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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제 3 강

by 【고동엽】 2022. 10. 23.

바울서신  제 3 강

 

김세윤 교수

 

갈라디아서 2

 

개혁신학교 1991. 2학기 강의 녹취록

송영찬 제공

 

1.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의 관계

지난 시간에 갈라디아서의 연대 잡음에 있어서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이 각각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기록하고 있는데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의 첫 방문을 1장 18-24절 까지에서 3년 뒤라, 그러니까 약 만 2년뒤, 다음에 두번째 방문을 2장 1-10절까지에서 보고하는데 그후 14년 뒤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은 첫 방문을 바울의 소명 뒤 9장 26-30절까지 이고, 두번째 방문은 기근 구호 방문으로서 11장 27-30절까지 이고, 세번째 방문은 예루살렘 사도회의 방문으로 15장 1-30절까지에서 이야기 되는데, 문제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두번째 방문이 이 방문하고 같으냐, 이 방문하고 같으냐에 따라 갈라디아서의 연대가 좌우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둘째 방문이 그 방문과 같다는 설을 지지하는 자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 1. 두번째 방문이 기근 구호 방문과 같다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

그러나 이 설에 반대되는 논증들이 있습니다. 곧 둘째 방문이 기근 구호 방문과 같다는 설을 반대하는 증거들, 사도행전 11장 27-30절과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이 다르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기근 구호 방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이 사도들과 회합한 것을 중요 사항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번째 방문은 세번째의 사도회의 방문과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2장 1-10절까지 보면 사도들과 복음과 선교지에 대해서 회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7-30절은 예루살렘에 기근을 구호하러 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반대 의견에 대한 또 반대 의견, 갈라디아서 2장 10절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둘째 방문이 실제로는 기근 구호 방문이었으나 그 기회를 이용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사도들과 이방 선교에 대해서 상의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기근 방문의 목적을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에서 강조하지 않고 이방 선교에 대한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회합과 의견 일치만 강조하느냐 하면 그것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 2장 10절을 한번 읽어 보아요.

사도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이나 뭐나 일체 덧붙인바 없고 무엇만 요구했어요? 가난한 자들을 계속 염두에 두어달라 했고 그랬을 때 바울은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힘써 행하는 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 2장 10절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예루살렘 두번째 방문에 대한 어떠한 이해를 가능케 하느냐 하면, 이 둘째 방문이 원래 기근 구호 방문이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사도들과 이방 선교에 대해서 상의하고 합의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기근때문에 갔다는 말을 강조하지 않고 부차적인 의제였던 이방 선교에 합의 본것을 강조하느냐? 이것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이말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사도직과 복음에 대해서 시비를 하므로 바울은 이때에 자기의 복음과 사도직에 대해서 예루살렘 사도들도 동의했음을 자연히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기근 방문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이 방문의 부차적인 목적이었으나 갈라디아의 현안 문제 때문에 그점을 바울이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 또 다른 견해

그러나 두번째 방문이 기근 구호 방문이었다는 견해에 대한 두번째 반대 의견은 지금 우리가 첫번째 반대 의견을 댓고 그것에 대한 반대 이유를 들었고 두번째 반대 이유는 만약 갈라디아서의 둘째 방문과 사도행전 11장의 기근 방문을 동일한 방문으로 보면은, 갈라디아서가 남부 갈라디아에 보내졌다는 이른바 남부 갈라디아說을 취해야 되고 갈라디아서를 바울의 현존하는 편지 글 중 가장 오래된 편지라고 보아야 하며 바울의 첫 선교여행과 사도회의 그 사이에 써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갈라디아서가 이렇게 일찍 쓰여졌다고 보는 것은 나중에 보겠지만 갈라디아서가 로마서와 고린도 서신들과 유사점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렇게 갈라디아서를 일찍 연대 잡을 수 밖에 없다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답으로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논란이 오고 갑니다.

 

* 3. 두번째 방문이 기근 구호 방문과 같다는 견해

그 다음에 이제 이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회의와 같은 방문(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이라는 설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증거들이 제시됩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죠?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과 기근 구호 방문이 같은 방문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자료들과 반대하는 자료들 그리고 반대하는 자료들에 대한 반대를 또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갈라디아서의 둘째 방문과 사도행전 15장의 사도회의 방문과 같다는 설을 지지하는 자료들, 첫째로 갈라디아서 2장 10절까지와 사도행전 15장 1-30절까지에 공통 되는 이슈는 한편 바울과 바나바 다른 한편 예루살렘 사도들의 할례와 율법을 이방들에게 요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주제가 같다 이말입니다. 이 자료는 아까 둘째 방문과 기근 구호 방문을 일치 시키는데 있어서 반대 자료로 사용된 것입니다.

