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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성결의 힘 (욥 2:6-10)

by 【고동엽】 2022. 9. 7.

욥의 성결의 힘   (욥 2:6-10)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욥이 고난당할 때 일어났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욥은 하나님이 보실 때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완벽하다고 인정받기도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완벽하다고 인정받는 다는 것은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욥을 완벽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루는 사탄이 하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욥은 동방에서 의인”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여기 동방이라는 말은 당시 요단동쪽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이라는 말은 성결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욥은 그 시대의 아주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시니까 그가 의롭게 살지, 복을 주시지 않으면 금방 욕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러면 욥을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 길로 사탄이 나가서 욥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 시험내용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사탄은 나가서 먼저 욥의 열 남매를 쳐서 죽게 했습니다. 한날한시에 한집에 모여 있던 열 남매를 집이 무너지게 해서 죽게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욥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그의 많은 재산을 칩니다. 하루아침에 그 많은 재산을 도적에게, 강도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몸을 쳤습니다. 그래서 온 몸에 악창이 발생하게 했습니다. 몸이 가려우니까 기와 조각으로 부스럼 난 몸을 긁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개들이 와서 그 몸을 핥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다 잃은 셈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고 집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욥이 아내에게 한 말이 참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고 욥이 성결한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된 말이고 그 말 한마디로 인해서 사탄으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손들게 한 말입니다. 욥이 말하기를 10절에서 “그대의 말이 선하지 못하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욥이 입술로 죄를 범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표현은 대부분 말로 이루어집니다. 성결한 신앙도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말의 위력이 참 대단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의 위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고로 인간의 말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창조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내용들을 창조합니다. 긍정의 말은 긍정의 내용들을 만들어냅니다. 믿음의 말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창조합니다. 말은 부메랑처럼 내 뱉은 그대로 자신에게로 그대로 돌아옵니다. 입에서 나간 말은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자신에게로 그냥 돌아와서 자신에게도 똑같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말은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위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의 위력이 몇 가지 있습니다.  

생명을 다스라는 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살립니다. 칼은 한 번에 한사람씩 죽일 수 있지만 말은 핵폭탄과 같아서 순식간에 여러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이 많아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게 누군가에게 큰 아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어 있고 또 너무 적어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느 부부가 싸움을 하고 말을 안했습니다. 남편이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 6시에 깨워줘”라고 메모를 해 놓고 잤습니다. 아침이 되어 놀라 잠을 깨 보니까 아내는 없고 시계를 보니 아침 9시였습니다. 테이블에 보니까 메모가 있었습니다. “6시예요, 일어나세요.” 말은 많아도 적어도 문제입니다. 욥은 말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함으로 성결한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환경을 다스리는 힘

성공자들의 성공 고백을 들어보면 누군가가 전해준 한마디 말을 마음에 품었고 그 말이 일생의 방향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말은 우리의 삶과 환경을 생산적으로 바꾸어 줍니다. 빌리 그래함이라는 세계적인 부흥사는 어려서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칫덩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저 아이가 커서 뭐가 되겠는가” 하고 혀를 찼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그런 말만 듣고 자랐다면 참으로 불행한 아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만큼은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으니 개성만 살리면 크게 될 꺼야” 하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커서 세계적인 부흥사가 됩니다. 맥아더장군도 어려서 말 할 수 없는 개구쟁이였고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었다고 합니다. 매일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모두 그 아이의 장래를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할머니가 “너는 군인 기질을 타고 났어”라고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그의 눈을 확 뜨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도 결국 위대한 군인이 되었습니다.

평소 말을 할 때 골라해야 합니다. 말은 내뱉은 그대로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할 때 대화중에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가능하면 성경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격려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또 말하기 전에 충분하게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말은 한번 내 뱉으면 다시 담을 수가 없습니다. 또 평상시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부정적으로 변해도 믿음의 고백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언어사용법입니다. 욥의 말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욥의 말은 지극히 긍정적인 말이었고 신앙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육체를 다스리는 힘

말 한마디가 육체의 기능에도 영향을 줍니다. 의사가 실수로 환자에게 “불치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환자로 하여금 회복불능으로 빠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그 말을 들으면 낙심되어 결국 신체적인 능력이 저하되어 죽을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 속에는 그렇게 강한 위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 한마디에 살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육체를 다스리는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다스리는 힘

