반대편 전선에서는 방종주의적 성령파와 싸운 것이다고 이렇게 양 전선론을 폈습니다.

그러나 또 일단의 학자들은 바울이 양 전선에서 싸운다고 하는 이론에 만족할 수 없다고 보고, 세번째 데이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이 갈라디아의 거짓 선생들은 혼합주의적 유대인들로서 유대 율법과 할례를 지킬 뿐만 아니라 점성학에서 말하는 별들의 신들을 숭배하고 점성학의 월력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한 자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까 제일 첫번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전통적인 견해는 갈라디아에 침투한 유대주의자들이었다는 견해, 두번째는 유대주의자들도 있었고 방종주의자도 있었다는 견해, 세번째는 유대주의와 방종주의가 따로 따로 있었던게 아니고 혼합 주의적 유대인들로서 이들은 유대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사상과 헬라 세계의 점성술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높은 지식을 얻는다는 사상을 전한 자들이었다는 것인데, 이 세번째 견해를 가진 학자가 발터 슈미타스 입니다. 볼트만의 제자로서 신약의 거의 모든, 특히 바울 서신의 거의 모든 것을 영지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터 슈미타스는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이 투쟁하는 거짓 선지자는 영지주의적 유대인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 갈라디아서에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타를 세 가지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을 지금 설명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제일 타당할 것인가? 갈라디아서 4장1-10절까지에서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이 유대 율법을 지키는 것을 ‘στοιχεια’에 대한 노예들이라고 지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10절까지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복음(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 ‘στοιχεια’(초등학문?)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다시 ‘στοιχεια’ 노예들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고 한탄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고 구체적으로 ‘στοιχεια’의 노예들로 되돌아 가려고 한다고 하느냐 하면, 그들이 유대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 그러기 때문에 4장 10절에 나오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도 헬라 세계의 점성학적 월력이 아니라, 유대 월력(유대 특별 절기를 나타내는)을 지칭하는 것 같다는 것, 나아가서 5장 13-26절까지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이나 그곳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이 자유 방종주의를 주장한다기 보다는, 바울이 그 편지 전체(5장 앞부분까지)를 통해서 율법의 얽매임으로 부터의 그리스도의 자유를 강력히 천명하고는 자기의 이와같은 가르침이 자유 방종주의로 해석 될까봐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로마서 6장 1절 이하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갈라디아서 5:13-26절까지에서 바울이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라, 육신의 욕구대로 허락하면 너희들이 이따위 열매를 맺는데 그러면 안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이런 사람들과 요런 사람들은 다 갈라디아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이 자유 방종을 주장했구나 해서 바울이 그것을 막고 있구나 이렇게 유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에서 줄곧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의 율법주의에 대항해서, 그리스도 복음의 자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러나 편지 끝에쯤 와 가지고 바울이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그리스도의 자유의 복음이 자유 방임주의적으로 갈라디아인들에(원래는 헬라인이었던 그들) 의해서 왜곡 해석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끝머리에 가서, 의인된 사람은 곧 성령받은 사람인데, 성령받은 사람은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야 된다고 경고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번쩨 데이타는 거기 침투한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도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인됨을 설명하다가, 아 그러면 반대 의견이 나올 수 있겠구나.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면 “죄를 더 저지르자.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더 클 것이 아니냐?” 그것에 대해서 바울이 답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기 보다는, 자기 복음의 전개 과정 중에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을 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보다 갈라디아서에서 이러한 경고를 해야 할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의 적대자들이 그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는 복음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한다고 공격했을 것이므로 이렇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논쟁을 벌이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러한 경고를 첨가할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갈라디아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은 유대주의자들이고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루는 문제는 그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 유대 율법을 지키도록 한 것이었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옳은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 유대주의자들은 자기들의 교리 곧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되어야(할례가 무엇이냐 하면 언약의 표징입니다) 언약의 백성으로 편입이 되어야 언약의 성취로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아 예수의 구원의 덕을 볼 수 있다고 유대주의자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원래 순서인데, 이 못된 친구 바울이 제가 다메섹에서, 사도였다고, 예수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이방 땅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고 하니 이거 큰 문제가 났다 이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바울의 선교지를 뒤따라 성급히 돌아다니면서, “지금 순서가 다 뒤틀렸는데 지금이라도 더 늦기전에 빨리 할례를 받고 우리들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를 믿어야 언약의 백성에게만 효력이 있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게 되는거다.” 이렇게 갈라디아 사람들을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대로 논리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Issue가 뭐가 되요? 그리스도의 사건이 새 언약의 제사로서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건이냐? 아니면 옛 언약의 성취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냐? 말하자면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기독론적, 구원론적 논쟁이 담겨진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에서 갈라디아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은 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면서 불가피하게 바울의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이 무효라고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승 받아가지고는 그 복음에서 할례와 율법의 의무를 제거하고서 인간들에게 믿기 쉬운 복음으로 즉 인간적인 복음으로 탈바꿈 시켰다, 변질 시켰다.”고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복음은 헛된, 변질된 복음이고, 바울이 거짓 복음을 선포하는 한 그의 사도직은 헛된 것이다.” 이렇게 주장을 한 것 같습니다.