 

1. 첫째 견해

그러면 둘째 방문과 사도회의 방문이 같은 방문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자료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되느냐? 갈라디아서 2장 1-10절 까지에서 할례와 율법의 문제가 그 방문기간에 제기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디아서 2장 1절 한번 읽어보세요)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그것이 무슨 연고인지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와 율법때문에 올라갔는지 안 올라갔는지 아무 말도 없습니다. 다만 디도를 데리고 갔는데 디도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할례와 모세의 율법 지키는 것이 능동적으로 요청된다고 했으면 디도를 캣취 프레이스로 삼아서 요구했을 것이다 이말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제기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제기되지 않았나요? 4절에 어떤 거짓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에 침투해서 할례를 강요한 때까지 이 문제가 제기 되지 않았다 이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침투해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거짓 형제들에게 전혀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양보를 하면 자기 복음의 진리가 훼손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견해를 안디옥에서 그 문제가 있었을때 취했는데 지금 갈라디아에서 비슷하게 유대주의자들이 일으키는 위기 곧 갈라디아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할례를 요구하는데 똑같이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를 보면 이 할례 문제와 율법 문제가 제기 되었다는 증거가 분명치 않습니다. 지금 이것을 이렇게 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갈 2:1-10절 까지에서 바울이 자기의 복음을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제기했고 예루살렘 사도들이 그 복음을 인정했다는데서 어떻게 도약을 해요? 아, 그것은 할례와 율법을 문제 삼아서 토론한 뒤 바울 당신은 이방인들에(거기에는 무할례자들이고 표현이 되어 있는) 대한 복음을 선포하는 자이므로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방문은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와 모세 율법 준수가 주 토론의 내용이었다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장 1절에서부터 읽어보면 진짜 할례 문제가 제기 되었다는 증거가 불 분명하고 다만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기근 구호때 예루살렘에 가서, 간 김에 서로의 복음을 비교하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서 그들의 동의를 얻고자 “우리 서로 협동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자. 당신과 바나바는 이방인 선교를 하고 우리들은 주로 유대인 선교를 하지.” 이렇게 합의를 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이말입니다. 할례 문제와 율법 문제에 관한 깊은 논란이 없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주제가 똑같다 하는데에 문제가 있다 이말입니다.

 

2. 둘째 견해

두번째는 이 방문과 사도회의가 같다는 주장이 무엇이냐 하면 갈라디아서 2장 6절에서 9절까지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공식적인 회합을 위한 방문이었던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바울이 여기서 사도회의의 회의록을 인용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말입니다. 6-9절까지를 읽어보아요. 여기 보면 두 가지점에서 가령 E. Dinkler 같은 사람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점에 유의한다고. 첫째로 베드로를 항상 게바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만 유독 베드로라는 이름을 불러요. 그의 교회로서의 의미있는 이름인 베드로라는, 그러니까 거의 시몬의, 게바의 공식 칭호인 베드로라는 이름을 바울은 이 편지의 두 곳에서만 씁니다. 그 외에는 항상 게바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후에 다시 게바라고 불러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 또 11절에 가서도 게바, 14절에서도 게바, 이렇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시몬을 게바라고 부르는데, 이 7-8절에서만 공식 칭호였던 베드로라는 이름을 쓴다는 것 하나. 둘째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무엇이라고 지칭해요? 7절에...... (무할례의 복음) 베드로는 할례의 복음을 위임 받았듯이 자신은 무할례의 복음을 위임 받았다 할 때에 이 “할례의 복음과 무할례의 복음”은 당당히 공식적인 칭호의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이 두 점에 이어 세번째로는 선교지의 분리에 합의를 하고 양 선교 운동의 대표들, 바울과 바나바(무할례의 복음을 맡은) 그리고 유대 선교를 맡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할례의 복음을 가진 자로서 상호 인정하기로 하나의 조약을 맺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들을 관찰해서 E. Dinkler는 바울이 여기에서 사도회의 때의 회의록을 지금 여기 인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보통 게바라고 부르는데 그 회의록에 공식 명칭으로 베드로라고 부르기 때문에 여기서 베드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에서 바울은 둘째번 예루살렘 방문때의 회의가 선교지를 나누는데 있어서 거의 조약을 체결하고 회의록을 남길 정도로 공식적인 회의라는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사도행전 15장의 사도회의 때의 분위기와 맞는 것이지 기근 구호때 가서 비 공식적으로 복음과 선교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두번째 방문은 사도행전의 사도회의 때의 방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사도들과의 회합이 사적이었던 것이라고 바울이 아주 못을 박고 있습니다. 2장 2절을 읽어 보세요. 거기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나요? 예루살렘에서 아주 인정 받는 권위자들에게 복음을 자기가 제시한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그들에게 사적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합이 공식적인 사도회의가 아니었음을 아예 바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이 아주 형편없이 되어 있습니다. 문장이 끊어질 때 끊어져야 하는데 하여간 이상하게 해 놓아서 읽을 수가 없게 해 놓았습니다. 큰일입니다. 빨리 개역 성경에서 해방이 되어야지 하나님이 개역성경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한국의 보수라는 사람들은 머리가 좀 깨어야지 개역 성경 번역이 형편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성경이라고 자꾸 주장을 합니다. 사실 새 번역이 훨씬 나은 번역입니다. 지금 성서 공회에서 새로 번역한다는데 상당히 힘들여서 애써서 번역하는 모양이니까 아무래도 좀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나마나 그 성경 나오면 또 틀렸다고 난리 날 것입니다. 모든 번역이 다 틀립니다. 문제는 더 많이 틀리고 더 작게 틀리고에 있습니다. 하여간 문제가 많아요.