말 한마디는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민13~14장을 보면 그런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이 가까워올 때 모세는 가나안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들여보냈습니다. 정탐을 끝내고 12명이 돌아와 귀국 보고를 합니다.  그때 그들의 보고에 긍정과 부정의 내용이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12명중 10명은 “우리들이 가기로 한 가나안땅은 삭막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대같이 커서 우리들이 그 땅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고 절대로 갈 수가 없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 보고를 받고 백성들이 얼마나 낙심했습니까. 모두 낙심하고 눈물을 흘리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모두 손에 돌을 들고 모세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모든 목적과 희망과 소망을 걸고 가나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오직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절망하게 만들었고 결국 조직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말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2명의 보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니다, 그 땅은 말 그대로 젓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었다. 이 탐스런 과실을 보라, 그것이 그 땅이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느냐,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이다”하고 말하자 비로소 진정되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공동체를 무너트릴 수 있고 말 한마디가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받는 것은 지도자는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솔직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흔히 말하는 알권리를 충족시키려 매사를 말하는 것 보다 때로는 알지 않을 권리가 훨씬 더 값질 수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죽어갑니다. 그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거짓말하고 덮어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전략입니다. 지도자는 사고, 생각, 정신이 지극히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매사를 남의 탓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고 똑같은 사안을 보고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보고 말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탐꾼 중 10명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구태의연한 사람은 가나안에 갈 수가 없습니다. 가나안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고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끝내 그 열 명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말 한마디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말 한마디가 자기 자신에게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전체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의 악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목전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말에는 이런 위력이 들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시험 전에 파이팅을 외치는 것도 공동체에 용기를 불어넣고 희망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말 한마디를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려면 긍정적인 말을 해서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떤 분들은 안 되는 말만 골라서 하는 독특한 은사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말은 먼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가정에 일터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또 자신의 삶에 어두운 영향을 그대로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영적권세의 통로

말 속에는 영적 권세도 들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선포되는 말 한마디 속에는 영적인 힘이, 능력이, 성령의 감화가 들어 있습니다. 믿음의 말은 영적 감화에 실려서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감화를 받고 그래서 소생하고 일어나고 변화 받고 능력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는 영적권위의 말 한마디는 영적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나사로에게 전달되어 나사로가 그대로 소생되어 나왔습니다. 귀신 들린 자에게 “귀신아 나가라”는 말씀 한마디에도 영적 권능이 나타나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나의 믿음의 말 한마디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의 말 한마디는 나를 살리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너를 살리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말 한마디는 내가 천국에 가게도 하고 지옥에 가게도 만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입니다. 나의 말 한마디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도 영접할 수도 있고 마귀를 나의 목자로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민 14:24-30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언제까지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하겠느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원망한자 전부는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모두다 저주, 낙오, 멸망, 불행, 파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 여기까지 천신만고 끝에 왔는데 말 한마디 때문에 도중에서 낙오되고 멸망당하고 모두 저주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나만 저주받고 불행해지고 나만 죽었습니까. 내가 불신하고 내가 부정하고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함으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광야에서 거꾸러져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모두 가나안을 가겠다고 40년 가까이 광야 길을 걸어 가나안 목전에 이르렀는데 그만 몇 명의 지도자, 몇 명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족장들을 잘못 만나서 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은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신앙인, 지도자는 말을 골라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창조적이고 따뜻한 말을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평과 원망의 말을 피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욥은 그 상황에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10남매를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한순간에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악창까지 돋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난의 자리에 놓였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그 말 한마디가 그 상황이 얼마나 처절하였는가를 말해줍니다. 그때 욥도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의문도 회의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양심껏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내게 발생하는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아내가 저주하고 집을 나갈 때 욕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욥은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 욥이 한 말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죄를 범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욥은 그 고난의 상황이 다 종료된 후에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삶을 따뜻하게 하고 소망적으로 이끌어주는 조건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과 언어입니다. 내가 내 입으로 내뱉는 말과 언어들이 나에게 그대로 영향을 줍니다. 말은 한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욕을 하면 욕이 돌아옵니다. 저주를 하면 저주가 그대로 내게로 돌아옵니다. 소망을 주는 말을 하면 소망의 내용이 그대로 내게로 돌아옵니다. 웃으면 웃음이 돌아옵니다. 말은 부메랑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섭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말 한마디는 지옥을 만들 수도 있고 천국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도 있고 하나님 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욥은 그 모진 환경에서도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를 성결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출처/이정익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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