 

3. 바울의 반증

그러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 1-2장에서 뭐라고 논증하나요? 갈라디아서 1-2장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이 주장하는 바의 전제부터 틀렸다. 내가 예루살렘 사도들로 부터 복음을 받고 사도직을 받았는데, 그리고는 그 복음을 변질 시켰다고 그러는데, 이방인들에게 믿기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할례와 모세 율법을 변질 시켰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전제부터 틀렸다. 내가 사람들부터 복음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사람을 통해서 받은 것도 아니다.” 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을 읽어봅시다. 다음에 1장 11-12절을 또 한번 읽어 봅시다. 이 양쪽에서 바울은 무엇을 주장합니까? 자기의 사도직과 복음이 사람으로부터도 아니고 사람으로 기인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매개체로 중보자로 사람을 통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음을 곧 신적 기원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이 거짓 선생들 그러니까 유대주의자들 자신들은 아마 예루살렘 교회의 과격파를 대표하는자 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요구하지 않는 이방 선교를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던 예루살렘 교회의 과격파를 대표하는 자들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말하면 2장 4절에 나오는 거짓 형제들, 바울이 아예 크리스찬이라고, 형제라고도 인정하지 않는 예루살렘 교회 내의 거짓 형제들, 이방선교를 반대하고 나섰던 예루살렘 교회의 극소수 주의자들을 대표했던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자신들이 불리움 받았다고 주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특히 시카고에서 가르치는 로버트 조이스라는 신학자가 주장한 바인데, 이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이방 교회들에 다니면서 할례를 요구하고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 혹 AD 40년대 말부터 일어났던 열혈당 운동의 압력과 관계했지 않느냐? 시기적으로 갈라디아서가 48-9년쯤에 써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때가 어느때냐 하면 팔레스틴에서 열혈당 운동(아주 국수주의적인 유대 운동)이 폭발을 향해서 가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들의 압력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극보수화 되고 이방인들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이방인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일파가 바울의 교회에 다니면서 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함으로써 열혈당의 압력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바울은 이 유대주의자들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가 자기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개인적 도전으로만 본 것이 아니고 복음의 진리에 대한 공격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 복음의 진리를 방어함에 있어서 또는 변증함에 있어서 첫째로 그의 복음과 사도직이 하나님으로부터만 유래함을 강력히 주장했고, 둘째로 자기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독립적임, 곧 그의 복음과 사도직을 예루살렘 지도자들로 부터 받지 아니하고 직접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을 주장했습니다.

바울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복음에 대한 공격의 전제부터 틀렸다. 내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복음과 사도직을 받은 일이 없다. 내 복음과 사도직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까 1장과 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했으므로 진리인데, 그것은 예루살렘 사도들도 인정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세 가지중에 첫번째와 세번째를 갈라디아서 1-2장에서 논증을 합니다. 즉 앞에 이야기한 세 가지, 그의 복음과 사도직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독립적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사도들이 그의 복음과 사도직을 인정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1-2장에서 논증을 합니다. 1-2장에서는 바울이 사도직과 복음의 참 됨에 대한 형식적인 논증을 합니다. 그리고 3-5장까지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음, 그래서 예루살렘의 기둥 사도들도 인정한 이 복음의 내용, 그 내용의 참 됨을 설파했습니다. 1-2장에서 자기 사도직과 복음의 참됨에 대한 형식적인 논증 3-5장까지는 자기 복음의 내용의 참 됨을 신학적으로 논증합니다.

 

4. 기록된 연대

이상이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정황이고 이제 그러면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였느냐 하는 연대가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잡는 것은, 바울 신학과 초대 교회의 역사의 전개 과정을 재 구성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가령 바울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서 의인됨의 도리”가 바울의 선교 초기부터 그의 복음의 진수를 이룬 것이었느냐, 아니면 단지 갈라디아에서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의 과정에서 비로소 발달한 도리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바울 신학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 개혁자들이 말했던 대로 “은혜로, 믿음으로 의인됨”이냐 아니면 다른 것이냐? 이것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금방 말한 것이 중요한 문제로 작용합니다. 지금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어떻게 잡느냐에 일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의 연대 잡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이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잡는 것이 아주 불확실하다 이말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연대는 다음 네가지 요인들과 연계해서 잡습니다.