 

3. 셋쩨 견해

자, 그 다음 위의 두 방문이 같은 방문이라는 세번째 이유,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을 사도행전 15장에서의 사도회의 방문과 같은 방문이라고 하면 우리는 북부 갈라디아설을 유지할 수 있고 갈라디아서는 사도회의 후에 쓰여진 것입니다. AD 49년 이후에 쓰여진 편지로서 고린도서들과 로마서와 가깝게 연대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서들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상당히 내용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렇게 연대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회의 방문과 같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답은 또 갈라디아서를 사도회의 후에 씌어진 편지로 보면, 금방 우리가 보겠지만, 상당해 문제가 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를 고린도서들과 로마서와 가깝게 연대 잡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번째 주장도 그렇게 잘한 주장이 아닙니다.

 

* 4. 위 견해에 대한 반대 논증

자, 그러면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과 사도행전 15장의 방문이 같은 방문이라는데에 대한 반대 논증, 첫째로 이 견해는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후에 쓰여졌다는 결론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갈라디아서 2장이나 또는 그 편지 전체에서 바울이 사도회의의 명령 결정사항 --사도행전 15장 19-21절까지에 있는 사도회의의 결의 사항-- 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사도회의의 결의 사항이 무엇입니까? 15장 19-21절까지 읽어보시오. 결의 사항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할례와 율법은 요구하지 말 것, 할례와 율법의 요구로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지 말 것, 율법의 가장 최소한의 요구만 요구하자. 예를 들면 우상 숭배, 음행, 목매어 죽인 짐승 먹지 말고..... 이 서 너 가지만 지키도록 하자 한 것이 사도회의의 결의입니다.

이제 갈라디아서의 둘째 방문의 사도회의 방문과 같은 해이어서 갈라디아서가 예루살렘 사도회의 이후에 쓰여진 편지라면,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이 이 사도회의의 결의를 인용을 했겠죠? 왜? 인용하면 지금의 갈라디아서의 문제에 아주 효과적이잖아요? 갈라디아에서 “이미 그점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한 바 있다.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너희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너희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주장을 하는 모양인데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그들의 권위를 호소하는 모양인데, 예루살렘 사도들이 우리와 그점에 있어서 완전히 합의해서 이런 결의를 했고 이것을 편지로 온 세상 교회에 보내기로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 이런말을 했겠죠.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에서든지 아니면 다른 부분에서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게 일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갈라디아서가 사도회의 이전에 쓰여졌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소리냐? 갈라디아서의 두번째 방문은 이 방문의 이전의 방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의 두번째 방문이 사도회의 이전의 방문, 기근 구호의 방문과 일치하는 방문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왜? 할례와 율법 문제가 정식으로 제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도들과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복음의 비교와 토론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을 읽어보면,  이점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게바가 안디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거리낌없이 식사를 잘 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오자 게바가 식사 교제를 중단하니까 바나바도 그렇고 그들과 더불어 모든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갑자기 이방인들과 식사 교제하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게바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의 둘째 방문이 사도회의와 같은 방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사도회의의 결의에 근거해서 바울이 지금 베드로를 공박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 사도회의 결의에 근거해서 베드로가 안디옥의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잘 했습니다. 왜? 할례도 요구할 필요없고 율법도 요구할 필요없고 해서 밥을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아주 극보수주의자들이 와서 식사 교제를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렇게까지 결의를 해 놓고서 당신이 이방인들과 상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진짜 똑같은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냐? 이방 그리스도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같이 식사하겠다고 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당신 지금 예루살렘의 사도회의 결의를 파기한 것 아니냐?” 이렇게 예루살렘 결의에 근거해서 바울이 게바를 나무라고 있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능성 있는 해석은 그러면 바울이 분명히 말했기 때문에 왜? 갈라디아서에서 문제가 뭐예요? 할례가 문제인데 할례는 요구하지 않기로 썼다고 사도회의에서 결의를 했다고 말했을거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2장 11절도 이렇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가서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처음에는 거리낌없이 교제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야고보의 사람들이 왔을 때에 이 교제를 그만 둔 것은 아직 교회 전체로서 이방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대하자는 원칙이 서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선교사로서 처음에는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sign을 보이니까 스스럼 없이 교제를 하다가 율법의 관점에서 그것을 비판하는 자들이 오므로 “아, 이건 주의해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평화를 해치겠구나.” 해서 철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11절에서 바울이 베드로에게 대고 한 연설이 죽 나옵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은 자들인데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 하고 게바를 면박을 줍니다. 그래서 안디옥에서 바울과의 이와 같은 논쟁끝에 베드로는 스스로 바울의 복음의 원칙에 설득이  되어서 그 뒤에 사도회의가 열렸을때 베드로가 바울의 입장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안디옥에서 베드로가 처음에는 이런 원칙이 없었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다가 바울의 논리적인 신학적인 논증에 설득이 되어서 나중에 열린 사도회의에서 베드로가 바울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째 방문은 사도회의 이전의 방문이라는 말입니다. 또 이 둘째 방문과 사도회의 방문을 동일시하는데 있어서 반대되는 두번째 이유는 만약에 이 갈라디아서의 둘째 방문이 사도회의 방문과 같은 방문이었다면 바울이 그의 자서전적인 진술에서 기근 구호 방문을 생략했거나 아니면 누가가 실제로 두번밖에 안 일어난 방문을 세번 일어난 것으로 잘못 적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를 삭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의 방문과 사도행전 15장의 방문이 같은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합니다. 첫째로 사도회의 방문(사도행전15장의)은, 사실은 기근 구호 방문과 같은 방문이었는데 누가가 이 방문에 대한 두 개의 다른 전승들을 받아가지고 이것이 같은 방문인줄 모르고 앞뒤로 일어난 것 같이 적었다고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둘째로 사도행전 11장 27-30절까지의 기근 방문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누가가 만들어냈다고 하거나, 아니면 세번째로 사도행전 15장의 사도회의 방문은 바울의 두 선교 여행 사이에 일어난 첫 방문과 그때 이제 할례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입니다(갈 2:1-10절에서 말하는). 그 두번째 방문, 이때는 베드로와 바울간의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같이 식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었는데-- 이 두 방문을 하나의 방문으로 혼합해서 누가가 잘못 만들어 냈다고 주장을 합니다.

또 바울 스스로가 기근 구호 방문을 생략했다는 것은 갈라디아서 1장 20절에 의해서 제외된 가능성입니다. 거기 무엇이라고 써있나요? 갈라디아서 1장 20절에 바울이 거기서 맹세를 하고 자기가 지금부터 자기가 하고 있는 자서전적 진술은 거짓말이 아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방문 하나를 생략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문제라는 말입니다.