첫째, 갈라디아서 내에 있는 바울의 두 언명들과 관계해서, 하나는 4장 13절 누가 한번 읽어 봐요. 바울이 갈라디아에 가서 처음에 복음을 선포하는 정황이 어떠하느냐 하면 육신의 무슨 병 때문에 자기가 갈라디아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처음에’라고 번역한 말 ‘προτερον’ 이것이 어떻게 해석 되어야 하느냐? ‘처음에’라고 번역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원래’라는 뜻이냐? ‘처음에’라고 번역한다면, 바울이 갈라디아를 한번 이상 방문했음을 암시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를 두 세 번 방문했는데, 그 두 세 번 방문중 첫 방문 때에... 갈라디아에 왜 가게 되었습니까? 몸이 아파서 갔습니다. 그렇다면은 갈라디아서를 쓴 시점은 적어도 바울이 갈라디아를 두 번 방문한 후에 썼습니다.

두번째, 1장 6절도 한번 읽어봅시다. 여기서  ‘ουτωσ ταχεωσ’ 즉 “이렇게 빨리”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렇게 빨리”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너희들을 부르신이로 부터 이렇게 빨리 되돌아서다니, ‘이렇게 빨리’ 이 말은 갈라디아인들이 그리스도인된 직후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름을 받은지가 엊그제인데 그 은혜로 부름을 받은 뒤 이렇게 빨리 너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다니, 떠나다니. 이 1장 6절의 말은 갈라디아서가 굉장히 빨리 쓰여진 것으로, 갈라디아 선교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그렇다면 앞의 4장 13절에서도 “처음에”라는 말이 두 번, 세 번 방문을 전제하는 첫 방문 때 그런 뜻이 아니고 “원래” 그런 뜻이 아닌가 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잡는데 있어서 네 가지 패턴, 네 가지 요인들과 관계해서 잡는데, 하나는 갈라디아서 내에 있는 바울의 언명들과 관계해서 잡습니다. 이런 것을 가르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그렇게 복잡하게 합니까? 그냥 선생님이 갈라디아서가 언제 써졌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냥 믿고 나갈텐데 무엇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느냐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신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학문이 사고하는, 사유하는, 논증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려고 하는 것이지, 남이 다 내 놓은 결론만 암송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논증하는 능력을 기르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훈련을 다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패턴은 무엇이냐 하면, 아까 이야기한 북부 갈라디아에 보냈느냐, 남부 갈라디아에 보냈느냐, 어디로 보냈느냐는 것인데, 갈라디아서의 수신인들이 북부 갈라디아인들이면 이들은 누구? 갈라디아 종족들, 북부 갈라디아인들이면 이 편지는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요약된 바울의 여행. 16장 6절에 무엇이라고 되어있느냐 하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여행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부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여행했다는 말이냐 아니면 한 지역을 부루기아와 갈라디아라로 말하느냐, 하여튼, 그 여행 후 이 편지가 쓰여졌습니다. 북부 갈라디아에 보냈다면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요약하는 바울의 여행, 바울이 부루기아와 갈라디아를 여행했다고 그 여행뒤에 쓰였다 이렇게 되면 아까 4장 13절에  ‘προτερον’을 ‘원래’로 번역을 해야 되고, 이 편지는 그러니까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마게도니아 선교 사이에 쓰여졌다고 그러면 한 50년경에 쓰여졌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면 북부 갈라디아에 보냈다는 전제에서 두번째로 이 편지는 사도행전 18장 23절에 요약된 바울의 여행 뒤에 거기에 무엇이라고 되어있느냐 하면,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과 부루기아 지역을 여행했다고 되어 있다고 그렇다면 앞의 4장 13절의 ‘προτερον’은 16장 6절에 요약된 첫 방문 다음에 18장 23절에 요약된 두번째 방문, 이 두 방문중 첫 방문이라고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18개월 끝에서 에베소로 이주해 와서 한 삼년 살게 된 그 기간중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18개월정도 있다가 에베소로 와서 한 3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의 거주기간 끝과 에베소 거주기간의 처음 그 사이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에 머무르기 시작한 그 무렵에, 그렇다면 악 52-55년경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에 52-55년 사이에 머물렀으니까 한 52년쯤 쓰여졌다고 보아야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의 수신인들이 남부 갈라디아의 로마 지방의 사람들이라면(이것을 남부 갈라디아설로 보았다면 아까 두가지의 가능성은 북부 갈라디아설을 전제로 한것입니다) 바울의 갈라디아에 대한 첫 방문은 사도행전 13장 14절 이하에 기록된 것이고, 그의 두번째 방문은 사도행전 14장 21-23절에 기록된 바울이 자기의 첫 선교지 더베에서 시작해서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의 두번째 방문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사도행전 16장 16절에 요약된 그러니까 이것은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행중(아까 부루기아와 갈라디아를 방문했다고 했었습니다)의 방문이거나, 만약에 사도행전 16장 1-6절까지가 바울의 갈라디아에 대한 두번째 방문이라면,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후에 쓰여진 것일 것이며, 만약에 바울의 갈라디아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4장 21-23절에 나오는 1차 선교 여행중 자기의 위치를 거슬러 되돌아오는 과정중의 것이라면, 갈라디아서는 사도회의 전에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만약에 바울의 갈라디아에 대한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6장 1-6절까지에 요약된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기간중에 일어난 것이었으면 갈라디아서는 그 후에 쓰였으니까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그 후에 쓰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에 대한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4장 21-23절에 요약된 바울의 여행기간중 (1차 선교 여행중) 더베까지 갔다가 더베에서 다시 자기가 온 길을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두번째 방문이라면 갈라디아서는 사도회의 이전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둘중에서 남부 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사도행전 16장 16절에 부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이라는 말이나 18장 23절에 갈라디아 지역과 부루기아라는 말이나 둘 다 남부 갈라디아를 지칭한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라디아서는 1장 6절과(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너희를 부르신 이로부터 그렇게 속히 등을 돌리고 떠나다니, 그러니까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직후입니다) 어디로 보냈느냐는 두 factor를 결합해서 볼 때는, 남부 갈라디아설이 옳은 것 같고, 그중에서도 제 1차 선교 여행 직후 그러니까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에 이 갈라디아 교회에 문제가 터집니다.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중에 갈라디아를 두번 방문한 셈이지요. 한번은 안디옥에서 루스드라 더베까지 갔다가 더베에서 다시 그 길을 돌아오면서 두번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자 마자 문제가 생기는데 1장 6절에서 그렇게 빨리 등을 돌릴 수가 있다는 말이냐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두 주장들을 살펴보면 남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는데 그것도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직후에 보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에 쓴 것입니다.