 

* 5. 종합

이제 결론을 내겠습니다. 첫째,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의 기록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사도행전 11장 27절에서 30절까지의 방문과 같은 방문입니다. 둘째, 갈라디아서는 구호 방문뒤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 그 사이에 쓰여진 편지입니다. 사도회의는 AD 49년쯤인데 갈라디아서는 그전에 쓰여진 편지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2. 갈라디아서와 다른 서신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제 갈라디아서의 연대 잡음에 있어서 또 하나의 요인이 무엇이냐 하면 갈라디아서와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라디아서와 다른 편지들과 비교하여서 연대를 잡는 것입니다.

 

* 로마서와의 관계

첫째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보면 많은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한번 헤아려봐요. 공통점들이 뭐예요? “믿음으로 율법의 행위없이 의인됨” 이것이 두 편지들의 주제입니다. 아주 뚜렷한 주제들입니다. 또?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인됨”은 방종을 낳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육신과 영의 대조,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5장이 아주 비슷합니다. 또 “성령을 받으면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갈라디아서 4장 6절, 로마서 8장 15절, 또? 자세한 것을 생각해봐요. 둘다 하박국 2장 4절의 해석을 바울의 논지로 삼고 있다고 하박국 2장 4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로마서 1장 17절에 하박국 2장 4절을 바울의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인됨”의 논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예를 “은혜로, 믿음으로 의인됨”의 아주 결정적, 성경적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의 아브라함의 예가 갈라디아서 3장 6절, 로마서 4장 3절에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 이방 선교에서 성취됨.” 즉,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통해서 만민을 축복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바울의 이방 선교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또 창세기 12장 3절, 18장 18절이 갈라디아서 3장 8절에 인용이 되어 있고, 창세기 17장 5절이 로마서 4장 17절에 인용이 되어 있고, 또하나 덧붙인다면 율법을 요약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갈라디아서 5장 14절, 로마서 13장 9절에 요약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아주 비슷한 전체적인 주제, 복음의 해석과 그것에 따른 소 주제들이 아주 비슷합니다.

둘째로, 그러면 차이는 무엇입니까? 차이점, 기록의 목적. 또? 물론 대상도 다릅니다. 그런데 공통점을 기록함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옵니다. 어조에도 차이가 있는데 로마서는 아주 침착하게 논리 정연하게 논증하는 것으로 되어있고, 갈라디아서는 화가 잔뜩나서 성미급한 바울이 원수들과의 큰 갈등속에서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들은 자연히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로마서는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가 있은 얼마후, 그러니까 얼마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룬 이 복음의 해석을 좀더 묵상하고 좀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쓴 편지이냐? 그래서 바울의 율법에 대한 태도도,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을 일방적이고 부정적으로만 깍아내렸는데 로마서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인정하느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yes라고 답한다면, 갈라디아서는 로마서 직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와 아주 연대적으로 가깝게 --로마서보다 조금 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 2. 고린도후서와의 관계

두번째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와의 관계 속에서는 여기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둘다 다 문제가 왜 일어났나요? 외부에서 침투한 바울의 적대자들이 무슨 시비를 걸었습니까?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이 틀렸다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0-13장까지는 바울이 아주 흥분해 가지고 화가 잔뜩 나있습니다. 바울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싸움을 잘하고, 바울을 자꾸 성인화 해가지고 성인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성인은 모두가 다 개성도 없이 똑같이 앗시시의 프란치스꼬가 되어야 한다는 선입관을 뒤집어 씌워서 바울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원터 보르캄의 아주 중요하고 널리 읽히는 「바울」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한국말로도 번역이 되어서 허혁 교수가 책을 냈는데, 원래 이책은 바울신학의 토론들의 결과를 아주 평이한 말로 잘 쓴 책이어서 전문가들도 많이 읽는 책이지만 평신도들도 참 많이 읽어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처음 출판이 되었을때 수십만부가 나갔고 영어로 번역이 되어서도 아주 많이 읽힙니다. 이 책의 또하나의 특징은 바울의 신학만 토론한게 아니고 바울의 신학을 바울의 생애와 연결시켜서 토론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personality에 대해서도 지적을 합니다. 하여간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지금 자기의 복음이 무효로 되고, 사도직이 무효로 되고, 자기의 지금까지의 선교적 노력이 다 허사가 될 그런 위기 속에서 엄청난 불안과 긴장속에서 화가 잔뜩 나가지고 적대자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공통점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의 문제는 갈라디아에 침투한 적대자들이 고린도에 침투한 적대자들과 같은 적대자들이냐 아니면 다른 적대자들이냐? 옛날에는 그냥 다 이들이 유대주의자들이고 같은 적대자들일 것이다 아니면 영지주의자들로 같은 적대자들일 것이다 이렇게 보았는데 자세히 보면 같은 적대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갈라디아서에서는 주로 바울의 복음을 시비해요? 바울의 복음을 깍아내리기 위해서 그의 사도직을 깍아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는 반대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의 사도직을 깍아내린 것입니다. 사도직을 깍아내리면 자연히 그의 복음에 대해서도 비난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주로 그의 사도직의 시비,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그의 복음의 시비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와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적대자들이 둘 다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의 색깔이 좀다르고 그들의 신학적인 주장이 좀 다르고 바울에 대한 시비가 좀 달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를 꼭 비슷한 시기에 연대잡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적대자들이 같은 자들이었으면 그들이 갈라디아에서 난리 피우고 고린도에 가서 난리를 피웠을 것이므로, 바울이 갈라디아의 문제를 평정한 후에 고린도에 가서 또 그들과 싸웠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의 시기를 상당히 비슷하게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적대자들이 전혀 다른 자들이었으면 갈라디아서를 연대 잡음에 있어서 고린도후서와 관계없이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학적인 토론에 있어서 고린도후서 1장 9절과 로마서 사이에 갈라디아서를 연대잡으면 바울의 신학이 어떻게 이렇게 진화했는가를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은 너무 주관적인 설이어서 이를테면 캠멜도 「신약 개론」에서 반대하고  F.F 부르스도 반대합니다.

 

* 3. 고린도 전후서, 빌립보서와의 관계

자 세번째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 전후서 그리고 빌립보서와의 관계를 봅시다. T.W. Manson은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은 바울의 에베소의 목회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한 3년 목회 했죠? 그 기간에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이 기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되고, 그렇다면 고린도 전후서와 빌립보서도 같은 기간 동안에 쓰여진 편지이니까 고린도 전후서와 갈라디아서의 유사점과 빌리보서의 유사점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F.F 부르스는 고린도 서신에 나오는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공격과 성질이 좀 다른 것으로서, 예컨대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서는 할례를 요구한 흔적이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할례가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우리가 사도행전의 기록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본다면 갈라디아에 침투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에 침투한 유대인으로 보아야 하고,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유대주의자들은 사도회의 후에 침투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사도회의에서 무엇이 결의되었나 하면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도회의 결의가 있기 전에 갈라디아에 문제가 터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확실한 결의가 있은 후에는 누구도 할례 문제를 이방 교회에 와서 제기한 적이 없으니까 고린도 교회에서는 할례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시기적으로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밴슨이 이야기하는 대로 바울의 에베소 목회기간 동안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시기적으로 완전히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사도회의 전에, 고린도 문제는 사도회의 후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부루스의 제자인 John Drane 같은 사람은 이제 그 뒤를 이어서 괴팅겐 교수 Hans 같은 사람은 바울의 율법 신학이 이렇게 발달했다고 봅니다.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율법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에 아주 율법주의자가 많아서 여기에 침투한 유대주의자들이 율법을 강요하므로 바울이 거기에서는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말입니다(antithesis).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며, 적자가 아닌 하갈과 같은 것이며, 하는 식으로 아주 율법을 깍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고린도에서 무슨 현상이 나왔느냐 하면 아주 방종주의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안되겠다 해서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인의 한계를 정하고 율법을 다시 세웁니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서의 정반합, 즉 반 율법주의과 율법의 긍정적인 면의 강조의---- 로마서에서 율법에 대한 아주 균형있는게 다루는 synthesis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율법 신학이 갈라디아와 고린도의 다른 문제들에 의해서 이런 식으로 변증법적으로 발달을 했다고 John Drane 이나 Hans 나...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는 고린도전서와 로마서 전에 쓰여진 편지이지만 훨씬 전에 쓰여진 편지가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와 연계시켜서 연대를 잡아야 합니다.