세번째 요인은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의 관계 속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잡음은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간에 회합의 연대 잡음과 안디옥에서의 바울과 베드로의 다툼 사건의 연대 잡음에도 달려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에서 바울이 보고하는 예루살렘에서의 사도회의와 갈라디아서 22장 11-22절까지에서 바울이 보고하는 안디옥 사건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에서의 회합과 안디옥에서의 사건의 연대 잡음은 바울이 예루살렘을 몇번 방문했느냐에 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갈라디아서 1장 2절과 사도행전과 잘 맞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2절에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쓸 당시까지의 자기의 예루살렘 방문을 보고합니다. 무엇이라고 보고를 하느냐 하면 예루살렘 첫 방문이 언제 있었느냐 하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 3년후에(1장 18-20절) --고대에는 한 해의 조각도 한 해로 쳤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3년이란 만 2년쯤 되는 거라고 보는게 더 현실적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32년에서 34년, 이 동안에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그러는데 여기다가 3년 곧 만 2년쯤 덧붙이면 한 32년 그쯤에 예루살렘에 첫 방문을 한 것입니다.

두번째 방문을 14년후 2장 1-10절에 14년후(이것도 한 13년쯤 되겠지요) 다시 내가 예루살렘에 바나바와 함께 올라갔는데(갈 2:1) 디도를 동반하고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그뒤 첫 방문후 14년이라는 뜻이냐 아니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로 부름받은 후 14년이라는 뜻이냐? 아마 첫 방문후 14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쯤 되느냐 하면 49년쯤 됩니다. 48-9년쯤에 예루살렘에 두번째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9장 26-30절에 첫 방문이거나 바울이 다베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뒤, 그러니까 다베섹 사건 뒤(행 9:26-30) 두번째는 사도행전 11장27-30절까지의 예루살렘과 유다의 기근 구호를 위해 안디옥에서 구호물자를 가지고 갑니다.