 

* 4. 데살로니가 전후서와의 관계

네번쩨로,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가 전후서와의 관계, 여기서는 두 가지가 문제입니다. 하나는 구원론인데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는 구원론이 전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원론이 함축된 몇마디가 있으나 그것이 전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원시적입니다. 둘째로, 종말론인데,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의 종말론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예수 재림과 그에 따른 구원의 완성에 대한 것에 아주 열병걸린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이장림파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1992년 10월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므로 일하고 장가가고 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냥 산속에 가서 기도만 하고 앉아 있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이 옳바른 종말론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이제 학자들의 견해로는 초대 교회, 아주 원시적인 교회는 이와같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대로 그들의 신앙의 내용이 꽉 차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에서는 구원론이 어땠습니까? 완전히 전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구원론이나 종말론에 있어서 아주 원시 교회의 신앙 상태를 잘 보여준다면서, --갈라디아서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수그러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첫 열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강조되는데--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구원의 현재적 체험을 강조하면서 임박한 종말에만 구원을 기대했던 신앙이 교정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는 데살로니가 전후서보다 훨씬 후에 쓰여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대개 한 49년쯤에 쓰여졌다고 보는데, 그러면 그때의 바울의 구원론의 발달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때의 교회의 종말론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찼었는데 갈라디아서에는 이런 것이 안보입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는 이보다 훨씬 후에 쓰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쯤이 아마 고린도 서신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과 후서 5장, 여기를 분수령으로 해서 이런 식으로 발달을 했을 것이라고 이렇게 본다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만 종말이 임박한 것이 아니고 바울도 자기 생애 전에 주께서 재림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한 바울의 묵시적 종말에 대한 견해가 언제까지 지속이 되느냐 하면 고린도 전서 15장까지 지속이 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바울이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50절 부터 읽어봐요. 여기서 우리, 즉 말하는 자기와 이 편지 받는 고린도인들이 어떻다고요? 살아서 주를 맞이하므로 자기들이 변화를 입을 거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이때까지는 살아서 주의 재림을 체험할 것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에 가면 바울이 주의 재림전에 죽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주안에서 죽는 자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를 논합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전혀 불안해 할 것이 아니고 살아서 주를 맞이하는 자보다 손해 보는게 아니고 주에게 더 가까이 감을 의미한다고 여기서 논합니다.

그래서 ? 바더 같은 사람은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고린도 전서 15장과 고린도후서 5장이 바울의 종말론의 발전의 분수령이라고 합니다. 이때까지는 바울이 자기 생전의 주의 재림을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직후 바울은 주의 재림전에 자기의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그리스도 재림전에 죽는 자들의 운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고린도후서 1장 8-10절 까지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말로다 할 수 없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고난을 받고 어땠나요? 삶을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에 직면하는 고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고난이었을까? 어떤 사람은 바울이 에베소의 맹수와 싸웠다느니 하는 별 소리가 다 있는데 정확히는 몰라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죽음을 직면하는 엄청난 고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T.H. 바드는 바울이 그리스도 재림전에 죽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주 안에서 죽은 자의 운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게 어디까지 오느냐 하면 빌립보서 1장에 오면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나음을 말하는 --사형선고를 기대하면서 죽는 것을 기대하는-- 개인적 종말론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임박한 종말을 기대하는 --묵시적 종말론으로 바울이 시작을 했는데, 어디에서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그게 어디까지 있어요? 고린도전서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과 후서 5장을 분수령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이 구원의 완성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앞에서의 구원을 더 체험한 (바울은 그것을 잠자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 주께서 오셔야만 우리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에 주께서 빨리 오셔야 되겠다는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열망이 식어졌습니다. 모든 구원의 소망이 재림에 달린 것이 아니고 벌써 우리가  ?  주안에서 죽으면 ?  그러기 때문에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된다면 자연히 재림에 대해서 너무 열병을 앓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재림에 대한 열병이 갈라디아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면 갈라디아서는 고린도 전후서 이후에 쓰여진 것입니다. 로마서나 빌립보서에 가까이 쓰여졌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 다음주에 여기서 부터 하겠습니다. 다음에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구원론과 관계해서 갈라디아서 연대 잡음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는 종말론에서, 하나는 구원론에서 바울 신학이 발전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구원론에서 바울의 “믿음으로만 의인됨”의 구원론이 고린도서까지는 없었는데, 갈라디아서에서 비로소 발생을 한 것이냐, 그렇다면 갈라디아서는 후기 작품일 뿐만 아니라 바울의 믿음으로 의인됨의 교리 자체는 바울의 복음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고 갈라디아 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의 도전에 응해서 발달시킨 나중 교리라고 알버트 슈바이쩌 같은 경우는 그렇게 봅니다. 그게 사실인가?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토론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바울의 종말론에 있어서 분수령을 이룹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논하라 하는 것이 가끔 시험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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