세번째는 사도행전 15장 1-30절까지의 사도회의 이때의 이슈는 할례와 모세 율법을 이방인들이 지켜야 되느냐 아니면 그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느냐? 자 지금 이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 문제는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 기록된 것인데, 여기서 바울이 예루살렘의 기둥 사도들과 회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바울의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지 않는 복음이 인정되고 바울의 이방인들에 대한 사도직이 인정이 되어서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느냐 하면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을 위임받은 것 같이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을 위임받은 것 같이 되고 그래서 상호 복음을 인정하기로 하고 선교지를 분할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선교하기로 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들에 선교하기로 해서 서로 교제속에 한 교회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 바울이 갈라디아서 2:1-10절까지 보고하는 두번째 방문입니다. 자 여기서 문제는 갈 2:1-10절까지에서 보고된 바울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의 기근 구호 방문과 같은 방문이냐 아니면 사도행전 15장과 같은 방문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약에 갈 2:1-10절까지의 방문이 사도회의 후의 방문과 같은 것이면 갈라디아서는 언제 쓰였겠습니까? 사도회의 후에 쓰였겠지지요. 그러나 만일 기근 그호의 방문이면 갈라디아서는 언제 쓰였겠어요? 사도회의 전에 쓰였겠지요.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전에 쓰였느냐 후에 쓰였느냐에 따라 바울의 복음이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율법의 행위 없이 구원 받는 복음이 원래부터 바울의 복음이냐, 그래서 그 복음이 사도회의를 유발시켰느냐? 아니면 사도회의에서 다 인정이 되었는데도 예루살렘의 극 보수주의자들이 바울의 교회에 돌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한거냐? 이렇게 바울 신학의 전개와 초대 교회의 역사를 재 구성하는데 이 갈라디아서의 연대잡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자 그럼 증거들을 봅시다.

첫째로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과 사도행전 11장의 기근 구호 방문이 같은거라는 견해에서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이방 선교를 해야 할 필요성과 그것을 위해서 선교지를 나누는데 합의했는데 이것은 바울의 이방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선교여행 전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른바 바울의 체계적인 1차 이방 선교 여행이 사도행전 13장 1절 이하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체계적으로 바울이 이방 선교를 한 뒤에야 예루살렘에 가서 이제 선교지를 나눕시다 하면 말이 안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선교지를 나누는데 합의한 후에 체계적인 선교 여행이 있었을 것입니다. 체계적인 선교 여행이 사도행전 13장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선교지를 나누는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언제 일어났겠습니까? 사도행전 13장의 체계적인 선교 여행전에 일어났다면 언제냐하면 11장에, 둘째로 갈 2:10절을 읽어 봅시다. 그 회의 끝에, 그들이 바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다만 무엇만 부탁했다고요?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계속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바울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 바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방문에 적합한 말이냐? 기근 구호 방문에 적절한 말이지.

바울과 바나바가 구호 물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온김에 이방 선교에 대하여 논의하고 “아, 그러면 당신은 선고지를 나누어서 이방선교하고 우리는 유대선교합시다. 다만 이방 땅으로 멀리 가더라도 예루살렘 유대 땅의 가난한 자들(예루살렘 성도들)을 계속 좀 기억해 주시오.” 하니까 “아, 그거야 내가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바 아니요. 그래서 지금 구호물자 가지고 온 것 아니요.” 이것을 보면 바울의 두번째 방문이 기근 방문같다는 말입니다.

세번째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계시에 의거해서 올라갔다고 그러는데 이 말은 사도행전 11장 28절에 있는 선지자 아가보의 말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선지자 아가보가 무엇이라고 해요. 지금 예루살렘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므로 이 구호물자를 모아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갈 2:2절에 계시에 의해서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의 아가보의 예언.

네번째로 갈라디아서 2장의 두번째 방문을 사도행전 11장의 기근 방문과 일치된 방문이라고 본다면, 그럼 갈라디아에서의 방문 일정과 사도행전의 방문이 맞아들어갑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두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5장의 세번째 방문과 일치한다면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하나의 방문을 빼어 먹어 버렸든가 아니면 누가가 나중에 기록하면서 역사를 잘못 기록한다든가, 그래서 원래는 11장 방문과 사도의 방문이 한 방문이었는데 누가가 두가지 전승을 따로 따로 받아서 혼돈해가지고 마치 두 번 일어난 것으로 적고 있는가 하는 설들이 다 제기된 설들입니다.

자 오늘은 갈라디아서의 두 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기근 방문과 일치하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의견을 반대하는 증거들이 또 있는데 이런 것을 다 따져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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